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명은 대벽(大闢), 후에 항렬을 따라 이하윤으로 개명하였다. 호는 연포(蓮圃). 강원도 이천(伊川) 출신. 아버지는 이종석(異宗錫)이며, 어머니는 이정순(李貞順)이다.
1918년 이천공립보통학교, 1923년 경성 제1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1926년 도쿄 호세이대학[法廷大學] 예과, 1929년 법문학부 문학과를 수료하였다.
전공은 영문학이나 대학 재학 중에 프랑스어 · 이탈리아어 · 독일어를 배우기도 하였다. 1929년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는 경성여자미술학교(1929∼1930) · 동구여자상업학교(1942∼1945)에서 교편을 잡았고, 『중외일보』(1930∼1932) · 『동아일보』(1937∼1940) 기자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광복 직후에는 좌익의 프로문학에 대항하여 중앙문화협회를 창설하여 상무위원을 역임하였다.
혜화전문학교(1945), 동국대학교 · 성균관대학교(1947∼1950) 교수를 거쳐 1949년부터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3년 정년퇴직하였다. 퇴직 후 덕성여자대학교 교수 겸 교양학부장으로 있다가 작고하였다. 1956년 유네스코아시아회의(일본 도쿄)에 한국대표로 참석한 것을 필두로 한국 문화계 및 문학계를 대표하여 10여 차례나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하였다.
『민주일보』 · 『서울신문』의 논설위원과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부위원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최고위원, 문인협회 이사, 한국비교문학회 회장, 방송용어심의위원회 위원장 등 많은 공직을 역임하였다. 문학 활동은 1926년 『시대일보(時代日報)』에 시 「잃어버린 무덤」을 처음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1926년 『해외문학』 동인 및 1930년 ‘시문학’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1931년 ‘극예술(劇藝術)’ 동인, 1932년 ‘문학(文學)’ 동인으로도 활약하였다. 그의 시는 대체로 애조를 띤 민요조의 서정시가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1939년에 발간된 그의 첫 시집 『물레방아』는 시상이나 리듬의 단조로움으로 인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채 같은 서정시 계열의 시인인 김소월(金素月)이나 김영랑(金永郎)의 그늘에 묻혀버린 느낌을 준다.
따라서, 그의 문학사적 공헌은 창작시보다는 외국시의 번역 소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니 역시집 『실향(失香)의 화원(花園)』(1933)은 이 방면에서 1930년대 문학 활동을 대표하는 업적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불란서시선(佛蘭西詩選)』(首善社, 1954) 등 역시집과 『현대서정시선(現代抒情詩選)』(博文書館, 1939) · 『현대국문학정수(現代國文學精髓)』(中央文化協會, 1946) · 『현대한국시집(現代韓國詩集)』(漢城圖書, 1955) 등의 편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