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새로 만들어 입는 옷을 설빔이라고 한다. 옷이 너무 흔해진 요즘은 설날을 맞았다고 특별히 새 옷을 구해서 입을 필요도 없고 그런 경우도 흔치 않지만, 개항기부터 1970년대까지의 궁핍했던 시절에는 신분의 고하나 생활 형편에 관계없이 신년을 맞아 설빔을 갖춰 입는 일은 중요한 풍습이었다. 설빔은 그야말로 새해맞이의 상징이었다. 1937년 『조선일보』는 신년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한국인들의 미래 희망 어린이들이 설빔을 차려 입은 장면의 사진을 게재하기로 결정했다.
두 장의 사진이 나란히 위, 아래로 신문에 실렸다. 위쪽의 사진은 숭례문을 배경으로 남자아이 3명과 여자아이 3명이 교대로 나란히 서있는 장면으로, 원단(元旦)이란 글자가 좌측에 있고 신문 제호가 우측에 있다. 멀리 숭례문 앞으로 조경으로 해 놓은 나무들과 가스등이 있고 아이들 옆으로는 기찻길이 보인다. 아래 사진은 같은 아이들이 둘러서서 연을 날리고 있는 장면을 찍은 것으로, 우측 아래에는 연을 날리고 있음을 암시하는 연(鳶)자가 새겨 있다. 이 시기 문치장은 해당 신문의 기자가 아니었고, 프리랜서 신분이었다. 신년을 맞아 이를 상징하는 사진 이미지가 필요한 『조선일보』의 의뢰로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만든 문치장은 지금 서울 종로5가 위쪽의 효제동에서 출생했고,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 제도과의 직원으로 일하다, 1920년 조선총독부 산림과 제도수 겸 사진과 조수로 임용되면서 사진을 시작했다. 산림과에서 관장했던 산이나 나무들을 실측하고 기록하는 방법 중 하나로 사진을 찍어야 했고, 여러 행사나 관련 중요 사건을 촬영하는 일을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히 사진술을 익힐 수밖에 없었다. 사진 촬영에 자신감을 얻은 문치장의 목표는 갓 출발한 민간지의 사진기자가 되기 위한 꿈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1922년 9월 총독부 사진과 조수직을 그만두고 경성사진제판소라는 인쇄소에 취직해서 사진 제판 일을 했다. 요즘 말로 취직을 위해 필요한 스펙을 쌓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사진기자 일을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사진기자는 사진을 찍고 현상하고 인화한 후 제판해서 최종 인쇄 담당에게 동판을 넘겨주는 일까지 진행하는 직업이었다. 당시 일반인들 사이에서 사진기자는 쇠사진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로 불렸다. 사진을 신문에 인쇄하기 위해서는 사진을 제판카메라로 찍어 리스필름으로 만들고, 이를 다시 구리나 아연 같은 금속판 위에 노광한 다음 이를 부식시켜 볼록판을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 다음 이 동판을 활자판과 같이 배열해서 인쇄를 하면 지면이 만들어진다. 사진뿐만 아니라 글자 크기가 큰 신문 제호나 제목, 헤드라인, 삽화, 그림 등을 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었다. 당시 이 동판이 쇠사진으로 불렸다. 한국인 최초의 사진기자가 되고자 했던 문치장이 2년여 간 제판을 전문으로 하는 인쇄소에 취직했던 이유가 바로 이 쇠사진 만드는 기술을 익히고자 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