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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수운을 이용하여 조세로 거둬들인 곡물을 경창으로 운송하는 제도이다. 전근대시기에 각 지방에서는 조세 명목으로 납부하는 곡물을 조창에서 수납한 다음, 선박에 적재하여 수송운송로를 따라 중앙의 경창으로 운송했다. 산지가 많아 육로운송이 어려워 남서해안의 바닷길과 한강·예성강 등의 수계가 주로 조운에 활용되었다. 조선 후기에 조세를 면포나 동전 등으로 내는 지역이 확대되면서 세곡 운송의 필요성이 감소하고 화폐 유통 활성화에 따른 조세 금납화 현상이 확대되면서 조운제도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어 19세기 말에 소멸하였다.
조운 (漕運)
조운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수운을 이용하여 조세로 거둬들인 곡물을 경창으로 운송하는 제도이다. 전근대시기에 각 지방에서는 조세 명목으로 납부하는 곡물을 조창에서 수납한 다음, 선박에 적재하여 수송운송로를 따라 중앙의 경창으로 운송했다. 산지가 많아 육로운송이 어려워 남서해안의 바닷길과 한강·예성강 등의 수계가 주로 조운에 활용되었다. 조선 후기에 조세를 면포나 동전 등으로 내는 지역이 확대되면서 세곡 운송의 필요성이 감소하고 화폐 유통 활성화에 따른 조세 금납화 현상이 확대되면서 조운제도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어 19세기 말에 소멸하였다.
병마사는 고려시대, 양계(兩界) 지역에 파견되어 군사와 민사행정을 총괄하던 지방 장관이다. 989년(성종 8)에 설치되었다. 양계에는 각각 안북대도호부와 안변도호부를 두었고, 그 밑에 방어주와 진이 설치되었다. 주에는 방어사가, 진에는 진장이 파견되었고, 병마사는 주진제로 편성된 양계를 일원적으로 통할하였다. 병마사기구에는 3품으로 병마사와 지병마사, 4품관인 병마부사, 5품 내지 6품인 병마판관, 그리고 병마녹사가 설치되었다. 몽골 침입과 그 지배로 양계는 점차 일반 행정구역인 주현으로 개편되고 장관이 도관찰출척사로 바뀌었다.
병마사 (兵馬使)
병마사는 고려시대, 양계(兩界) 지역에 파견되어 군사와 민사행정을 총괄하던 지방 장관이다. 989년(성종 8)에 설치되었다. 양계에는 각각 안북대도호부와 안변도호부를 두었고, 그 밑에 방어주와 진이 설치되었다. 주에는 방어사가, 진에는 진장이 파견되었고, 병마사는 주진제로 편성된 양계를 일원적으로 통할하였다. 병마사기구에는 3품으로 병마사와 지병마사, 4품관인 병마부사, 5품 내지 6품인 병마판관, 그리고 병마녹사가 설치되었다. 몽골 침입과 그 지배로 양계는 점차 일반 행정구역인 주현으로 개편되고 장관이 도관찰출척사로 바뀌었다.
고려시대의 중앙 관직.
판관 (判官)
고려시대의 중앙 관직.
고려 전기에, 원흥진판관, 탁라도구당사 등을 역임한 문신.
오인정 (吳仁正)
고려 전기에, 원흥진판관, 탁라도구당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시대 지방관부에 두었던 관직.
통판 (通判)
고려시대 지방관부에 두었던 관직.
권농사는 고려시대, 농업을 권장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파견된 지방 관직이다. 종류는 지방관이 겸대하는 권농사와 봉명사신으로서의 권농사로 나뉜다. 문종 대 이후 모든 수령과 판관 등 속관이 권농사를 겸하였다. 1173년(명종 3)에 이르면 남도 안찰사와 양계 감창사가 권농사를 겸하여 권농 행정이 체계화되었다. 봉명사신으로서 권농사는 정종 때 파견되었고, 명종 대 이후 필요할 때마다 전국에 걸쳐 파견되었다. 권농사의 임무는 권농, 구휼, 수취 등이 있었다.
권농사 (勸農使)
권농사는 고려시대, 농업을 권장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파견된 지방 관직이다. 종류는 지방관이 겸대하는 권농사와 봉명사신으로서의 권농사로 나뉜다. 문종 대 이후 모든 수령과 판관 등 속관이 권농사를 겸하였다. 1173년(명종 3)에 이르면 남도 안찰사와 양계 감창사가 권농사를 겸하여 권농 행정이 체계화되었다. 봉명사신으로서 권농사는 정종 때 파견되었고, 명종 대 이후 필요할 때마다 전국에 걸쳐 파견되었다. 권농사의 임무는 권농, 구휼, 수취 등이 있었다.
권길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상주판관(商州判官)으로 상주전투에서 싸우다 순절한 문신이다. 권근(權近)의 후손으로 음보(蔭輔)로 기용되어 상주판관에 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의 군사와 합세하여 상주 북천(北川)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일본군과 싸웠는데, 호장(戶長) 박걸(朴傑)을 비롯하여 많은 군사와 백성들이 호응하였다. 최선을 다했지만, 무기와 군사수의 열세로 패하여 순절하였다. 뒤에 상주의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다.
권길 (權吉)
권길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상주판관(商州判官)으로 상주전투에서 싸우다 순절한 문신이다. 권근(權近)의 후손으로 음보(蔭輔)로 기용되어 상주판관에 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의 군사와 합세하여 상주 북천(北川)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일본군과 싸웠는데, 호장(戶長) 박걸(朴傑)을 비롯하여 많은 군사와 백성들이 호응하였다. 최선을 다했지만, 무기와 군사수의 열세로 패하여 순절하였다. 뒤에 상주의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다.
공진창은 조선시대에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이다. 공세곶창(貢稅串倉), 공세창(貢稅倉), 아산창(牙山倉)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 전국 9개 조창 중 한 곳이다. 아산(牙山) · 목천(木川) · 연기(燕岐) · 천안(天安) · 온양(溫陽) · 전의(全義) · 서원(西原)의 전세(田稅)를 실어 부근의 변장(邊將)이 영납하였다.
공진창 (貢津倉)
공진창은 조선시대에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이다. 공세곶창(貢稅串倉), 공세창(貢稅倉), 아산창(牙山倉)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 전국 9개 조창 중 한 곳이다. 아산(牙山) · 목천(木川) · 연기(燕岐) · 천안(天安) · 온양(溫陽) · 전의(全義) · 서원(西原)의 전세(田稅)를 실어 부근의 변장(邊將)이 영납하였다.
조선시대 통례원의 정5품 관직.
찬의 (贊儀)
조선시대 통례원의 정5품 관직.
고려시대 때, 이부원외랑 지제고, 사재소경 호부시랑 위위경 등을 역임한 문신.
장충의 (張忠義)
고려시대 때, 이부원외랑 지제고, 사재소경 호부시랑 위위경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후기 선공판관을 역임한 관리.
조유 (趙裕)
고려후기 선공판관을 역임한 관리.
고려시대의 지방관직.
병마녹사 (兵馬錄事)
고려시대의 지방관직.
고려시대의 지방관직.
병마부사 (兵馬副使)
고려시대의 지방관직.
곽제화는 효종조에 출사하여 숙종대까지 주로 사간원, 사헌부에서 언관으로 활약하였다. 현종조에서는 우의정 정유성의 탄핵을 둘러싸고 국왕과 알력을 벌이기도 하였다. 경성판관 재임 시 월과(月課)를 세 차례 올리지 못한 일로 파직되고, 함경도 경성에 충군되었다.
곽제화 (郭薺華)
곽제화는 효종조에 출사하여 숙종대까지 주로 사간원, 사헌부에서 언관으로 활약하였다. 현종조에서는 우의정 정유성의 탄핵을 둘러싸고 국왕과 알력을 벌이기도 하였다. 경성판관 재임 시 월과(月課)를 세 차례 올리지 못한 일로 파직되고, 함경도 경성에 충군되었다.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있는 조선시대 고을의 조세 운송 관련 창고터. 조운창.
가흥창지 (可興倉址)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있는 조선시대 고을의 조세 운송 관련 창고터. 조운창.
행영병마사는 고려시대에 변방에 외침이나 변란이 발생하였을 때 파견되었던 기구이자 관직이다. 처음에는 대번병마(大番兵馬)라고 하였다가 행영도통사(行營都統使)를 거쳐 1047년(문종1)에 행영병마사로 개칭되었다. 재신이 임명되기도 하였으나 추밀과 직사3품관이 파견되었으며, 위로 행영병마판사(行營兵馬判事)가 있고 아래로 지행영병마사(知行營兵馬事), 행영병마부사(行營兵馬副使), 행영병마판관(行營兵馬判官), 행영병마녹사(行營兵馬綠事), 행영병마별감(行營兵馬別監) 등이 설치되었다.
행영병마사 (行營兵馬使)
행영병마사는 고려시대에 변방에 외침이나 변란이 발생하였을 때 파견되었던 기구이자 관직이다. 처음에는 대번병마(大番兵馬)라고 하였다가 행영도통사(行營都統使)를 거쳐 1047년(문종1)에 행영병마사로 개칭되었다. 재신이 임명되기도 하였으나 추밀과 직사3품관이 파견되었으며, 위로 행영병마판사(行營兵馬判事)가 있고 아래로 지행영병마사(知行營兵馬事), 행영병마부사(行營兵馬副使), 행영병마판관(行營兵馬判官), 행영병마녹사(行營兵馬綠事), 행영병마별감(行營兵馬別監) 등이 설치되었다.
홍복도감(弘福都監)은 고려 후기에 사찰의 경제적 지원 내지는 불교 진흥 정책을 위해 설치된 임시 관부이다. 1332년(충숙왕 복위 1) 이전에 사찰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위해 임시로 설치된 관부로, 1391년(공양왕 3)까지 기록상으로 확인된다. 고려 말에 신흥사대부들이 이를 불교의 폐단을 일으키는 주범 중의 하나로 지적하기도 하였다.
홍복도감 (弘福都監)
홍복도감(弘福都監)은 고려 후기에 사찰의 경제적 지원 내지는 불교 진흥 정책을 위해 설치된 임시 관부이다. 1332년(충숙왕 복위 1) 이전에 사찰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위해 임시로 설치된 관부로, 1391년(공양왕 3)까지 기록상으로 확인된다. 고려 말에 신흥사대부들이 이를 불교의 폐단을 일으키는 주범 중의 하나로 지적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출정군의 일원.
부판관 (副判官)
고려시대 출정군의 일원.
고려시대 개성부와 각 경(京)에 두어졌던 관직.
소윤 (少尹)
고려시대 개성부와 각 경(京)에 두어졌던 관직.
고려시대에 설치되었던 임시관서.
액호도감 (額號都監)
고려시대에 설치되었던 임시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