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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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군무부 군사특파단 청년공작원, 광복군 총사령부 부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노복선 (盧福善)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군무부 군사특파단 청년공작원, 광복군 총사령부 부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한국독립당 감찰위원장,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모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공진원 (公震遠)
일제강점기 때, 한국독립당 감찰위원장,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모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는 1939년 중국 충칭[重慶]에서 아나키즘 계열 청년들이 결성한 항일무장조직이다. 결성 직후 충칭을 떠나 시안[西安]에서 한국청년훈련반(韓國靑年訓練班)을 설치하여 군사훈련을 받았다. 항일전투에 참여하고, 초모(招募) 공작활동을 벌였다. 1941년 1월 1일 임시정부에 합류하여 광복군 제5지대로 재편되었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 (韓國靑年戰地工作隊)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는 1939년 중국 충칭[重慶]에서 아나키즘 계열 청년들이 결성한 항일무장조직이다. 결성 직후 충칭을 떠나 시안[西安]에서 한국청년훈련반(韓國靑年訓練班)을 설치하여 군사훈련을 받았다. 항일전투에 참여하고, 초모(招募) 공작활동을 벌였다. 1941년 1월 1일 임시정부에 합류하여 광복군 제5지대로 재편되었다.
송정헌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독립당의 일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중국 항저우에서 태어났으며, 독립운동가 유영파와 결혼하였다. 1939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고, 1940년 6월 중국 충칭에서 결성된 한국혁명여성동맹의 창립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여당인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일제 패망 때까지 독립운동을 펼쳤다. 대한민국 정부는 송정헌의 이러한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하여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송정헌 (宋靜軒)
송정헌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독립당의 일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중국 항저우에서 태어났으며, 독립운동가 유영파와 결혼하였다. 1939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고, 1940년 6월 중국 충칭에서 결성된 한국혁명여성동맹의 창립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여당인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일제 패망 때까지 독립운동을 펼쳤다. 대한민국 정부는 송정헌의 이러한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하여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박영준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에 참여하였고,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배속되어 간부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42년 4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서무과에 배속되었으며, 1943년 1월 20일 한국독립당 한국청년회의 예술간사, 임시정부 재무부 이재과, 내무부 경무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제3지대 제1구대장 겸 제3지대 훈련총대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 등에서 활동하였다.
박영준 (朴英俊)
박영준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에 참여하였고,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배속되어 간부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42년 4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서무과에 배속되었으며, 1943년 1월 20일 한국독립당 한국청년회의 예술간사, 임시정부 재무부 이재과, 내무부 경무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제3지대 제1구대장 겸 제3지대 훈련총대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 등에서 활동하였다.
김효숙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종군하여 대일 심리전을 펼쳤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1937년 중국 광둥성의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였고,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 집행위원 겸 훈련부 주임, 1944년 3월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10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종군하여 대일 심리전 전개하던 중 8·15광복을 맞았다.
김효숙 (金孝淑)
김효숙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종군하여 대일 심리전을 펼쳤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1937년 중국 광둥성의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였고,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 집행위원 겸 훈련부 주임, 1944년 3월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10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종군하여 대일 심리전 전개하던 중 8·15광복을 맞았다.
민영숙은 일제강점기 중국 충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부 및 외무부 직원으로 활동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였고, 1942년 2월 9일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부 부원으로 선임된 이후 임시정부 법무부 총무과 과원, 외무부 정보과 과원, 회계검사원 조리원,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의 선전과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민영숙 (閔泳淑)
민영숙은 일제강점기 중국 충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부 및 외무부 직원으로 활동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였고, 1942년 2월 9일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부 부원으로 선임된 이후 임시정부 법무부 총무과 과원, 외무부 정보과 과원, 회계검사원 조리원,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의 선전과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민영주는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에서 헌기(獻旗)하였고,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부 경무원 겸 재무원, 한국독립당 당원, 임시정부 비서처 서기, 임시정부 주석판공실 서기 등을 지냈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선전 활동을 하였고, 1945년 4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편입되었다.
민영주 (閔泳珠)
민영주는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에서 헌기(獻旗)하였고,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부 경무원 겸 재무원, 한국독립당 당원, 임시정부 비서처 서기, 임시정부 주석판공실 서기 등을 지냈다.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선전 활동을 하였고, 1945년 4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편입되었다.
신순호는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1939년 2월 조직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하여 한중 합동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립되자 참가하여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에 참석하였으며, 임시정부 생계위원회 회계부를 거쳐 1945년 초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
신순호 (申順浩)
신순호는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1939년 2월 조직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하여 한중 합동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립되자 참가하여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에 참석하였으며, 임시정부 생계위원회 회계부를 거쳐 1945년 초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석동은 일제강점기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2지대 본부요원으로 활동하였고, 1943년 6월 『독립신문』 중경판 발행을 위해 힘썼던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였고, 1943년 3월 한국독립당에 입당하였다. 1945년 5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 중국지부가 추진한 독수리작전에 참여하여 정보파괴반을 수료하였다.
김석동 (金奭東)
김석동은 일제강점기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2지대 본부요원으로 활동하였고, 1943년 6월 『독립신문』 중경판 발행을 위해 힘썼던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였고, 1943년 3월 한국독립당에 입당하였다. 1945년 5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 중국지부가 추진한 독수리작전에 참여하여 정보파괴반을 수료하였다.
오희영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광복군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2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중국인들에게 일본의 침략상을 알렸다. 이후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3지대 간부로 푸양에서 초모활동을 비롯한 각종 공작 활동을 수행하였다. 1944년 11월에는 신송식과 함께 푸양의 한국광복군훈련반에서 군사 교육을 받은 졸업생 50여 명을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는 충칭으로 인솔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오희영 (吳姬英)
오희영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광복군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2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중국인들에게 일본의 침략상을 알렸다. 이후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3지대 간부로 푸양에서 초모활동을 비롯한 각종 공작 활동을 수행하였다. 1944년 11월에는 신송식과 함께 푸양의 한국광복군훈련반에서 군사 교육을 받은 졸업생 50여 명을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는 충칭으로 인솔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오희옥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광복군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2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연극, 노래, 무용 공연 등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한중연대의 필요성을 알리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았다. 그 외, 한국광복군 대원으로 참여하는 한편, 한국독립당 당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오희옥 (吳姬玉)
오희옥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광복군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2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연극, 노래, 무용 공연 등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한중연대의 필요성을 알리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았다. 그 외, 한국광복군 대원으로 참여하는 한편, 한국독립당 당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