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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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편당실기』는 1902년 조선 전기 학자이자 무신 이영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이영의 외손 곽종철 등이 편찬하여 간행했다. 3권 1책으로 구성되며, 세계·연보·시 등을 포함한 본책과 후손 및 문인들의 글로 구성된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이영이 북병사로 출발하던 중 부인을 잃은 심정을 표현한 시와, 염근한 조신으로 뽑혀 왕이 베푼 연회에 참석한 사실, 사당 건립과 정려 청원 등의 문서가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이영의 청렴한 삶과 후대의 추앙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괘편당실기 (掛鞭堂實紀)
『괘편당실기』는 1902년 조선 전기 학자이자 무신 이영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이영의 외손 곽종철 등이 편찬하여 간행했다. 3권 1책으로 구성되며, 세계·연보·시 등을 포함한 본책과 후손 및 문인들의 글로 구성된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이영이 북병사로 출발하던 중 부인을 잃은 심정을 표현한 시와, 염근한 조신으로 뽑혀 왕이 베푼 연회에 참석한 사실, 사당 건립과 정려 청원 등의 문서가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이영의 청렴한 삶과 후대의 추앙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신인동맹회는 일제강점기인 1922년 2월 서울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조직하였던 사상단체이다. ‘사회혁명당[서울파]’의 합법적 외곽 사상단체로 조직되었다. 심상완(沈相完), 신일용(辛日鎔), 이영(李英), 장병천(張炳天)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들은 ”인류 생활의 공존공영적(共存共榮的) 진리를 파악하여 민중문화의 건설을 목적으로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1922년 3월 31일에 무산자동지회(無産者同志會)와 함께 통합하여 무산자동맹회(無産者同盟會)로 발전적 해체를 하였다.
신인동맹회 (新人同盟會)
신인동맹회는 일제강점기인 1922년 2월 서울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조직하였던 사상단체이다. ‘사회혁명당[서울파]’의 합법적 외곽 사상단체로 조직되었다. 심상완(沈相完), 신일용(辛日鎔), 이영(李英), 장병천(張炳天)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들은 ”인류 생활의 공존공영적(共存共榮的) 진리를 파악하여 민중문화의 건설을 목적으로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1922년 3월 31일에 무산자동지회(無産者同志會)와 함께 통합하여 무산자동맹회(無産者同盟會)로 발전적 해체를 하였다.
예안이씨 사직공파 구택은 기묘사화 때 안동 풍산현으로 낙향한 예안이씨 7세손 이영이 1525년(중종 20)경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는 주택이다. 이영은 조선 전기의 문신 이필간(李弼幹)의 첫째 아들로, 1507년(중종 2)에 생원진사시에 급제하였다. 사랑채와 안채가 좌우 익사로 연결되어 완전한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나, 정면에서 볼 때, 우측으로 1.5칸 정도가 돌출되어 있다. 가운데 설주가 있는 영쌍창과 같이 건립 당시 모습으로 추정되는 부분들이 있다. 이 집은 예안이씨 충효당에서 남서쪽으로 약 300여 미터 떨어져 있다.
예안이씨 사직공파 구택 (禮安李氏 司直公派 舊宅)
예안이씨 사직공파 구택은 기묘사화 때 안동 풍산현으로 낙향한 예안이씨 7세손 이영이 1525년(중종 20)경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는 주택이다. 이영은 조선 전기의 문신 이필간(李弼幹)의 첫째 아들로, 1507년(중종 2)에 생원진사시에 급제하였다. 사랑채와 안채가 좌우 익사로 연결되어 완전한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나, 정면에서 볼 때, 우측으로 1.5칸 정도가 돌출되어 있다. 가운데 설주가 있는 영쌍창과 같이 건립 당시 모습으로 추정되는 부분들이 있다. 이 집은 예안이씨 충효당에서 남서쪽으로 약 300여 미터 떨어져 있다.
조선후기 교리, 부수찬, 수찬 등을 역임한 무신.
이명환 (李明煥)
조선후기 교리, 부수찬, 수찬 등을 역임한 무신.
조선 전기에, 호조정랑, 함길도도절제사, 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사증 (李師曾)
조선 전기에, 호조정랑, 함길도도절제사, 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후기 제14대 선조의 서자인 왕자.
인흥군 (仁興君)
조선후기 제14대 선조의 서자인 왕자.
조선 전기에, 동지중추부사, 평안도관찰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계맹 (李繼孟)
조선 전기에, 동지중추부사, 평안도관찰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동지의금부사, 안동부사,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진휴 (李震休)
조선 후기에, 동지의금부사, 안동부사,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사은진주 겸 동지사를 역임한 문신.
이혼 (李混)
조선 후기에, 사은진주 겸 동지사를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이조판서, 우의정, 약방도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이후 (李𪻶)
조선 후기에, 이조판서, 우의정, 약방도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1630년(인조 8) 전후 수문관청(守門將廳) 소속 수문장들이 가진 계회를 기념해 제작한 계회도이다. 2010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산으로 지정되었다. 상부에 전서체로 “수문장계회도(守門將契會圖)”라 묵서한 제목, 그리고 중앙부의 계회 장면이 담긴 그림, 하단부의 좌목(座目)까지 3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전 · 현직 수문장들이 한 자리에 모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임 날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참여자들의 재임 시기로 미루어 1630년(인조 8)을 전후한 때, 즉 1627년(인조 5)부터 1631년(인조 9) 사이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수문장계회도 (守門將契會圖)
1630년(인조 8) 전후 수문관청(守門將廳) 소속 수문장들이 가진 계회를 기념해 제작한 계회도이다. 2010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산으로 지정되었다. 상부에 전서체로 “수문장계회도(守門將契會圖)”라 묵서한 제목, 그리고 중앙부의 계회 장면이 담긴 그림, 하단부의 좌목(座目)까지 3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전 · 현직 수문장들이 한 자리에 모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임 날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참여자들의 재임 시기로 미루어 1630년(인조 8)을 전후한 때, 즉 1627년(인조 5)부터 1631년(인조 9) 사이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임진왜란 때인 1592년 7월에 함경북도병마절도사 한극함(韓克諴)이 일본장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군사와 해정창에서 싸운 전투.
해정창전투 (海汀倉戰鬪)
임진왜란 때인 1592년 7월에 함경북도병마절도사 한극함(韓克諴)이 일본장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군사와 해정창에서 싸운 전투.
조선 후기의 학자, 이영의 시·서(書)·제문·상량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후계집 (后溪集)
조선 후기의 학자, 이영의 시·서(書)·제문·상량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