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진은 1971년부터 1998년까지 동아일보 출판국 사진기자와 편집국 사진부 부장을 역임하였다. 1978년부터 순수 민간 연구 기관인 한국사진사연구소를 개설하여 한국 사진사 정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한국신문사진사』[열화당, 1992]는 저자가 언론인으로 활동한 경력과 한국 사진사 연구를 꾸준히 이어온 결과물이다.
『한국신문사진사』는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저널리즘의 시각적 확장’에서는 세계 포토저널리즘의 탄생 과정을 간략히 추적하며, 목판화를 비롯하여 석판 · 동판 · 망판 인쇄 등 인쇄술과 사진 기술 발전의 상관관계를 조명한다. 2장 ‘여명기’에서는 개항기 당시 민간지 발간과 함께 『그리스도신문』, 『대한민보』 등에서 목판 · 석판을 활용해 본문 기사와 함께 사진을 인쇄했던 사례를 다룬다.
3장 ‘매일신보와 신문 사진’에서는 한일병합조약 이후 조선총독부가 『대한민보』, 『황성신문』 등 민간지를 폐간하고 『대한매일신보』를 강제로 매수해 기관지 『매일신보』로 개칭 · 존속시킨 사실을 다룬다. 당시 『매일신보』는 유일한 국한문 혼용 신문으로, 조선총독부는 망판 인쇄술을 이용한 스케치 사진, 연재 기획 사진 등을 식민 통치의 정당화와 여론 형성을 위한 프로파간다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4장 ‘정착과 발달’에서는 3·1운동 이후 조선총독부가 민족진영의 『동아일보』, 대정실업친목회의 『조선일보』, 신일본주의 운동단체인 국민협회의 『시사신문』 등 일간신문 발행을 허가한 사실을 기술한다. 식민지 현실을 가시화하고 사회문제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뉴스 사진의 본래 기능을 강조한다.
5장 ‘사진 화보’에서는 중요 사건을 심층 취재, 보도하기 위해 제작된 사진 화보의 등장과 그 영향력에 대해 다룬다. 최초의 사례는 1920년 7월 4회에 걸쳐 6장의 사진을 게재한 『동아일보』의 ‘대공판 화보’였다. 일제하의 민간지들이 공판, 수해, 무장항일 투쟁, 순종 인산, 운동 경기 등 주요 사건을 화보로 기획 · 보도했다는 내용을 언급한다.
6장 ‘사진 취재와 표현의 탄압’에서는 최초의 사진 취재 방해 사건과 압수, 삭제, 검열의 실상을 밝힌다. 7장 ‘일장기 말소 사건’에서는 손기정 선수 사진의 일장기 말소 사건 전말을 상세히 다룬다. 8장 ‘암흑기’에서는 전쟁 당시의 프로파간다 사진과 함께 『동아일보』 · 『조선일보』 폐간 사례를 조명한다. 9장 ‘신문 사진과 사진기자’에서는 사진기자들의 활약상과 영향력에 대해 다루었다. 10장 ‘취재 장비와 표현의 변천’에서는 신문사진사의 발달과 함께 변화한 카메라, 롤필름의 특성, 사진 전송 시스템의 변화를 다룬다.
일제강점기 신문사는 철저한 통제와 규제를 받았다. 뉴스 사진은 반드시 검열을 거쳐야 했고, 보도 삭제나 신문 압수 사례는 빈번하였다. 사진은 사실 기록이자 진실성을 바탕으로 한 시각 정보라는 이유로 더욱 강력한 통제를 받았다. 사진기자들은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였다. 『한국신문사진사』는 이들의 투쟁사를 재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