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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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난중잡록』, 『속잡록』 등을 저술한 의병장.
조경남 (趙慶男)
조선시대 『난중잡록』, 『속잡록』 등을 저술한 의병장.
영규(靈圭)는 임진왜란 당시 의승병을 일으켜 조헌(趙憲)의 의병과 함께 청주전투와 금산전투에 참전한 승장이다. 1592년 충청도에서 의승 800여 명을 모아 조헌의 700 의병과 함께 청주성에서 일본군을 물리쳤고 금산에서 전사했다. 영규가 참가한 이 전투들은 의승군의 충의와 기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영규 (靈圭)
영규(靈圭)는 임진왜란 당시 의승병을 일으켜 조헌(趙憲)의 의병과 함께 청주전투와 금산전투에 참전한 승장이다. 1592년 충청도에서 의승 800여 명을 모아 조헌의 700 의병과 함께 청주성에서 일본군을 물리쳤고 금산에서 전사했다. 영규가 참가한 이 전투들은 의승군의 충의와 기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 25) 8월 1일 조헌(趙憲)의 의병군이 청주성에서 일본군과 싸운 전투.
청주전투 (淸州戰鬪)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 25) 8월 1일 조헌(趙憲)의 의병군이 청주성에서 일본군과 싸운 전투.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헌, 정경세 등과 의병을 일으켜 항쟁하였으며, 사헌부감찰, 옥천군수 등을 역임한 관리·의병장.
이봉 (李逢)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헌, 정경세 등과 의병을 일으켜 항쟁하였으며, 사헌부감찰, 옥천군수 등을 역임한 관리·의병장.
김희철은 광해군의 후궁 공빈김씨의 아버지로 해령부원군(海寧府院君)에 봉해졌다.
김희철 (金希哲)
김희철은 광해군의 후궁 공빈김씨의 아버지로 해령부원군(海寧府院君)에 봉해졌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 참전한 무신.
변응정 (邊應井)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 참전한 무신.
박춘무는 임진왜란 때 청주성 수복을 이끌었던 의병장이자 문신이다. 청주성 수복은 임진왜란 초기 육상에서 거둔 최초의 승리이다. 토정 이지함의 문인으로 동문수학한 조헌과 호서 지역 의병을 이끌었으며, 청주성 수복 이후 진천 전투에서도 승리하였다.
박춘무 (朴春茂)
박춘무는 임진왜란 때 청주성 수복을 이끌었던 의병장이자 문신이다. 청주성 수복은 임진왜란 초기 육상에서 거둔 최초의 승리이다. 토정 이지함의 문인으로 동문수학한 조헌과 호서 지역 의병을 이끌었으며, 청주성 수복 이후 진천 전투에서도 승리하였다.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에 있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전사한 700의사의 무덤.
칠백의총 (七百義塚)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에 있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전사한 700의사의 무덤.
조선 후기에, 공조참판, 도승지,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이직보 (李直輔)
조선 후기에, 공조참판, 도승지,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죽산현감,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윤 (李潤)
조선 전기에, 죽산현감,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원통산 밑에 집을 짓고 서책과 자연에 묻혀 일생을 보낸 학자.
성윤해 (成允諧)
조선 전기에, 원통산 밑에 집을 짓고 서책과 자연에 묻혀 일생을 보낸 학자.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스승 조헌과 함께 의병을 일으킨 학자.
김약 (金籥)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스승 조헌과 함께 의병을 일으킨 학자.
조선시대 문신·의병장 조헌이 성절사의 질정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1574년에 작성한 견문록.
조천일기 (朝天日記)
조선시대 문신·의병장 조헌이 성절사의 질정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1574년에 작성한 견문록.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 25) 4월에 조경(趙儆)·정기룡(鄭起龍) 등이 경상도추풍역에서 왜군과 싸운 전투.
추풍역전투 (秋風驛戰鬪)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 25) 4월에 조경(趙儆)·정기룡(鄭起龍) 등이 경상도추풍역에서 왜군과 싸운 전투.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 참전한 의병.
한응성 (韓應聖)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 참전한 의병.
조선 후기에, 『석계집』 등을 저술한 학자.
민욱 (閔昱)
조선 후기에, 『석계집』 등을 저술한 학자.
김성원은 조선 전기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 참전하여 순절한 사인(士人)이자 학자이다. 어려서부터 독실한 행실이 있었고, 크고 작은 일에 관계없이 조헌에게 물어 남다른 사랑을 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헌이 의병을 일으키자 그를 따라 금산전투에 참가하였다. 금산군의 서쪽 경계에서 적과 하루 종일 싸우다가 아군의 후원 세력이 없어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다. 뒷날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칠백의사총(七百義士塚)에 묻혔다.
김성원 (金聲遠)
김성원은 조선 전기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 참전하여 순절한 사인(士人)이자 학자이다. 어려서부터 독실한 행실이 있었고, 크고 작은 일에 관계없이 조헌에게 물어 남다른 사랑을 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헌이 의병을 일으키자 그를 따라 금산전투에 참가하였다. 금산군의 서쪽 경계에서 적과 하루 종일 싸우다가 아군의 후원 세력이 없어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다. 뒷날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칠백의사총(七百義士塚)에 묻혔다.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근왕병 지원을 위해 의병을 모집하였으며, 금산전투에 참전한 의병.
이광륜 (李光輪)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근왕병 지원을 위해 의병을 모집하였으며, 금산전투에 참전한 의병.
조선 후기에, 「만언소」, 『삼안당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곽현 (郭鉉)
조선 후기에, 「만언소」, 『삼안당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 참전한 의병.
조완기 (趙完基)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 참전한 의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