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와 북한에서 사회주의운동에 참가하고, 『조선역사독본』 등을 펴낸 사회주의 활동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인적 사항
주요 활동
이후 도사카 준 등이 주도한 유물론연구회에서 활동하며 『유물론연구』 등 일본 매체와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언론 매체에 한국사 연구 논저를 다수 발표하였다. 처음에는 세계사적 보편성에 입각하여 한국사에서 내재적 모순의 발전을 강조하였으나, 점차 아시아적 특수성을 중시하여 한국사의 정체성과 타율성에 주목하는 쪽으로 변화하였다. 이청원은 조선학 운동을 ‘유교 훈화적, 정책적, 반봉건적’이라고 비판하였다. 식민 지배 체제에 기생하는 민족 부르주아지를 비판하고, 복고주의를 이에 기반한 파시즘이라고 규정하였다.
1936년 12월 「조선 경제의 현 단계」라는 주제로 강연하는 등 한국인 유학생 운동을 지도하였다. 1938년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혁명론」에서는 민족 부르주아지를 비판하고 소비에트적 형태의 노동자,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적 독재를 주장하였다. 1940년 5월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징역형을 받았다. 전향서에는 통제경제론과 민족협화론을 주장하였다. 1944년 출옥 후 귀국하였다. 1945년 최익한의 딸 분경과 결혼하였다.
8‧15광복 직후 최익한과 더불어 장안파 공산당에 참가하였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발표한 조선인민공화국 후보위원에 포함되었다. 1945년 12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46년에는 민주주의민족전선 농업문제연구위원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그 밖에 민족문화연구소 소원으로 이름을 올리는 등 좌파 진영의 이론가로 활약하였다.
1946년 월북하여 북조선 인민위원회 선전부장, 조소문화협회 중앙위원 등을 지냈다. 1947년 조선력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기관지 『역사제문제』에 한국 근대사 논문을 활발하게 발표하였다. 1947년에 펴낸 『조선근대사연구』는 러시아어‧중국어‧일본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1948년부터 2년간 소련 모스크바에 있는 ‘조선당학교’에 유학하였다.
1952년 창설된 과학원에서 사회과학 부문 위원장을 맡았다. 1955년에는 과학원 역사학연구소 기관지 『력사과학』의 책임편집위원을 맡았다. 1955년 발표한 『조선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를 위한 투쟁』이 민족 부르주아지와 연대를 경시한다고 비판받았다. 1956년 8월 전원회의 이후 연안계 지도자로서 숙청된 역사학자 최창익(崔昌益)의 일파로 몰려 교조주의, 수정주의라고 비판받았다. 1958년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학문과 저술
참고문헌
논문
- 홍종욱, 「이청원이 남긴 검열 · 전향 · 숙청의 흔적」(『근대서지』 23, 근대서지학회, 2021)
- 홍종욱, 「제국의 사회주의자: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이청원의 삶과 실천」(『상허학보』 63, 상허학회, 2021)
- 広瀬貞三, 「北朝鮮における科学院と李清源」(『七隈史学』 11, 七隈史学会, 2009)
- 広瀬貞三, 「李清源の政治活動と朝鮮史研究」(『新潟国際情報大学 情報文化学部 紀要』 7, 新潟国際情報大学 情報文化学部, 200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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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노동자를 고용하여 이윤을 얻는 계급.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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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과거의 정치, 사상, 문화, 제도, 풍습 따위로 되돌아가려는 태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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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제일 차 세계 대전 후에 나타난 극단적인 전체주의적ㆍ배외적 정치 이념. 또는 그 이념을 따르는 지배 체제. 자유주의를 부정하고 폭력적인 방법에 의한 일당 독재를 주장하여 지배자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한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철저한 국수주의ㆍ군국주의를 지향하여 민족 지상주의, 반공을 내세워 침략 정책을 주장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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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않고 노동력을 판매하여 생활하는 계급.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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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어떤 원리나 이론, 사상 등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처럼 여겨 덮어놓고 그대로 지키려는 태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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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마르크스주의를 진리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마르크스의 본디 주장을 수정하려는 태도를 비난조로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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