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선미술전람회"
검색결과 총 41건
일제강점기 「정자관을 쓴 자화상」, 「부채를 든 자화상」, 「금강산진주담폭포」, 「탐승」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고희동 (高羲東)
일제강점기 「정자관을 쓴 자화상」, 「부채를 든 자화상」, 「금강산진주담폭포」, 「탐승」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일제강점기 「백화」, 「소년」, 「다산선생상」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 독립운동가.
김복진 (金復鎭)
일제강점기 「백화」, 「소년」, 「다산선생상」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 독립운동가.
근대 이후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기법과 양식에 의해 그려진 그림. 한국화.
동양화 (東洋畵)
근대 이후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기법과 양식에 의해 그려진 그림. 한국화.
해방 이후 「절구질하는 여인」, 「빨래터」, 「고목과 여인」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박수근 (朴壽根)
해방 이후 「절구질하는 여인」, 「빨래터」, 「고목과 여인」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일제강점기 「아이」, 「포오즈」, 「낮잠」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김종태 (金鍾泰)
일제강점기 「아이」, 「포오즈」, 「낮잠」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낙원」(1937), 해방 이후 「한 알의 밀알」, 「영광」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백남순 (白南舜)
「낙원」(1937), 해방 이후 「한 알의 밀알」, 「영광」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해방 이후 「화실」, 「좌상」, 「만추」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임직순 (任直淳)
해방 이후 「화실」, 「좌상」, 「만추」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이응노는 해방 이후 조선미술가협회 상임 위원을 역임한 화가이다. 1924년 김규진에게 묵화를 사사한 이후 1944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과 특선에 올랐다. 일본에 가서 일본 화법과 양화를 공부하였고 귀국 후에는 배렴·장우성 등과 단구미술원을 조직하여 동인전을 가졌다. 1958년에 파리에 정착했는데 반공법으로 투옥되었다가 특별 사면된 후 프랑스에 귀화하였다. 1981년부터는 우리나라의 민주화 투쟁을 주제로 삼은 ‘시위 군중’ 소재의 대대적인 수묵화 연작에 열중하였다. 2007년에 대전에 이응노미술관이 개관했고 2012년에 대전시와 위·수탁 협약이 체결되었다.
이응노 (李應魯)
이응노는 해방 이후 조선미술가협회 상임 위원을 역임한 화가이다. 1924년 김규진에게 묵화를 사사한 이후 1944년까지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과 특선에 올랐다. 일본에 가서 일본 화법과 양화를 공부하였고 귀국 후에는 배렴·장우성 등과 단구미술원을 조직하여 동인전을 가졌다. 1958년에 파리에 정착했는데 반공법으로 투옥되었다가 특별 사면된 후 프랑스에 귀화하였다. 1981년부터는 우리나라의 민주화 투쟁을 주제로 삼은 ‘시위 군중’ 소재의 대대적인 수묵화 연작에 열중하였다. 2007년에 대전에 이응노미술관이 개관했고 2012년에 대전시와 위·수탁 협약이 체결되었다.
이종우는 일제강점기 「모부인상」, 「인형이 있는 정물」, 「독서하는 우인」 등을 그린 서양화가이다. 1918년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하여 1923년 졸업하였다. 1924년 제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추억」이 양화부 3등상에 입상하면서 공식적으로 데뷔했다.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약 3년간 체류하면서 그린 작품 「모부인상」과 「인형이 있는 정물」이 1927년의 살롱 도톤에 출품, 입선되었다. 1934년에는 한국인 서양화가들만의 모임인 목일회를 구성하고 작품을 발표하였다. 1974년 동아일보사는 이종우의 주요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회고전을 개최하였으며, 화집도 출판하였다.
이종우 (李鍾禹)
이종우는 일제강점기 「모부인상」, 「인형이 있는 정물」, 「독서하는 우인」 등을 그린 서양화가이다. 1918년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하여 1923년 졸업하였다. 1924년 제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추억」이 양화부 3등상에 입상하면서 공식적으로 데뷔했다.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약 3년간 체류하면서 그린 작품 「모부인상」과 「인형이 있는 정물」이 1927년의 살롱 도톤에 출품, 입선되었다. 1934년에는 한국인 서양화가들만의 모임인 목일회를 구성하고 작품을 발표하였다. 1974년 동아일보사는 이종우의 주요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회고전을 개최하였으며, 화집도 출판하였다.
이도영은 일제강점기 「고색찬연」·「나려기완」·「석굴암 관음상」 등을 그린 서화가이자 시사만화가·삽화가·교육자이다. 1898년 전환국에 입학하여 분석학을 배웠다. 1901년 안중식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후 다양한 단체의 계몽운동가들과 교유하면서 시사만화, 교과서의 삽화, 신소설 삽화 등을 그렸다. 산수·인물·영모·기명절지 등 전통 회화에서도 다양한 화목의 작품을 남겼다. 이도영은 서화가로서의 지평을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근대적인 미술교육과 전람회 제도를 도입하고 운영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미술가이다.
이도영 (李道榮)
이도영은 일제강점기 「고색찬연」·「나려기완」·「석굴암 관음상」 등을 그린 서화가이자 시사만화가·삽화가·교육자이다. 1898년 전환국에 입학하여 분석학을 배웠다. 1901년 안중식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후 다양한 단체의 계몽운동가들과 교유하면서 시사만화, 교과서의 삽화, 신소설 삽화 등을 그렸다. 산수·인물·영모·기명절지 등 전통 회화에서도 다양한 화목의 작품을 남겼다. 이도영은 서화가로서의 지평을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근대적인 미술교육과 전람회 제도를 도입하고 운영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미술가이다.
해방 이후 국전 심사위원, 초대작가 등을 역임한 화가. 한국화가.
허백련 (許百鍊)
해방 이후 국전 심사위원, 초대작가 등을 역임한 화가. 한국화가.
해방 이후 코트라 디자인위원, 세계공예회의 한국위원 등으로 활동한 디자이너. 서양화가, 그래픽디자이너.
한홍택 (韓弘澤)
해방 이후 코트라 디자인위원, 세계공예회의 한국위원 등으로 활동한 디자이너. 서양화가, 그래픽디자이너.
김인승(金仁承)이 1937년에 그린 그림.
화실 (畵室)
김인승(金仁承)이 1937년에 그린 그림.
1933년경 개설되어 회화를 교육했던 이상범의 개인 화숙.
청전화숙 (靑田畵塾)
1933년경 개설되어 회화를 교육했던 이상범의 개인 화숙.
일제강점기 「정교」·「우후」·「추운」 등을 그린 화가.
심은택 (沈銀澤)
일제강점기 「정교」·「우후」·「추운」 등을 그린 화가.
1940년 서울에서 결성한 태평양미술학교(太平洋美術學校) 출신의 동문 미술단체.
파스동인 (PAS同人)
1940년 서울에서 결성한 태평양미술학교(太平洋美術學校) 출신의 동문 미술단체.
일제강점기 「서재의 여인」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정규익 (丁奎益)
일제강점기 「서재의 여인」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일제강점기 「모녀」·「춘향전」 등을 그린 화가. 한국화가.
조용승 (曺龍承)
일제강점기 「모녀」·「춘향전」 등을 그린 화가. 한국화가.
일제강점기 「무언선생」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송문섭 (宋文燮)
일제강점기 「무언선생」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일제강점기 서화협회 간사를 역임한 화가. 서양화가.
장석표 (張錫豹)
일제강점기 서화협회 간사를 역임한 화가. 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