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진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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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군관직.
대당장군 (大幢將軍)
신라시대의 군관직.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황금서당 보기감을 역임한 장수.
김영윤 (金令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황금서당 보기감을 역임한 장수.
노리부는 신라 진평왕대에 상대등을 역임한 진골 귀족으로, 진평왕 즉위년인 579년 8월에 이찬으로서 상대등의 자리에 올랐다. 진평왕에 앞선 왕인 진지왕이 재위 4년째에 귀족들에 의해 폐위되었는데, 그 직후 노리부가 상대등이 된 것을 보면 진지왕 폐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노리부 (弩里夫)
노리부는 신라 진평왕대에 상대등을 역임한 진골 귀족으로, 진평왕 즉위년인 579년 8월에 이찬으로서 상대등의 자리에 올랐다. 진평왕에 앞선 왕인 진지왕이 재위 4년째에 귀족들에 의해 폐위되었는데, 그 직후 노리부가 상대등이 된 것을 보면 진지왕 폐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시대 왕경(王京) 출신 관료들의 개인적 신분 표시로 설정된 관등체계.
경위 (京位)
신라시대 왕경(王京) 출신 관료들의 개인적 신분 표시로 설정된 관등체계.
예원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이찬(伊湌)으로 중시(中侍)를 지낸 진골 귀족이다. 671년(문무왕 11) 정월에 중시에 임명되었지만, 673년 7월에 일어난 아찬(阿飡) 대토(大吐)의 모반과 관련해 정치적 책임을 지고 673년 8월에 물러났다.
예원 (禮元)
예원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이찬(伊湌)으로 중시(中侍)를 지낸 진골 귀족이다. 671년(문무왕 11) 정월에 중시에 임명되었지만, 673년 7월에 일어난 아찬(阿飡) 대토(大吐)의 모반과 관련해 정치적 책임을 지고 673년 8월에 물러났다.
오두품은 신라시대 골품제도(骨品制度) 중 하나의 신분계급이다. 신라사회에는 엄격한 신분제인 골품제가 성립되어 있었는데, 성골·진골·6두품 다음의 계급이다. 골품에 따라 관직에 오를 수 있는 등위가 결정되었으며, 타는 수레나 사용하는 기물과 복색 및 거주하는 집의 크기 등에 제한을 받았다. 신라에 편입된 성읍국가의 지배자들이 서울로 이주하면서 하급귀족으로 편제되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5두품에 편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10관등인 대나마(大奈麻)까지 오를 수 있었으며, 지방관서에서는 직접 촌민과 접촉할 수 있는 위치에서 사회경제적 지위를 상승시켜 나갔다.
오두품 (五頭品)
오두품은 신라시대 골품제도(骨品制度) 중 하나의 신분계급이다. 신라사회에는 엄격한 신분제인 골품제가 성립되어 있었는데, 성골·진골·6두품 다음의 계급이다. 골품에 따라 관직에 오를 수 있는 등위가 결정되었으며, 타는 수레나 사용하는 기물과 복색 및 거주하는 집의 크기 등에 제한을 받았다. 신라에 편입된 성읍국가의 지배자들이 서울로 이주하면서 하급귀족으로 편제되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5두품에 편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10관등인 대나마(大奈麻)까지 오를 수 있었으며, 지방관서에서는 직접 촌민과 접촉할 수 있는 위치에서 사회경제적 지위를 상승시켜 나갔다.
염상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이찬(伊湌)으로 시중(侍中)을 지낸 진골 귀족이다. 그가 시중으로 있을 때, 759년(경덕왕 18) 신라의 고유 지명을 비롯해 기존의 관청과 관직 등 관호(官號)를 중국식으로 개명하였고, 그가 반란을 일으켜 처형된 직후인 776년(혜공왕 12)에 지명과 관호를 종전대로 복구하는 조치가 단행되었다는 점에서 경덕왕을 도와 왕권 강화 정책을 추진하였던 친왕 세력의 일원으로 보고 있다.
염상 (廉相)
염상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이찬(伊湌)으로 시중(侍中)을 지낸 진골 귀족이다. 그가 시중으로 있을 때, 759년(경덕왕 18) 신라의 고유 지명을 비롯해 기존의 관청과 관직 등 관호(官號)를 중국식으로 개명하였고, 그가 반란을 일으켜 처형된 직후인 776년(혜공왕 12)에 지명과 관호를 종전대로 복구하는 조치가 단행되었다는 점에서 경덕왕을 도와 왕권 강화 정책을 추진하였던 친왕 세력의 일원으로 보고 있다.
신라는 서기전 57년(혁거세거서간 1)부터 935년(경순왕 9)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했던 고대 왕조이다. 경주평야에 자리하던 여섯 씨족이 연합한 성읍국가로 건국했다. 가야를 합병하고 중국과의 교통로인 한강 유역을 점령하여 강성해졌다. 7세기 중엽 당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발해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열었다. 하대에 들어 왕위계승을 둘러싼 내분이 반복되고 호족세력이 대두하면서 왕권이 약해져 중앙집권적 국가로서 존립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후삼국으로 나뉘었다가 경순왕이 고려의 왕건에게 스스로 항복함으로써 신라왕조는 멸망했다.
신라 (新羅)
신라는 서기전 57년(혁거세거서간 1)부터 935년(경순왕 9)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했던 고대 왕조이다. 경주평야에 자리하던 여섯 씨족이 연합한 성읍국가로 건국했다. 가야를 합병하고 중국과의 교통로인 한강 유역을 점령하여 강성해졌다. 7세기 중엽 당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발해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열었다. 하대에 들어 왕위계승을 둘러싼 내분이 반복되고 호족세력이 대두하면서 왕권이 약해져 중앙집권적 국가로서 존립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후삼국으로 나뉘었다가 경순왕이 고려의 왕건에게 스스로 항복함으로써 신라왕조는 멸망했다.
삼국시대 신라의 아찬 석품과 함께 모반을 계획한 주모자. 대신.
칠숙 (柒宿)
삼국시대 신라의 아찬 석품과 함께 모반을 계획한 주모자. 대신.
흥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26~836년이다. 형인 김언승과 함께 애장왕을 몰아내고 형이 헌덕왕으로 즉위하는데 공을 세워 상대등에 올라, 왕위 계승의 기반을 마련했다. 828년 1만여 명의 병졸로 청해진을 설치하게 하고 장보고를 청해진 대사에 임명했으며, 같은 해 차 종자를 지리산에 심게 했다. 모든 관등의 복색을 달리하여 골품 간의 계층구별을 엄격히 했고 사치풍조를 금하는 교서를 내렸다. 집사부를 집사성으로 개편했고 김유신을 흥무대왕으로 추존했다. 후사 없이 승하하여 사후에 왕위 다툼이 일어났다.
흥덕왕 (興德王)
흥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26~836년이다. 형인 김언승과 함께 애장왕을 몰아내고 형이 헌덕왕으로 즉위하는데 공을 세워 상대등에 올라, 왕위 계승의 기반을 마련했다. 828년 1만여 명의 병졸로 청해진을 설치하게 하고 장보고를 청해진 대사에 임명했으며, 같은 해 차 종자를 지리산에 심게 했다. 모든 관등의 복색을 달리하여 골품 간의 계층구별을 엄격히 했고 사치풍조를 금하는 교서를 내렸다. 집사부를 집사성으로 개편했고 김유신을 흥무대왕으로 추존했다. 후사 없이 승하하여 사후에 왕위 다툼이 일어났다.
달구벌 천도 계획은 689년 신라의 신문왕이 도읍지를 현재의 대구광역시인 달구벌로 옮기려 했던 계획이다. 신문왕은 경주 지역의 진골귀족세력을 벗어나 새 수도 건설을 통해 자신의 정치이념을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천도를 추진하였다. 달구벌이 후보지가 된 것은 팔공산 등 큰 산이 있어 방어에 유리하고 교통이 편리한 지리적 요건과 농경지대에다가 낙동강을 통한 물자수송이 편리하다는 경제적 측면 외에도 경주와 가깝고 왕실세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계획은 9주 5소경의 정비 이후 결정, 준비가 진행되다가 막대한 비용 부담과 진골귀족세력의 반발로 중단되었다.
달구벌 천도 계획 (達句伐 遷都 計劃)
달구벌 천도 계획은 689년 신라의 신문왕이 도읍지를 현재의 대구광역시인 달구벌로 옮기려 했던 계획이다. 신문왕은 경주 지역의 진골귀족세력을 벗어나 새 수도 건설을 통해 자신의 정치이념을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천도를 추진하였다. 달구벌이 후보지가 된 것은 팔공산 등 큰 산이 있어 방어에 유리하고 교통이 편리한 지리적 요건과 농경지대에다가 낙동강을 통한 물자수송이 편리하다는 경제적 측면 외에도 경주와 가깝고 왕실세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계획은 9주 5소경의 정비 이후 결정, 준비가 진행되다가 막대한 비용 부담과 진골귀족세력의 반발로 중단되었다.
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김유신의 넷째 아들로 대아찬을 역임한 관리.
김장이 (金長耳)
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김유신의 넷째 아들로 대아찬을 역임한 관리.
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김유신의 다섯째 아들로 대아찬을 역임한 관리.
김원망 (金元望)
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김유신의 다섯째 아들로 대아찬을 역임한 관리.
삼국시대 신라의 대아찬으로 평양성전투에 참전한 관리.
조주 (助州)
삼국시대 신라의 대아찬으로 평양성전투에 참전한 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