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유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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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유관순 관련 생활유적.
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 (天安 柳寬順 烈士 遺蹟)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유관순 관련 생활유적.
일제강점기 때, 아우내장터 만세시위를 이끌었던 유관순의 오빠로, 공주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었으며, 출옥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유우석 (柳愚錫)
일제강점기 때, 아우내장터 만세시위를 이끌었던 유관순의 오빠로, 공주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었으며, 출옥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장충단공원은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에 있는 공원이다. 남산 동쪽 종남산 기슭 아래 동북쪽 일대로 영조 때에 남소영이 있었던 곳이다. 1900년에 고종황제가 이곳에 장충단을 설립하고 을미사변 때에 순사한 이경직과 홍계훈을 비롯한 장졸을 배향하여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일본은 장충단을 없애고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의도에 따라 장충단공원으로 명명하고, 벚꽃을 심는 등 유원지를 조성하였다. 해방 이후 이준의 동상과 사명대사의 동상이 건립되었으며 3·1운동 기념비,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등 항일운동과 관련된 기념물이 있는 민족공원이라 할 수 있다.
장충단공원 (奬忠壇公園)
장충단공원은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에 있는 공원이다. 남산 동쪽 종남산 기슭 아래 동북쪽 일대로 영조 때에 남소영이 있었던 곳이다. 1900년에 고종황제가 이곳에 장충단을 설립하고 을미사변 때에 순사한 이경직과 홍계훈을 비롯한 장졸을 배향하여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일본은 장충단을 없애고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의도에 따라 장충단공원으로 명명하고, 벚꽃을 심는 등 유원지를 조성하였다. 해방 이후 이준의 동상과 사명대사의 동상이 건립되었으며 3·1운동 기념비,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등 항일운동과 관련된 기념물이 있는 민족공원이라 할 수 있다.
대한제국기에 조선통감부가 서울 현저동에 설치한 감옥.
서대문형무소 (西大門刑務所)
대한제국기에 조선통감부가 서울 현저동에 설치한 감옥.
해방 이후 「윤봉길 열사 기의비」·「백범 김구 선생 묘비」·「사육신 묘비」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
김충현 (金忠顯)
해방 이후 「윤봉길 열사 기의비」·「백범 김구 선생 묘비」·「사육신 묘비」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에 위치한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의 교회.
매봉교회 (梅峰敎會)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에 위치한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의 교회.
일제에 저항하여 투쟁한 이준·안중근·유관순·윤봉길 등 여러 순국선열의 전기적 사실을 판소리로 짜서 부른 일련의 작품군(作品群). 나중에 이순신·권율·전봉준 등 조선시대에 왜적을 물리친 인물들까지 확대되었으며, 광복 직후에 널리 유행하였음.
열사가 (烈士歌)
일제에 저항하여 투쟁한 이준·안중근·유관순·윤봉길 등 여러 순국선열의 전기적 사실을 판소리로 짜서 부른 일련의 작품군(作品群). 나중에 이순신·권율·전봉준 등 조선시대에 왜적을 물리친 인물들까지 확대되었으며, 광복 직후에 널리 유행하였음.
이소제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아우내 장터에 나가 독립만세를 외쳤고, 남편 유중권이 일본 헌병의 총탄에 맞아 순국하자 일본 헌병에게 항의하다가 역시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소제 (李少悌)
이소제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아우내 장터에 나가 독립만세를 외쳤고, 남편 유중권이 일본 헌병의 총탄에 맞아 순국하자 일본 헌병에게 항의하다가 역시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구응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천안군 진명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유관순을 만나 독립운동 상황을 전해 듣고 동지들과 독립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1919년 4월 1일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헌병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아들의 순국 소식을 듣고 현장에 온 어머니 최정철까지 일본 헌병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김구응 (金球應)
김구응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천안군 진명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유관순을 만나 독립운동 상황을 전해 듣고 동지들과 독립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1919년 4월 1일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헌병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아들의 순국 소식을 듣고 현장에 온 어머니 최정철까지 일본 헌병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김상헌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 시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서울에서 귀가한 유관순 일가가 중심이 되어 갈전면과 수신면 주민들이 참여해 아우내 장터로 모여 대규모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상헌은 수신면 복다회리 주민들과 함께 참가하였으나 시위가 격렬해지자 일본 헌병들의 사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상헌 (金尙憲)
김상헌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 시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서울에서 귀가한 유관순 일가가 중심이 되어 갈전면과 수신면 주민들이 참여해 아우내 장터로 모여 대규모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상헌은 수신면 복다회리 주민들과 함께 참가하였으나 시위가 격렬해지자 일본 헌병들의 사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박병호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동면 화계리 주민들과 함께 참가하였다. 약 3,000명의 군중들이 시장 일대를 활보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일본 헌병들과 대치하며 시위에 참여하다가 헌병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박병호 (朴炳好)
박병호는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천안에서 일어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일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아우내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동면 화계리 주민들과 함께 참가하였다. 약 3,000명의 군중들이 시장 일대를 활보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일본 헌병들과 대치하며 시위에 참여하다가 헌병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류홍은 경성방직 도감독, 고려방직 이사,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회장, 제2·4·6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기업인이다. 1899년 충남 천원군 출생이며, 서울 중앙중학교와 경성공업고등학교 방직과를 졸업했다. 고교 졸업 후 경성방직의 초대 도감독으로 재직하였다. 1945년 12월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신탁관리배격대회의 상무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1965년 한일협정 비준무효확인 행정소송을 제기하였고, 재야세력 단합운동에서 민정당의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한국통일촉진회 이사,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89년 서울 노량진 자택에서 사망했다.
류홍 (柳鴻)
류홍은 경성방직 도감독, 고려방직 이사,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회장, 제2·4·6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기업인이다. 1899년 충남 천원군 출생이며, 서울 중앙중학교와 경성공업고등학교 방직과를 졸업했다. 고교 졸업 후 경성방직의 초대 도감독으로 재직하였다. 1945년 12월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신탁관리배격대회의 상무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1965년 한일협정 비준무효확인 행정소송을 제기하였고, 재야세력 단합운동에서 민정당의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한국통일촉진회 이사,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89년 서울 노량진 자택에서 사망했다.
유예도는 1919년 천안 아우내장터 3·1운동을 이끈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이화학당에 재학 중이던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학교 선배로부터 고향으로 내려가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3월 13일에 사촌 동생 유관순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지니고 귀향하였다. 4월 1일, 3,000여 명이 운집한 아우내장터에서 유관순과 함께 직접 만든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유예도 (柳禮道)
유예도는 1919년 천안 아우내장터 3·1운동을 이끈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이화학당에 재학 중이던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학교 선배로부터 고향으로 내려가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3월 13일에 사촌 동생 유관순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지니고 귀향하였다. 4월 1일, 3,000여 명이 운집한 아우내장터에서 유관순과 함께 직접 만든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조화벽은 일제강점기 개성 호수돈여학교와 강원도 양양군 양양면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호수돈여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전개된 1919년 3월 3일 개성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이어 독립선언서를 고향인 양양군 양양면에 전달하여 4월 4일 남문리 장터 만세시위의 도화선 역할을 하였다. 이후 영명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며 유관순의 두 동생을 돌보았으며, 1923년 유관순의 오빠 유우석과 결혼하였다. 1932년 고향으로 돌아가 정명학원을 설립하고 남편의 독립운동을 후원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조화벽 (趙和璧)
조화벽은 일제강점기 개성 호수돈여학교와 강원도 양양군 양양면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호수돈여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전개된 1919년 3월 3일 개성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이어 독립선언서를 고향인 양양군 양양면에 전달하여 4월 4일 남문리 장터 만세시위의 도화선 역할을 하였다. 이후 영명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며 유관순의 두 동생을 돌보았으며, 1923년 유관순의 오빠 유우석과 결혼하였다. 1932년 고향으로 돌아가 정명학원을 설립하고 남편의 독립운동을 후원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하란사는 일제강점기 여성 교육가이자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신여성이다. 본명은 김란사(金蘭史)이며 이화학당 입학 후 일본과 미국에서 수학하였다.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이화학당에 부임하여 학생들에게 독립 의식을 고취시키고 여성 교육과 독립운동에 힘썼다. 한일합병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파리 강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준비 중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북경에서 별세하였다.
하란사 (河蘭史)
하란사는 일제강점기 여성 교육가이자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신여성이다. 본명은 김란사(金蘭史)이며 이화학당 입학 후 일본과 미국에서 수학하였다.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이화학당에 부임하여 학생들에게 독립 의식을 고취시키고 여성 교육과 독립운동에 힘썼다. 한일합병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파리 강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준비 중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북경에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