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충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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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임시관청.
구급도감 (救急都監)
고려 후기의 임시관청.
양광도는 고려시대, 안찰사(按察使)가 파견된 5도의 하나로서 지금의 경기도, 충청남도, 충청북도 및 강원도 일부 지역에 해당하는 행정 구역이다. 관내에 계수관(界首官)으로 광주와 충주, 청주가 있었으며, 숙종 때 남경(南京)이 추가되었다. 충청도와 혼용되었으며, 고려 말에 경기(京畿) 확대 및 조선 건국과 한양 천도에 따라 남경과 광주 관할 지역은 대부분 경기로 편입되었고, 나머지 지역은 충청도로 확정되었다.
양광도 (楊廣道)
양광도는 고려시대, 안찰사(按察使)가 파견된 5도의 하나로서 지금의 경기도, 충청남도, 충청북도 및 강원도 일부 지역에 해당하는 행정 구역이다. 관내에 계수관(界首官)으로 광주와 충주, 청주가 있었으며, 숙종 때 남경(南京)이 추가되었다. 충청도와 혼용되었으며, 고려 말에 경기(京畿) 확대 및 조선 건국과 한양 천도에 따라 남경과 광주 관할 지역은 대부분 경기로 편입되었고, 나머지 지역은 충청도로 확정되었다.
고려후기 장군, 충청도지휘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임비 (林庇)
고려후기 장군, 충청도지휘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충청도의 토속민요에 기원을 둔 경기민요.
천안삼거리 (天安三거리)
충청도의 토속민요에 기원을 둔 경기민요.
조선시대 충청도와 경상도를 아울러 부르는 이름.
호령 (湖嶺)
조선시대 충청도와 경상도를 아울러 부르는 이름.
고려후기 중낭장, 탐라존무사, 밀직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배정지 (裵廷芝)
고려후기 중낭장, 탐라존무사, 밀직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진남영은 조선 말기, 충청도 청주에 설치하였던 군영(軍營)이다. 고종 대에 중앙의 친군영 체제가 지방으로까지 확대됨에 따라 1887년 충청도 청주에 설치된 군영으로, 1894년 동학농민혁명 시기에는 농민군 진압에 참여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장졸이 살해된 바 있다. 갑오개혁 시기 폐지되었다.
진남영 (鎭南營)
진남영은 조선 말기, 충청도 청주에 설치하였던 군영(軍營)이다. 고종 대에 중앙의 친군영 체제가 지방으로까지 확대됨에 따라 1887년 충청도 청주에 설치된 군영으로, 1894년 동학농민혁명 시기에는 농민군 진압에 참여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장졸이 살해된 바 있다. 갑오개혁 시기 폐지되었다.
이하악(李河岳)은 조선 후기에 참봉, 보은현감(報恩縣監), 금천군수(金川郡守), 충주목사(忠州牧使)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비록 문과에 급제하지는 않았지만 대동법(大同法)과 양전(量田) 등 주로 경제 정책과 관련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였다. 윤선거, 송시열 등과 친분이 있었다.
이하악 (李河岳)
이하악(李河岳)은 조선 후기에 참봉, 보은현감(報恩縣監), 금천군수(金川郡守), 충주목사(忠州牧使)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비록 문과에 급제하지는 않았지만 대동법(大同法)과 양전(量田) 등 주로 경제 정책과 관련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였다. 윤선거, 송시열 등과 친분이 있었다.
고려 충렬왕 때, 영월에서 민란을 일으킨 주모자.
강윤명 (康允明)
고려 충렬왕 때, 영월에서 민란을 일으킨 주모자.
조선후기 문신 이헌영이 충청도관찰사 재임기간 동안의 사건을 기록한 일지. 공무일기.
금번집략 (錦藩集略)
조선후기 문신 이헌영이 충청도관찰사 재임기간 동안의 사건을 기록한 일지. 공무일기.
1835년부터 1878년까지 충청도감영에서 조정에 올린 장계를 수록한 역사서.
금영계록 (錦營啓錄)
1835년부터 1878년까지 충청도감영에서 조정에 올린 장계를 수록한 역사서.
저자 미상의 시 528수를 수록한 시집. 기행시집.
석옥수록 (石玉隨錄)
저자 미상의 시 528수를 수록한 시집. 기행시집.
군현별로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로 운영되었던 지방관청의 잡역 수취를 일정한 지역이나 범위에서 통일된 액수와 원칙을 확정하고 이를 기본으로 운영하는 것.
잡역상정 (雜役詳定)
군현별로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로 운영되었던 지방관청의 잡역 수취를 일정한 지역이나 범위에서 통일된 액수와 원칙을 확정하고 이를 기본으로 운영하는 것.
송송례는 1270년(원종 11) 무신집정자 임유무를 처단하여 100년 무신정권을 무너뜨리고 왕정을 되돌리는 데 크게 공헌한 무신이다. 이후 원종대 후반부에서 충령왕 대 전반부에 일본원정에 필요한 군사를 징발하거나 외교적 교섭을 위해 원에 파견되는 등 고려의 재상으로서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송송례 (宋松禮)
송송례는 1270년(원종 11) 무신집정자 임유무를 처단하여 100년 무신정권을 무너뜨리고 왕정을 되돌리는 데 크게 공헌한 무신이다. 이후 원종대 후반부에서 충령왕 대 전반부에 일본원정에 필요한 군사를 징발하거나 외교적 교섭을 위해 원에 파견되는 등 고려의 재상으로서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정사박해는 정사년인 1797년(정조 21)에, 충청도 남부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일어난 박해이다. 1795년부터 주문모 신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1797년에 박해가 발생했다. 또 1790년대 충청도 지역 기근 책임을 신자들에게 돌린 것도 박해의 원인이 되었다. 박해로 100여 명이 희생됐으나, 8명만 그 사적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대부분 매를 맞고 순교했다. 정조의 교화주의 정책에 따라 관장들이 배교를 강요하면서 고문을 강화한 탓이다. 그들은 재산을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었고, 그들의 확고한 믿음은 끝내 순교로 이어졌다.
정사박해 (丁巳迫害)
정사박해는 정사년인 1797년(정조 21)에, 충청도 남부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일어난 박해이다. 1795년부터 주문모 신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1797년에 박해가 발생했다. 또 1790년대 충청도 지역 기근 책임을 신자들에게 돌린 것도 박해의 원인이 되었다. 박해로 100여 명이 희생됐으나, 8명만 그 사적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대부분 매를 맞고 순교했다. 정조의 교화주의 정책에 따라 관장들이 배교를 강요하면서 고문을 강화한 탓이다. 그들은 재산을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었고, 그들의 확고한 믿음은 끝내 순교로 이어졌다.
『호서지도』는 조선 후기 충청도 전도 2장과 대축척 군현 지도 68장을 6첩으로 나누어 수록한 지도집이다. 채색 필사본이며, 2008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충청도 전도인 ‘충청도 도지도’는 10리 방안의 눈금 위에 그렸고, 각 군현 지도는 1리 방안을 기준으로 제작하였다. 4첩에 수록한 ‘도내 도지도’와 11장의 군현 지도, 6첩에 수록한 10장의 군현 지도는 방안 위에 그린 지도가 아닌 회화식 군현 지도이다. 비변사에서 보관하여 사용하던 지도였다는 점에서 역사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호서지도 (湖西地圖)
『호서지도』는 조선 후기 충청도 전도 2장과 대축척 군현 지도 68장을 6첩으로 나누어 수록한 지도집이다. 채색 필사본이며, 2008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충청도 전도인 ‘충청도 도지도’는 10리 방안의 눈금 위에 그렸고, 각 군현 지도는 1리 방안을 기준으로 제작하였다. 4첩에 수록한 ‘도내 도지도’와 11장의 군현 지도, 6첩에 수록한 10장의 군현 지도는 방안 위에 그린 지도가 아닌 회화식 군현 지도이다. 비변사에서 보관하여 사용하던 지도였다는 점에서 역사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호서도』는 조선 후기 충청도 전도에 더해 충청도의 54개 고을 및 충청 수영을 그린 지도를 모아 만든 지도책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해동지도』와 수록 항목과 내용이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각 지도의 내용이 간략하고 솜씨도 떨어지지만, 각 고을의 읍치 안에 그린 관아 건물의 수는 더 많다. 『해동지도』의 영향을 받으며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에 제작된 도별 고을 지도집의 계보를 잇는 지도책이다.
호서도 (湖西圖)
『호서도』는 조선 후기 충청도 전도에 더해 충청도의 54개 고을 및 충청 수영을 그린 지도를 모아 만든 지도책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해동지도』와 수록 항목과 내용이 비슷하다. 『해동지도』에 비해 각 지도의 내용이 간략하고 솜씨도 떨어지지만, 각 고을의 읍치 안에 그린 관아 건물의 수는 더 많다. 『해동지도』의 영향을 받으며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에 제작된 도별 고을 지도집의 계보를 잇는 지도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