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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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제는 조선 후기 지방군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설치한 제도이다. 영장(營將)은 속오군 편성체계에서 가장 상급 부대인 영(營)의 장관(長官)으로 속오군이 설치된 1594년부터 존재하였다. 속오군을 효과적으로 조련하고 통솔할 주체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면서 1627년 무신 당산관을 전임 영장으로 파견하였다. 1637년 수령이 영장을 겸하는 겸영장(兼營將)을 운영하였다가 1654년에 다시 전임 영장제도를 시행하였다. 무신 영장을 파견하여 문신 수령들에게서 군사권을 분리함으로써 군사 지휘권이 전문화되었으며 왕권이 강화되었다.
영장제 (營將制)
영장제는 조선 후기 지방군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설치한 제도이다. 영장(營將)은 속오군 편성체계에서 가장 상급 부대인 영(營)의 장관(長官)으로 속오군이 설치된 1594년부터 존재하였다. 속오군을 효과적으로 조련하고 통솔할 주체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면서 1627년 무신 당산관을 전임 영장으로 파견하였다. 1637년 수령이 영장을 겸하는 겸영장(兼營將)을 운영하였다가 1654년에 다시 전임 영장제도를 시행하였다. 무신 영장을 파견하여 문신 수령들에게서 군사권을 분리함으로써 군사 지휘권이 전문화되었으며 왕권이 강화되었다.
1920년 9월 14일 의열단원(義烈團員) 박재혁(朴載赫)이 부산경찰서에 들어가 서장에게 폭탄을 던진 의거.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 (釜山警察署 爆彈 投擲 義擧)
1920년 9월 14일 의열단원(義烈團員) 박재혁(朴載赫)이 부산경찰서에 들어가 서장에게 폭탄을 던진 의거.
신진당은 1946년 9월 남한 내 중간파 세력이 결성한 정당이다. 재미한족연합회·청우당·신한민족당 등 8개의 군소정당이 경운동 천도교 강당에서 창당하였다. 좌우합작운동을 지지하였으며 중간파 노선을 지향하였다. 1948년 남한 단독 선거 실시에 반대하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였다. 반일제투쟁위원회와 통일 지향 세력이 결집한 통일독립촉진회에도 참여하였다. 또한 김구 암살 이후 대한민국의 지지를 표방한 민족진영강화위원회에 참여하였다. 1950년에 중간파 정치 조직이 대한민국 정부 지지를 선언하는 상황에서 북한 괴뢰 집단과 정치적 관계가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신진당 (新進黨)
신진당은 1946년 9월 남한 내 중간파 세력이 결성한 정당이다. 재미한족연합회·청우당·신한민족당 등 8개의 군소정당이 경운동 천도교 강당에서 창당하였다. 좌우합작운동을 지지하였으며 중간파 노선을 지향하였다. 1948년 남한 단독 선거 실시에 반대하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였다. 반일제투쟁위원회와 통일 지향 세력이 결집한 통일독립촉진회에도 참여하였다. 또한 김구 암살 이후 대한민국의 지지를 표방한 민족진영강화위원회에 참여하였다. 1950년에 중간파 정치 조직이 대한민국 정부 지지를 선언하는 상황에서 북한 괴뢰 집단과 정치적 관계가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은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사 국사전에 소장된 고승진영도이다. 199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세로 134.8㎝×가로 77.4㎝이다.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하여 송광사를 중심으로 활약했던 16명의 고승을 그린 진영이다. 진영의 형식은 모두 전신7분면의 의자상으로 의자 위에서 가부좌한 모습을 표현하였다. 1995년 13점이 도난당하여 현재는 1세 보조국사 지눌, 2세 진각국사 혜심, 14세 정혜국사 진영만이 남아 있다.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 (順天 松廣寺 十六祖師眞影)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은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사 국사전에 소장된 고승진영도이다. 199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세로 134.8㎝×가로 77.4㎝이다.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하여 송광사를 중심으로 활약했던 16명의 고승을 그린 진영이다. 진영의 형식은 모두 전신7분면의 의자상으로 의자 위에서 가부좌한 모습을 표현하였다. 1995년 13점이 도난당하여 현재는 1세 보조국사 지눌, 2세 진각국사 혜심, 14세 정혜국사 진영만이 남아 있다.
조사상은 조사의 모습을 표현한 불교 조각으로 승려상이다. 조사란 후세에 경의를 받을 만한 승려이거나 불교 종파를 개창한 사람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는 조사상의 실체를 알려줄 만한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큰 사찰의 경우 조사당을 두기도 하지만 상의 형태가 아닌 진영(眞影)의 모습으로 봉안한다. 또한 그나마 전해지던 조사상도 조선 후기 전란 때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조사상 중에서 가장 이른 예는 합천 해인사의 희랑조사상이다. 조사상은 불교 존상으로서의 의미 외에도 초상 조각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조사상 (祖師像)
조사상은 조사의 모습을 표현한 불교 조각으로 승려상이다. 조사란 후세에 경의를 받을 만한 승려이거나 불교 종파를 개창한 사람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는 조사상의 실체를 알려줄 만한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큰 사찰의 경우 조사당을 두기도 하지만 상의 형태가 아닌 진영(眞影)의 모습으로 봉안한다. 또한 그나마 전해지던 조사상도 조선 후기 전란 때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조사상 중에서 가장 이른 예는 합천 해인사의 희랑조사상이다. 조사상은 불교 존상으로서의 의미 외에도 초상 조각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 소재 대곡사에 있는 삼화상 및 조사 진영.
의성 대곡사 삼화상·조사 진영 (義城 大谷寺 三和尙·祖師 眞影)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 소재 대곡사에 있는 삼화상 및 조사 진영.
조선시대 진관체체(鎭管體制)에 따라 각 도에 설치한 중간규모의 군사 진영(軍事鎭營).
거진 (巨鎭)
조선시대 진관체체(鎭管體制)에 따라 각 도에 설치한 중간규모의 군사 진영(軍事鎭營).
삼척 영은사 범일국사 진영은 1788년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범일의 진영이다.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788년에 화승 신겸이 사굴산문의 개창주 범일을 그린 초상화로,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교의좌상 형식이다. 화면 속 범일국사는 상체는 과장되고 두 다리는 빈약하게 표현되었다. 화면 하단에는 완전하지 않지만 화기(畵記)가 있다. 그림틀은 액자형으로 화면 가장자리를 흰색과 녹색으로 마무리하는 조선 후기 장황 방식이다. 이 진영은 통일신라 이후 영동 지역에서 지속된 범일국사 숭배 신앙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삼척 영은사 범일국사 진영 (三陟 靈隱寺 梵日國師 眞影)
삼척 영은사 범일국사 진영은 1788년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의 승려 범일의 진영이다.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788년에 화승 신겸이 사굴산문의 개창주 범일을 그린 초상화로,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교의좌상 형식이다. 화면 속 범일국사는 상체는 과장되고 두 다리는 빈약하게 표현되었다. 화면 하단에는 완전하지 않지만 화기(畵記)가 있다. 그림틀은 액자형으로 화면 가장자리를 흰색과 녹색으로 마무리하는 조선 후기 장황 방식이다. 이 진영은 통일신라 이후 영동 지역에서 지속된 범일국사 숭배 신앙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경상남도 창원시ㆍ밀양시ㆍ김해시 일대에 펼쳐진 낙동강 유역의 평야.
진영 평야 (進永 平野)
경상남도 창원시ㆍ밀양시ㆍ김해시 일대에 펼쳐진 낙동강 유역의 평야.
『감계사등록』은 1885년과 1887년 조선과 청나라가 백두산의 국경선을 획정할 때 조선측 대표인 이중하가 작성한 등록이다. 1860년 북경회담으로 러시아가 연해주를 차지하자, 조선과 청은 두만강과 백두산 인근의 국경을 정비하는 감계 회담을 추진하였다. 당시 안변부사였던 이중하는 두 차례 회담에 조선 대표로 파견되었다. 그는 회담 진행 과정에서 작성된 각종 문서와 고종에게 직접 보고한 계초(啓草), 별단초(別單草) 및 회담 내용인 담초(談草) 등을 날짜순으로 정리하였다. 19세기 말 한국 북방 영토 연구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감계사등록 (勘界事謄錄)
『감계사등록』은 1885년과 1887년 조선과 청나라가 백두산의 국경선을 획정할 때 조선측 대표인 이중하가 작성한 등록이다. 1860년 북경회담으로 러시아가 연해주를 차지하자, 조선과 청은 두만강과 백두산 인근의 국경을 정비하는 감계 회담을 추진하였다. 당시 안변부사였던 이중하는 두 차례 회담에 조선 대표로 파견되었다. 그는 회담 진행 과정에서 작성된 각종 문서와 고종에게 직접 보고한 계초(啓草), 별단초(別單草) 및 회담 내용인 담초(談草) 등을 날짜순으로 정리하였다. 19세기 말 한국 북방 영토 연구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삼척 영은사 사명당 대선사 진영은 1788년에 제작된 사명당 유정의 진영이다. 2001년 강원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된 것으로 세로 95.5㎝, 가로 65㎝이다.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교의좌상 형식으로, 청색 장삼과 붉은 가사, 짙은 눈썹과 풍성하고 긴 수염이 잘 표현되어 있다. 화기는 없으나 진영 형식과 화풍으로 보아 1788년에 신겸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사명당은 임진왜란 시 승병장으로 활동하였다. 현전하는 조선 후기 사명대사 진영 가운데 승병장의 기세와 수행자의 면모를 살려 표현한 수작이다.
삼척 영은사 사명당 대선사 진영 (三陟 靈隱寺 四溟堂 大禪師 眞影)
삼척 영은사 사명당 대선사 진영은 1788년에 제작된 사명당 유정의 진영이다. 2001년 강원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된 것으로 세로 95.5㎝, 가로 65㎝이다.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교의좌상 형식으로, 청색 장삼과 붉은 가사, 짙은 눈썹과 풍성하고 긴 수염이 잘 표현되어 있다. 화기는 없으나 진영 형식과 화풍으로 보아 1788년에 신겸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사명당은 임진왜란 시 승병장으로 활동하였다. 현전하는 조선 후기 사명대사 진영 가운데 승병장의 기세와 수행자의 면모를 살려 표현한 수작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에 소장되어 있는 보조국사의 초상화.
대구 동화사 보조국사 지눌 진영 (大邱 桐華寺 普照國師 知訥 眞影)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에 소장되어 있는 보조국사의 초상화.
1369년(공민왕 18) 북원(北元)의 침입에 대비하여 강계(江界)에 설치한 만호부(萬戶府).
강계만호부 (江界萬戶府)
1369년(공민왕 18) 북원(北元)의 침입에 대비하여 강계(江界)에 설치한 만호부(萬戶府).
일제강점기 때, 항일결사인 일합사를 조직하였고, 의열단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수택 (李壽澤)
일제강점기 때, 항일결사인 일합사를 조직하였고, 의열단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양산 통도사 역대 고승 영정은 경상남도 양산시 통도사에 봉안된 조선 후기 승려들의 초상화이다. 2006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통도사에는 조선 후기 승려 진영이 약 90점이 남아있는데 그 중 62점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승려들의 활동 시기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근대에 이른다. 제작 시기가 가장 빠른 것은 「해송 관준 진영」(1786)이며, 대부분은 19세기에 제작된 것이다. 통도사에는 진영당 건립과 관련된 기록이 남아있을 뿐 아니라 대규모의 진영이 현존하고 있어, 승려 진영을 봉안하는 관습과 화풍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양산 통도사 역대고승 영정 (梁山 通度寺 歷代高僧 影幀)
양산 통도사 역대 고승 영정은 경상남도 양산시 통도사에 봉안된 조선 후기 승려들의 초상화이다. 2006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통도사에는 조선 후기 승려 진영이 약 90점이 남아있는데 그 중 62점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승려들의 활동 시기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근대에 이른다. 제작 시기가 가장 빠른 것은 「해송 관준 진영」(1786)이며, 대부분은 19세기에 제작된 것이다. 통도사에는 진영당 건립과 관련된 기록이 남아있을 뿐 아니라 대규모의 진영이 현존하고 있어, 승려 진영을 봉안하는 관습과 화풍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안치민은 고려 후기 「취수선생진영」을 저술한 경주의 문인이다. 뛰어난 문장가이며, 글씨와 그림에도 조예가 있었다. 문학에 있어 뜻을 중요시하면서 풍자·권선·교화의 기능을 가진 문장, 즉 시대와 사회의 교화에 도움이 되고, 도(道)를 실현할 수 있는 시문을 써야 한다는 고문 정신(古文情神)을 구현하였다. 무신 정권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경주에서 처사로서 자유로운 삶을 살면서도, 당시의 정치적 환경에 몸담고 있는 중앙 지식인과 깊은 교분을 이어 갔던 인물이다.
안치민 (安置民)
안치민은 고려 후기 「취수선생진영」을 저술한 경주의 문인이다. 뛰어난 문장가이며, 글씨와 그림에도 조예가 있었다. 문학에 있어 뜻을 중요시하면서 풍자·권선·교화의 기능을 가진 문장, 즉 시대와 사회의 교화에 도움이 되고, 도(道)를 실현할 수 있는 시문을 써야 한다는 고문 정신(古文情神)을 구현하였다. 무신 정권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경주에서 처사로서 자유로운 삶을 살면서도, 당시의 정치적 환경에 몸담고 있는 중앙 지식인과 깊은 교분을 이어 갔던 인물이다.
순천 선암사 선각국사 도선 진영은 조선 후기에 제작된 전라남도 승주 선암사 소장 선각국사 도선의 초상화이다. 200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신라 말 고승인 선각국사(827~898년)의 초상으로 1805년 화승 도일이 대각국사 의천의 초상과 함께 중수한 것이다. 이 초상화에서 도선은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우측으로 얼굴을 향한 좌안칠분면으로 앉아 족대 위에 발을 올려놓고 앞을 바라보고 있다. 스님의 오른편에는 탁자가 놓여 있고, 그 위에는 검은색의 인함이 놓여 있다. 이 작품은 19세기 초에 도일에 의해 성립된 새로운 진영 형식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순천 선암사 선각국사 도선 진영 (順天 仙巖寺 先覺國師 道詵 眞影)
순천 선암사 선각국사 도선 진영은 조선 후기에 제작된 전라남도 승주 선암사 소장 선각국사 도선의 초상화이다. 200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신라 말 고승인 선각국사(827~898년)의 초상으로 1805년 화승 도일이 대각국사 의천의 초상과 함께 중수한 것이다. 이 초상화에서 도선은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우측으로 얼굴을 향한 좌안칠분면으로 앉아 족대 위에 발을 올려놓고 앞을 바라보고 있다. 스님의 오른편에는 탁자가 놓여 있고, 그 위에는 검은색의 인함이 놓여 있다. 이 작품은 19세기 초에 도일에 의해 성립된 새로운 진영 형식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1654년 3월 영장제(營將制)를 실시하기 위해 반포한 법제서. 사목.
영장사목 (營將事目)
1654년 3월 영장제(營將制)를 실시하기 위해 반포한 법제서. 사목.
해인사 삼화상 진영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가야산 소재 해인사의 개산조 순응과 이정 및 중창조인 희랑 조사를 그린 조사도이다. 가로가 긴 화면에 중앙에 희랑 조사를 그렸고, 좌우로 마주보고 있는 두 인물이 순응 조사와 이정 조사이다. 세 조사는 심산 유곡의 바위 위에 걸터앉은 모습이다. 그 주위로 손에 공양물을 받쳐 든 천동과 천녀 등 네 명이 대칭으로 배치되었다. 이 조사도는 조선 후기 탱화들의 구도적인 특징인 대칭적인 구도를 따르고 있다. 19세기 말의 도식화된 형식과 자연스럽지 못한 채색으로 인해 예술적 가치는 조금 떨어진다.
해인사 삼화상 진영 (海印寺 三和尙 眞影)
해인사 삼화상 진영은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가야산 소재 해인사의 개산조 순응과 이정 및 중창조인 희랑 조사를 그린 조사도이다. 가로가 긴 화면에 중앙에 희랑 조사를 그렸고, 좌우로 마주보고 있는 두 인물이 순응 조사와 이정 조사이다. 세 조사는 심산 유곡의 바위 위에 걸터앉은 모습이다. 그 주위로 손에 공양물을 받쳐 든 천동과 천녀 등 네 명이 대칭으로 배치되었다. 이 조사도는 조선 후기 탱화들의 구도적인 특징인 대칭적인 구도를 따르고 있다. 19세기 말의 도식화된 형식과 자연스럽지 못한 채색으로 인해 예술적 가치는 조금 떨어진다.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사에 소장된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명호스님 초상화.
서울 진관사 명호스님 초상 (서울 津寬寺 명호스님 肖像)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사에 소장된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명호스님 초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