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농사는 고려시대, 농업을 권장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파견된 지방 관직이다. 종류는 지방관이 겸대하는 권농사와 봉명사신으로서의 권농사로 나뉜다. 문종 대 이후 모든 수령과 판관 등 속관이 권농사를 겸하였다. 1173년(명종 3)에 이르면 남도 안찰사와 양계 감창사가 권농사를 겸하여 권농 행정이 체계화되었다. 봉명사신으로서 권농사는 정종 때 파견되었고, 명종 대 이후 필요할 때마다 전국에 걸쳐 파견되었다. 권농사의 임무는 권농, 구휼, 수취 등이 있었다.
고려는 농업 중심의 국가로서 백성에게 농사를 장려하는 권농정책을 시행하였다. 각 지방에서 농업을 권장하는 임무를 부여하기 위하여 권농사를 설치하였다. 권농사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지방관이 겸대하는 권농사이고, 다른 하나는 특별히 왕명으로 내려 파견한 봉명사신(奉命使臣)으로서의 권농사이다.
지방관이 겸대하는 권농사 사례는 1066년(문종 20) 4월에 여러 도(道) 외관의 장(長)에게 권농사를 겸하도록 한 일이다. 그런데 이보다 앞선 1059년(문종 13)에 북계 영덕성(寧德城)의 수령 아래 속관인 판관(判官)이 권농사를 겸하였다. 문종 때 모든 수령이 권농사를 겸대하고, 판관 등 속관이 권농사를 겸하기도 하였다.
구체적 사례를 보면 1132년(인종 10)에 호진경(胡晉卿)이 정주방어판관(定州防禦判官) 겸 권농사에 제수되고, 1141년(인종 19)에 최정(崔精)이 풍주방어사(豊州防禦使) 겸 권농사로 제수되었다. 그러다가 무신집권기인 1173년(명종 3)에 남방의 안찰사(按察使)와 양계의 감창사(監倉使)도 권농사를 겸하게 하였다.
경상주도(慶尙州道), 진합주도(晉陜州道), 전라주도(全羅州道), 충청주도(忠淸州道), 양광주도(楊廣州道), 서해도(西海道), 춘주도(春州道) 등 7도의 안찰사 및 북계의 운중도(雲中道) · 흥화도(興化道)와 동계 명주도(溟州道) · 삭방도(朔方道) · 연해도(沿海道) 등 5도 감창사가 권농사를 겸하였다.
남도의 행정장관인 안찰사와 양계 감창사가 권농사를 겸대함으로써 권농 행정을 좀 더 체계적으로 운용하려는 조처였다. 고려 말 외관이 권농사뿐만 아니라 방어사, 병마사 등을 겸하여 권농방어사(勸農防禦使), 권농병마사(勸農兵馬使) 등으로 칭하기도 하였다. 후자의 권농사는 정종(靖宗) 때부터 나타난다.
1039년(정종 5) 4월에 수재민을 진휼하기 위하여 파견된 동북로 권농사(東北路勸農使)가 있었다. 『고려사』 백관지에 따르면 7도 안찰사와 5도 감창사가 권농사를 겸임한 1173년(명종 3) 이후에 별도로 권농사를 두었다.
고종 때 권농사와 권농별감(勸農別監)을 파견하였는데 권농별감은 권농사와 같은 성격의 직임이었다. 몽골과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안찰사, 감창사 등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자 그들이 겸하던 권농사의 직임을 따로 분리하여 전임직 권농사를 파견하였다. 또한 1255년(고종 42) 5월 여러 도에 권농사를 파견하였는데 이는 전쟁으로 인한 농업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권농사는 권농과 함께 방어 임무도 맡았다.
권농사는 국가 및 왕실 재정을 마련하기 위하여 파견되기도 하였다. 1289년(충렬왕 15) 3월에 어고(御庫)인 내방고(內房庫)가 설치되고, 각 도에 권농사를 파견하였다. 이때 파견된 권농사는 여러 도에서 백성에게서 물품을 수취하여 내방고에 조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충렬왕 대 권농사들은 과도한 수취로 백성들의 원성을 사는 문제를 일으켰다. 1288년(충렬왕 14) 3월에 경상도 권농사가 세마포(細麻布)를 헌납하는 것을 금하였다. 이 일은 권농사가 재물을 탐하여 거두어들임으로써 민폐를 끼친 사정을 보여준다.
같은 해 8월에 당시 세자이던 충선왕이 각도의 권농사를 없앨 것을 건의하였다. 권농사들이 백성에게 피해를 끼치고 나라의 재정에도 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안렴사(按廉使)들이 권농사의 업무를 겸하게 하였다.
이로써 따로 파견하던 권농사를 없애고, 이전처럼 지방행정을 담당하던 장관이 권농사를 겸하도록 되돌렸다. 하지만 그 뒤에도 왕명으로 권농사를 파견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1292년(충렬왕 18) 정월에 충청도와 서해도 백성이 농사에 실패하여 굶주리고 파종에 어려움을 겪자 두 도에 전임직 권농사를 파견하였다.
권농사의 주요 임무는 농사를 권장하는 데 있었다. 백성에게 곡식과 종자를 마련하여 지급하는 등 권농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수령과 속관 등 지방관이 겸임한 권농사는 자신이 부임한 군현뿐만 아니라 속현(屬縣)과 부곡(部曲) 등의 권농 업무를 담당하였다.
이와 함께 구휼과 수취의 임무도 맡았다. 장마나 가뭄 등으로 굶주린 백성이 생기면 권농사가 백성을 구휼하였다. 원 간섭기의 권농사는 백성에게 곡물과 포 등을 수취하여 왕과 지배층에게 공급하기도 하였다. 전반적으로 고려 전기에는 권농의 임무를 중시하였으나 후기에 이르면 수취 임무가 강조되었다. 또한 봉명사신인 권농사는 대체로 6품의 관원으로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