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청동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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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구분론은 역사 진행상 동질성이 강한 특정 시기를 앞뒤의 시기와 차별하여 파악하는 방식이나 이론을 말한다. 다만, 어떤 잣대를 사용해 보는가에 따라 구분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현재 국내외 학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시대구분으로는 전근대(pre-modern), 근대(modern), 현대(contemporary)의 삼분법을 들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근대가 매우 강력한 변화의 시대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사에서도 시대를 가장 크게 구분할 때 전근대와 근현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양분한다.
시대구분론 (時代區分論)
시대구분론은 역사 진행상 동질성이 강한 특정 시기를 앞뒤의 시기와 차별하여 파악하는 방식이나 이론을 말한다. 다만, 어떤 잣대를 사용해 보는가에 따라 구분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현재 국내외 학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시대구분으로는 전근대(pre-modern), 근대(modern), 현대(contemporary)의 삼분법을 들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근대가 매우 강력한 변화의 시대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사에서도 시대를 가장 크게 구분할 때 전근대와 근현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양분한다.
고인돌은 지상에 드러나 있는 덮개돌 밑에 받침돌로 널돌이나 자연석을 고이거나, 주검을 안치한 매장 시설이 있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이자 기념물이다. 고인돌은 거석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지역은 고인돌 밀집 분포권을 형성하고 있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 약 1천 년 동안 존속되었다. 2000년에 고창 죽림리 · 도산리와 화순 효산리 · 대신리, 강화 부근리 · 삼거리 · 오상리 고인돌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 거석문화 중심지로 공인되었다.
고인돌
고인돌은 지상에 드러나 있는 덮개돌 밑에 받침돌로 널돌이나 자연석을 고이거나, 주검을 안치한 매장 시설이 있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이자 기념물이다. 고인돌은 거석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지역은 고인돌 밀집 분포권을 형성하고 있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 약 1천 년 동안 존속되었다. 2000년에 고창 죽림리 · 도산리와 화순 효산리 · 대신리, 강화 부근리 · 삼거리 · 오상리 고인돌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 거석문화 중심지로 공인되었다.
민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에 비하여 문양이 없거나 적고, 장석, 석영, 운모 등의 비짐을 섞어 800℃ 이하의 온도에서 소성한 청동기시대 토기이다. 민무늬토기의 형태와 문양은 지역별로 다양하여 한반도 청동기시대 주민들의 시 · 공간적 분포 및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지역에 따라 팽이형 토기, 미송리형토기, 화분형 토기 등이 있으며, 빛깔은 주로 갈색을 띤다.
민무늬토기 (민무늬土器)
민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에 비하여 문양이 없거나 적고, 장석, 석영, 운모 등의 비짐을 섞어 800℃ 이하의 온도에서 소성한 청동기시대 토기이다. 민무늬토기의 형태와 문양은 지역별로 다양하여 한반도 청동기시대 주민들의 시 · 공간적 분포 및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지역에 따라 팽이형 토기, 미송리형토기, 화분형 토기 등이 있으며, 빛깔은 주로 갈색을 띤다.
선사시대는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와 같이 문헌 사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시대이다. 세계 각지에서 문헌 기록의 등장은 다르고, 기록된 역사도 약 5천 전부터 시작해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흔히 문자의 유무를 기준으로 선사시대를 나누지만, 문자가 있어도 정확한 해독이 불가능하면 선사시대나 다름이 없으며, 이용할 수 있는 문헌 기록이 드물다. 이 경우 원초적 역사시대라는 뜻을 지닌 원사(proto-history)시대라는 개념을 쓰기도 한다.
선사시대 (先史時代)
선사시대는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와 같이 문헌 사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시대이다. 세계 각지에서 문헌 기록의 등장은 다르고, 기록된 역사도 약 5천 전부터 시작해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흔히 문자의 유무를 기준으로 선사시대를 나누지만, 문자가 있어도 정확한 해독이 불가능하면 선사시대나 다름이 없으며, 이용할 수 있는 문헌 기록이 드물다. 이 경우 원초적 역사시대라는 뜻을 지닌 원사(proto-history)시대라는 개념을 쓰기도 한다.
뗀석기는 돌을 깨서 만든 도구와 그것을 만들며 나오는 부산물이다. 타제석기(打製石器)라고도 한다. 과거 도구는 사람만이 만들고 사용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침팬지를 비롯한 동물이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알려져 있다. 원숭이도 돌을 깨뜨리기도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사람만이 체계적 방식으로 도구를 만들고 사용한다는 점이다.
뗀석기 (뗀石器)
뗀석기는 돌을 깨서 만든 도구와 그것을 만들며 나오는 부산물이다. 타제석기(打製石器)라고도 한다. 과거 도구는 사람만이 만들고 사용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침팬지를 비롯한 동물이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알려져 있다. 원숭이도 돌을 깨뜨리기도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사람만이 체계적 방식으로 도구를 만들고 사용한다는 점이다.
석기는 선사시대 돌을 깨뜨리거나 갈아서 만든 도구를 말한다. 석기는 생업 활동의 주된 도구로서 어느 유물보다도 인류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진화를 대표한다. 절멸동물의 화석과 함께 발견된 뗀석기는 인류가 성서의 창조론보다 더 오래전에 존재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고고학이 학문으로 성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굴포리 유적과 석장리 유적에서 발굴된 석기로 인해 구석기시대의 존재가 인정받게 되었다.
석기 (石器)
석기는 선사시대 돌을 깨뜨리거나 갈아서 만든 도구를 말한다. 석기는 생업 활동의 주된 도구로서 어느 유물보다도 인류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진화를 대표한다. 절멸동물의 화석과 함께 발견된 뗀석기는 인류가 성서의 창조론보다 더 오래전에 존재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고고학이 학문으로 성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굴포리 유적과 석장리 유적에서 발굴된 석기로 인해 구석기시대의 존재가 인정받게 되었다.
돌널무덤은 고인돌, 석개토광묘, 독무덤과 함께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무덤 양식이다. 일반적인 형태는 지하에 묘광을 파고 판돌이나 깬돌로 장방형의 돌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1매 이상의 뚜껑돌을 덮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의 옛 터전인 중국 동북부 지방과 북한 지역은 물론이고 남한 지역에서도 활발하게 발견되며, 금강 중하류 일대에서 밀집 분포를 보이고 있다.
돌널무덤
돌널무덤은 고인돌, 석개토광묘, 독무덤과 함께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무덤 양식이다. 일반적인 형태는 지하에 묘광을 파고 판돌이나 깬돌로 장방형의 돌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1매 이상의 뚜껑돌을 덮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의 옛 터전인 중국 동북부 지방과 북한 지역은 물론이고 남한 지역에서도 활발하게 발견되며, 금강 중하류 일대에서 밀집 분포를 보이고 있다.
각목돌대문토기는 아가리 부분에 덧띠를 덧붙인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토기이다. 새김덧띠무늬토기라고도 한다. 아가리 부분의 덧띠의 모습과 새김의 유무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아가리 부분에 돌대, 즉 점토띠를 돌려 덧붙이고 그 위에 판상(板狀)이나 봉상(棒狀) 도구로 ‘V’자나 ‘D’자 무늬를 새긴 토기이다. 음식을 삶거나 끓이는 자비용(煮沸用)으로 사용하였다.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전환기 표지 유물로 중국 동북 지방과 연해주 지역, 한반도 일대, 서일본 지역에 걸쳐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각목돌대문토기 (刻目突帶文土器)
각목돌대문토기는 아가리 부분에 덧띠를 덧붙인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토기이다. 새김덧띠무늬토기라고도 한다. 아가리 부분의 덧띠의 모습과 새김의 유무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아가리 부분에 돌대, 즉 점토띠를 돌려 덧붙이고 그 위에 판상(板狀)이나 봉상(棒狀) 도구로 ‘V’자나 ‘D’자 무늬를 새긴 토기이다. 음식을 삶거나 끓이는 자비용(煮沸用)으로 사용하였다.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전환기 표지 유물로 중국 동북 지방과 연해주 지역, 한반도 일대, 서일본 지역에 걸쳐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덧띠토기는 아가리 바깥 부분에 단면이 원형에 가까운 덧띠를 말아 붙여서 아가리를 이중으로 만든 청동기시대 후기~초기 철기시대의 일상용 토기이다. 중국 동북 지방에 기원을 두고 있는 토기이며, 한국고고학에서는 점토대토기라고 한다. 크게 원형덧띠토기와 삼각형덧띠토기로 구분되는데, 이 순서는 시간성을 갖고 있으며, 함께 출토되는 금속기 유물도 청동기와 철기로 나뉘어진다.
덧띠토기 (덧띠土器)
덧띠토기는 아가리 바깥 부분에 단면이 원형에 가까운 덧띠를 말아 붙여서 아가리를 이중으로 만든 청동기시대 후기~초기 철기시대의 일상용 토기이다. 중국 동북 지방에 기원을 두고 있는 토기이며, 한국고고학에서는 점토대토기라고 한다. 크게 원형덧띠토기와 삼각형덧띠토기로 구분되는데, 이 순서는 시간성을 갖고 있으며, 함께 출토되는 금속기 유물도 청동기와 철기로 나뉘어진다.
공주수촌리고분군(公州水村里古墳群)은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초기철기시대 무덤, 백제 덧널무덤과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견된 무덤군이다. 고분군은 Ⅰ, Ⅱ지역으로 구분된다. Ⅰ지역에서는 초기철기시대의 세형동검 등을 부장한 널무덤과 돌널무덤이 확인되었고, Ⅰ, Ⅱ지역에서 모두 덧널무덤 · 굴식돌방무덤 등 백제 무덤이 확인되었다. 특히 Ⅱ-1호 널무덤과 Ⅱ-4호 굴식돌방무덤에서 금동관 등의 위세품이 출토되어 백제 지방 지배층의 무덤임이 주목된다.
공주 수촌리 고분군 (公州 水村里 古墳群)
공주수촌리고분군(公州水村里古墳群)은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초기철기시대 무덤, 백제 덧널무덤과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견된 무덤군이다. 고분군은 Ⅰ, Ⅱ지역으로 구분된다. Ⅰ지역에서는 초기철기시대의 세형동검 등을 부장한 널무덤과 돌널무덤이 확인되었고, Ⅰ, Ⅱ지역에서 모두 덧널무덤 · 굴식돌방무덤 등 백제 무덤이 확인되었다. 특히 Ⅱ-1호 널무덤과 Ⅱ-4호 굴식돌방무덤에서 금동관 등의 위세품이 출토되어 백제 지방 지배층의 무덤임이 주목된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암각화이다. 동심원과 이를 에워싸는 여러 개의 가면 무늬로 대표되는 암각화로, 주변에서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유물들이 채집되었다. 동심원은 태양(신)을 상징하고, 가면 무늬는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칼손잡이·방패·신체(神體)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종류의 암각화 그림은 주로 영남 지역에서 발견되는 특징을 보인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 (高靈 場基里 巖刻畵)
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암각화이다. 동심원과 이를 에워싸는 여러 개의 가면 무늬로 대표되는 암각화로, 주변에서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유물들이 채집되었다. 동심원은 태양(신)을 상징하고, 가면 무늬는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칼손잡이·방패·신체(神體)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종류의 암각화 그림은 주로 영남 지역에서 발견되는 특징을 보인다.
겹아가리토기는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청동기시대 전기에 만들어져 사용된 토기이다. 이중구연토기, 겹구연토기, 겹입술토기라고도 한다. 아가리 부분 바깥 면에 일정한 폭의 점토띠를 덧붙이거나 성형할 때 점토띠 가장 윗단과 아래단 접합 흔적을 지우지 않고 선으로 남긴 토기이다. 뾰족한 바닥에 바리 모양으로 겹아가리 아래에 빗금문살무늬, 긴 빗금무늬 짧은 빗금침선무늬 등이 새겨졌다. 함경도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은 합천 봉계리, 김해 수가리, 부산 금곡동 율리, 부산 범방동, 청도 오진리, 진안 갈머리 유적 등이다.
겹아가리토기 (겹아가리土器)
겹아가리토기는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청동기시대 전기에 만들어져 사용된 토기이다. 이중구연토기, 겹구연토기, 겹입술토기라고도 한다. 아가리 부분 바깥 면에 일정한 폭의 점토띠를 덧붙이거나 성형할 때 점토띠 가장 윗단과 아래단 접합 흔적을 지우지 않고 선으로 남긴 토기이다. 뾰족한 바닥에 바리 모양으로 겹아가리 아래에 빗금문살무늬, 긴 빗금무늬 짧은 빗금침선무늬 등이 새겨졌다. 함경도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은 합천 봉계리, 김해 수가리, 부산 금곡동 율리, 부산 범방동, 청도 오진리, 진안 갈머리 유적 등이다.
화덕자리는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 초기까지 사용된 난방과 취사, 조명을 겸용했던 주거시설이다. 신석기시대에 집터나 야외에 흙이나 돌을 돌려 화덕을 만들어 취사와 난방을 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화덕은 구조에 따라 아무 시설이 없는 것, 간단한 토광(土壙) 형태의 것, 가장자리를 따라 점토띠를 두른 것, 토광을 파고 그 가장자리에 돌을 돌린 것, 바닥에 강돌을 깔고 주위에 돌을 돌린 것, 부뚜막 형태의 것 등 여러 가지로 나뉜다. 원삼국시대부터 부뚜막·쪽구들이 등장하면서 취사와 난방을 겸한 온돌문화가 시작되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화덕자리 (火덕자리)
화덕자리는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 초기까지 사용된 난방과 취사, 조명을 겸용했던 주거시설이다. 신석기시대에 집터나 야외에 흙이나 돌을 돌려 화덕을 만들어 취사와 난방을 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화덕은 구조에 따라 아무 시설이 없는 것, 간단한 토광(土壙) 형태의 것, 가장자리를 따라 점토띠를 두른 것, 토광을 파고 그 가장자리에 돌을 돌린 것, 바닥에 강돌을 깔고 주위에 돌을 돌린 것, 부뚜막 형태의 것 등 여러 가지로 나뉜다. 원삼국시대부터 부뚜막·쪽구들이 등장하면서 취사와 난방을 겸한 온돌문화가 시작되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울주 검단리 유적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집터 주변을 둘러싼 도랑인 환호, 고인돌 등이 발견된 복합유적이다. 이 유적에서 주목할 점은 국내 최초로 완전한 모습을 갖춘 환호와 이와 관련된 마을의 구조가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환호는 능선을 따라 타원형으로 둘러져 있는데, 안쪽에는 집자리, 도랑, 구덩유구가 있고 바깥쪽에는 집자리 외에 무덤 3기가 있다. 이 유적은 환호 설치 이전의 취락, 환호취락, 환호가 폐기된 후의 취락 3단계로 나누어진다. 이 유적은 우리나라 환호 취락 유적 조사의 시발점으로 평가 받는다.
울주 검단리 유적 (蔚州 檢丹里 遺蹟)
울주 검단리 유적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집터 주변을 둘러싼 도랑인 환호, 고인돌 등이 발견된 복합유적이다. 이 유적에서 주목할 점은 국내 최초로 완전한 모습을 갖춘 환호와 이와 관련된 마을의 구조가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환호는 능선을 따라 타원형으로 둘러져 있는데, 안쪽에는 집자리, 도랑, 구덩유구가 있고 바깥쪽에는 집자리 외에 무덤 3기가 있다. 이 유적은 환호 설치 이전의 취락, 환호취락, 환호가 폐기된 후의 취락 3단계로 나누어진다. 이 유적은 우리나라 환호 취락 유적 조사의 시발점으로 평가 받는다.
미송리형토기는 중국 동북지역에서부터 한반도 북부지방에 걸쳐 사용한 토기로, 표면에 가로줄 무늬가 새겨지고 손잡이가 붙은 항아리 모양 토기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로줄 무늬의 수가 적어지고 손잡이의 모양도 간략한 것으로 변화하였다. 이것의 상한과 하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으며, 중심 시기는 대체로 서기전 8∼7세기에 해당한다.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서북지역이라는 한정된 범위에서 출토되며, 비파형동검과 더불어 고조선과 관련된 고고학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미송리형토기 (美松里型土器)
미송리형토기는 중국 동북지역에서부터 한반도 북부지방에 걸쳐 사용한 토기로, 표면에 가로줄 무늬가 새겨지고 손잡이가 붙은 항아리 모양 토기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로줄 무늬의 수가 적어지고 손잡이의 모양도 간략한 것으로 변화하였다. 이것의 상한과 하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으며, 중심 시기는 대체로 서기전 8∼7세기에 해당한다.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서북지역이라는 한정된 범위에서 출토되며, 비파형동검과 더불어 고조선과 관련된 고고학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무기.
동모 (銅矛)
청동기시대의 무기.
길림 서단산자 유적은 중국 길림성 길림시에 있는 청동기 시대 집터 등이 출토된 복합 유적이다. 이 유적은 중국 동북지역의 대표적인 청동기 시대 문화 가운데 하나인 ‘서단산 문화’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이 유적은 길림·장춘지역의 서단산 문화를 대표한다. 서단산 남서쪽 비탈에 자리하고 있으며 돌널무덤이 밀집해 있다. 유물로는 어린이의 뼈와 이빨, 토기, 석기,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의 청동기 문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고조선 또는 숙신족의 문화로 이해돼 한반도와의 문화적 동질성도 확인된다.
길림 서단산자 유적 (吉林 西團山子 遺蹟)
길림 서단산자 유적은 중국 길림성 길림시에 있는 청동기 시대 집터 등이 출토된 복합 유적이다. 이 유적은 중국 동북지역의 대표적인 청동기 시대 문화 가운데 하나인 ‘서단산 문화’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이 유적은 길림·장춘지역의 서단산 문화를 대표한다. 서단산 남서쪽 비탈에 자리하고 있으며 돌널무덤이 밀집해 있다. 유물로는 어린이의 뼈와 이빨, 토기, 석기, 그물추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의 청동기 문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고조선 또는 숙신족의 문화로 이해돼 한반도와의 문화적 동질성도 확인된다.
제주 삼양동 유적(濟州 三陽洞 遺蹟)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청동기시대~원삼국시대 대규모 마을 유적이다. 이 유적에서 나온 금속제 무기류를 비롯하여 유리 장신구 등 중국이나 한반도산 물품으로 볼 때, 마을의 상위계층은 제주도 밖 정치체들과의 교역을 주도한 인물로 볼 수 있다. 이 유적은 동아시아 국제 교역의 무대에 등장한 해안가의 거점 유적이며, 이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기재된 주호국과그 이후 탐라국 형성기의 문화로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제주 삼양동 유적 (濟州 三陽洞 遺蹟)
제주 삼양동 유적(濟州 三陽洞 遺蹟)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청동기시대~원삼국시대 대규모 마을 유적이다. 이 유적에서 나온 금속제 무기류를 비롯하여 유리 장신구 등 중국이나 한반도산 물품으로 볼 때, 마을의 상위계층은 제주도 밖 정치체들과의 교역을 주도한 인물로 볼 수 있다. 이 유적은 동아시아 국제 교역의 무대에 등장한 해안가의 거점 유적이며, 이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기재된 주호국과그 이후 탐라국 형성기의 문화로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서산 부장리 고분군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집터와 돌덧널무덤 관련 복합유적이다. 2004년 아파트 부지를 조성하기 위한 사전 문화재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청동시시대의 주거지와 백제시대의 분구묘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토광묘 등 260여 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백제의 분구묘와 주거지의 공간 배치가 구분되어 있어서 당시 묘장 풍습과 취락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5호 분구묘에서 출토된 금동관과 철제 초두는 최고 지배자의 무덤에서만 발굴되는 것으로 지방 세력과 중앙 세력의 정치적 관계 등 백제사 연구에 있어서 그 학술적 가치가 크다.
서산 부장리 고분군 (瑞山 副長里 古墳群)
서산 부장리 고분군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집터와 돌덧널무덤 관련 복합유적이다. 2004년 아파트 부지를 조성하기 위한 사전 문화재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청동시시대의 주거지와 백제시대의 분구묘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토광묘 등 260여 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백제의 분구묘와 주거지의 공간 배치가 구분되어 있어서 당시 묘장 풍습과 취락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5호 분구묘에서 출토된 금동관과 철제 초두는 최고 지배자의 무덤에서만 발굴되는 것으로 지방 세력과 중앙 세력의 정치적 관계 등 백제사 연구에 있어서 그 학술적 가치가 크다.
안테나식동검은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 곤충의 촉각처럼 생긴 칼자루끝장식을 가진 동검을 말한다. 두 마리의 새가 부리를 마주하고 있는 것도 포함한다. 동아시아의 안테나식동검은 새의 부리가 서로 마주하는 쌍취형과 새 두 마리가 머리를 마주 보는 쌍조형으로 구분된다. 요동과 한반도에서는 서기전 3세기부터 서기 1~2세기까지 쌍조형 안테나식동검이 주로 확인된다.
안테나식 동검 (antenna式 銅劍)
안테나식동검은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 곤충의 촉각처럼 생긴 칼자루끝장식을 가진 동검을 말한다. 두 마리의 새가 부리를 마주하고 있는 것도 포함한다. 동아시아의 안테나식동검은 새의 부리가 서로 마주하는 쌍취형과 새 두 마리가 머리를 마주 보는 쌍조형으로 구분된다. 요동과 한반도에서는 서기전 3세기부터 서기 1~2세기까지 쌍조형 안테나식동검이 주로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