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이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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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성유록』, 『안증전서』, 『주어요략』 등을 저술하며 영남학파를 이끈 학자.
이재 (李栽)
조선 후기에, 『성유록』, 『안증전서』, 『주어요략』 등을 저술하며 영남학파를 이끈 학자.
조선후기 대사간, 한성좌윤,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유치명 (柳致明)
조선후기 대사간, 한성좌윤,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정종로는 조선 후기 『입재집』, 『소대명신언행록』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738년(영조 14)에 출생하여 1816년(순조 16)에 사망하였다. 자는 사앙, 호는 입재, 무적옹이다. 관직에 뜻이 없어 학문에만 매진하다가 만년에 천거로 강령현감, 함창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향리로 내려가 성리학의 연구와 후학양성 및 저술에 힘썼다. 정종로는 〈태극권자설〉과 〈태극동정설〉 등에서 태극과 동정을 분리시키는 이원주의 이론을 비판하였다. 인물성동이론에서 사람과 사물의 성품은 서로 같을 수 없다는 상이론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정종로 (鄭宗魯)
정종로는 조선 후기 『입재집』, 『소대명신언행록』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738년(영조 14)에 출생하여 1816년(순조 16)에 사망하였다. 자는 사앙, 호는 입재, 무적옹이다. 관직에 뜻이 없어 학문에만 매진하다가 만년에 천거로 강령현감, 함창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향리로 내려가 성리학의 연구와 후학양성 및 저술에 힘썼다. 정종로는 〈태극권자설〉과 〈태극동정설〉 등에서 태극과 동정을 분리시키는 이원주의 이론을 비판하였다. 인물성동이론에서 사람과 사물의 성품은 서로 같을 수 없다는 상이론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조선 후기에, 단양군수, 세자시강원문학,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김굉 (金㙆)
조선 후기에, 단양군수, 세자시강원문학,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일제강점기 때, 곽종석 등과 함께 파리장서사건에서 활약하였으며, 퇴계 학통의 성리설을 체계화시킨 학자·독립운동가.
송준필 (宋浚弼)
일제강점기 때, 곽종석 등과 함께 파리장서사건에서 활약하였으며, 퇴계 학통의 성리설을 체계화시킨 학자·독립운동가.
조선 후기에, 「거습잠」, 『손재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남한조 (南漢朝)
조선 후기에, 「거습잠」, 『손재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 후기에, 혼천의를 만들었으며, 『괴담유고』, 『성리찬요』, 『사서찬요』 등을 저술한 학자.
배상열 (裵相說)
조선 후기에, 혼천의를 만들었으며, 『괴담유고』, 『성리찬요』, 『사서찬요』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 후기에, 『노애집』, 『퇴계선생문집』, 『일경록』 등을 저술한 학자.
유도원 (柳道源)
조선 후기에, 『노애집』, 『퇴계선생문집』, 『일경록』 등을 저술한 학자.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 소재 경주최씨 백불암파 종가에 소장된 유학서. 종가유물.
옻골 경주최씨 백불암파 종가 소장 전적 (옻골 慶州崔氏 百弗庵派 宗家 所藏 典籍)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 소재 경주최씨 백불암파 종가에 소장된 유학서. 종가유물.
조선 후기에, 『천사집』, 『석학정론』, 『초려문답』 등을 저술한 학자.
김종덕 (金宗德)
조선 후기에, 『천사집』, 『석학정론』, 『초려문답』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 후기에, 대사간, 안악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김희주 (金熙周)
조선 후기에, 대사간, 안악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정언, 흥양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김희락 (金熙洛)
조선 후기에, 정언, 흥양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도산연보보유』, 『예설유편』, 『요존록』 등을 저술하였으며, 이황의 성리학을 계승한 학자.
이야순 (李野淳)
조선 후기에, 『도산연보보유』, 『예설유편』, 『요존록』 등을 저술하였으며, 이황의 성리학을 계승한 학자.
조선 후기에, 『지애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정위 (鄭煒)
조선 후기에, 『지애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광정은 조선 후기에 『소산집』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714년 안동 출생이며, 대산 이상정의 동생으로 밀암 이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15세의 나이에 종군하였다. 경학과 성리학을 연구하고 예설을 정리하여 안동 지방의 표준 예설을 세웠다.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후 은거하여 도를 구하는 공부에 전념했고, 정조가 몇몇 관직에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퇴계학통을 계승하여 많은 학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1789년 향년 76세에 별세하였고, 안동 고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이광정 (李光靖)
이광정은 조선 후기에 『소산집』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714년 안동 출생이며, 대산 이상정의 동생으로 밀암 이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15세의 나이에 종군하였다. 경학과 성리학을 연구하고 예설을 정리하여 안동 지방의 표준 예설을 세웠다.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후 은거하여 도를 구하는 공부에 전념했고, 정조가 몇몇 관직에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퇴계학통을 계승하여 많은 학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1789년 향년 76세에 별세하였고, 안동 고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조선시대 학자 이덕홍이 『심경부주』에 대한 퇴계의 강론을 정리하여 편찬한 유학서. 주석서.
심경질의 (心經質疑)
조선시대 학자 이덕홍이 『심경부주』에 대한 퇴계의 강론을 정리하여 편찬한 유학서. 주석서.
조선 후기에, 『중용질의』, 『오산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서창재 (徐昌載)
조선 후기에, 『중용질의』, 『오산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 후기에, 『계훈유편』, 『호서유편』, 『상변통고』 등을 저술한 학자.
유장원 (柳長源)
조선 후기에, 『계훈유편』, 『호서유편』, 『상변통고』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후기 승문원부정자, 사헌부지평,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김종발 (金宗發)
조선후기 승문원부정자, 사헌부지평,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조선후기 『소은집』, 「천군실록」 등을 저술한 문인.
유치구 (柳致球)
조선후기 『소은집』, 「천군실록」 등을 저술한 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