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장승"
검색결과 총 12건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 입구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3기의 장승. 석장승.
남원 실상사 석장승 (南原 實相寺 石장승)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 입구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3기의 장승. 석장승.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사 입구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장승. 석장승.
남장사 석장승 (南長寺 石장승)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사 입구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장승. 석장승.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관룡사 입구에 있는 화강암으로 된 한 쌍의 장승. 돌장승.
관룡사 석장승 (觀龍寺 石장승)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관룡사 입구에 있는 화강암으로 된 한 쌍의 장승. 돌장승.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법천사 입구에 있는 한 쌍의 장승. 석장승.
법천사 석장승 (法泉寺 石장승)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법천사 입구에 있는 한 쌍의 장승. 석장승.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운흥사 입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세워진 2기의 장승. 석장승.
나주 운흥사 석장승 (羅州 雲興寺 石장승)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운흥사 입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세워진 2기의 장승. 석장승.
대구광역시 달서구 양산골에 있는 화강암으로 제작된 장승. 석장승.
신당동 석장승 (新塘洞 石장승)
대구광역시 달서구 양산골에 있는 화강암으로 제작된 장승. 석장승.
장흥 방촌리 석장승은 조선 후기,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에 조성된 2기의 장승이다. 형상으로 보아 남원, 순창, 부안 일대에 남아 있는 다른 석장승과도 닮은 점이 있어 조선 후기에 민간신앙의 하나이면서도 마을 수호를 위해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명문이 있는 서쪽 장승과 명문이 없는 동쪽 장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별신제를 올린다.
장흥 방촌리 석장승 (長興 傍村里 石長栍)
장흥 방촌리 석장승은 조선 후기,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에 조성된 2기의 장승이다. 형상으로 보아 남원, 순창, 부안 일대에 남아 있는 다른 석장승과도 닮은 점이 있어 조선 후기에 민간신앙의 하나이면서도 마을 수호를 위해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명문이 있는 서쪽 장승과 명문이 없는 동쪽 장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별신제를 올린다.
원나라 가수(可遂)의 「장승법수」를 저본으로 1389년 무학대사(無學大師) 자초(自超)가 복각하여 간행한 불경사전이다. 198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대장경에 수록된 모든 명수를 수집하여 획수(劃數) 단위의 차례대로 각 용어나 단어를 배열함으로써, 불교를 공부하는 이들이 찾고자 하는 해당 단어의 첫글자로 손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편찬했다. 1500년에 경상도 합천 봉서사(鳳栖寺)에서 개판(開板)한 「현수제승법수(賢首諸乘法數)」와 그 복각 판본이 「장승법수」보다 좀 더 포괄적이기 때문에, 「장승법수」는 조선시대에는 더 이상 간행되지 못하였다.
장승법수 (藏乘法數)
원나라 가수(可遂)의 「장승법수」를 저본으로 1389년 무학대사(無學大師) 자초(自超)가 복각하여 간행한 불경사전이다. 198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대장경에 수록된 모든 명수를 수집하여 획수(劃數) 단위의 차례대로 각 용어나 단어를 배열함으로써, 불교를 공부하는 이들이 찾고자 하는 해당 단어의 첫글자로 손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편찬했다. 1500년에 경상도 합천 봉서사(鳳栖寺)에서 개판(開板)한 「현수제승법수(賢首諸乘法數)」와 그 복각 판본이 「장승법수」보다 좀 더 포괄적이기 때문에, 「장승법수」는 조선시대에는 더 이상 간행되지 못하였다.
『장승법수』는 고려후기부터 조선전기까지 생존한 승려 무학자초가 원나라 가수의 『장승법수』를 저본으로 1389년에 중간한 불교서이다. 제목의 ‘장승’은 대장경을 가리키는 별칭이며, ‘법수’는 일종의 사전을 의미한다. 불교를 공부하는 이들이 찾고자 하는 해당 단어의 첫 글자로 손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편찬하여 간행한 불경(佛經)사전이다. 목판본 1책으로, 1981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성암고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색의 발문에 1389년에 간행하였다는 시기가 적시되어 있어 불교사적으로 의미있는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장승법수 (藏乘法數)
『장승법수』는 고려후기부터 조선전기까지 생존한 승려 무학자초가 원나라 가수의 『장승법수』를 저본으로 1389년에 중간한 불교서이다. 제목의 ‘장승’은 대장경을 가리키는 별칭이며, ‘법수’는 일종의 사전을 의미한다. 불교를 공부하는 이들이 찾고자 하는 해당 단어의 첫 글자로 손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편찬하여 간행한 불경(佛經)사전이다. 목판본 1책으로, 1981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성암고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색의 발문에 1389년에 간행하였다는 시기가 적시되어 있어 불교사적으로 의미있는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에 있는 한 쌍의 장승. 석장승.
남원 서천리 당산 (南原 西川里 堂山)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에 있는 한 쌍의 장승. 석장승.
쌍계사는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이다.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고, 현전하는 기록과 절터에서 발굴 조사를 통해 조선 전기에서 조선 중기까지 사세가 컸음이 확인되고, 조선 후기까지도 사찰이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쌍계사 (雙溪寺)
쌍계사는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이다.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고, 현전하는 기록과 절터에서 발굴 조사를 통해 조선 전기에서 조선 중기까지 사세가 컸음이 확인되고, 조선 후기까지도 사찰이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문은 마을을 보호하고 침입자를 단속하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인공적 장치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문은 국가적 방범 시책으로 세조 11년인 1465년에 처음 한성에 설치하면서 전국적으로 실시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문은 물리적으로 주로 야간 통행자를 검문하는 곳이지만, 민속 신앙적인 관념에 근거하여 외부의 잡귀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세운 장승, 입석, 솟대 등의 인공물이 세워진 곳으로도 확대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문 (里門)
이문은 마을을 보호하고 침입자를 단속하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인공적 장치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문은 국가적 방범 시책으로 세조 11년인 1465년에 처음 한성에 설치하면서 전국적으로 실시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문은 물리적으로 주로 야간 통행자를 검문하는 곳이지만, 민속 신앙적인 관념에 근거하여 외부의 잡귀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세운 장승, 입석, 솟대 등의 인공물이 세워진 곳으로도 확대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