"키워드 : 월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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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은 남북 분단 등의 사정으로 본의 아니게 서로 흩어져 만날 수 없게 되거나 소식을 모르는 가족이다. 한국의 현행법에 따르면 남북 이산가족이란 이산의 사유와 경위를 불문하고, 현재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으로 흩어져 있는 8촌 이내의 친척, 인척, 배우자 또는 배우자이었던 자를 말한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직후에 납치자, 미송환 포로, 미귀환 공작원의 경우 ‘특수이산가족’으로 분류하였다. 이산가족 문제는 특정 개인이나 남북의 정치적 문제를 넘어 인도적,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산가족 (離散家族)
이산가족은 남북 분단 등의 사정으로 본의 아니게 서로 흩어져 만날 수 없게 되거나 소식을 모르는 가족이다. 한국의 현행법에 따르면 남북 이산가족이란 이산의 사유와 경위를 불문하고, 현재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으로 흩어져 있는 8촌 이내의 친척, 인척, 배우자 또는 배우자이었던 자를 말한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직후에 납치자, 미송환 포로, 미귀환 공작원의 경우 ‘특수이산가족’으로 분류하였다. 이산가족 문제는 특정 개인이나 남북의 정치적 문제를 넘어 인도적,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
1940년대 말 이쾌대(李快大)가 유화로 제작한 4점의 인물 군상 연작.
군상 (群像)
1940년대 말 이쾌대(李快大)가 유화로 제작한 4점의 인물 군상 연작.
김주경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만경대」·「묘향산」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1928년 일본 도쿄미술학교 도화 사범과를 졸업하였다. 초기에는 서정적 사실주의 경향의 작품을 그렸다. 1935년 무렵부터는 프랑스 인상주의 미학을 수용한 작품세계를 펼쳤다. 1945년 조직된 조선미술건설본부의 서양화부 위원장을, 1946년에는 조선미술가동맹의 위원장을 지냈다. 1947년 월북하여 평양미술학교 창설에 참여 초대 교장이 되었다. 월북 이후 「김일성장군 전적」(1947), 「만경대」(1960년대) 등의 정치적 작품과 「묘향산」(1955) 등의 순수 풍경화가 알려져 있다.
김주경 (金周經)
김주경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만경대」·「묘향산」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1928년 일본 도쿄미술학교 도화 사범과를 졸업하였다. 초기에는 서정적 사실주의 경향의 작품을 그렸다. 1935년 무렵부터는 프랑스 인상주의 미학을 수용한 작품세계를 펼쳤다. 1945년 조직된 조선미술건설본부의 서양화부 위원장을, 1946년에는 조선미술가동맹의 위원장을 지냈다. 1947년 월북하여 평양미술학교 창설에 참여 초대 교장이 되었다. 월북 이후 「김일성장군 전적」(1947), 「만경대」(1960년대) 등의 정치적 작품과 「묘향산」(1955) 등의 순수 풍경화가 알려져 있다.
해방 이후 「옹진바다 전망」·「농촌의 모녀상 」·「바닷가 풍경」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길진섭 (吉鎭燮)
해방 이후 「옹진바다 전망」·「농촌의 모녀상 」·「바닷가 풍경」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해방 이후 「조난」·「걸인」·「송아지」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이쾌대 (李快大)
해방 이후 「조난」·「걸인」·「송아지」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월북자는 해방 이후 남한 지역의 사람으로서 자의에 의해 북한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으로 월북인이라고도 한다. 이들이 월북한 시기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해방 이후 미·소의 분할점령 및 정부수립 전후 시기, 전쟁 시기, 전쟁 이후 시기이다. 월북자는 정치적인 용어로 사용되어 정치적으로 북한을 지지하는 사람, 사상적으로는 공산주의자로 해석되었다. 이 때문에 월북자들의 가족은 사회적 멸시 속에 아픔을 견뎌야 했다. 월북자의 문학과 예술작품은 1988년에 이르러 정부수립 이전의 순수 예술작품에 한해 해금되었다.
월북자 (越北者)
월북자는 해방 이후 남한 지역의 사람으로서 자의에 의해 북한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으로 월북인이라고도 한다. 이들이 월북한 시기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해방 이후 미·소의 분할점령 및 정부수립 전후 시기, 전쟁 시기, 전쟁 이후 시기이다. 월북자는 정치적인 용어로 사용되어 정치적으로 북한을 지지하는 사람, 사상적으로는 공산주의자로 해석되었다. 이 때문에 월북자들의 가족은 사회적 멸시 속에 아픔을 견뎌야 했다. 월북자의 문학과 예술작품은 1988년에 이르러 정부수립 이전의 순수 예술작품에 한해 해금되었다.
이청원은 일제강점기와 북한에서 사회주의운동에 참가하고, 『조선역사독본』 등을 펴낸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이다.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운동과 일본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하였다. 1935년 이후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로서 『조선역사독본』 등을 펴냈다. 8·15광복 후 좌파 이론가로 활약하다가 월북하여 '조선력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1950년대 후반 교조주의, 수정주의로 비판받고 숙청되었다.
이청원 (李淸源)
이청원은 일제강점기와 북한에서 사회주의운동에 참가하고, 『조선역사독본』 등을 펴낸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이다.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운동과 일본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하였다. 1935년 이후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로서 『조선역사독본』 등을 펴냈다. 8·15광복 후 좌파 이론가로 활약하다가 월북하여 '조선력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1950년대 후반 교조주의, 수정주의로 비판받고 숙청되었다.
일제강점기 『모밀꽃』을 저술한 시인.
정호승 (鄭昊昇)
일제강점기 『모밀꽃』을 저술한 시인.
배운성은 일제강점기 「여인의 초상」·「해금강 총석정」·「자화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1927년 베를린 예술종합학교 학생전람회에서 3등상을 수상했다. 1935년에는 베를린과 함부르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어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동양의 모필을 사용한 부드러운 표현 효과와 유연한 색상 조화, 그리고 한국의 풍습과 문화를 소재로 한 작품 테마로 유럽 화단의 주목을 끌었다. 1940년 귀국하여 서울에서 운성회화연구소를 운영했다. 1950년에 월북했다. 배운성은 북한의 현대 판화예술사에서 중요한 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배운성 (裵雲成)
배운성은 일제강점기 「여인의 초상」·「해금강 총석정」·「자화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1927년 베를린 예술종합학교 학생전람회에서 3등상을 수상했다. 1935년에는 베를린과 함부르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어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동양의 모필을 사용한 부드러운 표현 효과와 유연한 색상 조화, 그리고 한국의 풍습과 문화를 소재로 한 작품 테마로 유럽 화단의 주목을 끌었다. 1940년 귀국하여 서울에서 운성회화연구소를 운영했다. 1950년에 월북했다. 배운성은 북한의 현대 판화예술사에서 중요한 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하얀 집의 테라스」·「병꽃」·「어항」 등을 그린 그린 서양화가.
최재덕 (崔載德)
「하얀 집의 테라스」·「병꽃」·「어항」 등을 그린 그린 서양화가.
일제강점기 「경칩」, 「잣을 까는 집」, 「군맹」 등을 저술한 소설가. 아동문학가.
현덕 (玄德)
일제강점기 「경칩」, 「잣을 까는 집」, 「군맹」 등을 저술한 소설가. 아동문학가.
일제강점기 「봄 스케치」·「고궁의 추광」·「중국인상」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임군홍 (林群鴻)
일제강점기 「봄 스케치」·「고궁의 추광」·「중국인상」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월북 음악가는 해방 이후부터 1953년 남북휴전협정을 맺었던 7월 사이에 북한으로 이주하여 활동했던 음악인이다. 월북 양악인과 월북 국악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월북 양악인은 대체로 서양이나 일본에서 유학한 후 귀국하여 음악 활동을 했던 이들로, 작곡가 김순남, 안기영이 등이 있다. 월북 국악인으로는 공기남, 박동실, 안기옥 등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조선성악연구회’를 중심으로 창극 활동을 했다. 월북 음악가들은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시기에 북한 음악의 선도 집단으로, 현대 북한 음악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월북 음악가 (越北 音樂家)
월북 음악가는 해방 이후부터 1953년 남북휴전협정을 맺었던 7월 사이에 북한으로 이주하여 활동했던 음악인이다. 월북 양악인과 월북 국악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월북 양악인은 대체로 서양이나 일본에서 유학한 후 귀국하여 음악 활동을 했던 이들로, 작곡가 김순남, 안기영이 등이 있다. 월북 국악인으로는 공기남, 박동실, 안기옥 등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조선성악연구회’를 중심으로 창극 활동을 했다. 월북 음악가들은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시기에 북한 음악의 선도 집단으로, 현대 북한 음악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 「김일성 초상화」·「남녘의 딸들 」·「묘향산풍경」 등을 그린 화가.
정온녀 (鄭溫女)
해방 이후 북한에서 「김일성 초상화」·「남녘의 딸들 」·「묘향산풍경」 등을 그린 화가.
일제강점기 「자화상」, 「추과」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월북화가.
윤자선 (尹子善)
일제강점기 「자화상」, 「추과」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월북화가.
해방 이후 『조선어문법: 어음론·형태론』, 『조선어학사』 등을 저술한 학자. 국어학자.
김병제 (金炳濟)
해방 이후 『조선어문법: 어음론·형태론』, 『조선어학사』 등을 저술한 학자. 국어학자.
일제강점기 「소년상」·「좌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엄도만 (嚴道晩)
일제강점기 「소년상」·「좌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해방 이후 북한에서 평양 조선고전악연구소 소장, 국립고전예술극장 총장 등을 역임한 국악인. 음악지도자.
안기옥 (安基玉)
해방 이후 북한에서 평양 조선고전악연구소 소장, 국립고전예술극장 총장 등을 역임한 국악인. 음악지도자.
해방 이후 「곽낙원여사상」, 「성관음상」, 「농민군상」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 공예가.
박승구 (朴勝龜)
해방 이후 「곽낙원여사상」, 「성관음상」, 「농민군상」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 공예가.
일제강점기 때 산촌한일(山村閑日), 개발지(開發地)의 추(秋) 등 여러 작품을 그리고, 1953년 월북하여 건축미술제작소 미술가로 활동한 한국화가.
이건영 (李建英)
일제강점기 때 산촌한일(山村閑日), 개발지(開發地)의 추(秋) 등 여러 작품을 그리고, 1953년 월북하여 건축미술제작소 미술가로 활동한 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