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 사찰의 경제적 지원 내지는 불교 진흥 정책을 위해 설치된 임시 관부.
설치 목적
기능과 역할 및 변천사항
의의 및 평가
도감이 설치되던 당시의 고려에서는 홍건적(紅巾賊)과 왜구(倭寇)의 침입에 따른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한 기도와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명복을 비는 거국적인 불교 행사가 자주 거행되던 상황이었다. 더욱이 신돈(辛旽)이 당시의 최고 실무 책임자였다는 시대적 배경을 통하여 볼 때 임시 관부인 홍복도감 등을 통한 사찰의 경제적 지원 내지는 불교 진흥 정책(佛敎振興政策)이 당시에 적극적으로 추진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려 말, 주자학(朱子學)을 정치 윤리로 하는 신흥사대부(新興士大夫)들이 억불 숭유 정책(抑佛崇儒政策)으로, 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던 홍복도감을 비롯한 기관의 폐단을 들어 불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리고 1391년에 이르러 이를 폐지하고 그 대신 자섬저화고(資贍楮貨庫)를 세워 저폐(楮幣)를 만들자는 논의를 할 정도로, 그 재력을 바탕으로 한 경제적 측면을 강조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이제현처권씨묘지명(李齊賢妻權氏墓誌銘)」
단행본
- 『『고려사』 백관지 역주』(신서원, 2009)
- 『고려묘지명집성』(한림대출판부, 2012)
논문
- 문형만, 「고려특수관부연구」(『부산사학』 9, 부산사학회, 1985)
- 이정훈, 「고려시대 도감의 구조와 기능」(『한국사의 구조와 전개』, 하현강교수정년기념논총간행위원회, 200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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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고려 말기ㆍ조선 전기에, 닥나무 껍질로 만들어 쓰던 종이돈. 발행 초기에는 한 장이 쌀 두 말의 값어치를 가졌으나 그 뒤 돈의 가치가 계속 떨어져 겨우 쌀 한 되의 값어치를 가지게 되었으며, 본격적인 유통은 안 되었다. 중종 7년(1512)경에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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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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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정부나 관청.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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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성리학’을 달리 이르는 말. 주자가 집대성한 데에서 이처럼 이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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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숭상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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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조선 시대에, 중앙에서 각 사(司) 또는 청(廰)의 우두머리가 아니면서 각 관아의 일을 다스리던 직책.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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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온 나라에서 국민이 모두 하는. 또는 그런 것.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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