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진성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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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보광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사찰건물. 불전.
보광사 대웅보전 (普光寺 大雄寶殿)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보광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사찰건물. 불전.
삼국시대 신라의 각간 위홍과 『삼대목』을 저술한 승려.
대구 (大矩)
삼국시대 신라의 각간 위홍과 『삼대목』을 저술한 승려.
왕거인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진성여왕 대의 문인이다. 888년(진성여왕 2년)에 당시의 정치를 비방하는 글이 조정의 길목에 걸렸는데, 글쓴이로 대야주에 은거하고 있던 왕거인이 거론되었다. 이에 진성여왕은 그를 감옥에 가두었지만, 왕거인이 원통해 하며 감옥의 벽에 글을 쓰자, 그날 저녁에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덮이고 벼락이 내리치면서 우박이 쏟아지니 진성여왕이 왕거인을 풀어주었다. 왕거인은 박인범·원걸·김운경·김수훈 등과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문인이다.
왕거인 (王巨仁)
왕거인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진성여왕 대의 문인이다. 888년(진성여왕 2년)에 당시의 정치를 비방하는 글이 조정의 길목에 걸렸는데, 글쓴이로 대야주에 은거하고 있던 왕거인이 거론되었다. 이에 진성여왕은 그를 감옥에 가두었지만, 왕거인이 원통해 하며 감옥의 벽에 글을 쓰자, 그날 저녁에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덮이고 벼락이 내리치면서 우박이 쏟아지니 진성여왕이 왕거인을 풀어주었다. 왕거인은 박인범·원걸·김운경·김수훈 등과 함께 신라를 대표하는 문인이다.
성주는 나말려초 시기 신라의 지방관 또는 호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삼국통일 이후 신라의 지방제도는 9주 체제로 정비되고, 주-군-현-촌에 도독-태수-현령 또는 소수-촌주가 임명되어 지방통치가 이루어졌다. 이후 신라 말에 지방 통치력이 이완되면서 주(州)와 부(府)로 개편되어 지주제군사(知州諸軍事)와 성주(城主) 중심 체제로 전환되었는데, 이 무렵 지방에서 성장한 반독립적 세력도 성주를 자칭하면서 지방관과 호족을 포괄하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성주 (城主)
성주는 나말려초 시기 신라의 지방관 또는 호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삼국통일 이후 신라의 지방제도는 9주 체제로 정비되고, 주-군-현-촌에 도독-태수-현령 또는 소수-촌주가 임명되어 지방통치가 이루어졌다. 이후 신라 말에 지방 통치력이 이완되면서 주(州)와 부(府)로 개편되어 지주제군사(知州諸軍事)와 성주(城主) 중심 체제로 전환되었는데, 이 무렵 지방에서 성장한 반독립적 세력도 성주를 자칭하면서 지방관과 호족을 포괄하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는 894년(진성왕 8)에 신라의 최치원이 진성왕에게 올린 사회개혁안이다. 6두품 유학 지식인을 중심으로 신라 왕실의 안녕과 신라 국가의 위상을 강조한 존왕적 정치 이념을 담았다. 그러나 왕권이 이미 약화된 채 진골 세력이 거세게 반발하고 호족 세력이 지방 곳곳에서 성장한 상황에서 실현되기에는 버거웠다. 후삼국 시기 사회 혼란 수습 요구가 부각되면서, 최치원을 계승한 최언위나 최승로 등 신라 출신 유학 지식인에 의해 강조되어 고려의 국가 체제 정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시무십여조 (時務十餘條)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는 894년(진성왕 8)에 신라의 최치원이 진성왕에게 올린 사회개혁안이다. 6두품 유학 지식인을 중심으로 신라 왕실의 안녕과 신라 국가의 위상을 강조한 존왕적 정치 이념을 담았다. 그러나 왕권이 이미 약화된 채 진골 세력이 거세게 반발하고 호족 세력이 지방 곳곳에서 성장한 상황에서 실현되기에는 버거웠다. 후삼국 시기 사회 혼란 수습 요구가 부각되면서, 최치원을 계승한 최언위나 최승로 등 신라 출신 유학 지식인에 의해 강조되어 고려의 국가 체제 정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통일신라의 제52대 효공왕의 어머니로, 문자왕후라고도 불리는 왕족.
의명왕태후 (義明王太后)
통일신라의 제52대 효공왕의 어머니로, 문자왕후라고도 불리는 왕족.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1대 진성여왕 때 봉기한 농민반란군.
적고적 (赤袴賊)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1대 진성여왕 때 봉기한 농민반란군.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대견훤기고려왕서」, 「경호」 등을 저술한 문인.
최승우 (崔承祐)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대견훤기고려왕서」, 「경호」 등을 저술한 문인.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1대 진성여왕 때 홀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한 효녀.
지은 (知恩)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1대 진성여왕 때 홀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한 효녀.
통일신라의 제50대(재위: 886년~887년) 왕.
정강왕 (定康王)
통일신라의 제50대(재위: 886년~887년) 왕.
헌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9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75~886년이며 아버지 경문왕을 이어 즉위했다. 부왕 때부터 시작된 국학 진흥활동에 박차를 가해 국학에 적극적이던 6두품 신분층의 정치적 성장이 이루어졌고 이들이 국왕의 지지세력으로 활약했다. 불력에 의한 국가의 재건과 왕실의 안녕도 도모하여 황룡사에 백고좌강경을 설치하고 친히 가서 듣는 등 불교진흥에도 힘썼다. 백성들의 지붕은 기와로 이어졌고, 밥할 때 숯을 때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신라 최전성기의 왕으로, 당나라와 일본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헌강왕 (憲康王)
헌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9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75~886년이며 아버지 경문왕을 이어 즉위했다. 부왕 때부터 시작된 국학 진흥활동에 박차를 가해 국학에 적극적이던 6두품 신분층의 정치적 성장이 이루어졌고 이들이 국왕의 지지세력으로 활약했다. 불력에 의한 국가의 재건과 왕실의 안녕도 도모하여 황룡사에 백고좌강경을 설치하고 친히 가서 듣는 등 불교진흥에도 힘썼다. 백성들의 지붕은 기와로 이어졌고, 밥할 때 숯을 때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신라 최전성기의 왕으로, 당나라와 일본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