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을사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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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송유고(晩松遺稿)』는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문인, 유병헌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49년에 4권 2책으로 간행한 시문집이다. 대한제국기에 을사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형을 요구하는 상소문을 올리고 일진회의 매국 행위를 성토한 독립운동가로서 투철한 항일정신을 나타낸 작품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만송유고 (晩松遺稿)
『만송유고(晩松遺稿)』는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문인, 유병헌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49년에 4권 2책으로 간행한 시문집이다. 대한제국기에 을사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형을 요구하는 상소문을 올리고 일진회의 매국 행위를 성토한 독립운동가로서 투철한 항일정신을 나타낸 작품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대한제국기 때, 경상도, 강원도에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김대규 (金大圭)
대한제국기 때, 경상도, 강원도에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김덕진은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일어난 의병운동에 참여한 의병장이다. 을사조약 이후 민종식을 위시로 한 홍주의진에 참여하여 큰 활약을 하였다. 1906년 5월에 일본군의 공격에 의진이 흩어지고 다시 재궐기하는 과정에 참여하였으나, 같은 해 11월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투옥하여 복역하다가 특사로 석방되었다.
김덕진 (金德鎭)
김덕진은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일어난 의병운동에 참여한 의병장이다. 을사조약 이후 민종식을 위시로 한 홍주의진에 참여하여 큰 활약을 하였다. 1906년 5월에 일본군의 공격에 의진이 흩어지고 다시 재궐기하는 과정에 참여하였으나, 같은 해 11월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투옥하여 복역하다가 특사로 석방되었다.
김도현은 을미사변 이후 대한제국 강제 병합 이전까지 의병 활동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 직후에 안동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고, 다른 의병 부대가 해산된 뒤인 1896년 10월까지 항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저항하여 상소 투쟁을 하였고, 1907년 2월에 의병 활동을 조직하다가 수감되었다. 1914년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김도현 (金道鉉)
김도현은 을미사변 이후 대한제국 강제 병합 이전까지 의병 활동을 전개한 의병장이다. 을미사변 직후에 안동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시작하였고, 다른 의병 부대가 해산된 뒤인 1896년 10월까지 항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저항하여 상소 투쟁을 하였고, 1907년 2월에 의병 활동을 조직하다가 수감되었다. 1914년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대한제국기 때, 김석윤 대장의 참모 및 모병책으로 활약하며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
고사훈 (高士訓)
대한제국기 때, 김석윤 대장의 참모 및 모병책으로 활약하며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
일제강점기 때, 의병 및 독립의군부 총무국 서기관으로 활동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고, 파리장서에 서명한 의병·독립운동가.
고예진 (高禮鎭)
일제강점기 때, 의병 및 독립의군부 총무국 서기관으로 활동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고, 파리장서에 서명한 의병·독립운동가.
대한제국기 때, 충청북도 단양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김상한 의진에 합류해 소모대장으로 활동한 의병장.
이명상 (李明相)
대한제국기 때, 충청북도 단양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김상한 의진에 합류해 소모대장으로 활동한 의병장.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에 있는 조선후기 평민 출신의 의병장 신돌석의 생가터. 생가지.
신돌석 장군 생가지 (申乭石 將軍 生家址)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에 있는 조선후기 평민 출신의 의병장 신돌석의 생가터. 생가지.
일제강점기 때, 계명의숙을 설립하였으며, 『해경당수초』 등을 저술한 학자.
이건승 (李建昇)
일제강점기 때, 계명의숙을 설립하였으며, 『해경당수초』 등을 저술한 학자.
홍주의진(洪州義陣)은 1895년 및 1906년 충청남도 홍주군 일대에서 결성된 반일 의병부대이다. 두 차례에 걸쳐 결성된 의병부대로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기에 전국적인 항일 의병운동을 선도해 간 대규모 무장투쟁이다. 의병장 김복한(金福漢)과 민종식(閔宗植)은 의진(義陣)을 결성함과 동시에 각국 공사(公使)에게 독립청원서를 제출하여 대내외에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독립전쟁의 성격을 공표하였다. 홍주의진의 활동은 1910년 국권 상실 이후 독립전쟁으로 계승되어 1910년대 국내외의 독립전쟁과 3 · 1운동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다.
홍주의진 (洪州義陣)
홍주의진(洪州義陣)은 1895년 및 1906년 충청남도 홍주군 일대에서 결성된 반일 의병부대이다. 두 차례에 걸쳐 결성된 의병부대로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기에 전국적인 항일 의병운동을 선도해 간 대규모 무장투쟁이다. 의병장 김복한(金福漢)과 민종식(閔宗植)은 의진(義陣)을 결성함과 동시에 각국 공사(公使)에게 독립청원서를 제출하여 대내외에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독립전쟁의 성격을 공표하였다. 홍주의진의 활동은 1910년 국권 상실 이후 독립전쟁으로 계승되어 1910년대 국내외의 독립전쟁과 3 · 1운동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다.
1910년 유근이 초등학교의 역사 교육을 위하여 편찬한 교과서. 초등교과서·국사교과서.
신찬초등역사 (新撰初等歷史)
1910년 유근이 초등학교의 역사 교육을 위하여 편찬한 교과서. 초등교과서·국사교과서.
강윤희는 대한제국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서울에 설치된 유약소(儒約所)에 참여하여 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단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리는 한편, 각국 공사에게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관동창의진과 13도창의군에서 활동하였으며, 강원도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춘천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강윤희 (姜允熙)
강윤희는 대한제국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서울에 설치된 유약소(儒約所)에 참여하여 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단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리는 한편, 각국 공사에게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관동창의진과 13도창의군에서 활동하였으며, 강원도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춘천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