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이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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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초상화 일괄.
이하응 초상 일괄 (李昰應 肖像 一括)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초상화 일괄.
1891년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자신의 회혼(回婚)을 기념하여 그린 석란도(石蘭圖) 12폭 병풍.
흥선대원군 이하응 필 묵란도 (興宣大院君 李昰應 筆 墨蘭圖)
1891년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자신의 회혼(回婚)을 기념하여 그린 석란도(石蘭圖) 12폭 병풍.
조선 후기의 문신, 신응조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명을 받아 편찬한 역사서.
강목집요 (綱目輯要)
조선 후기의 문신, 신응조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명을 받아 편찬한 역사서.
병인박해는 조선 후기 1866년부터 1873년까지 8년 동안 국가적 차원에서 지속된 천주교 박해이다. 프랑스와의 조약을 통해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 대신 천주교를 공인받으려는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회담은 국제 정세의 변화와 조선 정부 내의 반발로 결렬되었고,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다. 병인양요(1866년)와 남연군묘 도굴 사건(1868년), 신미양요(1871년) 등 서양 국가와의 충돌은 박해를 격화시켜 교회 조직이 철저히 파괴되었고, 수천 명의 순교자가 탄생했다. 1873년 흥선대원군의 하야로 박해가 끝났다.
병인박해 (丙寅迫害)
병인박해는 조선 후기 1866년부터 1873년까지 8년 동안 국가적 차원에서 지속된 천주교 박해이다. 프랑스와의 조약을 통해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 대신 천주교를 공인받으려는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회담은 국제 정세의 변화와 조선 정부 내의 반발로 결렬되었고,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다. 병인양요(1866년)와 남연군묘 도굴 사건(1868년), 신미양요(1871년) 등 서양 국가와의 충돌은 박해를 격화시켜 교회 조직이 철저히 파괴되었고, 수천 명의 순교자가 탄생했다. 1873년 흥선대원군의 하야로 박해가 끝났다.
『교학정례』는 1870년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주도로 편찬한 대군·왕자군·적왕손·왕손의 교육 관련 의례서이다. 서문은 대원군이 작성하였고, 본문은 설청, 초기식, 절목식, 사부상견의, 상시교학의, 상시접견의, 고례 순으로 되어 있다. 고종 대 왕실 교육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교학정례 (敎學定例)
『교학정례』는 1870년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주도로 편찬한 대군·왕자군·적왕손·왕손의 교육 관련 의례서이다. 서문은 대원군이 작성하였고, 본문은 설청, 초기식, 절목식, 사부상견의, 상시교학의, 상시접견의, 고례 순으로 되어 있다. 고종 대 왕실 교육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사군자의 하나인 난초를 소재로하여 수묵으로 그린 그림.
묵란 (墨蘭)
사군자의 하나인 난초를 소재로하여 수묵으로 그린 그림.
유재소는 조선 후기 활동한 「추림소산도」, 「추수계정도」, 「미법산수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무과에 합격하였고, 벽오사 동인 및 김정희 문하의 서화가들과 가깝게 지냈다. 간일한 구성과 소략한 필묵의 남종문인산수화를 즐겨 그렸으며, 조선 말기 중인 문화에 기여했다.
유재소 (劉在韶)
유재소는 조선 후기 활동한 「추림소산도」, 「추수계정도」, 「미법산수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무과에 합격하였고, 벽오사 동인 및 김정희 문하의 서화가들과 가깝게 지냈다. 간일한 구성과 소략한 필묵의 남종문인산수화를 즐겨 그렸으며, 조선 말기 중인 문화에 기여했다.
개항기 때, 공조판서, 형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세보 (李世輔)
개항기 때, 공조판서, 형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1865∼1867년에 이용화(李容華)의 장수를 축하하기 위해 고종이 관직을 수여한 일을 기념하여 제작된 경수시첩(慶壽詩帖).
이용화 백세영수첩 (李容華 百歲榮壽帖)
1865∼1867년에 이용화(李容華)의 장수를 축하하기 위해 고종이 관직을 수여한 일을 기념하여 제작된 경수시첩(慶壽詩帖).
조선의 제26대 왕, 고종의 조부로, 남연군에 봉해졌으며, 사후에 독일인 오페르트에 의해 묘를 도굴당한 종실.
이구 (李球)
조선의 제26대 왕, 고종의 조부로, 남연군에 봉해졌으며, 사후에 독일인 오페르트에 의해 묘를 도굴당한 종실.
이한철은 조선 후기 「고종어진」, 「이하응초상」 등을 제작한 도화서 화원이다. 1838년부터 1872년까지 규장각 차비대령화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초상화에서 가장 두각을 보였다. 철종·헌종·고종의 어진 도사에 주관화사로 참여하였다. 그 외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비롯한 다수의 고종 대 고관의 초상화를 제작하였다. 그의 초상화는 섬세하고 화려한 표현을 특징으로 한다.
이한철 (李漢喆)
이한철은 조선 후기 「고종어진」, 「이하응초상」 등을 제작한 도화서 화원이다. 1838년부터 1872년까지 규장각 차비대령화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초상화에서 가장 두각을 보였다. 철종·헌종·고종의 어진 도사에 주관화사로 참여하였다. 그 외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비롯한 다수의 고종 대 고관의 초상화를 제작하였다. 그의 초상화는 섬세하고 화려한 표현을 특징으로 한다.
1840년부터 1869년까지 이윤선이 관직 생활을 하면서 견문한 내용을 중심으로 작성한 일기.
공사기고 (公私記攷)
1840년부터 1869년까지 이윤선이 관직 생활을 하면서 견문한 내용을 중심으로 작성한 일기.
조선 고종의 부친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초상화.
대원군 초상화 (大院君 肖像畵)
조선 고종의 부친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초상화.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이 상복(常服) 단령(團領)에 달았던 기린(麒麟)이 수놓인 흉배.
흥선대원군 기린흉배 (興宣大院君 麒麟胸背)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이 상복(常服) 단령(團領)에 달았던 기린(麒麟)이 수놓인 흉배.
흥선대원군 자적 단령은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입었던 자적색의 겹단령이다. 단령은 시무시에 착용하는 상복으로 흥선대원군이 섭정기간에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 겉감은 자색 본사(本紗), 둥근 단령 깃이고 안감은 홍색 본사, 곧은 직령 깃이다. 가슴과 등에는 대군용 기린흉배(麒麟胸背)가 부착되어 있다. 1895년 복제개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전에 입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존상태가 양호할 뿐 아니라 기린흉배가 포함된 완전한 형태의 왕실유물이므로 복식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인정되고 있다. 1987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흥선대원군 자적 단령 (興선大院君 紫赤 團領)
흥선대원군 자적 단령은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입었던 자적색의 겹단령이다. 단령은 시무시에 착용하는 상복으로 흥선대원군이 섭정기간에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 겉감은 자색 본사(本紗), 둥근 단령 깃이고 안감은 홍색 본사, 곧은 직령 깃이다. 가슴과 등에는 대군용 기린흉배(麒麟胸背)가 부착되어 있다. 1895년 복제개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전에 입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존상태가 양호할 뿐 아니라 기린흉배가 포함된 완전한 형태의 왕실유물이므로 복식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인정되고 있다. 1987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