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정묘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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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는 조선 후기, 제16대(재위: 1623~1649) 국왕이다. 광해군과 북인(北人) 정권의 극단적인 정치에 반발하여 1623년 서인(西人)의 김류(金瑬) · 이귀(李貴) · 이괄(李适) 등과 '반정(反正)'을 일으킨 뒤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중에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국내외에서 전쟁을 치루었다.
인조 (仁祖)
인조는 조선 후기, 제16대(재위: 1623~1649) 국왕이다. 광해군과 북인(北人) 정권의 극단적인 정치에 반발하여 1623년 서인(西人)의 김류(金瑬) · 이귀(李貴) · 이괄(李适) 등과 '반정(反正)'을 일으킨 뒤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중에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국내외에서 전쟁을 치루었다.
의병은 조선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저항한 자발적인 백성의 군대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1, 2차 의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 활동한 의병은 활동 목표, 방향에 따라서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향병과 근왕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의병은 일본군에 대한 저항과 국왕의 호위라는 명분에 따라 창의(倡義)하여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은 근왕병의 성격이 강하였다.
의병 (義兵)
의병은 조선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민족의 침략에 저항한 자발적인 백성의 군대이다. 이민족의 침략에 대응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말의 1, 2차 의병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시기에 활동한 의병은 활동 목표, 방향에 따라서 다소 성격을 달리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은 향병과 근왕병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의 의병은 일본군에 대한 저항과 국왕의 호위라는 명분에 따라 창의(倡義)하여 활동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의병은 근왕병의 성격이 강하였다.
조선시대 『수남방옹유고』를 저술한 시인.
정훈 (鄭勳)
조선시대 『수남방옹유고』를 저술한 시인.
조선 후기에, 부제학, 대사성,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민구 (李敏求)
조선 후기에, 부제학, 대사성,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인조 때 남한산성을 개축하고 이를 수어하기 위해 설치한 수어청(守禦廳)의 종2품직 장관.
수어사 (守禦使)
조선 인조 때 남한산성을 개축하고 이를 수어하기 위해 설치한 수어청(守禦廳)의 종2품직 장관.
조선 후기에, 병조정랑, 호조참판,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명준 (李命俊)
조선 후기에, 병조정랑, 호조참판,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속환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수십만의 조선인 몸값을 그 주인에게 치러주고 송환해 온 일이다. 속환은 왕족이나 군인의 경우 국가에서 몸값을 치러주는 공속과 일반인들의 경우 가족들이 개별적으로 치르는 사속이 있었다. 정묘호란 후에는 의주나 중강, 병자호란 후에는 심양에서 주인들과 흥정을 하는 시장이 열렸다. 처음에는 속환가가 1인당 포 10필(쌀 10석)정도였으나, 점점 주인들이 몸값을 지나치게 많이 요구하여 성사가 쉽지 않았다. 조선 정부 차원에서 특별사신인 속환사가 3차에 걸쳐 파견되었으나 총 2~3천 명 정도밖에 돌아오지 못했다.
속환 (贖還)
속환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수십만의 조선인 몸값을 그 주인에게 치러주고 송환해 온 일이다. 속환은 왕족이나 군인의 경우 국가에서 몸값을 치러주는 공속과 일반인들의 경우 가족들이 개별적으로 치르는 사속이 있었다. 정묘호란 후에는 의주나 중강, 병자호란 후에는 심양에서 주인들과 흥정을 하는 시장이 열렸다. 처음에는 속환가가 1인당 포 10필(쌀 10석)정도였으나, 점점 주인들이 몸값을 지나치게 많이 요구하여 성사가 쉽지 않았다. 조선 정부 차원에서 특별사신인 속환사가 3차에 걸쳐 파견되었으나 총 2~3천 명 정도밖에 돌아오지 못했다.
조선 후기에, 황해도관찰사, 주청부사, 부체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윤훤 (尹暄)
조선 후기에, 황해도관찰사, 주청부사, 부체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오익창은 조선 후기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때 의병으로 활동한 문신이다. 임진왜란 때는 명량해전 당시 이순신의 수군을 도와 군량과 의복을 공급하였고, 피란선을 동원하여 후방을 지원하였다. 정묘호란 때는 왕이 파천한 강화도로 군량을 보냈다.
오익창 (吳益昌)
오익창은 조선 후기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때 의병으로 활동한 문신이다. 임진왜란 때는 명량해전 당시 이순신의 수군을 도와 군량과 의복을 공급하였고, 피란선을 동원하여 후방을 지원하였다. 정묘호란 때는 왕이 파천한 강화도로 군량을 보냈다.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지평,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신달도 (申達道)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지평,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장례원사평, 지평현감,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환 (朴煥)
조선 후기에, 장례원사평, 지평현감, 동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한성부판윤, 승지,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심연 (沈演)
조선 후기에, 한성부판윤, 승지,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지의금부사, 춘추관사,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박동선 (朴東善)
조선 후기에, 지의금부사, 춘추관사,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형조좌랑, 사복시첨정,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심명세 (沈命世)
조선 후기에, 형조좌랑, 사복시첨정,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김덕보는 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형 김덕홍, 김덕령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전라도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형 김덕령이 옥사에 연루되어 죽은 후, 광주 무등산에 풍암정을 짓고 은둔하여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정묘호란 때는 안방준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김덕보 (金德普)
김덕보는 조선 후기 임진왜란 때 형 김덕홍, 김덕령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전라도에서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형 김덕령이 옥사에 연루되어 죽은 후, 광주 무등산에 풍암정을 짓고 은둔하여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정묘호란 때는 안방준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조선시대 봉산군수, 통정대부, 안주목사 등을 역임한 무신.
김준 (金浚)
조선시대 봉산군수, 통정대부, 안주목사 등을 역임한 무신.
조선시대 의병장, 사복시정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신집 (申楫)
조선시대 의병장, 사복시정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조선 후기에, 금부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천봉 (李天封)
조선 후기에, 금부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예조정랑, 사간원정언, 울진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신열도 (申悅道)
조선 후기에, 예조정랑, 사간원정언, 울진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서경우는 선조~인조 대의 문신이다. 문과에 급제한 뒤 주로 삼사와 육조의 낭청을 지냈고, 1612년(광해군 4)에는 정주목사로 외직에 나갔으나 계축옥사(1613) 이후 은거하였다.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때 호종하였으나, 경기감사로 재임하던 병자호란 때는 미처 남한산성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1644년(인조 22)에는 우의정에 임명되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서경우 (徐景雨)
서경우는 선조~인조 대의 문신이다. 문과에 급제한 뒤 주로 삼사와 육조의 낭청을 지냈고, 1612년(광해군 4)에는 정주목사로 외직에 나갔으나 계축옥사(1613) 이후 은거하였다.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때 호종하였으나, 경기감사로 재임하던 병자호란 때는 미처 남한산성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1644년(인조 22)에는 우의정에 임명되고 기로소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