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중종"
검색결과 총 46건
연산군은 조선시대 제10대 국왕이다. 1483년(성종 14년) 2월 7세 때 세자로 책봉되었다. 12년간 재위하면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지나친 연회·사냥·음행 등 폭정을 자행하다가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었다.
연산군 (燕山君)
연산군은 조선시대 제10대 국왕이다. 1483년(성종 14년) 2월 7세 때 세자로 책봉되었다. 12년간 재위하면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지나친 연회·사냥·음행 등 폭정을 자행하다가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었다.
조선전기 형조참판,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문인.
이현보 (李賢輔)
조선전기 형조참판,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문인.
조선 전기에, 이조판서, 대사헌,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손중돈 (孫仲暾)
조선 전기에, 이조판서, 대사헌,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경빈박씨는 조선 전기 제11대 국왕 중종(中宗) 후궁이다. 중종 반정 후 숙의(淑儀)에 봉작되었으며, 중종의 서장자(庶長子) 복성군(福城君) 이미(李嵋)를 낳았다. ‘작서의 변’으로 폐서인이 되고, 사사(賜死)되었다.
경빈 박씨 (敬嬪 朴氏)
경빈박씨는 조선 전기 제11대 국왕 중종(中宗) 후궁이다. 중종 반정 후 숙의(淑儀)에 봉작되었으며, 중종의 서장자(庶長子) 복성군(福城君) 이미(李嵋)를 낳았다. ‘작서의 변’으로 폐서인이 되고, 사사(賜死)되었다.
조선전기 제11대 중종의 왕비.
단경왕후 (端敬王后)
조선전기 제11대 중종의 왕비.
왕호(王號)를 인정받지 못하는 동안에 사용한 왕의 칭호.
권지국사 (權知國事)
왕호(王號)를 인정받지 못하는 동안에 사용한 왕의 칭호.
정국공신(靖國功臣)은 중종반정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이다. 성희안(成希顔)·박원종(朴元宗)·유순정(柳順汀) 등은 폭정을 일삼던 연산군(燕山君)을 폐위시키고 그 이복동생 진성대군(晉城大君: 중종)을 새 국왕으로 옹립한 중종반정을 일으켰다. 성희안을 비롯한 117명의 관료들에게는 정국공신의 훈호(勳號)가 주어졌다. 그러나 중종반정에 별다른 공훈이 없거나 연산군 때의 신하들이 일부 책봉됨으로써 비판을 받았으며, 삭훈(削勳) 조치가 이어졌다.
정국공신 (靖國功臣)
정국공신(靖國功臣)은 중종반정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이다. 성희안(成希顔)·박원종(朴元宗)·유순정(柳順汀) 등은 폭정을 일삼던 연산군(燕山君)을 폐위시키고 그 이복동생 진성대군(晉城大君: 중종)을 새 국왕으로 옹립한 중종반정을 일으켰다. 성희안을 비롯한 117명의 관료들에게는 정국공신의 훈호(勳號)가 주어졌다. 그러나 중종반정에 별다른 공훈이 없거나 연산군 때의 신하들이 일부 책봉됨으로써 비판을 받았으며, 삭훈(削勳) 조치가 이어졌다.
창빈 안씨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후궁이다. 1499년(연산군 5)에 태어나 1549년(명종 4)에 사망했다. 1507년 궁녀로 입궐하여 중종의 어머니 정현왕후를 모시다가 후궁이 되었다. 1530년 선조의 아버지가 되는 덕흥군을 낳았다. 1543년 종3품 숙용이 되었고 정3품 소용의 지위에 올랐다. 중종이 승하한 후 문정왕후의 배려로 계속 궁궐에서 살았다. 성품이 단정하고 온화하여 문정왕후와 사이가 돈독하였으며, 명종과 덕흥군의 아들들과도 관계가 돈독했다고 한다. 1577년에 정1품 창빈으로 추봉되었다.
창빈 안씨 (昌嬪 安氏)
창빈 안씨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후궁이다. 1499년(연산군 5)에 태어나 1549년(명종 4)에 사망했다. 1507년 궁녀로 입궐하여 중종의 어머니 정현왕후를 모시다가 후궁이 되었다. 1530년 선조의 아버지가 되는 덕흥군을 낳았다. 1543년 종3품 숙용이 되었고 정3품 소용의 지위에 올랐다. 중종이 승하한 후 문정왕후의 배려로 계속 궁궐에서 살았다. 성품이 단정하고 온화하여 문정왕후와 사이가 돈독하였으며, 명종과 덕흥군의 아들들과도 관계가 돈독했다고 한다. 1577년에 정1품 창빈으로 추봉되었다.
조선 전기에, 사옹원제조 등을 역임하였으며, 영춘군에 봉해진 종실.
이인 (李仁)
조선 전기에, 사옹원제조 등을 역임하였으며, 영춘군에 봉해진 종실.
조선전기 제11대 중종의 왕비. 계비.
장경왕후 (章敬王后)
조선전기 제11대 중종의 왕비. 계비.
조선 전기에, 이조판서, 예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신용개 (申用漑)
조선 전기에, 이조판서, 예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전기 제11대 중종의 첫째 아들.
복성군 (福城君)
조선전기 제11대 중종의 첫째 아들.
희릉(禧陵)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무덤이다.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안에 자리하며 효릉과 예릉을 통합하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암반에 능침을 조성하였다는 이유로 1537년에 헌릉의 서쪽 언덕에서 천릉하여 고양시에 자리 잡았다. 1973년에 초장지가 발굴되어 16세기 초 회격릉의 구조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주었다.
희릉 (禧陵)
희릉(禧陵)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무덤이다.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안에 자리하며 효릉과 예릉을 통합하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암반에 능침을 조성하였다는 이유로 1537년에 헌릉의 서쪽 언덕에서 천릉하여 고양시에 자리 잡았다. 1973년에 초장지가 발굴되어 16세기 초 회격릉의 구조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주었다.
조선전기 공조판서, 좌우참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무신.
신윤무 (辛允武)
조선전기 공조판서, 좌우참찬,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무신.
태릉(泰陵)은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의 단릉이다. 태릉은 왕후의 단릉이지만, 능역이 넓고 석상의 규모도 매우 크며 병풍석을 갖추었다. 중종의 곁에 묻히고 싶었던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홀로 도성의 동쪽에 자리를 잡았으나, 동쪽에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강릉이 뒤이어 자리 잡았다. 이를 합하여 태강릉이라 부르며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태릉 (泰陵)
태릉(泰陵)은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의 단릉이다. 태릉은 왕후의 단릉이지만, 능역이 넓고 석상의 규모도 매우 크며 병풍석을 갖추었다. 중종의 곁에 묻히고 싶었던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홀로 도성의 동쪽에 자리를 잡았으나, 동쪽에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강릉이 뒤이어 자리 잡았다. 이를 합하여 태강릉이라 부르며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조선의 제11대 왕, 중종의 아들이자 14대 선조의 아버지로, 선조 즉위 후 덕흥대원군에 추존된 왕족.
이초 (李岹)
조선의 제11대 왕, 중종의 아들이자 14대 선조의 아버지로, 선조 즉위 후 덕흥대원군에 추존된 왕족.
수진궁은 조선시대 한성 중부 수진방에 자리하면서, 후사가 없이 죽은 왕의 자녀 및 후궁 등의 제사를 관리하던 궁가이다. 예종의 둘째 아들인 제안대군의 궁가였다가 중종의 본궁이 되면서 수진궁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복구된 뒤 효종의 비(妃)이자 숙종의 모후(母后)인 명성왕후(明聖王后)의 명으로 후사 없는 왕의 자녀 및 후궁의 사판에 대한 시향과 묘제를 전담하기 시작했다. 1909년(융희 3)에 폐지되었다.
수진궁 (壽進宮)
수진궁은 조선시대 한성 중부 수진방에 자리하면서, 후사가 없이 죽은 왕의 자녀 및 후궁 등의 제사를 관리하던 궁가이다. 예종의 둘째 아들인 제안대군의 궁가였다가 중종의 본궁이 되면서 수진궁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복구된 뒤 효종의 비(妃)이자 숙종의 모후(母后)인 명성왕후(明聖王后)의 명으로 후사 없는 왕의 자녀 및 후궁의 사판에 대한 시향과 묘제를 전담하기 시작했다. 1909년(융희 3)에 폐지되었다.
정릉(靖陵)은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단릉이다. 1544년에 장경왕후의 희릉 곁에 건립되었으나, 1559년에 문정왕후가 풍수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천릉하여 선릉 곁으로 옮겨 조성하였다. 지하 구조는 석회와 모래 · 황토를 혼합하여 회격으로 만들고, 봉릉에는 병풍석을 갖추었다.
정릉 (靖陵)
정릉(靖陵)은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단릉이다. 1544년에 장경왕후의 희릉 곁에 건립되었으나, 1559년에 문정왕후가 풍수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천릉하여 선릉 곁으로 옮겨 조성하였다. 지하 구조는 석회와 모래 · 황토를 혼합하여 회격으로 만들고, 봉릉에는 병풍석을 갖추었다.
조선전기 제11대 중종의 다섯째 아들인 왕자.
봉성군 (鳳城君)
조선전기 제11대 중종의 다섯째 아들인 왕자.
조선 전기에, 우승지, 이조판서,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사균 (李思鈞)
조선 전기에, 우승지, 이조판서,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