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자유당"
검색결과 총 34건
1951년부터 1961년까지 존재한 한국의 정당.
자유당 (自由黨)
1951년부터 1961년까지 존재한 한국의 정당.
곽상훈은 동래3·1운동 참가, 신간회 활동 등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 이후 국회의장, 대통령 권한 대행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96년 부산 동래 출신으로, 1919년 고교 재학 중 고향으로 내려가 3·1운동에 참가하다 체포되어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대 후반, 항일단체인 신간회에 들어가 검찰위원으로 활약했다. 해방 후 '반민족행위자처벌법' 검찰 차장을 지냈다. 2대∼5대 민의원, 1960년 4·19 직후 대통령권한대행, 같은 해 민의원 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5·16군사정변 당시 민주당 탈당 후 박정희 정권을 지지해 비난을 받았다.
곽상훈 (郭尙勳)
곽상훈은 동래3·1운동 참가, 신간회 활동 등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 이후 국회의장, 대통령 권한 대행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96년 부산 동래 출신으로, 1919년 고교 재학 중 고향으로 내려가 3·1운동에 참가하다 체포되어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대 후반, 항일단체인 신간회에 들어가 검찰위원으로 활약했다. 해방 후 '반민족행위자처벌법' 검찰 차장을 지냈다. 2대∼5대 민의원, 1960년 4·19 직후 대통령권한대행, 같은 해 민의원 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5·16군사정변 당시 민주당 탈당 후 박정희 정권을 지지해 비난을 받았다.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건국부녀동맹을 조직하여 반탁운동을 벌였고, 독립촉성애국부인회 부회장, 대한부인회총본부 회장, 제2·4·5·6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박순천 (朴順天)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건국부녀동맹을 조직하여 반탁운동을 벌였고, 독립촉성애국부인회 부회장, 대한부인회총본부 회장, 제2·4·5·6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박용만은 해방 이후 9, 10, 12, 13대 국회의원, 국회행정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24년에 태어나 1996년에 사망했다. 해방 직후 서울에서 유학생동맹위원장을 지낸 이래 우익 청년운동, 반동·반탁 투쟁에 앞장섰다. 1950년에 정계에 투신하여 1973년 9대 선거에서야 당선되어 ‘칠전팔기’의 주인공으로 회자된 인물이다. 자유당 내 족청계 제거에 앞장섰으나 이기붕과 결별하면서 탈당했다. 13대 총선 결과 여소야대로 야당에게 국회직이 배정되자 국회행정위원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말년에는 이승만의 건국 정통성 옹호운동을 벌였다.
박용만 (朴容萬)
박용만은 해방 이후 9, 10, 12, 13대 국회의원, 국회행정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24년에 태어나 1996년에 사망했다. 해방 직후 서울에서 유학생동맹위원장을 지낸 이래 우익 청년운동, 반동·반탁 투쟁에 앞장섰다. 1950년에 정계에 투신하여 1973년 9대 선거에서야 당선되어 ‘칠전팔기’의 주인공으로 회자된 인물이다. 자유당 내 족청계 제거에 앞장섰으나 이기붕과 결별하면서 탈당했다. 13대 총선 결과 여소야대로 야당에게 국회직이 배정되자 국회행정위원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말년에는 이승만의 건국 정통성 옹호운동을 벌였다.
일제강점기 안주 동부교회, 평양창동교회 등에서 목회활동을 한 목사. 정치인.
김화식 (金化湜)
일제강점기 안주 동부교회, 평양창동교회 등에서 목회활동을 한 목사. 정치인.
제9대, 10대, 12대, 13대 국회의원, 정무제1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
김동영 (金東英)
제9대, 10대, 12대, 13대 국회의원, 정무제1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
이기붕은 해방 이후 서울시장, 국방부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6년 서울 출생으로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1923년 데이버대학 문과를 졸업한 후 1934년 귀국해 광산 산업을 했다. 해방 후 이승만의 비서를 지냈고, 서울특별시 시장, 국방부 장관 등을 지냈다. 이승만의 지시로 자유당을 창당하였고 이승만의 종신집권을 위하여 사사오입을 강행하였다. 1960년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4·19혁명으로 사임하였다. 이승만 대통령 하야 후 피신해 있다가 4월 28일 전가족이 자살하였다.
이기붕 (李起鵬)
이기붕은 해방 이후 서울시장, 국방부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6년 서울 출생으로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1923년 데이버대학 문과를 졸업한 후 1934년 귀국해 광산 산업을 했다. 해방 후 이승만의 비서를 지냈고, 서울특별시 시장, 국방부 장관 등을 지냈다. 이승만의 지시로 자유당을 창당하였고 이승만의 종신집권을 위하여 사사오입을 강행하였다. 1960년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4·19혁명으로 사임하였다. 이승만 대통령 하야 후 피신해 있다가 4월 28일 전가족이 자살하였다.
해방 이후 육군소령, 육군참모총장 특별보좌관, 육군중령 등을 역임한 군인. 정치인.
이동진 (李東鎭)
해방 이후 육군소령, 육군참모총장 특별보좌관, 육군중령 등을 역임한 군인. 정치인.
이범석은 일제강점기 북로군정서 교관, 고려혁명군 기병대장, 광복군 참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인이다. 1900년 서울 출생으로 1915년 여운형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김규식 등과 고려혁명을 창설해 기병대장을 맡았고, 1945년 광복군 참모장이 되었다. 1948년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을 겸임하였다. 1953년 자유당에서 제명당한 후 참의원에 당선되었고, 1967년 신민당 출범에 이바지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으며, 유해는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
이범석 (李範奭)
이범석은 일제강점기 북로군정서 교관, 고려혁명군 기병대장, 광복군 참모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인이다. 1900년 서울 출생으로 1915년 여운형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김규식 등과 고려혁명을 창설해 기병대장을 맡았고, 1945년 광복군 참모장이 되었다. 1948년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을 겸임하였다. 1953년 자유당에서 제명당한 후 참의원에 당선되었고, 1967년 신민당 출범에 이바지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으며, 유해는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
이병희는 5·16군사정변의 핵심 인물로, 중앙정보부 서울지부장, 국회의원, 국회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26년 출생하여 1997년 사망했다. 1949년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정보계통(육군특무대)에서 오래 근무하였다. 5·16군사정변 이후인 1962년 중앙정보부가 창설되었을 때 서울시 지부장을 지냈다. 1962년 대령으로 예편하여, 이듬해 제6대 국회의원선거에 당선되었다. 이후 7·8·9·10·13·15대까지 지역구에서만 7선을 기록하였다. 1969년에는 국회운영위원장을 역임했다. 1964년부터 1996년까지는 아세아자유청년연맹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이병희 (李秉禧)
이병희는 5·16군사정변의 핵심 인물로, 중앙정보부 서울지부장, 국회의원, 국회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26년 출생하여 1997년 사망했다. 1949년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정보계통(육군특무대)에서 오래 근무하였다. 5·16군사정변 이후인 1962년 중앙정보부가 창설되었을 때 서울시 지부장을 지냈다. 1962년 대령으로 예편하여, 이듬해 제6대 국회의원선거에 당선되었다. 이후 7·8·9·10·13·15대까지 지역구에서만 7선을 기록하였다. 1969년에는 국회운영위원장을 역임했다. 1964년부터 1996년까지는 아세아자유청년연맹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인민당에서 활동하였으며, 사회민주당 대표,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친일반민족행위자.
여운홍 (呂運弘)
조선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인민당에서 활동하였으며, 사회민주당 대표,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친일반민족행위자.
이승만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제1, 2, 3대 대통령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75년(고종 12)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잠시 임시정부 대통령직을 맡은 것을 제외하고는 주로 미국에 체류하면서 유학과 정치활동을 했다. 광복 후 38선 이남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했고 1948년 실시된 총선거에 당선되어 국회에서 제1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취임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발췌개헌안’, ‘사사오입 개헌’안을 통과시켜 재선·3선에 성공했다. 4선 도전에서도 무투표로 당선됐으나 4·19혁명이 발발하자 하야 후 하와이로 망명했다.
이승만 (李承晩)
이승만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제1, 2, 3대 대통령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75년(고종 12)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잠시 임시정부 대통령직을 맡은 것을 제외하고는 주로 미국에 체류하면서 유학과 정치활동을 했다. 광복 후 38선 이남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했고 1948년 실시된 총선거에 당선되어 국회에서 제1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취임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발췌개헌안’, ‘사사오입 개헌’안을 통과시켜 재선·3선에 성공했다. 4선 도전에서도 무투표로 당선됐으나 4·19혁명이 발발하자 하야 후 하와이로 망명했다.
일제강점기 때, 단양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민의원 부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친일반민족행위자.
이재학 (李在鶴)
일제강점기 때, 단양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민의원 부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친일반민족행위자.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청년층을 대표하여 학교의 시위운동을 주도하였고, 해방 이후, 민의원, 자유당 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이갑성 (李甲成)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청년층을 대표하여 학교의 시위운동을 주도하였고, 해방 이후, 민의원, 자유당 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조선민족청년단은 1946년에 서울에서 미군정의 후원을 받아 이범석이 조직한 우익청년단이다. 광복군 출신이 주축이 되어 만든 단체로 민족지상, 국가지상을 내건 민족주의 성향의 단체다. 좌익 출신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하기도 했다. 1948년 11월부터 청년단체 통합이 추진됨에 따라 대한청년단으로 통합되었다. 해산 뒤에도 세력을 형성해 자유당 창당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이범석이 이승만의 경계대상이 되면서 힘을 잃게 되었다. 조선민족청년단은 미군정의 전면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그 이념은 민족적인 주체 형성에 있었다.
조선민족청년단 (朝鮮民族靑年團)
조선민족청년단은 1946년에 서울에서 미군정의 후원을 받아 이범석이 조직한 우익청년단이다. 광복군 출신이 주축이 되어 만든 단체로 민족지상, 국가지상을 내건 민족주의 성향의 단체다. 좌익 출신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하기도 했다. 1948년 11월부터 청년단체 통합이 추진됨에 따라 대한청년단으로 통합되었다. 해산 뒤에도 세력을 형성해 자유당 창당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이범석이 이승만의 경계대상이 되면서 힘을 잃게 되었다. 조선민족청년단은 미군정의 전면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그 이념은 민족적인 주체 형성에 있었다.
해방 이후 재무부장관, 제3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최순주 (崔淳周)
해방 이후 재무부장관, 제3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해방 이후 교통부장관,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
최인규 (崔仁圭)
해방 이후 교통부장관,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
해방 이후 국무총리, 부통령 등을 역임한 정치인.
장면 (張勉)
해방 이후 국무총리, 부통령 등을 역임한 정치인.
해방 이후 국회법제조사 국장, 법전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윤길중 (尹吉重)
해방 이후 국회법제조사 국장, 법전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김윤환은 조선일보사 주일 특파원, 문화공보부 차관, 국회의원, 정무장관 등을 역임한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다. 1932년 경북 선산군 출생으로 미국 오하오이오 대학교 대학원에서 신문학을 전공하였다. 조선일보 주일, 주미 특파원을 거쳐 편집국 국장 대리로 활동하였다. 제10·11·13·14·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민주자유당 원내총무 및 사무총장, 대표위원을 지냈으며, 초대 신한국당의 대표위원, 상임고문에 임명되었고, 한나라당 상임고문직, 부총재를 역임하였다. 2000년 민주국민당을 창당하고 대표최고위원직을 맡았다. 2003년 사망하였다.
김윤환 (金潤煥)
김윤환은 조선일보사 주일 특파원, 문화공보부 차관, 국회의원, 정무장관 등을 역임한 언론인이자 정치인이다. 1932년 경북 선산군 출생으로 미국 오하오이오 대학교 대학원에서 신문학을 전공하였다. 조선일보 주일, 주미 특파원을 거쳐 편집국 국장 대리로 활동하였다. 제10·11·13·14·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민주자유당 원내총무 및 사무총장, 대표위원을 지냈으며, 초대 신한국당의 대표위원, 상임고문에 임명되었고, 한나라당 상임고문직, 부총재를 역임하였다. 2000년 민주국민당을 창당하고 대표최고위원직을 맡았다. 2003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