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필』은 1930년 7월 중외일보와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현직 기자들이 중심이 되어 간행된 신문 관련 잡지이다. 1930년 9월, 3호까지는 매월 간행되었지만 이후 간행이 중단되었고, 1931년 1월 제4호를 마지막으로 종간되었다. 중외일보 사회부 기자로 있던 임인식이 편집인 겸 발행인이었다.
『철필(鐵筆)』은 1930년 7월 창간되어, 9월 3호까지는 매월 간행되었지만 이후 간행이 중단되었고, 1931년 1월 제4호를 마지막으로 종간되었다. 중외일보 사회부 기자로 있던 임인식(林仁植)이 편집인 겸 발행인이었다. 임인식은 황해도 백천 출신으로 배제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강소성 농과대학 예과를 마쳤다. 이후 귀국하여 중외일보에 입사하여 사회부에 기자로 근무하였다.
『철필』의 기명 논설은 모두 93개로, 이중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중외일보와 매일신보에 재직하는 현직 언론인과 언론 관련자가 쓴 논설과 편집부 명의 논설, 최상덕(崔上德), 이서구(李瑞求) 등 전직 기자 출신 등이 쓴 논설이 대다수를 점하였다. 때문에 『철필』은 현직 기자를 포함해 언론 관련자들이 간행한 신문 관련 잡지라고 할 수 있다. 필진 중에는 중외일보 기자가 18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들이 쓴 기사도 24개로 가장 많았다. 동아일보는 12명의 기자가 17건의 기사를, 조선일보는 12명의 기자가 18건의 기사를 게재하였다. 『철필』에 3회 이상 기고한 기자는 중외일보의 신경순(申敬淳), 조선일보 염상섭(廉想涉), 동아일보 김동진(金東振), 이광수(李光洙)였고, 2회 이상 기고한 기자는 중외일보의 신상우(申相遇), 이윤종(李允鍾), 이종명(李鍾明), 이하윤(異河潤), 동아일보의 주요한(朱耀翰), 조선일보의 김기림(金起林), 김세용(金世鎔), 박팔양(朴八陽), 유광열(柳光烈) 등이다.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성향의 기자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렇게 사회부 기자들을 중심으로 현직 언론인들이 참여해서 만든 잡지이다 보니, 1924년 결성되어 활동하던 철필구락부와의 관계가 논의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철필구락부는 1920년대 후반 들어 활동을 중단하였기 때문에 직접적 관련은 없다.
『철필』은 잡지 제호 위에 ‘신문평론’이란 부제를 달고, 신문과 관련된 내용을 다수 수록하였다. 신문기자와 편집기자론, 기자 윤리, 기자 양성, 신문기자상 등 기자와 관련한 내용들, 저널리즘과 신문의 역할, 신문론과 신문 윤리, 신문 문학과 평론 등 신문론에 관련한 내용들, 신문사 조직과 지면, 문장과 편집, 인쇄와 사진, 문선 등 신문 제작 실무에 관련한 내용들이 논설의 다수를 점하였다. 또한 미국과 러시아 등 각국 신문을 소개하는 기사도 자주 실었다. 특히 창간호에는 권두 논설로 민태원(閔泰瑗)이 「대기자와 명기자론」, 안재홍(安在鴻)이 「신문기자도덕에 관하여」를 게재하여 기자들의 자질과 목표를 제시하였다. 또한 신문기자 양성에 대한 각 신문사 간부들의 의견을 수록해 참고하도록 하였다.
한편 『철필』에는 흥미를 끌 수 있는 각 신문사의 간부를 비롯한 기자들에 대한 인물평, 취재수기 및 비화, 사건 비화, 기자들의 회고 등도 다수 수록되었다. 시와 소설, 수필 등의 문예물도 비중은 적지만 수록해서 흥미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