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선일보"
검색결과 총 16건
변영만은 일제강점기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8·15광복 이후 광주지방법원 판사, 변호사, 성균관대학교 교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재판관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자 학자이다. 일제강점기에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각종 시국 사건의 변호인단으로 참여하였고, 1923년 최남선이 창간한 『동명(東明)』지에 많은 기고를 하였다. 1930년대에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양대 일간지에 시론, 시조와 시들을 발표하였다. 1954년 65세로 사망하였다.
변영만 (卞榮晩)
변영만은 일제강점기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8·15광복 이후 광주지방법원 판사, 변호사, 성균관대학교 교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재판관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자 학자이다. 일제강점기에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각종 시국 사건의 변호인단으로 참여하였고, 1923년 최남선이 창간한 『동명(東明)』지에 많은 기고를 하였다. 1930년대에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양대 일간지에 시론, 시조와 시들을 발표하였다. 1954년 65세로 사망하였다.
문일평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사학자 겸 언론인이자 교육자, 독립운동가이다. 『조선일보』 편집고문 등으로 활약하였으며, 한국사 연구에도 노력을 기울여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다. 일제에 의해 국학 연구의 기초가 흔들리던 시기에 역사 연구를 통해 언외(言外)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문일평 (文一平)
문일평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사학자 겸 언론인이자 교육자, 독립운동가이다. 『조선일보』 편집고문 등으로 활약하였으며, 한국사 연구에도 노력을 기울여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다. 일제에 의해 국학 연구의 기초가 흔들리던 시기에 역사 연구를 통해 언외(言外)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안재홍 (安在鴻)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서춘은 일제 강점기 조선일보사 주필, 매일신보 주필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94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도쿄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다. 1919년 2·8독립선언의 실행위원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독립 시위를 전개하다가 투옥되었다. 출옥 이후 교토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해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경제 시평과 해설, 강연 등의 평론 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일보』 주필을 지내면서 조선총독부에서 주최하는 시국강연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나, 친일 행적으로 1996년 서훈이 취소되었다.
서춘 (徐椿)
서춘은 일제 강점기 조선일보사 주필, 매일신보 주필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94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도쿄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다. 1919년 2·8독립선언의 실행위원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독립 시위를 전개하다가 투옥되었다. 출옥 이후 교토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해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경제 시평과 해설, 강연 등의 평론 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일보』 주필을 지내면서 조선총독부에서 주최하는 시국강연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나, 친일 행적으로 1996년 서훈이 취소되었다.
해방 이후 동국대학교 총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초대 원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언론인, 역사학자.
이선근 (李瑄根)
해방 이후 동국대학교 총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초대 원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언론인, 역사학자.
『선풍시대』는 1931년 한인택(韓仁澤)이 지은 장편소설이다. 1931년 『조선일보』 현상 소설 모집에서 1등으로 당선되어 같은 해 11월 7일부터 1932년 4월 23일까지 총 159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1934년 단행본으로 초판이 출간되었고, 1949년 재판이 발간되었다.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영향 아래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과 자본주의의 병폐 등을 비판하고 계급 의식을 드러낸 소설이다.
선풍시대 (旋風時代)
『선풍시대』는 1931년 한인택(韓仁澤)이 지은 장편소설이다. 1931년 『조선일보』 현상 소설 모집에서 1등으로 당선되어 같은 해 11월 7일부터 1932년 4월 23일까지 총 159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1934년 단행본으로 초판이 출간되었고, 1949년 재판이 발간되었다.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영향 아래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과 자본주의의 병폐 등을 비판하고 계급 의식을 드러낸 소설이다.
천관우는 해방 이후 조선일보 논설위원, 동아일보 주필, 한국신문편집인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 역사학자이다. 1925년에 태어나 1991년에 사망했다. 1944년 경성제대에 입학하여 한국사를 전공하였다. 1951년 대한통신 기자로 언론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여 한국일보와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편집국장과 주필 등을 역임하였다. 1971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19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의 공동대표로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주력하였다. 유신체제하에서 한국사의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여 고조선과 삼한, 가야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 연구에 기여하였다.
천관우 (千寬宇)
천관우는 해방 이후 조선일보 논설위원, 동아일보 주필, 한국신문편집인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 역사학자이다. 1925년에 태어나 1991년에 사망했다. 1944년 경성제대에 입학하여 한국사를 전공하였다. 1951년 대한통신 기자로 언론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여 한국일보와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편집국장과 주필 등을 역임하였다. 1971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19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의 공동대표로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주력하였다. 유신체제하에서 한국사의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여 고조선과 삼한, 가야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 연구에 기여하였다.
조만식은 일제강점기 조선물산장려회 회장, 신간회회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83년 평안남도 강서 출생으로 23세에 평양 숭실중학에 입학하면서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08년 일본 동경 유학 중 간디의 무저항주의에 심취한 후 일제에 대항하는 이념으로 삼았다. 귀국 후 오산학교의 교사와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3·1운동으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2년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해 국산품애용운동을 벌였으며, 1932년 조선일보사 사장에 추대되었다. 1970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었으며, 어린이대공원과 오두산통일전만대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조만식 (曺晩植)
조만식은 일제강점기 조선물산장려회 회장, 신간회회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83년 평안남도 강서 출생으로 23세에 평양 숭실중학에 입학하면서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08년 일본 동경 유학 중 간디의 무저항주의에 심취한 후 일제에 대항하는 이념으로 삼았다. 귀국 후 오산학교의 교사와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3·1운동으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2년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해 국산품애용운동을 벌였으며, 1932년 조선일보사 사장에 추대되었다. 1970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었으며, 어린이대공원과 오두산통일전만대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황태성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무역성 부상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906년 경상북도 상주 출생으로, 1920년대 김천과 상주 등지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조선공산청년회 활동 중 체포되어 2년을, 출소 후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으로 체포되어 3년 6개월을 복역하였다. 1946년 조선공산당이 주도한 9월 총파업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껴 월북하였다. 1948년 8월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61년 김일성의 밀사로 남파되어 혁명위원회의 박정희 의장을 만나고자 하였으나, 체포되어 사형되었다.
황태성 (黃太成)
황태성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무역성 부상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906년 경상북도 상주 출생으로, 1920년대 김천과 상주 등지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조선공산청년회 활동 중 체포되어 2년을, 출소 후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으로 체포되어 3년 6개월을 복역하였다. 1946년 조선공산당이 주도한 9월 총파업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껴 월북하였다. 1948년 8월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61년 김일성의 밀사로 남파되어 혁명위원회의 박정희 의장을 만나고자 하였으나, 체포되어 사형되었다.
조선일보사와 일본 마이니치신문사[每日新聞社]가 1995년부터 매년 공동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의 환경 보전과 환경의식을 높이는데 기여한 개인과 단체를 발굴해 수여하는 국제환경상.
한일국제환경상 (韓日國際環境賞)
조선일보사와 일본 마이니치신문사[每日新聞社]가 1995년부터 매년 공동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의 환경 보전과 환경의식을 높이는데 기여한 개인과 단체를 발굴해 수여하는 국제환경상.
『사랑의 수족관』은 1939년 8월 1일부터 1940년 3월 3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김남천의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식민지 시기 토목기사인 김광호와 재벌 딸 이경희의 '연애'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는 소설이다. 전형적인 혼사장애담으로 사건 진행에 우연적인 요소들이 크게 작용하며 인물들의 성격도 고정화되어 있다. 근대과학의 산물인 지식과 기술에 대한 김광호의 믿음은 혁명적 사상을 견지하려는 의지와 그것을 부정하고 지배 질서에 스스로 포섭되고자 하는 이끌림 사이에 놓인 작가 김남천의 내면을 드러내는 매개물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의 수족관 (사랑의 水族館)
『사랑의 수족관』은 1939년 8월 1일부터 1940년 3월 3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김남천의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식민지 시기 토목기사인 김광호와 재벌 딸 이경희의 '연애'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는 소설이다. 전형적인 혼사장애담으로 사건 진행에 우연적인 요소들이 크게 작용하며 인물들의 성격도 고정화되어 있다. 근대과학의 산물인 지식과 기술에 대한 김광호의 믿음은 혁명적 사상을 견지하려는 의지와 그것을 부정하고 지배 질서에 스스로 포섭되고자 하는 이끌림 사이에 놓인 작가 김남천의 내면을 드러내는 매개물이라 할 수 있다.
『철필』은 1930년 7월 중외일보와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현직 기자들이 중심이 되어 간행된 신문 관련 잡지이다. 1930년 9월, 3호까지는 매월 간행되었지만 이후 간행이 중단되었고, 1931년 1월 제4호를 마지막으로 종간되었다. 중외일보 사회부 기자로 있던 임인식이 편집인 겸 발행인이었다.
철필 (鐵筆)
『철필』은 1930년 7월 중외일보와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현직 기자들이 중심이 되어 간행된 신문 관련 잡지이다. 1930년 9월, 3호까지는 매월 간행되었지만 이후 간행이 중단되었고, 1931년 1월 제4호를 마지막으로 종간되었다. 중외일보 사회부 기자로 있던 임인식이 편집인 겸 발행인이었다.
『부산일보』는 1907년 10월 1일 창간되어 부산 지역에서 발행하던 일본어 신문이다. 1905년에 『조선일보』로 창간하였고, 1907년 『부산일보』로 제호를 변경한 이래 일제강점기 말까지 발행된 부산 경남 지역의 유력 일본어 일간지였다. 창간 이후 부산 경남 지역의 일본인들이 경영과 편집을 주도하였다. 일제의 한반도 침략과 식민지 경영을 옹호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부산일보 (釜山日報)
『부산일보』는 1907년 10월 1일 창간되어 부산 지역에서 발행하던 일본어 신문이다. 1905년에 『조선일보』로 창간하였고, 1907년 『부산일보』로 제호를 변경한 이래 일제강점기 말까지 발행된 부산 경남 지역의 유력 일본어 일간지였다. 창간 이후 부산 경남 지역의 일본인들이 경영과 편집을 주도하였다. 일제의 한반도 침략과 식민지 경영을 옹호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멍텅구리 시리즈는 1924년 10월 13일 노수현이 『조선일보』에 연재한 우리나라 최초의 코믹스이다. 1927년 8월 20일까지 장기 연재하였으며, 이는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유일하다. 또한 한국 최초의 코미디 영화인 동명의 영화가 촬영되거나, 가극 등으로 공연되는 등 한국 만화 최초로 주요 IP로 활용된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이 작품은 모던한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과 이에 대한 세태풍자, 다양한 경성의 도회적 풍경이나 산책자의 시선 등 1920-30년대 근대 문화사를 이미지로 재현한 귀중한 사료다.
멍텅구리 시리즈
멍텅구리 시리즈는 1924년 10월 13일 노수현이 『조선일보』에 연재한 우리나라 최초의 코믹스이다. 1927년 8월 20일까지 장기 연재하였으며, 이는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유일하다. 또한 한국 최초의 코미디 영화인 동명의 영화가 촬영되거나, 가극 등으로 공연되는 등 한국 만화 최초로 주요 IP로 활용된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이 작품은 모던한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과 이에 대한 세태풍자, 다양한 경성의 도회적 풍경이나 산책자의 시선 등 1920-30년대 근대 문화사를 이미지로 재현한 귀중한 사료다.
「설빔 차림의 아이들」은 1937년 1월 1일 『조선일보』 신년호 화보로 문치장이 촬영한 사진이다. 숭례문을 배경으로 남자아이 3명과 여자아이 3명이 교대로 나란히 서있는 장면으로, 멀리 숭례문 앞으로 조경으로 해 놓은 나무들과 가스등이 있고 아이들 옆으로는 기찻길이 보인다. 1930년대 새해를 맞는 사회상을 잘 표현했다.
설빔차림의 아이들
「설빔 차림의 아이들」은 1937년 1월 1일 『조선일보』 신년호 화보로 문치장이 촬영한 사진이다. 숭례문을 배경으로 남자아이 3명과 여자아이 3명이 교대로 나란히 서있는 장면으로, 멀리 숭례문 앞으로 조경으로 해 놓은 나무들과 가스등이 있고 아이들 옆으로는 기찻길이 보인다. 1930년대 새해를 맞는 사회상을 잘 표현했다.
『한국신문사진사』는 1992년 사진 역사가 최인진이 개항기부터 광복 이전까지 한국 신문 사진의 형성과 발전을 다룬 역사서이다.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개항기 목판·석판 인쇄를 활용한 초기 사례부터 『매일신보』의 식민지 선전 사진, 『동아일보』·『조선일보』의 민족진영 보도, 사진 화보의 등장과 영향력, 검열·압수·삭제 등 표현 탄압,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까지 폭넓게 다룬다. 희귀 사진 200여 점을 수록해 일반사와 사진사 모두에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한국신문사진사 (韓國新聞寫眞史)
『한국신문사진사』는 1992년 사진 역사가 최인진이 개항기부터 광복 이전까지 한국 신문 사진의 형성과 발전을 다룬 역사서이다.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개항기 목판·석판 인쇄를 활용한 초기 사례부터 『매일신보』의 식민지 선전 사진, 『동아일보』·『조선일보』의 민족진영 보도, 사진 화보의 등장과 영향력, 검열·압수·삭제 등 표현 탄압,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까지 폭넓게 다룬다. 희귀 사진 200여 점을 수록해 일반사와 사진사 모두에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