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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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문암리 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죽왕면에 있는 신석기시대 집터, 널무덤 등이 발굴된 복합유적이다. 동해안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유적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 유적의 상한 연대는 서기전 5,000년을 상회할 것으로 판단되어 한반도 최고의 신석기시대 유적 중 하나이다. 주거지 5기, 야외노지 5기, 널무덤 1기, 밭이 확인되었고 순수무문양토기, 융기문토기, 침선문토기, 결합식낚시어구, 결상이식 등이 나왔다. 동아시아 최초로 신석기시대의 농경 유적인 밭이 발굴되었으며, 옥 모양 귀걸이인 결상이식(?狀耳飾)이 최초로 발굴조사 된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
고성 문암리 유적 (高城 文巖里 遺蹟)
고성 문암리 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죽왕면에 있는 신석기시대 집터, 널무덤 등이 발굴된 복합유적이다. 동해안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유적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 유적의 상한 연대는 서기전 5,000년을 상회할 것으로 판단되어 한반도 최고의 신석기시대 유적 중 하나이다. 주거지 5기, 야외노지 5기, 널무덤 1기, 밭이 확인되었고 순수무문양토기, 융기문토기, 침선문토기, 결합식낚시어구, 결상이식 등이 나왔다. 동아시아 최초로 신석기시대의 농경 유적인 밭이 발굴되었으며, 옥 모양 귀걸이인 결상이식(?狀耳飾)이 최초로 발굴조사 된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
창녕 비봉리 패총은 경상남도 창녕군 부곡면에 있는 신석기에서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조개더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시대 배와 신석기시대 편물기술을 보여주는 망태기를 비롯하여 대규모 도토리 저장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이 유적은 신석기문화가 토기와 석기 중심으로 연구되던 관행에서 벗어나 동물유체, 식물유체 등 유기물을 통한 생업이나 고환경, 생태계의 연구와 복원을 추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내륙 지방에서 발견된 최초의 신석기시대 패총 유적으로 신석기시대의 식생과 생활상의 연구에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로 평가된다.
창녕 비봉리 패총 (昌寧 飛鳳里 貝塚)
창녕 비봉리 패총은 경상남도 창녕군 부곡면에 있는 신석기에서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조개더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시대 배와 신석기시대 편물기술을 보여주는 망태기를 비롯하여 대규모 도토리 저장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이 유적은 신석기문화가 토기와 석기 중심으로 연구되던 관행에서 벗어나 동물유체, 식물유체 등 유기물을 통한 생업이나 고환경, 생태계의 연구와 복원을 추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내륙 지방에서 발견된 최초의 신석기시대 패총 유적으로 신석기시대의 식생과 생활상의 연구에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로 평가된다.
조선시대 중국을 제외한 일본 등 우리나라 인접국들과의 관계를 서술한 외교서.
증정교린지 (增正交隣志)
조선시대 중국을 제외한 일본 등 우리나라 인접국들과의 관계를 서술한 외교서.
서산 부장리 고분군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집터와 돌덧널무덤 관련 복합유적이다. 2004년 아파트 부지를 조성하기 위한 사전 문화재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청동시시대의 주거지와 백제시대의 분구묘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토광묘 등 260여 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백제의 분구묘와 주거지의 공간 배치가 구분되어 있어서 당시 묘장 풍습과 취락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5호 분구묘에서 출토된 금동관과 철제 초두는 최고 지배자의 무덤에서만 발굴되는 것으로 지방 세력과 중앙 세력의 정치적 관계 등 백제사 연구에 있어서 그 학술적 가치가 크다.
서산 부장리 고분군 (瑞山 副長里 古墳群)
서산 부장리 고분군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집터와 돌덧널무덤 관련 복합유적이다. 2004년 아파트 부지를 조성하기 위한 사전 문화재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청동시시대의 주거지와 백제시대의 분구묘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토광묘 등 260여 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백제의 분구묘와 주거지의 공간 배치가 구분되어 있어서 당시 묘장 풍습과 취락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5호 분구묘에서 출토된 금동관과 철제 초두는 최고 지배자의 무덤에서만 발굴되는 것으로 지방 세력과 중앙 세력의 정치적 관계 등 백제사 연구에 있어서 그 학술적 가치가 크다.
경상남도 사천시 늑도동에 속하는 섬.
늑도 (勒島)
경상남도 사천시 늑도동에 속하는 섬.
구포왜성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왜장 코바야가와 타카카케 등이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동에 쌓은 왜성이다. 낙동강 수로의 요충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김해 죽도왜성의 지성으로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93년 7월 코바야가와 타카카게〔小早川隆景〕를 최고 책임자로 한 5명의 무장(武將)이 협력하여 2달 보름 정도 만에 완성하였다. 북쪽 해발 75.7m 야산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9개의 곽(郭)으로 이루어진 내성과 내성의 남쪽 해발 36.5m 구릉 정상부를 장방형의 이중 해자로 둘러싸고 있는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포왜성 (龜浦倭城)
구포왜성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왜장 코바야가와 타카카케 등이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동에 쌓은 왜성이다. 낙동강 수로의 요충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김해 죽도왜성의 지성으로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93년 7월 코바야가와 타카카게〔小早川隆景〕를 최고 책임자로 한 5명의 무장(武將)이 협력하여 2달 보름 정도 만에 완성하였다. 북쪽 해발 75.7m 야산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9개의 곽(郭)으로 이루어진 내성과 내성의 남쪽 해발 36.5m 구릉 정상부를 장방형의 이중 해자로 둘러싸고 있는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전기에, 홍문관수찬 등을 역임한 문신.
윤결 (尹潔)
조선 전기에, 홍문관수찬 등을 역임한 문신.
경작유구는 인간이 생활에 필요한 식물을 키우기 위하여 어떤 특정한 장소에 식물을 인위적으로 옮겨 생육을 보호 · 관리 ·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나 장치를 가리키는 역사 용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논·밭이 확인된다. 밭은 하천의 활주사면부나 산지와 구릉지에서 이랑 고랑이 열을 이루어 조성되었다. 백전(白田), 전(畠)으로 표기되었으며 합전(合田), 상전(桑田), 마전(麻田)처럼 재배작물이 드러난 명칭도 사용하였다. 논은 주로 곡(谷)이나 하천의 배후습지에 만들어졌다. 도전(稻田)이나 수전(水田)으로 표현되었는데 점차 답이라는 고유문자로 바뀌었다.
경작유구 (耕作遺構)
경작유구는 인간이 생활에 필요한 식물을 키우기 위하여 어떤 특정한 장소에 식물을 인위적으로 옮겨 생육을 보호 · 관리 ·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나 장치를 가리키는 역사 용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논·밭이 확인된다. 밭은 하천의 활주사면부나 산지와 구릉지에서 이랑 고랑이 열을 이루어 조성되었다. 백전(白田), 전(畠)으로 표기되었으며 합전(合田), 상전(桑田), 마전(麻田)처럼 재배작물이 드러난 명칭도 사용하였다. 논은 주로 곡(谷)이나 하천의 배후습지에 만들어졌다. 도전(稻田)이나 수전(水田)으로 표현되었는데 점차 답이라는 고유문자로 바뀌었다.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 돌무지무덤·앞트기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울릉 현포동 고분군 (蔚陵 玄圃洞 古墳群)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 돌무지무덤·앞트기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조선후기 문인·학자 김려의 「이안민전」·「포수이사룡전」·「안황중전」 등 8편의 전 등이 수록된 전집(傳集).
단량패사 (丹良稗史)
조선후기 문인·학자 김려의 「이안민전」·「포수이사룡전」·「안황중전」 등 8편의 전 등이 수록된 전집(傳集).
춘천 신매리 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서면 북한강 옆 충적대지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화덕자리 · 돌무지무덤 등이 발굴된 마을터이다. 동북지역과 한강 유역을 연결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취락과 무덤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복합유적이다. 신석기시대 말기로 판단되는 빗살무늬토기편이 말각방형의 주거지에서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의 탁자식 고인돌 5기가 확인되었는데 석관 주변에 적석이 조성되어 있다. 청동기와 철기시대 유적이 겹쳐 있는 집단 취락유적이 확인되었으며 고구려 계통으로 추정되는 삼국시대 고분도 조사되었다.
춘천 신매리 유적 (春川 新梅里 遺蹟)
춘천 신매리 유적은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서면 북한강 옆 충적대지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화덕자리 · 돌무지무덤 등이 발굴된 마을터이다. 동북지역과 한강 유역을 연결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취락과 무덤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복합유적이다. 신석기시대 말기로 판단되는 빗살무늬토기편이 말각방형의 주거지에서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의 탁자식 고인돌 5기가 확인되었는데 석관 주변에 적석이 조성되어 있다. 청동기와 철기시대 유적이 겹쳐 있는 집단 취락유적이 확인되었으며 고구려 계통으로 추정되는 삼국시대 고분도 조사되었다.
제사토기는 제의의 과정에서 사용되거나 그것과 관련된 행위가 가해져 변형된 토기이다. 토기가 일상용으로 사용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형태나 장식을 가진 경우, 혹은 제의의 장소에 공헌되거나 폐기된 토기의 경우 제사토기라 할 수 있다. 신석기시대 제사용으로 제작된 토기로는 눌러찍은무늬가 가득 장식된 대접이 있다. 원삼국시대가 되면 매장의례에 많은 토기가 공헌되고 부장용의 토기 종류도 늘어난다. 음식을 담는 그릇과 커다란 저장용기도 제사에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 접어들면 매장시설을 밀봉할 때나 봉분의 성토를 하는 과정, 고분 완성하고 후에도 토기를 이용한 제사가 있었다.
제사토기 (祭祀土器)
제사토기는 제의의 과정에서 사용되거나 그것과 관련된 행위가 가해져 변형된 토기이다. 토기가 일상용으로 사용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형태나 장식을 가진 경우, 혹은 제의의 장소에 공헌되거나 폐기된 토기의 경우 제사토기라 할 수 있다. 신석기시대 제사용으로 제작된 토기로는 눌러찍은무늬가 가득 장식된 대접이 있다. 원삼국시대가 되면 매장의례에 많은 토기가 공헌되고 부장용의 토기 종류도 늘어난다. 음식을 담는 그릇과 커다란 저장용기도 제사에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에 접어들면 매장시설을 밀봉할 때나 봉분의 성토를 하는 과정, 고분 완성하고 후에도 토기를 이용한 제사가 있었다.
경주 봉길리 유적은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덧널무덤·독무덤 관련 생활유적이다.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다양한 유구가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 집터는 20동이며, 벽도랑, 화덕자리, 외부로 연장되는 배수구 등이 조사되었다. 신라시대 무덤은 덧널무덤 29기, 돌덧널무덤 148기 등이 조사되었다. 고분군에서는 굽다리접시, 뚜껑접시, 항아리 등 총 1,156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대규모 청동기시대 마을과 신라시대의 덧널무덤 등이 복합적으로 조영된 유적으로 각 시대별 구릉의 공간활용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경주 봉길리 유적 (慶州 奉吉里 遺蹟)
경주 봉길리 유적은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덧널무덤·독무덤 관련 생활유적이다.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다양한 유구가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 집터는 20동이며, 벽도랑, 화덕자리, 외부로 연장되는 배수구 등이 조사되었다. 신라시대 무덤은 덧널무덤 29기, 돌덧널무덤 148기 등이 조사되었다. 고분군에서는 굽다리접시, 뚜껑접시, 항아리 등 총 1,156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대규모 청동기시대 마을과 신라시대의 덧널무덤 등이 복합적으로 조영된 유적으로 각 시대별 구릉의 공간활용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유명재는 조선 후기 영천군수, 첨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2대에 걸쳐 공신 반열에 오른 집안의 후손으로,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이름났으며 문음으로 출사하여 주로 지방관에 머물렀다. 말년에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저서로 『명륜록(明倫錄)』이 있으나 전해지지 않는다.
유명재 (柳命才)
유명재는 조선 후기 영천군수, 첨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2대에 걸쳐 공신 반열에 오른 집안의 후손으로,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이름났으며 문음으로 출사하여 주로 지방관에 머물렀다. 말년에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저서로 『명륜록(明倫錄)』이 있으나 전해지지 않는다.
서울 장지동 유적은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 몸체와 바닥조각·숫돌 등이 출토된 집터이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터 1기, 조선시대 구덩식 집터 2기, 움무덤 2기, 구덩유구 5기, 우물터 1기, 소성유구 1기, 기둥구멍 유구 8기 등이 발견되었다. 이들 유구에서 민무늬토기 조각, 석제품, 자기 조각, 경질토기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집터의 평면 형태는 긴네모모양[長方形]이며 내부에서 특별한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유적은 한강 유역의 청동기시대 전기 문화상을 규명할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서울 장지동 유적 (서울 長旨洞 遺蹟)
서울 장지동 유적은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 몸체와 바닥조각·숫돌 등이 출토된 집터이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터 1기, 조선시대 구덩식 집터 2기, 움무덤 2기, 구덩유구 5기, 우물터 1기, 소성유구 1기, 기둥구멍 유구 8기 등이 발견되었다. 이들 유구에서 민무늬토기 조각, 석제품, 자기 조각, 경질토기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집터의 평면 형태는 긴네모모양[長方形]이며 내부에서 특별한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유적은 한강 유역의 청동기시대 전기 문화상을 규명할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옛 지명.
신풍 (新豊)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옛 지명.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석남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유구초등학교 (維鳩初等學校)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석남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고간원지는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문극겸 관련 사당이다. 문극겸(1122~1189)은 문무직을 겸임한 인물로 글씨에 뛰어났다. 『충숙공사실기』에 의하면 조선 태종의 명으로 문극겸의 묘 아래에 사당인 고간원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1792년 고간원이 홍수로 무너졌는데 1907년에 다시 지었고 여러 차례 보수와 중수를 거듭하였다. 고간원지 일대에는 고간원 이외에 문숙공신도비, 재실, 충숙선조유덕추모비, 사당인 충숙공영당, 묘소 등이 있다. 이곳은 공주시 유구면 추계리 남평문씨 집안에서 관리하며 1984년에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고간원지 (叩諫院址)
고간원지는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문극겸 관련 사당이다. 문극겸(1122~1189)은 문무직을 겸임한 인물로 글씨에 뛰어났다. 『충숙공사실기』에 의하면 조선 태종의 명으로 문극겸의 묘 아래에 사당인 고간원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1792년 고간원이 홍수로 무너졌는데 1907년에 다시 지었고 여러 차례 보수와 중수를 거듭하였다. 고간원지 일대에는 고간원 이외에 문숙공신도비, 재실, 충숙선조유덕추모비, 사당인 충숙공영당, 묘소 등이 있다. 이곳은 공주시 유구면 추계리 남평문씨 집안에서 관리하며 1984년에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하남 망월동 유적은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화덕자리·석기류·토기류 등이 출토된 집터이다. 발굴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구덩식 집터 4기, 구덩유구 1기, 조선시대 움무덤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집터는 모두 긴네모모양으로 화덕자리 및 구멍무늬토기·민무늬토기 등의 토기류, 화살촉·그물추 등의 석제품이 출토되었다. 구덩유구는 평면 형태가 장타원형으로 내부에서 토제 그물추, 민무늬토기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초기의 마을 유적이 발굴됨으로써 미사리의 신석기시대 말기가 망월동의 청동기시대 초기로 전이되는 사회적 모습을 보여준다.
하남 망월동 유적 (河南 望月洞 遺蹟)
하남 망월동 유적은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화덕자리·석기류·토기류 등이 출토된 집터이다. 발굴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구덩식 집터 4기, 구덩유구 1기, 조선시대 움무덤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집터는 모두 긴네모모양으로 화덕자리 및 구멍무늬토기·민무늬토기 등의 토기류, 화살촉·그물추 등의 석제품이 출토되었다. 구덩유구는 평면 형태가 장타원형으로 내부에서 토제 그물추, 민무늬토기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초기의 마을 유적이 발굴됨으로써 미사리의 신석기시대 말기가 망월동의 청동기시대 초기로 전이되는 사회적 모습을 보여준다.
고려 후기에, 사관, 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민유의 (閔由義)
고려 후기에, 사관, 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