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정조"
검색결과 총 77건
조선 후기에 정조(正祖)가 그린 국화 그림.
정조 필 국화도 (正祖 筆 菊花圖)
조선 후기에 정조(正祖)가 그린 국화 그림.
조선 후기의 정조가 그린 파초도.
정조 필 파초도 (正祖 筆 芭蕉圖)
조선 후기의 정조가 그린 파초도.
『정조실록(正祖實錄)』은 1800년(순조 즉위)부터 1805년(순조 5)까지, 정조 재위 25년간의 국정 및 사회, 문화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 실록이다. 56권 56책이며, 활자본이다. 『정조실록』은 『일성록(日省錄)』의 27개조 편찬 범례가 실록 편찬에 적용된 특징을 지닌다.
정조실록 (正祖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은 1800년(순조 즉위)부터 1805년(순조 5)까지, 정조 재위 25년간의 국정 및 사회, 문화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 실록이다. 56권 56책이며, 활자본이다. 『정조실록』은 『일성록(日省錄)』의 27개조 편찬 범례가 실록 편찬에 적용된 특징을 지닌다.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正祖)가 1791년에 쓴 칠언율시.
정조 어필 - 신제학정민시출안호남 (正祖 御筆 - 贐提學鄭民始出按湖南)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正祖)가 1791년에 쓴 칠언율시.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正祖)가 1798년에 짓고 쓴 어제어필 칠언절구.
정조 어필 - 제문상정사 (正祖 御筆 - 題汶上精舍)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正祖)가 1798년에 짓고 쓴 어제어필 칠언절구.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正祖)가 1798년에 쓴 어필.
정조 어필 - 시국제입장제생 (正祖 御筆 - 示菊製入場諸生)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正祖)가 1798년에 쓴 어필.
『정조 어찰첩』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 297편을 엮은 서첩이다. 1796년(정조 20) 8월 20일부터 1800년(정조 24) 6월 16일까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을 엮었다. 6첩, 필사본. 총 297편으로 글자 수는 5만 2천여 자이다. 정조의 어찰은 공식적인 사료의 이면에 숨겨진 사건의 내막과 정조의 의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정조 어찰첩 (正祖 御札牒)
『정조 어찰첩』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 297편을 엮은 서첩이다. 1796년(정조 20) 8월 20일부터 1800년(정조 24) 6월 16일까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을 엮었다. 6첩, 필사본. 총 297편으로 글자 수는 5만 2천여 자이다. 정조의 어찰은 공식적인 사료의 이면에 숨겨진 사건의 내막과 정조의 의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시강원에서 조선 제22대왕 정조의 동궁 시절을 기록한 실록. 동궁일기.
정조동궁일기 (正祖東宮日記)
시강원에서 조선 제22대왕 정조의 동궁 시절을 기록한 실록. 동궁일기.
조선후기 세손(정조)의 대리청정을 반대하던 홍인한·정후겸 등을 1776년에 사사하게 된 경위를 기록한 역사서.
명의록 (明義錄)
조선후기 세손(정조)의 대리청정을 반대하던 홍인한·정후겸 등을 1776년에 사사하게 된 경위를 기록한 역사서.
조선 후기에, 정언,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민항렬 (閔恒烈)
조선 후기에, 정언,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여자의 머리숱을 많아 보이게 하거나 머리 모양을 꾸미기 위하여 머리에 얹거나 덧넣는 딴 머리.
가체 (加髢)
여자의 머리숱을 많아 보이게 하거나 머리 모양을 꾸미기 위하여 머리에 얹거나 덧넣는 딴 머리.
1797년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하루의 일과를 과무·과술·과사·과독으로 구분하여 작성한 일기.
과무 (課務)
1797년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하루의 일과를 과무·과술·과사·과독으로 구분하여 작성한 일기.
감대청계첩은 1792년(정조 16) 10월 30일 정조가 춘당대(春塘臺)에서 10순(50발)의 활을 쏘아 49발을 맞춘 뒤 관례에 따라 배석하였던 감대청(感戴廳)의 별군직들에게 고풍(古風)을 내린 뒤에 감대청에서 그 사실을 기록하여 정조에게 올린 어람본(御覽本)이다.
감대청계첩 (感戴廳契帖)
감대청계첩은 1792년(정조 16) 10월 30일 정조가 춘당대(春塘臺)에서 10순(50발)의 활을 쏘아 49발을 맞춘 뒤 관례에 따라 배석하였던 감대청(感戴廳)의 별군직들에게 고풍(古風)을 내린 뒤에 감대청에서 그 사실을 기록하여 정조에게 올린 어람본(御覽本)이다.
화성건릉(華城健陵)은 조선 제22대 국왕 정조와 효의왕후 청풍김씨의 합장 단릉이다. 정조건릉은 1800년 현륭원 동쪽에 처음 조성되었다가 1821년 현재의 위치로 천릉하고, 효의왕후를 합장해 단릉으로 조성하였다. 장조(莊祖, 사도세자)와 헌경왕후(獻敬王后, 혜경궁 홍씨)의 융릉(隆陵)과 함께 사적 ‘화성 융릉과 건릉(華城 隆陵과 健陵)’으로 지정되어 있다.
화성 건릉 (華城 健陵)
화성건릉(華城健陵)은 조선 제22대 국왕 정조와 효의왕후 청풍김씨의 합장 단릉이다. 정조건릉은 1800년 현륭원 동쪽에 처음 조성되었다가 1821년 현재의 위치로 천릉하고, 효의왕후를 합장해 단릉으로 조성하였다. 장조(莊祖, 사도세자)와 헌경왕후(獻敬王后, 혜경궁 홍씨)의 융릉(隆陵)과 함께 사적 ‘화성 융릉과 건릉(華城 隆陵과 健陵)’으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평강현감, 포천현령, 가선대부 등을 역임한 문신.
박종희 (朴宗喜)
조선 후기에, 평강현감, 포천현령, 가선대부 등을 역임한 문신.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 있는 조선후기 제22대 정조가 현륭원 전배를 위해 가설한 다리. 홍교·석교.
만안교 (萬安橋)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 있는 조선후기 제22대 정조가 현륭원 전배를 위해 가설한 다리. 홍교·석교.
문체반정은 조선 후기 정조 때에 유행한 한문문체를 개혁하여 순정고문으로 환원시키려던 정책이다. 문체순정, 문체파동, 비변문체, 문체지교정, 귀정이라고도 한다. 정조 당시는 패관잡기나 명말청초 중국 문인들의 문집에 영향을 받아 개성주의에 입각한 참신한 문체가 크게 유행하였다. 정조는 이를 배격하고 순정한 고문의 문풍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정조는 불순한 문체의 근원이 박지원과 그의 저작인 『열하일기』에 있다고 보고, 박지원에게 순정한 고문을 지어 바치도록 하였다. 또한 고문의 모범을 제시하기 위해 『주자선통(朱子選統)』, 『팔자백선(八子百選)』 등을 출간하였다.
문체반정 (文體反正)
문체반정은 조선 후기 정조 때에 유행한 한문문체를 개혁하여 순정고문으로 환원시키려던 정책이다. 문체순정, 문체파동, 비변문체, 문체지교정, 귀정이라고도 한다. 정조 당시는 패관잡기나 명말청초 중국 문인들의 문집에 영향을 받아 개성주의에 입각한 참신한 문체가 크게 유행하였다. 정조는 이를 배격하고 순정한 고문의 문풍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정조는 불순한 문체의 근원이 박지원과 그의 저작인 『열하일기』에 있다고 보고, 박지원에게 순정한 고문을 지어 바치도록 하였다. 또한 고문의 모범을 제시하기 위해 『주자선통(朱子選統)』, 『팔자백선(八子百選)』 등을 출간하였다.
시파(時派)는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책에 의한 한 정파이다. 영조대 중 · 후반에 성립한 노론 북당(北黨)과 동당(東黨) 계열 인사들이 정조의 의리탕평에 호응하여 소론과 협력하며 정국을 주도하던 세력이다. 이들은 정조 대에는 군주가 설정한 시의(時議)에 순응하며 의리탕평에 호응한 노론 주류 세력이 되었으며, 순조 대 이후 시파의 영수인 안동 김씨 외척은 노 · 소론 경화 벌열가를 이끌며 세도정치를 주도하였다.
시파 (時派)
시파(時派)는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책에 의한 한 정파이다. 영조대 중 · 후반에 성립한 노론 북당(北黨)과 동당(東黨) 계열 인사들이 정조의 의리탕평에 호응하여 소론과 협력하며 정국을 주도하던 세력이다. 이들은 정조 대에는 군주가 설정한 시의(時議)에 순응하며 의리탕평에 호응한 노론 주류 세력이 되었으며, 순조 대 이후 시파의 영수인 안동 김씨 외척은 노 · 소론 경화 벌열가를 이끌며 세도정치를 주도하였다.
조선시대 선조가 임진왜란 당시 문신 송언신에게 보낸 어서. 어찰.
선조어서사 송언신 밀찰첩 및 송언신 초상 (宣祖御書賜 宋言愼 密札帖 및 宋言愼 肖像)
조선시대 선조가 임진왜란 당시 문신 송언신에게 보낸 어서. 어찰.
조선 후기에, 승지, 호조참의, 연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심지한 (沈之漢)
조선 후기에, 승지, 호조참의, 연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