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추존"
검색결과 총 11건
덕릉(德陵)은 조선 태조의 4대조인 추존왕 목조의 능이다. 목조 덕릉과 효공왕후 안릉이 쌍릉으로 조영되어 있어서, 덕안릉(德安陵)이라고도 한다. 덕릉은 경흥부성 남쪽 안릉과 4리쯤 떨어져 있었으나 1410년 현재의 자리로 천릉하면서 쌍릉으로 조성하고 왕릉에 준해 석물을 갖추었다. 덕릉은 현재 함경남도 신흥군 가평면 능리에 있다.
덕릉 (德陵)
덕릉(德陵)은 조선 태조의 4대조인 추존왕 목조의 능이다. 목조 덕릉과 효공왕후 안릉이 쌍릉으로 조영되어 있어서, 덕안릉(德安陵)이라고도 한다. 덕릉은 경흥부성 남쪽 안릉과 4리쯤 떨어져 있었으나 1410년 현재의 자리로 천릉하면서 쌍릉으로 조성하고 왕릉에 준해 석물을 갖추었다. 덕릉은 현재 함경남도 신흥군 가평면 능리에 있다.
고려의 제1대 왕, 태조 왕건의 조부인 왕족.
경강대왕 (景康大王)
고려의 제1대 왕, 태조 왕건의 조부인 왕족.
영릉(永陵)은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조선 제21대 영조의 맏아들 추존 진종과 효순왕후 조씨의 쌍릉이다. 1729년에 효장세자의 묘소로 건립되고, 1752년에 현빈이 안장되어 쌍분을 이루었다. 정조가 즉위하여 진종과 효순왕후로 추존하고 영릉으로 격상되었으나, 돌거리를 추가로 조성하지 않아 여전히 세자묘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장순왕후의 공릉과 공혜왕후의 순릉과 같은 능역을 형성하여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파주 삼릉’이라 불린다.
영릉 (永陵)
영릉(永陵)은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조선 제21대 영조의 맏아들 추존 진종과 효순왕후 조씨의 쌍릉이다. 1729년에 효장세자의 묘소로 건립되고, 1752년에 현빈이 안장되어 쌍분을 이루었다. 정조가 즉위하여 진종과 효순왕후로 추존하고 영릉으로 격상되었으나, 돌거리를 추가로 조성하지 않아 여전히 세자묘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장순왕후의 공릉과 공혜왕후의 순릉과 같은 능역을 형성하여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파주 삼릉’이라 불린다.
의릉(義陵)은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도조의 능이다. 도조는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이춘이며, 태조 즉위 후 도왕 의릉으로 추존되었다. 의릉은 조선 전기 추존 왕릉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봉분에 병풍석이 설치되어 있으며, 문석인, 무석인, 장명등 등의 돌거리가 건립되어 있다. 의릉은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다.
의릉 (義陵)
의릉(義陵)은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도조의 능이다. 도조는 조선 태조의 할아버지 이춘이며, 태조 즉위 후 도왕 의릉으로 추존되었다. 의릉은 조선 전기 추존 왕릉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봉분에 병풍석이 설치되어 있으며, 문석인, 무석인, 장명등 등의 돌거리가 건립되어 있다. 의릉은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다.
익종은 조선시대, 24대 임금 헌종의 부친이며 추존왕이다. 효명세자로 더 알려져 있다. 4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1세에 관례를 치렀고 같은 해에 조만영의 딸과 혼인하였다. 외척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순조의 뜻에 따라 19세에 대리청정을 시작하였다. 이때 자신의 측근을 인사와 경제 관서에 포진하고, 백성들의 청원에도 귀를 기울였다. 1827년에 순조와 순원왕후에게 존호를 올리고 순조 등극 30주년을 맞이하여 연향을 베풀면서 악장을 친히 짓고 정재를 재정비하였다.
익종 (翼宗)
익종은 조선시대, 24대 임금 헌종의 부친이며 추존왕이다. 효명세자로 더 알려져 있다. 4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1세에 관례를 치렀고 같은 해에 조만영의 딸과 혼인하였다. 외척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순조의 뜻에 따라 19세에 대리청정을 시작하였다. 이때 자신의 측근을 인사와 경제 관서에 포진하고, 백성들의 청원에도 귀를 기울였다. 1827년에 순조와 순원왕후에게 존호를 올리고 순조 등극 30주년을 맞이하여 연향을 베풀면서 악장을 친히 짓고 정재를 재정비하였다.
지릉(智陵)은 조선 태조의 증조할아버지인 익조의 능이다. 익조는 조선 태조의 증조할아버지 이행리이며, 태조 즉위 후 익왕 지릉으로 추존되었다. 지릉은 조선 전기 추존 왕릉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봉분에 병풍석이 설치되어 있으며, 문석인, 무석인, 장명등 등의 돌거리가 건립되어 있다. 지릉은 현재 북한인 함경남도 안변군 서곡면 능리에 있다.
지릉 (智陵)
지릉(智陵)은 조선 태조의 증조할아버지인 익조의 능이다. 익조는 조선 태조의 증조할아버지 이행리이며, 태조 즉위 후 익왕 지릉으로 추존되었다. 지릉은 조선 전기 추존 왕릉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봉분에 병풍석이 설치되어 있으며, 문석인, 무석인, 장명등 등의 돌거리가 건립되어 있다. 지릉은 현재 북한인 함경남도 안변군 서곡면 능리에 있다.
정릉(定陵)은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는 조선 태조의 아버지 환조의 능이다. 환조는 조선 태조의 아버지 이자춘이며, 태조 즉위 후 환조 정릉으로 추존되었다. 의혜왕후 영흥최씨 화릉과 상하 동원이영(同原異塋) 형태이며, 정릉이 위쪽, 화릉이 아래쪽에 있다. 정릉에는 태조 선대 능 중 유일하게 신도비가 건립되어 있다.
정릉 (定陵)
정릉(定陵)은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는 조선 태조의 아버지 환조의 능이다. 환조는 조선 태조의 아버지 이자춘이며, 태조 즉위 후 환조 정릉으로 추존되었다. 의혜왕후 영흥최씨 화릉과 상하 동원이영(同原異塋) 형태이며, 정릉이 위쪽, 화릉이 아래쪽에 있다. 정릉에는 태조 선대 능 중 유일하게 신도비가 건립되어 있다.
김포 장릉(金浦 章陵)은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추존왕 원종과 인헌왕후의 쌍릉이다. 1619년에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 사망하자 양주에 안장되었다. 1623년에 반정으로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아버지를 정원대원군, 어머니를 연주부부인으로 봉하였으며, 1626년에 연주부부인의 장례를 치른후 정원대원군의 묘를 이장하여 쌍분으로 만들어 흥경원이 되었다. 1632년에 정원대원군을 원종이라 추존하고 흥경원을 장릉(章陵)이라 능호를 올리고 능제로 돌거리를 갖추었다.
김포 장릉 (金浦 章陵)
김포 장릉(金浦 章陵)은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추존왕 원종과 인헌왕후의 쌍릉이다. 1619년에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 사망하자 양주에 안장되었다. 1623년에 반정으로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아버지를 정원대원군, 어머니를 연주부부인으로 봉하였으며, 1626년에 연주부부인의 장례를 치른후 정원대원군의 묘를 이장하여 쌍분으로 만들어 흥경원이 되었다. 1632년에 정원대원군을 원종이라 추존하고 흥경원을 장릉(章陵)이라 능호를 올리고 능제로 돌거리를 갖추었다.
1632년(인조 10)에 인조가 자신의 생부인 정원군을 원종대왕으로, 생모 계운궁 구씨를 인헌왕후로 추존한 사건.
원종추숭 (元宗追崇)
1632년(인조 10)에 인조가 자신의 생부인 정원군을 원종대왕으로, 생모 계운궁 구씨를 인헌왕후로 추존한 사건.
공빈추숭은 광해군의 사친 공빈 김씨를 공성왕후로 추숭한 사안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광해군은 선조의 후궁 소생이며, 둘째라는 정통성의 결함을 가지고 세자로 책봉되었다. 광해군은 선조의 대상이 끝난 후에 공빈 김씨를 왕후로 높여서 자신이 후궁 소생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공빈 김씨는 1613년(광해군 5) 공성왕후로 추숭되었다가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 다시 공빈으로 추삭되었다. 공빈추숭은 유교적 질서를 크게 어그러트리는 사건으로 국왕의 권위와 주동자들의 도덕성에 큰 흠이 되었다.
공빈추숭 (恭嬪追崇)
공빈추숭은 광해군의 사친 공빈 김씨를 공성왕후로 추숭한 사안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광해군은 선조의 후궁 소생이며, 둘째라는 정통성의 결함을 가지고 세자로 책봉되었다. 광해군은 선조의 대상이 끝난 후에 공빈 김씨를 왕후로 높여서 자신이 후궁 소생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공빈 김씨는 1613년(광해군 5) 공성왕후로 추숭되었다가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 다시 공빈으로 추삭되었다. 공빈추숭은 유교적 질서를 크게 어그러트리는 사건으로 국왕의 권위와 주동자들의 도덕성에 큰 흠이 되었다.
화릉(和陵)은 조선 제1대 국왕 태조의 어머니인 의혜왕후 영흥최씨의 능이다. 환조 정릉과 상하 동원이영으로 정릉이 위쪽, 화릉이 아래쪽에 있다. 화릉은 정릉과 상하로 배치되어 고려 말 사대부묘와 조선 전기 추존왕릉의 제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현재 북한 함경남도 함주군에 자리한다.
화릉 (和陵)
화릉(和陵)은 조선 제1대 국왕 태조의 어머니인 의혜왕후 영흥최씨의 능이다. 환조 정릉과 상하 동원이영으로 정릉이 위쪽, 화릉이 아래쪽에 있다. 화릉은 정릉과 상하로 배치되어 고려 말 사대부묘와 조선 전기 추존왕릉의 제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현재 북한 함경남도 함주군에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