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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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경상도 지방의 행정구역을 동·서로 나누었을 때 경상도 서부 지역의 행정구역.
경상우도 (慶尙右道)
조선시대에 경상도 지방의 행정구역을 동·서로 나누었을 때 경상도 서부 지역의 행정구역.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고려시대 대몽항쟁 당시 고려대장경 목판을 조각하던 곳으로 추정되는 사찰터.
강화 선원사지 (江華 禪源寺址)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고려시대 대몽항쟁 당시 고려대장경 목판을 조각하던 곳으로 추정되는 사찰터.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옛 지명.
안의 (安義)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옛 지명.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黃梅山) 남쪽 기슭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의 사찰터.
합천 영암사지 (陜川 靈巖寺址)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黃梅山) 남쪽 기슭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의 사찰터.
포항 합천이씨 전서공파 소장 유물은 경상북도 포항 합천 이씨 전서공파 후손가에 소장된 종가 문서이다. 이응표에게 발급한 「선무원종공신녹권」을 비롯하여 관직 임명 교지, 유서, 호구단자 등의 일괄 고문서이다. 「선무원종공신녹권」은 녹권 수령자가 많아 매우 많이 발급되었는데 전래본이 많지 않아서 그 가치가 크다. 이응표는 임진왜란 중에 가리포 첨사를 역임하며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많은 전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에 책봉되었다. 이후 그는 밀양 도호부사, 선산 도호부사, 전라우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되었는데 이때 내린 교지도 남아있다.
포항 합천이씨 전서공파 소장 유물 (浦項 陜川李氏 典書公派 所藏 遺物)
포항 합천이씨 전서공파 소장 유물은 경상북도 포항 합천 이씨 전서공파 후손가에 소장된 종가 문서이다. 이응표에게 발급한 「선무원종공신녹권」을 비롯하여 관직 임명 교지, 유서, 호구단자 등의 일괄 고문서이다. 「선무원종공신녹권」은 녹권 수령자가 많아 매우 많이 발급되었는데 전래본이 많지 않아서 그 가치가 크다. 이응표는 임진왜란 중에 가리포 첨사를 역임하며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많은 전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에 책봉되었다. 이후 그는 밀양 도호부사, 선산 도호부사, 전라우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되었는데 이때 내린 교지도 남아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반월형석도·민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집터.
합천 봉계리 유적 (陜川 鳳溪里 遺蹟)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반월형석도·민무늬토기 등이 출토된 집터.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합천 반계제 고분군 (陜川 磻溪堤 古墳群)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1919년 3·1운동 때 경상남도 합천군 내 각처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합천 3·1운동 (陜川 三一運動)
1919년 3·1운동 때 경상남도 합천군 내 각처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일제강점기 때, 일본 우베일일신문사 기자, 편집국장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국회의원을 역임한 언론인·정치인.
김명수 (金命洙)
일제강점기 때, 일본 우베일일신문사 기자, 편집국장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국회의원을 역임한 언론인·정치인.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에 있는 공립종합고등학교.
합천고등학교 (陜川高等學校)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에 있는 공립종합고등학교.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에 있는 공립중학교.
합천중학교 (陜川中學校)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에 있는 공립중학교.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합천 소오리 고분군 (陜川 巢梧里 古墳郡)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합천 장단리 고분군 (陜川 長湍里 古墳群)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합천 가산리 고분군 (陜川 佳山里 古墳群)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수영야류는 부산광역시 수영구 일대에서 전승되는 가면극이다. 1860~70년대부터 전승되기 시작하였으며, 전체 4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근의 야류와 오광대처럼 합천밤마리 대광대패의 오광대 공연의 영향이 컸다. 1971년에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수영야류 (水營野遊)
수영야류는 부산광역시 수영구 일대에서 전승되는 가면극이다. 1860~70년대부터 전승되기 시작하였으며, 전체 4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근의 야류와 오광대처럼 합천밤마리 대광대패의 오광대 공연의 영향이 컸다. 1971년에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옥계서원은 조선 후기 윤봉구와 최남두 등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에 설립한 서원이다. 윤봉구의 문인이자 합천 출신인 최남두가 스승을 기리기 위해 세운 영당에서 발전한 서원이다. 조선 후기 경상도 지역에서 소수인 노론계 서원의 설립 과정과 운영 양상 그리고 제향자들도 보기 드문 사례에 해당하는 성격을 가진 공간이다. 1983년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옥계서원 (玉溪書院)
옥계서원은 조선 후기 윤봉구와 최남두 등을 추모하기 위해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에 설립한 서원이다. 윤봉구의 문인이자 합천 출신인 최남두가 스승을 기리기 위해 세운 영당에서 발전한 서원이다. 조선 후기 경상도 지역에서 소수인 노론계 서원의 설립 과정과 운영 양상 그리고 제향자들도 보기 드문 사례에 해당하는 성격을 가진 공간이다. 1983년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김기범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산청군 생비량면 출신으로 1919년 3월 23일 합천군 삼가면 장날 만세시위에 생비량면 주민들을 이끌고 참가하였다. 삼가 시위는 3월 18일 400명의 1차 시위에 이어, 3월 23일 합천군 쌍백면 · 가회면 · 삼가면, 산청군 생비량면 등이 연합하여 2차로 1만 3,000명의 대규모 만세시위로 전개되었다. 김기범은 만세시위에 앞장서다가 일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김기범 (金箕範)
김기범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산청군 생비량면 출신으로 1919년 3월 23일 합천군 삼가면 장날 만세시위에 생비량면 주민들을 이끌고 참가하였다. 삼가 시위는 3월 18일 400명의 1차 시위에 이어, 3월 23일 합천군 쌍백면 · 가회면 · 삼가면, 산청군 생비량면 등이 연합하여 2차로 1만 3,000명의 대규모 만세시위로 전개되었다. 김기범은 만세시위에 앞장서다가 일경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강시만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합천군 대양면 출신이다. 1919년 3월 19일 합천면과 대양면 주민 300여 명이 합천 읍내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17명이 구금되었다. 3월 20일 구금자 구출을 위한 시위가 다시 전개되었다. 강시만은 대양면 12인 결사대의 한 사람으로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대에 앞장서다가 일본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순국하였다.
강시만 (姜時晩)
강시만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합천군 대양면 출신이다. 1919년 3월 19일 합천면과 대양면 주민 300여 명이 합천 읍내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17명이 구금되었다. 3월 20일 구금자 구출을 위한 시위가 다시 전개되었다. 강시만은 대양면 12인 결사대의 한 사람으로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대에 앞장서다가 일본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순국하였다.
공재규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8일, 삼가 장터에서 1차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3일 합천군 쌍백면 주민 4,000여 명과 함께 쌍백면사무소를 방화한 후, 삼가 장터의 합천군 쌍백면 · 가회면 · 삼가면, 산청군 생비량면 등 1만 3000여 명의 연합 시위에 참여하였다. 일본 경찰의 총격에 항의하며 시위대에 앞장서다가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공재규 (孔在奎)
공재규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8일, 삼가 장터에서 1차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23일 합천군 쌍백면 주민 4,000여 명과 함께 쌍백면사무소를 방화한 후, 삼가 장터의 합천군 쌍백면 · 가회면 · 삼가면, 산청군 생비량면 등 1만 3000여 명의 연합 시위에 참여하였다. 일본 경찰의 총격에 항의하며 시위대에 앞장서다가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영기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9일 합천 · 대양 시위대의 합천 읍내 만세시위에서 17명이 구금되자, 3월 20일 구금자 구출을 위하여 다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대양면에서는 12인 결사대를 조직하여 합천경찰서로 돌입하였다. 김영기는 12인 결사대의 한 사람으로 시위대에 앞장서다 일본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순국하였다.
김영기 (金永琪)
김영기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9일 합천 · 대양 시위대의 합천 읍내 만세시위에서 17명이 구금되자, 3월 20일 구금자 구출을 위하여 다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대양면에서는 12인 결사대를 조직하여 합천경찰서로 돌입하였다. 김영기는 12인 결사대의 한 사람으로 시위대에 앞장서다 일본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