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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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의 날(韓服의 날)은 한민족 고유의 전통 옷인 한복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일상에서도 입도록 적극 권장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1996년 12월 4일에 문화체육부와 ‘한복 입는 날 지정 추진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한복 입는 날’ 선포식에서 비롯되었다. 2018년부터 기념일보다는 축제 성격을 지닌 한복 문화 주간으로 행사명이 변경되었으며, 2021년에는 미국에서도 한복의 날이 선포되기도 하였다.
한복의 날 (韓服의 날)
한복의 날(韓服의 날)은 한민족 고유의 전통 옷인 한복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일상에서도 입도록 적극 권장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1996년 12월 4일에 문화체육부와 ‘한복 입는 날 지정 추진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한복 입는 날’ 선포식에서 비롯되었다. 2018년부터 기념일보다는 축제 성격을 지닌 한복 문화 주간으로 행사명이 변경되었으며, 2021년에는 미국에서도 한복의 날이 선포되기도 하였다.
백의민족은 흰옷을 즐겨 입는 전통에서 비롯된 한민족의 별칭이다. 고대부터 한민족은 제천(祭天) 사상과 여러 종교 사상의 영향을 받아 흰색을 숭상하고 흰옷을 즐겨 입었다. 한민족의 문화 양식을 지배한 삼교(三敎) 사상은 절제의 미학으로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색을 강조하여 흰옷을 즐기는 전통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백의민족 (白衣民族)
백의민족은 흰옷을 즐겨 입는 전통에서 비롯된 한민족의 별칭이다. 고대부터 한민족은 제천(祭天) 사상과 여러 종교 사상의 영향을 받아 흰색을 숭상하고 흰옷을 즐겨 입었다. 한민족의 문화 양식을 지배한 삼교(三敎) 사상은 절제의 미학으로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색을 강조하여 흰옷을 즐기는 전통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교복은 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입도록 만든 제복이다. 갑오개혁으로 신분 막론하고 능력이 있으면 누구나 학생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면서 근대적 의미의 교복이 탄생하였다. 교복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군부정권기, 민주화시대를 거치면서 시대적 요구에 따라 정부 또는 학교장 재량으로 제정되고, 폐지되고, 다시 권장되면서, 민족 의식이 표현되거나 말살되기도 하고, 평준화, 획일성, 균일성, 통제가 강조되거나, 강제적 자율화가 진행되기도 했으며, 자부심, 소속감, 엘리트 의식이 드러나거나, 다양성과 개성, 실용성과 편안함이 추구되기도 하였다.
교복 (校服)
교복은 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입도록 만든 제복이다. 갑오개혁으로 신분 막론하고 능력이 있으면 누구나 학생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면서 근대적 의미의 교복이 탄생하였다. 교복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군부정권기, 민주화시대를 거치면서 시대적 요구에 따라 정부 또는 학교장 재량으로 제정되고, 폐지되고, 다시 권장되면서, 민족 의식이 표현되거나 말살되기도 하고, 평준화, 획일성, 균일성, 통제가 강조되거나, 강제적 자율화가 진행되기도 했으며, 자부심, 소속감, 엘리트 의식이 드러나거나, 다양성과 개성, 실용성과 편안함이 추구되기도 하였다.
표준간소복(標準簡素服)은 1961년 9월 재건국민운동본부에서 전 국민의 의복 간소화를 권장하기 위해 제정한 복장이다. 검소하고 활동에 편리한 6종(남자 근무복, 여자 근무복, 남자 하절 근무복, 남자 하절 노동복, 여자 하절 근무복, 여자 개량 한복)의 표준간소복이 1961년 9월에 제정되었다. 국가공무원, 지방공무원, 정부관리기업체의 모든 직원부터 먼저 착용하도록 하였다. 정부는 1961년 10월을 ‘새 생활 실천의 달’로 정하고 언론을 통해 전 국민의 표준간소복 입기를 권장하였다.
표준간소복 (標準簡素服)
표준간소복(標準簡素服)은 1961년 9월 재건국민운동본부에서 전 국민의 의복 간소화를 권장하기 위해 제정한 복장이다. 검소하고 활동에 편리한 6종(남자 근무복, 여자 근무복, 남자 하절 근무복, 남자 하절 노동복, 여자 하절 근무복, 여자 개량 한복)의 표준간소복이 1961년 9월에 제정되었다. 국가공무원, 지방공무원, 정부관리기업체의 모든 직원부터 먼저 착용하도록 하였다. 정부는 1961년 10월을 ‘새 생활 실천의 달’로 정하고 언론을 통해 전 국민의 표준간소복 입기를 권장하였다.
이영희는 현대 한복의 세계화를 이끈 디자이너이다. 이영희는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부업으로 시작한 이불솜 장사가 계기가 되어 40대에 한복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남다른 색감과 열정을 지닌 이영희는 한복 디자이너로 만족하지 않고, 한국 최초로 파리 프레타포르테 패션쇼에 참가하였고, 뉴욕에 한복 박물관을 건립하는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HANBOK’이라는 고유 명사와 한복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알린 패션디자이너로서 명성이 높다.
이영희 (李英姬)
이영희는 현대 한복의 세계화를 이끈 디자이너이다. 이영희는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부업으로 시작한 이불솜 장사가 계기가 되어 40대에 한복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남다른 색감과 열정을 지닌 이영희는 한복 디자이너로 만족하지 않고, 한국 최초로 파리 프레타포르테 패션쇼에 참가하였고, 뉴욕에 한복 박물관을 건립하는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HANBOK’이라는 고유 명사와 한복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알린 패션디자이너로서 명성이 높다.
이리자는 한복의 현대화와 패션화를 이끈 한복 디자이너이다. 본명은 이은임이며, 1966년 이리자 한복 연구소를 설립하였고, 1970년 한국인의 체형을 보완하는 ‘이리자식 한복 패턴’을 개발해 보급하였다. 국내외에서 다수의 한복 작품 발표회를 개최하여 ‘한복 디자이너’라는 개념을 도입하였고 한복의 현대화와 패션화를 이끈 선구적인 한복 디자이너이다.
이리자 (李利子)
이리자는 한복의 현대화와 패션화를 이끈 한복 디자이너이다. 본명은 이은임이며, 1966년 이리자 한복 연구소를 설립하였고, 1970년 한국인의 체형을 보완하는 ‘이리자식 한복 패턴’을 개발해 보급하였다. 국내외에서 다수의 한복 작품 발표회를 개최하여 ‘한복 디자이너’라는 개념을 도입하였고 한복의 현대화와 패션화를 이끈 선구적인 한복 디자이너이다.
질경이우리옷사업단은 1984년 민족생활문화연구소 부설로 설립된 우리옷사업을 위한 재단이다. 즉 ‘우리옷입기운동’을 통해 근대화 과정에서 맥이 끊겼던 우리 전통 의복 문화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재인식하고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삶을 위한 ‘우리옷’을 되살리려는 실천적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한국 전통 복식이 개인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시대를 반영하는 사회적 산물로 서구 중심 패션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창조적으로 변화·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반문화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던 생활한복을 정착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질경이우리옷사업단 (질경이우리옷事業團)
질경이우리옷사업단은 1984년 민족생활문화연구소 부설로 설립된 우리옷사업을 위한 재단이다. 즉 ‘우리옷입기운동’을 통해 근대화 과정에서 맥이 끊겼던 우리 전통 의복 문화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재인식하고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삶을 위한 ‘우리옷’을 되살리려는 실천적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한국 전통 복식이 개인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시대를 반영하는 사회적 산물로 서구 중심 패션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창조적으로 변화·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반문화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던 생활한복을 정착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