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통일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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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왕은 742~765년에 재위한 신라의 제35대 왕으로서, 이름은 김헌영이다. 재위 기간에 여러 관부와 관직을 신설했고, 패강(浿江)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여 다스렸다. 관료 급여제도로서 월봉을 폐지하고 녹읍을 부활했고, 관호와 지명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개혁을 실시했다.
경덕왕 (景德王)
경덕왕은 742~765년에 재위한 신라의 제35대 왕으로서, 이름은 김헌영이다. 재위 기간에 여러 관부와 관직을 신설했고, 패강(浿江)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여 다스렸다. 관료 급여제도로서 월봉을 폐지하고 녹읍을 부활했고, 관호와 지명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개혁을 실시했다.
교관선(交關船)은 남북국시대에 통일신라와 발해가 당나라 또는 일본과 교섭하기 위해 보낸 선박이다. 고대국가는 육로, 내륙수로, 해로를 통해 사절단을 파견하여 주변 국가와 교류해 왔다. 이러한 활동을 교관(交關)이라고 하며, 교관을 위해 사용된 선박이 교관선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통일신라와 발해에서 일본으로 보낸 교관선이 확인되는데, 이들은 주로 교역 활동에 이용되었다.
교관선 (交關船)
교관선(交關船)은 남북국시대에 통일신라와 발해가 당나라 또는 일본과 교섭하기 위해 보낸 선박이다. 고대국가는 육로, 내륙수로, 해로를 통해 사절단을 파견하여 주변 국가와 교류해 왔다. 이러한 활동을 교관(交關)이라고 하며, 교관을 위해 사용된 선박이 교관선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통일신라와 발해에서 일본으로 보낸 교관선이 확인되는데, 이들은 주로 교역 활동에 이용되었다.
구주(九州)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설정한 9개의 지방 광역(廣域) 행정구역이다. 신라에서 주제(州制)는 6세기 중엽에 성립하여 삼국 통일 직전에 6주가 되었고, 삼국통일을 이룬 뒤 옛 백제 지역에 3개 주를 설치하면서 9주를 갖추었다. 구주는 하나의 천하(天下)를 상징하는 것으로 삼국을 통일하여[一統三韓] 하나의 천하를 이루었다는 인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구주 (九州)
구주(九州)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설정한 9개의 지방 광역(廣域) 행정구역이다. 신라에서 주제(州制)는 6세기 중엽에 성립하여 삼국 통일 직전에 6주가 되었고, 삼국통일을 이룬 뒤 옛 백제 지역에 3개 주를 설치하면서 9주를 갖추었다. 구주는 하나의 천하(天下)를 상징하는 것으로 삼국을 통일하여[一統三韓] 하나의 천하를 이루었다는 인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울릉도고분군(鬱陵島古墳群)은 울릉도 일원에 분포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8세기부터 10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무덤군이다. 이 고분군은 비탈진 곳에 돌을 쌓아 평탄면을 만든 후, 돌을 사용하여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돌을 덮어 분구를 만들었다. 울릉도의 지질과 자연환경을 고려하여 만든 매우 독특한 유적이다.
울릉도 고분군 (鬱陵島 古墳群)
울릉도고분군(鬱陵島古墳群)은 울릉도 일원에 분포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8세기부터 10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무덤군이다. 이 고분군은 비탈진 곳에 돌을 쌓아 평탄면을 만든 후, 돌을 사용하여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돌을 덮어 분구를 만들었다. 울릉도의 지질과 자연환경을 고려하여 만든 매우 독특한 유적이다.
원성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38대 왕이다. 재위는 785∼798년이다. 내물왕(奈勿王)의 12세손으로, 이름은 김경신(金敬信 혹은 金敬愼)이다. 혜공왕(惠恭王) 대 김양상(金良相, 훗날 선덕왕)과 함께 김지정(金志貞)이 일으킨 반란을 평정하고 선덕왕(宣德王)의 즉위에 기여하며 상대등(上大等)이 되었다. 선덕왕이 죽자 김주원과의 왕위계승 다툼이 있었으나 왕으로 즉위하였다.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를 실시하고, 발해와의 외교를 펼쳤으며 봉은사(奉恩寺)를 완성하는 등 하대 왕실 성립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원성왕 (元聖王)
원성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38대 왕이다. 재위는 785∼798년이다. 내물왕(奈勿王)의 12세손으로, 이름은 김경신(金敬信 혹은 金敬愼)이다. 혜공왕(惠恭王) 대 김양상(金良相, 훗날 선덕왕)과 함께 김지정(金志貞)이 일으킨 반란을 평정하고 선덕왕(宣德王)의 즉위에 기여하며 상대등(上大等)이 되었다. 선덕왕이 죽자 김주원과의 왕위계승 다툼이 있었으나 왕으로 즉위하였다.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를 실시하고, 발해와의 외교를 펼쳤으며 봉은사(奉恩寺)를 완성하는 등 하대 왕실 성립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창녕 화왕산성(昌寧 火旺山城)은 5세기 경 창녕을 조망할 수 있는 서쪽에 만들어진 토축 산성을 통일신라시대에 석축으로 개축한 석축 산성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잦은 외적의 침입을 겪던 창녕과 현풍 지역민을 보호하던 입보 산성이기도 하다. 초축된 화왕산성의 둘레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현재 남아 있는 화왕산성의 둘레는 고려 말~조선시대 전기에 정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창녕 조씨 득성지로 알려진 집수지에서는 용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흔적이 확인되어 진산에 만든 성을 제사처로 활용했던 사실을 보여준다.
창녕 화왕산성 (昌寧 火旺山城)
창녕 화왕산성(昌寧 火旺山城)은 5세기 경 창녕을 조망할 수 있는 서쪽에 만들어진 토축 산성을 통일신라시대에 석축으로 개축한 석축 산성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잦은 외적의 침입을 겪던 창녕과 현풍 지역민을 보호하던 입보 산성이기도 하다. 초축된 화왕산성의 둘레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현재 남아 있는 화왕산성의 둘레는 고려 말~조선시대 전기에 정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창녕 조씨 득성지로 알려진 집수지에서는 용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흔적이 확인되어 진산에 만든 성을 제사처로 활용했던 사실을 보여준다.
청주 정북동 토성은 국가 사적으로, 삼국시대 혹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평면 형태 방형의 판축 토성이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675m이다. 토성은 미호천과 무심천이 만나는 합수머리 인근의 평야에 조성되었는데, 현존하는 우리나라 토성 가운데서도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예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 왔다. 정북동 토성에 대한 그간 몇 차례의 발굴 조사에도 불구하고 성벽에 대한 절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토성의 축조 시기와 세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논란이 있다. 현재 해자에 대한 발굴 조사가 완료되어 복원되었다.
청주 정북동 토성 (淸州 井北洞 土城)
청주 정북동 토성은 국가 사적으로, 삼국시대 혹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평면 형태 방형의 판축 토성이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675m이다. 토성은 미호천과 무심천이 만나는 합수머리 인근의 평야에 조성되었는데, 현존하는 우리나라 토성 가운데서도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예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 왔다. 정북동 토성에 대한 그간 몇 차례의 발굴 조사에도 불구하고 성벽에 대한 절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토성의 축조 시기와 세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논란이 있다. 현재 해자에 대한 발굴 조사가 완료되어 복원되었다.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이후 앞트기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공주 봉암리 고분군 (公州 鳳岩里 古墳群)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이후 앞트기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파주 덕진산성은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에 자리한 삼국시대 고구려가 축조한 성곽이다.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진 성곽으로, 6세기 중엽에 고구려가 처음 내성을 축조하였고, 통일신라기에 북방 방어를 위한 성곽으로 2차례 수보축되었으며, 조선시대 광해군 대에 외성이 축조되었다. 임진강 일대 고구려 방어체계를 보여주는 성곽으로, 통일신라와 조선시대에 걸쳐 축성법의 변화를 보여주는 유적이다. 2017년 1월 19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파주 덕진산성 (坡州 德津山城)
파주 덕진산성은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에 자리한 삼국시대 고구려가 축조한 성곽이다.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진 성곽으로, 6세기 중엽에 고구려가 처음 내성을 축조하였고, 통일신라기에 북방 방어를 위한 성곽으로 2차례 수보축되었으며, 조선시대 광해군 대에 외성이 축조되었다. 임진강 일대 고구려 방어체계를 보여주는 성곽으로, 통일신라와 조선시대에 걸쳐 축성법의 변화를 보여주는 유적이다. 2017년 1월 19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