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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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전(軍資田)은 조선 초기 군사 목적의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설정한 국가 수조지이다. 고려 말 이래 군자전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여 군자전은 단일 지목으로서 최대 규모를 유지하면서 계속 확대되었다. 군자전은 군수와 진휼을 위해 주로 지출되었으며, 국가 재정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예비 재원의 역할도 있었다.
군자전 (軍資田)
군자전(軍資田)은 조선 초기 군사 목적의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설정한 국가 수조지이다. 고려 말 이래 군자전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여 군자전은 단일 지목으로서 최대 규모를 유지하면서 계속 확대되었다. 군자전은 군수와 진휼을 위해 주로 지출되었으며, 국가 재정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예비 재원의 역할도 있었다.
개항기 때의 문인, 박천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8년에 간행한 시문집.
명경대전급창호자전 (明鏡大全及蒼虎子詮)
개항기 때의 문인, 박천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8년에 간행한 시문집.
조선후기 문인·학자 김려의 「이안민전」·「포수이사룡전」·「안황중전」 등 8편의 전 등이 수록된 전집(傳集).
단량패사 (丹良稗史)
조선후기 문인·학자 김려의 「이안민전」·「포수이사룡전」·「안황중전」 등 8편의 전 등이 수록된 전집(傳集).
「김효증전」은 연대,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김광순 소장본 『효자전』을 비롯한 필사본 2종과 보성사본 『육효자전』(1916)을 비롯한 활자본 6종으로 총 8종의 이본이 있다. 어려움에 처한 부모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마침내 부모를 구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이다. 부모에 대한 효를 주제로 하는 이 작품은 여러 희생 효행설화의 영향을 받았다. 다른 사람을 대신 혼인시키는 바뀐 혼인설화는 이 작품을 거쳐 현대 희곡 『맹진사댁 경사』로 이어진다.
김효증전 (金孝曾傳)
「김효증전」은 연대,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김광순 소장본 『효자전』을 비롯한 필사본 2종과 보성사본 『육효자전』(1916)을 비롯한 활자본 6종으로 총 8종의 이본이 있다. 어려움에 처한 부모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마침내 부모를 구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행복하게 산다는 내용이다. 부모에 대한 효를 주제로 하는 이 작품은 여러 희생 효행설화의 영향을 받았다. 다른 사람을 대신 혼인시키는 바뀐 혼인설화는 이 작품을 거쳐 현대 희곡 『맹진사댁 경사』로 이어진다.
조선 후기의 문신, 김영직의 시·기·제문·발 등을 수록한 시문집.
나운자초학집 (蘿雲子初學集)
조선 후기의 문신, 김영직의 시·기·제문·발 등을 수록한 시문집.
『무수집』은 조선 후기 문신인 윤직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87년에 편찬한 시문집이다. 본집 6권 3책, 별집 1책, 연보 1책, 부록 1책 등 총 6권 6책의 필사본으로, 표제와 권수제는 동일하게 ‘무수집(無睡集)’이다.
무수집 (無睡集)
『무수집』은 조선 후기 문신인 윤직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87년에 편찬한 시문집이다. 본집 6권 3책, 별집 1책, 연보 1책, 부록 1책 등 총 6권 6책의 필사본으로, 표제와 권수제는 동일하게 ‘무수집(無睡集)’이다.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은 고려 무인집권기 수선결사의 제2세 사주인 진각국사(溪眞覺國師) 혜심(慧諶, 1178-1234)의 시와 산문 등을 수록한 문집이다. 무의자는 혜심의 자호(自號)이다. 고간본(古刊本)은 전하지 않고 근대에 필사한 필사본만이 전하고 있다. 2권 1책으로 시와 함께 전(傳) 2편, 기(記) 1편, 서(序) 1편, 발(跋) 1편 등의 산문도 수록되어 있다. 혜심의 선사상과 함께 그의 자연관, 사회 의식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무의자시집 (無衣子詩集)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은 고려 무인집권기 수선결사의 제2세 사주인 진각국사(溪眞覺國師) 혜심(慧諶, 1178-1234)의 시와 산문 등을 수록한 문집이다. 무의자는 혜심의 자호(自號)이다. 고간본(古刊本)은 전하지 않고 근대에 필사한 필사본만이 전하고 있다. 2권 1책으로 시와 함께 전(傳) 2편, 기(記) 1편, 서(序) 1편, 발(跋) 1편 등의 산문도 수록되어 있다. 혜심의 선사상과 함께 그의 자연관, 사회 의식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대비(大妃)는 조선시대 선왕의 왕비이다. 부군이었던 선왕(先王)이 사망하고 후사왕(後嗣王)이 즉위한 후 왕대비(王大妃)로 존숭되며, 현왕(現王)이 사망하고 다시 후사왕이 즉위하면 대왕대비(大王大妃)로 존숭되었다. 대비는 선왕의 정비(正妃)라는 관계에서 존숭된다. 대개 현왕의 어머니가 대비가 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대비는 자전(慈殿), 자성(慈聖), 동조(東朝)라 호칭하였다.
대비 (大妃)
대비(大妃)는 조선시대 선왕의 왕비이다. 부군이었던 선왕(先王)이 사망하고 후사왕(後嗣王)이 즉위한 후 왕대비(王大妃)로 존숭되며, 현왕(現王)이 사망하고 다시 후사왕이 즉위하면 대왕대비(大王大妃)로 존숭되었다. 대비는 선왕의 정비(正妃)라는 관계에서 존숭된다. 대개 현왕의 어머니가 대비가 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대비는 자전(慈殿), 자성(慈聖), 동조(東朝)라 호칭하였다.
고려시대 권득령의 주관으로 행균의 『용감수경』을 복각한 자전. 관판본·복각본.
용감수경 권3~4 (龍龕手鏡 卷三~四)
고려시대 권득령의 주관으로 행균의 『용감수경』을 복각한 자전. 관판본·복각본.
지구는 인류가 살고 있는 천체로 태양으로부터 세 번째 궤도를 도는 행성이다. 인류가 사는 천체로 달을 위성으로 가지고 있다. 대기권, 수권, 암석권 및 내권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구라는 용어는 김만중의 『서포만필』(1687)에서 처음 보인다. 김석문, 이익 등은 지구가 둥글다는 ‘지원설’을 설명했다. 홍대용은 지구가 둥글 뿐만 아니라, 스스로 돈다는 지전설을 『의산문답』(1766)에서 서술했다. 최한기는 『지구전요』(1857)에서 태양 둘레를 공전하는 하나의 행성으로서 지구를 다루고 있다.
지구 (地球)
지구는 인류가 살고 있는 천체로 태양으로부터 세 번째 궤도를 도는 행성이다. 인류가 사는 천체로 달을 위성으로 가지고 있다. 대기권, 수권, 암석권 및 내권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구라는 용어는 김만중의 『서포만필』(1687)에서 처음 보인다. 김석문, 이익 등은 지구가 둥글다는 ‘지원설’을 설명했다. 홍대용은 지구가 둥글 뿐만 아니라, 스스로 돈다는 지전설을 『의산문답』(1766)에서 서술했다. 최한기는 『지구전요』(1857)에서 태양 둘레를 공전하는 하나의 행성으로서 지구를 다루고 있다.
조선후기 중국에서 『한불자전』, 『한어문전』 등의 편찬사업에 참여한 천주교인.
최지혁 (崔智爀)
조선후기 중국에서 『한불자전』, 『한어문전』 등의 편찬사업에 참여한 천주교인.
『규장전운』의 부편으로 편찬된 자전. 옥편.
전운옥편 (全韻玉篇)
『규장전운』의 부편으로 편찬된 자전. 옥편.
「주봉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아들이 도적에게 양육된다는 설정이 중국소설 「최위자전」, 「소지현나삼재합」에서 확인되어 서사 구성이 중국소설로부터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은 맞지만, 세부적인 묘사나 인물 설정, 주제 의식 면에서 다른 면모를 보이기 때문에 중국소설과 변별되는 모습 역시 뚜렷하다.
주봉전 (朱奉傳)
「주봉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아들이 도적에게 양육된다는 설정이 중국소설 「최위자전」, 「소지현나삼재합」에서 확인되어 서사 구성이 중국소설로부터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은 맞지만, 세부적인 묘사나 인물 설정, 주제 의식 면에서 다른 면모를 보이기 때문에 중국소설과 변별되는 모습 역시 뚜렷하다.
고려 후기의 승려, 식영암의 설·소·기 등을 모아 엮은 문집.
식영암집 (息影庵集)
고려 후기의 승려, 식영암의 설·소·기 등을 모아 엮은 문집.
박완서의 연작 중편소설.
엄마의 말뚝
박완서의 연작 중편소설.
『대광익회옥편』은 1013년 송나라 진종 연간에 진팽년 등이 칙명을 받아 중수한 자전이다. 본래의 『옥편』(543년)에서 주석을 간략히 하고 글자 수를 22,700여 자로 늘린 것이 특징이다. 본래의 방대한 주석을 삭제하면서 학문적 가치는 낮아졌지만, 대중적 효용성은 증가하여 명대 이전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412년에 간행된 기록이 존재하고 조선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자전을 ‘옥편’이라 부르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규장각에 현재 3종의 전근대 판본이 소장되어 있다.
대광익회옥편 (大廣益會玉篇)
『대광익회옥편』은 1013년 송나라 진종 연간에 진팽년 등이 칙명을 받아 중수한 자전이다. 본래의 『옥편』(543년)에서 주석을 간략히 하고 글자 수를 22,700여 자로 늘린 것이 특징이다. 본래의 방대한 주석을 삭제하면서 학문적 가치는 낮아졌지만, 대중적 효용성은 증가하여 명대 이전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412년에 간행된 기록이 존재하고 조선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자전을 ‘옥편’이라 부르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규장각에 현재 3종의 전근대 판본이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