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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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철을 이용해 도구로 사용하게 된 시기부터 역사시대 이전까지의 시기.
철기시대 (鐵器時代)
인류가 철을 이용해 도구로 사용하게 된 시기부터 역사시대 이전까지의 시기.
위만조선은 초기 국가시대에 위만이 집권한 서기전 2세기 초부터 한나라의 공격으로 멸망한 서기전 108년까지의 조선이다. 위만 집권 이전을 고조선으로, 이후를 위만조선으로 부른다. 14세기에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분하기 위하여 고조선과 위만조선을 합쳐서 고조선으로 부르기도 한다.
위만조선 (衛滿朝鮮)
위만조선은 초기 국가시대에 위만이 집권한 서기전 2세기 초부터 한나라의 공격으로 멸망한 서기전 108년까지의 조선이다. 위만 집권 이전을 고조선으로, 이후를 위만조선으로 부른다. 14세기에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분하기 위하여 고조선과 위만조선을 합쳐서 고조선으로 부르기도 한다.
초기국가시대 위만조선 말기 예족의 군장.
남려 (南閭)
초기국가시대 위만조선 말기 예족의 군장.
위만조선의 제1대(재위: 기원전 194년~?) 왕.
위만 (衛滿)
위만조선의 제1대(재위: 기원전 194년~?) 왕.
위만조선의 제3대(재위: ?~BCE.108) 왕.
우거왕 (右渠王)
위만조선의 제3대(재위: ?~BCE.108) 왕.
비왕은 위만조선의 관명이다. 글자 자체는 왕을 보좌한다는 의미이지만, 왕족에게 부여된 부왕적(副王的) 칭호, 특정 지역을 통치하는 제후, 군사적 임무 혹은 실무 행정 업무를 수행한 관직, 자신의 읍락을 자치적으로 이끌던 족장 등 다양하게 해석된다.
비왕 (裨王)
비왕은 위만조선의 관명이다. 글자 자체는 왕을 보좌한다는 의미이지만, 왕족에게 부여된 부왕적(副王的) 칭호, 특정 지역을 통치하는 제후, 군사적 임무 혹은 실무 행정 업무를 수행한 관직, 자신의 읍락을 자치적으로 이끌던 족장 등 다양하게 해석된다.
경주입실리유적은 경상북도 경주시 입실리에 있는 원삼국시대 진한의 지배층 무덤유적이다. 1920년 철도공사 과정에서 청동 유물이 다수 발견되어 알려졌다. 유물 수량으로 보아 가까이에 있는 여러 기의 목관묘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무기류와 의기류, 마구류 등의 청동 유물들이 다수 보이지만, 철기와 토기도 소량 확인된다. 위만조선 또는 낙랑 계통 유물들이 포함되어 있어 서북한계 주민들에 의한 문화 전파 또는 진한 정치체의 문화 교류 양상을 잘 보여 준다.
경주 입실리 유적 (慶州 入室里 遺蹟)
경주입실리유적은 경상북도 경주시 입실리에 있는 원삼국시대 진한의 지배층 무덤유적이다. 1920년 철도공사 과정에서 청동 유물이 다수 발견되어 알려졌다. 유물 수량으로 보아 가까이에 있는 여러 기의 목관묘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무기류와 의기류, 마구류 등의 청동 유물들이 다수 보이지만, 철기와 토기도 소량 확인된다. 위만조선 또는 낙랑 계통 유물들이 포함되어 있어 서북한계 주민들에 의한 문화 전파 또는 진한 정치체의 문화 교류 양상을 잘 보여 준다.
1908년 유근이 초등학교의 역사 교육을 위하여 편찬한 교과서. 한국사교과서.
초등본국역사 (初等本國歷史)
1908년 유근이 초등학교의 역사 교육을 위하여 편찬한 교과서. 한국사교과서.
함흥이화동유적(咸興梨花洞遺蹟)은 함경남도 함흥시 이화동에 분포하는 초기 철기시대의 널무덤 유적이다. 반룡산 남쪽 구릉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널무덤의 바닥에는 판석재의 돌조각이 깔려 있었는데, 유물 출토 양상으로 보아 나무널무덤일 가능성도 있다. 한국식의 청동 무기와 청동 의기는 물론 철기 등이 다수 출토되어 많은 유물들을 부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연대는 서기전 2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며, 임둔이나 부조 세력과 관련되는 함흥 일대 수장급의 무덤으로 이해된다.
함흥 이화동 유적 (咸興 梨花洞 遺蹟)
함흥이화동유적(咸興梨花洞遺蹟)은 함경남도 함흥시 이화동에 분포하는 초기 철기시대의 널무덤 유적이다. 반룡산 남쪽 구릉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널무덤의 바닥에는 판석재의 돌조각이 깔려 있었는데, 유물 출토 양상으로 보아 나무널무덤일 가능성도 있다. 한국식의 청동 무기와 청동 의기는 물론 철기 등이 다수 출토되어 많은 유물들을 부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연대는 서기전 2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며, 임둔이나 부조 세력과 관련되는 함흥 일대 수장급의 무덤으로 이해된다.
1895년 학부 편집국에서 초등학교의 역사 교육을 위하여 편찬한 교과서. 초등교과서·국사교과서.
조선약사십과 (朝鮮略史十課)
1895년 학부 편집국에서 초등학교의 역사 교육을 위하여 편찬한 교과서. 초등교과서·국사교과서.
문천남창리유적(文川南昌里遺蹟)은 북한 강원도 문천시 남창리에 있는 널무덤이 단독으로 분포하는 초기철기시대 분묘유적이다. 무덤은 단순 널무덤으로 추정되었고, 한국식의 세형동검과 세형동과가 각 1점씩 수습되었다. 세형동검 문화의 발전 단계 특징을 나타내는 청동 무기들로 보아 연대는 서기전 2세기 전반 전후 무렵으로 추정되며, 임둔 세력과 관련되는 문천 일대 지배층의 무덤으로 이해된다.
문천 남창리 유적 (文川 南昌里 遺蹟)
문천남창리유적(文川南昌里遺蹟)은 북한 강원도 문천시 남창리에 있는 널무덤이 단독으로 분포하는 초기철기시대 분묘유적이다. 무덤은 단순 널무덤으로 추정되었고, 한국식의 세형동검과 세형동과가 각 1점씩 수습되었다. 세형동검 문화의 발전 단계 특징을 나타내는 청동 무기들로 보아 연대는 서기전 2세기 전반 전후 무렵으로 추정되며, 임둔 세력과 관련되는 문천 일대 지배층의 무덤으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