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종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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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및 조선 태조 연간 종부시의 정3품 관직.
판종부시사 (判宗簿寺事)
고려시대 및 조선 태조 연간 종부시의 정3품 관직.
고려 전중성(殿中省)의 종6품 벼슬.
내급사 (內給事)
고려 전중성(殿中省)의 종6품 벼슬.
조선 말기 종부시(宗簿寺)에서 종친부(宗親府)로 옮긴 관직.
겸낭청 (兼郎廳)
조선 말기 종부시(宗簿寺)에서 종친부(宗親府)로 옮긴 관직.
교정청(校正廳)은 조선시대, 서적 편찬 시 검토 및 교정을 위해 임시로 설치하였던 관서이다. 법전이나 왕실 보첩류, 전례서를 비롯한 국가에서 제작하는 서적을 검토하고 교정하는 기능을 하였다. 성종 때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수정 · 간행하며 처음 설치되었다. 선조 때에는 경서교정청(經書校正廳), 선원록교정청(璿源錄校正廳)이 설치되었다. 교정청에서는 국왕의 어제(御製)를 교정하기도 하였고, 광해군대에는 흠경각(欽敬閣) 복원을 위한 교정청도 설치된 바 있다.
교정청 (校正廳)
교정청(校正廳)은 조선시대, 서적 편찬 시 검토 및 교정을 위해 임시로 설치하였던 관서이다. 법전이나 왕실 보첩류, 전례서를 비롯한 국가에서 제작하는 서적을 검토하고 교정하는 기능을 하였다. 성종 때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수정 · 간행하며 처음 설치되었다. 선조 때에는 경서교정청(經書校正廳), 선원록교정청(璿源錄校正廳)이 설치되었다. 교정청에서는 국왕의 어제(御製)를 교정하기도 하였고, 광해군대에는 흠경각(欽敬閣) 복원을 위한 교정청도 설치된 바 있다.
경창군은 조선 제14대 국왕 선조의 서(庶) 9남이다. 어머니는 홍여겸의 딸인 정빈 남양홍씨이며, 선조의 서 8녀 정정옹주가 친누나이다. 8세에 봉군되었다. 15세에 부사(府使) 증 좌의정 조명욱(曺明勗)의 딸 창녕조씨와 혼인하여 4남 3녀를 두고, 측실에게서 2남 2녀를 두었다. 인조 때에 종부시 도제조와 총친부 유사당상을 지내면서 종친을 관리하였다.
경창군 (慶昌君)
경창군은 조선 제14대 국왕 선조의 서(庶) 9남이다. 어머니는 홍여겸의 딸인 정빈 남양홍씨이며, 선조의 서 8녀 정정옹주가 친누나이다. 8세에 봉군되었다. 15세에 부사(府使) 증 좌의정 조명욱(曺明勗)의 딸 창녕조씨와 혼인하여 4남 3녀를 두고, 측실에게서 2남 2녀를 두었다. 인조 때에 종부시 도제조와 총친부 유사당상을 지내면서 종친을 관리하였다.
1719년 종부시에서 기사의 제명식 전후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관청일기.
기해춘기사일기 (己亥春耆社日記)
1719년 종부시에서 기사의 제명식 전후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관청일기.
『선원계보기략』은 1679년(숙종 5)에 처음 편찬되어 1931년까지 100여 회 수정 보간된 조선왕실의 족보이다. 이 족보는 낭원군(郎原君) 이간(李偘)이 편찬한 『선원보략(璿源譜略)』을 수정 보완한 것으로 선원선계(璿源先系), 열성계서지도(列聖繼序之圖), 선원세계(璿源世系), 팔고조도(八高祖圖), 보도(譜圖) 등으로 구성되었다. 임금과 왕비의 사적이 적힌 선원세계가 실려 있어서 이들에 대한 수정 사안이 있을 때마다 수정 보간되었다.
선원계보기략 (璿源系譜紀略)
『선원계보기략』은 1679년(숙종 5)에 처음 편찬되어 1931년까지 100여 회 수정 보간된 조선왕실의 족보이다. 이 족보는 낭원군(郎原君) 이간(李偘)이 편찬한 『선원보략(璿源譜略)』을 수정 보완한 것으로 선원선계(璿源先系), 열성계서지도(列聖繼序之圖), 선원세계(璿源世系), 팔고조도(八高祖圖), 보도(譜圖) 등으로 구성되었다. 임금과 왕비의 사적이 적힌 선원세계가 실려 있어서 이들에 대한 수정 사안이 있을 때마다 수정 보간되었다.
전중성은 고려 전기 때 왕의 의식(衣食)과 관련된 일이나 종실의 보첩(譜牒)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청이다. 당대(唐代) 황제의 생활 시봉을 관장하는 전중성과 종실을 관장하는 종정시의 두 관서가 고려에서 하나의 관서로 합쳐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성종 대에 마련되어 왕의 의식과 관련된 일이나 종실의 보첩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청이다. 나중에 종부시로 바뀌었다.
전중성 (殿中省)
전중성은 고려 전기 때 왕의 의식(衣食)과 관련된 일이나 종실의 보첩(譜牒)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청이다. 당대(唐代) 황제의 생활 시봉을 관장하는 전중성과 종실을 관장하는 종정시의 두 관서가 고려에서 하나의 관서로 합쳐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성종 대에 마련되어 왕의 의식과 관련된 일이나 종실의 보첩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청이다. 나중에 종부시로 바뀌었다.
고려후기 왕의 공상(供上) 및 왕족의 보첩(譜牒)을 관장한 관청.
전중시 (殿中寺)
고려후기 왕의 공상(供上) 및 왕족의 보첩(譜牒)을 관장한 관청.
고려후기 왕실의 보첩(譜牒 : 족보)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종정시 (宗正寺)
고려후기 왕실의 보첩(譜牒 : 족보)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종친부(宗親府)는 조선시대 종실제군(宗室諸君)의 일을 관장하던 관서이다. 조선 초 재내제군소를 설치하여 종친을 소속시켰다. 1428년 재내제군소는 부(府)로 승격되었다가 1430년 종친부로 개칭되었다. 종친부는 종친과 부중 사무를 관장할 동반직으로 구성되며, 종친은 왕자군으로부터 정6품 종반직을 제수받았고, 동반직은 전첨과 부전첨이 있었다. 종친은 지위에 따라 종반직에 봉작되었으나, 총괄 책임자가 없어 비공식적으로 유사당상을 두었다. 17세기 이후 종친의 수가 감소하여 명백을 이어 가다가 고종 때에 관제가 크게 변화되었다.
종친부 (宗親府)
종친부(宗親府)는 조선시대 종실제군(宗室諸君)의 일을 관장하던 관서이다. 조선 초 재내제군소를 설치하여 종친을 소속시켰다. 1428년 재내제군소는 부(府)로 승격되었다가 1430년 종친부로 개칭되었다. 종친부는 종친과 부중 사무를 관장할 동반직으로 구성되며, 종친은 왕자군으로부터 정6품 종반직을 제수받았고, 동반직은 전첨과 부전첨이 있었다. 종친은 지위에 따라 종반직에 봉작되었으나, 총괄 책임자가 없어 비공식적으로 유사당상을 두었다. 17세기 이후 종친의 수가 감소하여 명백을 이어 가다가 고종 때에 관제가 크게 변화되었다.
조선시대 왕족의 교육을 담당했던 관서이다. 고려시대에는 제왕자부 내에 교육을 담당하는 관원이 있었지만, 조선시대에는 왕자 이하 종친은 종친부에 속하게 되었다. 종친 교화에 관심을 두었던 세종이 1428년(세종 10) 종학을 설치하였다. 그는 경복궁 건춘문 밖에 종학 건물을 세우고, 종친 자제가 8세가 되면 입학시켜 유교의 교양을 쌓게 하였다. 종학의 교관은 박사라 칭하였는데, 성균관의 관원이 겸직하게 하였다. 종학은 연산군 때부터 치폐를 거듭하다 임진왜란 이후 완전히 폐지되었다.
종학 (宗學)
조선시대 왕족의 교육을 담당했던 관서이다. 고려시대에는 제왕자부 내에 교육을 담당하는 관원이 있었지만, 조선시대에는 왕자 이하 종친은 종친부에 속하게 되었다. 종친 교화에 관심을 두었던 세종이 1428년(세종 10) 종학을 설치하였다. 그는 경복궁 건춘문 밖에 종학 건물을 세우고, 종친 자제가 8세가 되면 입학시켜 유교의 교양을 쌓게 하였다. 종학의 교관은 박사라 칭하였는데, 성균관의 관원이 겸직하게 하였다. 종학은 연산군 때부터 치폐를 거듭하다 임진왜란 이후 완전히 폐지되었다.
첨정(僉正)은 조선시대, 중앙관서에 설치한 종4품의 관직이다. 주로 정3품아문에 해당하는 시(寺), 감(監), 원(院) 등의 위상을 가진 관서에 설치되었다. 1466년(세조 12) 관제 개편 이후 정3품아문의 일반적인 관직 체계가 확립되었다. ‘정(正)-부정(副正)-첨정(僉正)-판관(判官)-주부(主簿)-직장(直長)-봉사(奉事)-참봉(參奉)’이다. 첨정은 이때 확립되어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22개의 관서에 27명이 정원으로 규정되었다.
첨정 (僉正)
첨정(僉正)은 조선시대, 중앙관서에 설치한 종4품의 관직이다. 주로 정3품아문에 해당하는 시(寺), 감(監), 원(院) 등의 위상을 가진 관서에 설치되었다. 1466년(세조 12) 관제 개편 이후 정3품아문의 일반적인 관직 체계가 확립되었다. ‘정(正)-부정(副正)-첨정(僉正)-판관(判官)-주부(主簿)-직장(直長)-봉사(奉事)-참봉(參奉)’이다. 첨정은 이때 확립되어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22개의 관서에 27명이 정원으로 규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