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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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전투는 1253년(고종 40) 몽골의 제5차 침입 때 충주성(忠州城)에서 승리를 거둔 전투이다. 몽골군이 고려의 남부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충주성을 반드시 점령해야 했던 반면, 고려 또한 이를 저지해야 할 명운이 걸린 전투였다. 충주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김윤후(金允侯)라는 뛰어난 장수의 활약과 일반 민의 적극적인 협력 덕분이었다. 이를 계기로 충주가 국원경(國原京)으로 승격되었다.
충주전투 (忠州戰鬪)
충주전투는 1253년(고종 40) 몽골의 제5차 침입 때 충주성(忠州城)에서 승리를 거둔 전투이다. 몽골군이 고려의 남부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충주성을 반드시 점령해야 했던 반면, 고려 또한 이를 저지해야 할 명운이 걸린 전투였다. 충주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김윤후(金允侯)라는 뛰어난 장수의 활약과 일반 민의 적극적인 협력 덕분이었다. 이를 계기로 충주가 국원경(國原京)으로 승격되었다.
매금은 신라 상고기에 사용된 왕호로, 마립간의 이칭이다. 주로 4세기 말부터 6세기 전반까지 사용되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표현으로는 '마립간(麻立干)'에 해당하지만, 매금의 '금'이 마립간 이전에 사용된 왕호인 이사금의 끝 글자이기도 하여 종래의 칭호인 이사금에서 일정하게 영향을 받은 명칭이기도 하다.
매금 (寐錦)
매금은 신라 상고기에 사용된 왕호로, 마립간의 이칭이다. 주로 4세기 말부터 6세기 전반까지 사용되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표현으로는 '마립간(麻立干)'에 해당하지만, 매금의 '금'이 마립간 이전에 사용된 왕호인 이사금의 끝 글자이기도 하여 종래의 칭호인 이사금에서 일정하게 영향을 받은 명칭이기도 하다.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있는 고려전기 석굴을 주불전으로 하는 사찰터.
충주 미륵대원지 (忠州 彌勒大院址)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있는 고려전기 석굴을 주불전으로 하는 사찰터.
대한제국기 때, 원주진위대의 정교 등을 역임하다가 일제가 군대를 해산하려 하자 의병부대를 편성하여 강원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장.
민긍호 (閔肯鎬)
대한제국기 때, 원주진위대의 정교 등을 역임하다가 일제가 군대를 해산하려 하자 의병부대를 편성하여 강원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장.
가흥창은 조선시대 충주에 설치되었던 조창이다. 충청도와 경상도 군현은 지역 내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남한강을 경유하여 서울까지 상납해야 했는데, 가흥창이 그 세곡 보관과 수송의 거점으로서 기능하였다. 조선 전기 가흥창은 전국 9개의 조창 중 가장 큰 규모의 조창이었으나, 조선 후기 세곡을 납부하는 속읍(屬邑)이 줄어들면서 그 기능이 축소되었다.
가흥창 (可興倉)
가흥창은 조선시대 충주에 설치되었던 조창이다. 충청도와 경상도 군현은 지역 내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남한강을 경유하여 서울까지 상납해야 했는데, 가흥창이 그 세곡 보관과 수송의 거점으로서 기능하였다. 조선 전기 가흥창은 전국 9개의 조창 중 가장 큰 규모의 조창이었으나, 조선 후기 세곡을 납부하는 속읍(屬邑)이 줄어들면서 그 기능이 축소되었다.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명승.
충주 계립령로 하늘재 (忠州 鷄立嶺路 하늘재)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명승.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조선후기 제19대 숙종 당시 중건한 사찰.
충주 단호사 (忠州 丹湖寺)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조선후기 제19대 숙종 당시 중건한 사찰.
충청북도 충주시와 제천시에 걸쳐 있는 호수.
충주호 (忠州湖)
충청북도 충주시와 제천시에 걸쳐 있는 호수.
유신성은 고려 전기 충주유씨(忠州劉氏) 출신으로, 광종 묘정(廟廷)에 배향된 공신이다. 그는 성종 대 배향되었는데, 덕종 때에는 태부(太傅)에 추증되었다. 또한, 충주 정토사(淨土寺) 법경대사(法鏡大師)의 세속 제자이다. 충추유씨는 충주의 유력한 지역 세력으로 왕태후를 배출하였으며, 정종과 광종의 외가이다.
유신성 (劉新城)
유신성은 고려 전기 충주유씨(忠州劉氏) 출신으로, 광종 묘정(廟廷)에 배향된 공신이다. 그는 성종 대 배향되었는데, 덕종 때에는 태부(太傅)에 추증되었다. 또한, 충주 정토사(淨土寺) 법경대사(法鏡大師)의 세속 제자이다. 충추유씨는 충주의 유력한 지역 세력으로 왕태후를 배출하였으며, 정종과 광종의 외가이다.
1694년 에 필사된 충주박씨내외자손의 족보. 자손보.
충주박씨 내외자손보 (忠州朴氏 內外子孫譜)
1694년 에 필사된 충주박씨내외자손의 족보. 자손보.
충주사고(忠州史庫)는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었던 고려 말·조선 전기의 서고(書庫)이다. 고려 말기 왜구의 침탈이 거세짐에 따라 해인사 등지에 설치되었던 외사고가 중부 내륙의 충주로 이관하여 안착하게 되었다. 충주사고는 조선이 건국된 이후 충주 개천사에서 충주 객사 동남쪽으로 이설된 외에는 큰 변화 없이 외사고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1439년 전주·성주사고가 신설될 때까지 유일한 외사고로 기능하였다. 충주사고에는 고려 이래의 귀중한 서책들을 많이 보관되어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이후 다시 복구되지 못하였다.
충주사고 (忠州史庫)
충주사고(忠州史庫)는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었던 고려 말·조선 전기의 서고(書庫)이다. 고려 말기 왜구의 침탈이 거세짐에 따라 해인사 등지에 설치되었던 외사고가 중부 내륙의 충주로 이관하여 안착하게 되었다. 충주사고는 조선이 건국된 이후 충주 개천사에서 충주 객사 동남쪽으로 이설된 외에는 큰 변화 없이 외사고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1439년 전주·성주사고가 신설될 때까지 유일한 외사고로 기능하였다. 충주사고에는 고려 이래의 귀중한 서책들을 많이 보관되어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이후 다시 복구되지 못하였다.
충주 장미산성은 국가 사적으로, 충주시 가금면에 있는 장미산의 능선을 따라 쌓은 둘레 294m 가량의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충주 장미산성은 남한강의 수로와 한강 유역으로 통하는 육로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다. 백제의 조족문 토기가 출토되었고, 충주가 삼국의 각축지였다는 점에서 백제, 고구려, 신라가 차례로 이 성을 점령하였을 것으로 추정된 바 있다. 하지만 발굴 조사를 통해 현재의 석축 성벽의 축조 기법과 구조를 살펴보았을 때 6세기 중반 충주로 진출한 신라가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충주 장미산성 (忠州 薔薇山城)
충주 장미산성은 국가 사적으로, 충주시 가금면에 있는 장미산의 능선을 따라 쌓은 둘레 294m 가량의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충주 장미산성은 남한강의 수로와 한강 유역으로 통하는 육로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다. 백제의 조족문 토기가 출토되었고, 충주가 삼국의 각축지였다는 점에서 백제, 고구려, 신라가 차례로 이 성을 점령하였을 것으로 추정된 바 있다. 하지만 발굴 조사를 통해 현재의 석축 성벽의 축조 기법과 구조를 살펴보았을 때 6세기 중반 충주로 진출한 신라가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이천 지역의 옛 지명.
음죽 (陰竹)
경기도 이천 지역의 옛 지명.
해방 이후 『일반생물학』, 『한국의 자연 , 담수어편, 』 등을 저술한 학자. 생물학자.
최기철 (崔基哲)
해방 이후 『일반생물학』, 『한국의 자연 , 담수어편, 』 등을 저술한 학자. 생물학자.
충주 남산성(忠州 南山城)은 충청북도 충주시 동남쪽의 남산 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마고성, 충주산성, 금봉산성 등으로 불리는데, 발굴 조사 결과 7세기 말 신라의 북진 및 충주 지역 진출과 관련된 신라시대 산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의 전체 둘레는 1,120m이며, 동서남북 방향에 현문식으로 조성된 4개의 문지를 비롯하여 수구, 저수 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충주 남산성 (忠州 南山城)
충주 남산성(忠州 南山城)은 충청북도 충주시 동남쪽의 남산 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마고성, 충주산성, 금봉산성 등으로 불리는데, 발굴 조사 결과 7세기 말 신라의 북진 및 충주 지역 진출과 관련된 신라시대 산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의 전체 둘레는 1,120m이며, 동서남북 방향에 현문식으로 조성된 4개의 문지를 비롯하여 수구, 저수 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밀개·긁개·자르개 등이 출토된 집터.
제천 사기리 유적 (堤川 沙器里 遺蹟)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밀개·긁개·자르개 등이 출토된 집터.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신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보살상.
예산 삽교읍 석조 보살 입상 (禮山 揷橋邑 石造 菩薩 立像)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신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보살상.
충청북도 충주시 이류면 검단리(지금의 충주시 대학로)에 있었던 국립산업대학.
충주대학교 (忠州大學校)
충청북도 충주시 이류면 검단리(지금의 충주시 대학로)에 있었던 국립산업대학.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전기 에 건립된 승려 홍법국사의 탑비.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비 (忠州 淨土寺址 弘法國師塔碑)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전기 에 건립된 승려 홍법국사의 탑비.
충주 대림산성(忠州 大林山城)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포곡식 산성이다. 영남 지방과 충주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로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충주 일원의 산성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성의 전체 둘레는 4,906m이며, 동서남북 4개의 문지 이외에 여러 개의 암문지와 치성, 장대지와 각루지, 창고지 등 많은 건물지와 우물지 등이 남아 있다.
충주 대림산성 (忠州 大林山城)
충주 대림산성(忠州 大林山城)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포곡식 산성이다. 영남 지방과 충주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로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충주 일원의 산성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성의 전체 둘레는 4,906m이며, 동서남북 4개의 문지 이외에 여러 개의 암문지와 치성, 장대지와 각루지, 창고지 등 많은 건물지와 우물지 등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