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 강릉도(江陵道)와 평양도(平壤道)에서 백성을 안무하고 수령을 감찰하던 지방 관직.
설치와 운영
한편 1270년(원종 11)에 몽골이 서경에 동녕부를 설치하여 북계와 서해도를 관할하다가 1290년(충렬왕 16)에 고려에 반환하였다. 그 지역을 통치하기 위하여 존무사를 파견하였다. 1310년(충선왕 2)에 민보(閔甫)를 평양부윤 겸 존무사(平壤府尹兼存撫使)로 임명하였다. 이때 평양존무사는 평양부, 즉 서경을 중심으로 서북면을 관할하였다. 이후 평양윤을 평양도존무사(平壤道存撫使), 서북면존무사(西北面存撫使), 서경존무사(西京存撫使), 안정도존무사(安定道存撫使) 등의 명칭으로 파견하였다.
『고려사』 백관지에 따르면 1330년(충숙왕 17)에 충혜왕이 평양도존무사를 순무사로 삼았다. 그런데 이후에도 1339년(충숙왕 후 8)에 유방세(劉方世)를 서북면존무사로 임명하고 1347년(충목왕 3)에 평양윤 윤지표(尹之彪)가 서북면존무사로 활동하였다.
한편 1318년(충숙왕 5)에 탐라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배정지(裴廷芝)를 존무사로 임명하여 파견하였다. 탐라존무사는 반란을 토벌하기 위한 봉명사신의 일종이었다.
임무와 직능
또한 1363년(공민왕 12)에도 각 도의 존무와 안렴으로 하여금 각 항목의 토지 대장을 대조하고 조세를 수납하게 하였다. 존무사는 백성의 괴로움을 묻고, 지방 관원으로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자를 살피며, 조세를 수납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한편 존무사는 쌍성총관부를 탈환할 때에 직접 작전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변천 사항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배정지 묘지명(裵廷芝墓誌銘」
- 「삼일포매향비(三日浦埋香碑)」
단행본
- 박용운, 『"고려사" 백관지 역주』(신서원, 2009)
논문
- 윤경진, 「고려말 조선초 동계의 운영체계 변화와 도의 재편」(『한국중세사연구』 44, 한국중세사학회, 2016)
- 이정기, 「고려시기 양계 통치체제 연구」(숙명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2)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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