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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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고려시대사
제도
고려 전기, 왕의 의식(衣食)과 관련된 일이나 종실의 보첩(譜牒)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청.
이칭
이칭
종부시, 전중시, 종정시
제도/관청
설치 시기
983년(성종 2) 추정
폐지 시기
고려 말기
내용 요약

전중성은 고려 전기 때 왕의 의식(衣食)과 관련된 일이나 종실의 보첩(譜牒)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청이다. 당대(唐代) 황제의 생활 시봉을 관장하는 전중성과 종실을 관장하는 종정시의 두 관서가 고려에서 하나의 관서로 합쳐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성종 대에 마련되어 왕의 의식과 관련된 일이나 종실의 보첩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청이다. 나중에 종부시로 바뀌었다.

정의
고려 전기, 왕의 의식(衣食)과 관련된 일이나 종실의 보첩(譜牒)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청.
설치 목적

국왕의 생활 시봉(侍奉)과 종실에 대한 관리를 위해 당(唐)의 전중성(殿中省)과 종정시(宗正寺)의 두 관서를 수용하여 마련한 관서이다.

기능과 역할

중국 당나라에서 전중성은 천자(天子)의 의복에 대한 일을 관장하면서 상식국(尙食局), 상약국(尙藥局), 상의국(尙衣局), 상사국(尙舍局), 상승국(尙乘局), 상련국(尙輦局)의 6국(局)을 통할하는 조직이었으며, 종정시는 천자의 족친(族親)의 속적(屬籍)을 관장하는 역할을 맡았다. 전중성과 종정시는 별개의 관청이었으나, 이와 달리 고려에서는 연혁상 전중성과 종정시(종부시)가 앞뒤로 연결되어 나오며, 왕의 의물(衣物)이나 주과(酒果)를 신하에게 내려 주거나 왕실의 족속과 그에 관한 보첩(譜牒)을 관장하는 역할을 모두 찾아볼 수 있다. 이에 고려에서는 중국과 달리 하나의 관서로 운영되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명칭 및 직제 개편을 토대로 조선시대에는 종부시(宗簿寺)로 정착되어 『선원보첩(璿源譜牒)』을 편찬하고, 종실의 허물과 잘못을 규찰하는 관청으로 존속하였다.

변천사항

신라의 내성(內省)이 759년(경덕왕 18)에 당나라의 관부 명칭을 본떠 전중성으로 개칭된 바 있으나, 고려와의 관련성을 알 수는 없다.

『고려사(高麗史)』 백관지(百官志)에 목종(穆宗) 때에 전중성이 있고, 그곳에 감(監), 소감(少監), 승(丞), 내급사(內給事) 등을 두었다고 나온다. 하지만 984년(성종 3)에 전중승(殿中丞), 990년(성종 9)에는 전중감(殿中監)의 사례 등을 찾을 수 있어, 다른 관서들과 같이 중국의 제도를 대폭 수용한 983년(성종 2) 무렵에 설치되었을 것이다.

그 뒤 고려의 문물제도를 완성한 문종(文宗) 때 전중성의 직제는 판사(判事, 정3품) · 전중감(종3품) · 전중소감(殿中少監, 종4품) · 전중승(종5품) ·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 종6품) 등의 관원으로 되어 있었다. 이속(吏屬)으로는 주사(主事, 4인) · 영사(令史, 4인) · 서령사(書令史, 4인) · 기관(記官, 4인) · 산사(算士, 1인) 등을 두어 실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전중성의 명칭은 그 뒤 전중시(殿中寺)로 바뀌기도 하였고, 1298년(충렬왕 24)에는 다시 종정시(宗正寺)로 개칭되었다. 이는 고려 후기 원(元)나라의 내정 간섭으로 실시된 관제 개혁에 의해 고려의 전통적인 관부 명칭이 소멸되고 격하된 것이다.

1310년(충선왕 2)에는 종정시가 다시 종부시(宗簿寺)로 바뀌고, 친족의 보첩만 관장하게 되었다. 그 뒤 공민왕(恭愍王)이 국권 회복을 위한 개혁 정치의 일환으로 관제 개혁을 여러 차례 실시했으나, 전중성만이 고려의 전통적인 명칭과 그 기능을 회복하지 못하고 관부 명칭에서 전중성이라는 이름은 완전히 없어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경국대전(經國大典)』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원사(元史)』

단행본

박용운, 『『고려사』 백관지 역주』(신서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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