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헌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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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헌강왕릉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49대 헌강왕의 능이다. 경문왕의 아들로 875년에 즉위하여 12년간 재위하였다. 헌강왕을 보리사의 동남쪽에 장사지냈다는 『삼국사기』에 근거하여 헌강왕릉으로 추정하고 있다. 흙으로 덮은 원형봉토분으로 남북 길이가 긴 장방형의 굴식돌방무덤이다. 널방의 벽면은 상부로 올라갈수록 안으로 기울었으며 구석 부분은 엇물려쌓기 방식으로 석재를 처리하고 있다. 무덤 보호석을 다듬은 돌을 사용하여 4단으로만 쌓아 올렸는데, 삼국통일 이후의 신라왕릉으로서는 유례가 없는 것이다.
경주 헌강왕릉 (慶州 憲康王陵)
경주 헌강왕릉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49대 헌강왕의 능이다. 경문왕의 아들로 875년에 즉위하여 12년간 재위하였다. 헌강왕을 보리사의 동남쪽에 장사지냈다는 『삼국사기』에 근거하여 헌강왕릉으로 추정하고 있다. 흙으로 덮은 원형봉토분으로 남북 길이가 긴 장방형의 굴식돌방무덤이다. 널방의 벽면은 상부로 올라갈수록 안으로 기울었으며 구석 부분은 엇물려쌓기 방식으로 석재를 처리하고 있다. 무덤 보호석을 다듬은 돌을 사용하여 4단으로만 쌓아 올렸는데, 삼국통일 이후의 신라왕릉으로서는 유례가 없는 것이다.
금입택은 통일신라의 수도 경주에 있던 귀족들의 대주택이다. 쇠드리댁·금드리댁으로 불리며 금을 입힌 집 또는 금이 들어가는 집이라는 뜻이다. 금입택의 집 이름으로는 재매정택, 지상택 등이 있으며 『삼국유사』에 39채가 기록되어 있다. 금입택은 삼국통일 전쟁의 포상으로 받은 지방의 토지와 관직 독점으로 이룩한 진골귀족들의 재력과 호사스러운 생활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력을 가진 금입택의 주인은 불교 사원 건립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금입택으로 대표되는 귀족들의 사치 생활은 왕위 쟁탈전으로 인한 국가 권력의 약화를 보여준다.
금입택 (金入宅)
금입택은 통일신라의 수도 경주에 있던 귀족들의 대주택이다. 쇠드리댁·금드리댁으로 불리며 금을 입힌 집 또는 금이 들어가는 집이라는 뜻이다. 금입택의 집 이름으로는 재매정택, 지상택 등이 있으며 『삼국유사』에 39채가 기록되어 있다. 금입택은 삼국통일 전쟁의 포상으로 받은 지방의 토지와 관직 독점으로 이룩한 진골귀족들의 재력과 호사스러운 생활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력을 가진 금입택의 주인은 불교 사원 건립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금입택으로 대표되는 귀족들의 사치 생활은 왕위 쟁탈전으로 인한 국가 권력의 약화를 보여준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영축산(靈鷲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9대 헌강왕 당시 창건한 사찰.
영축산 망해사 (靈鷲山 望海寺)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영축산(靈鷲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9대 헌강왕 당시 창건한 사찰.
신라의 제56대 왕, 경순왕의 어머니로, 경순왕 즉위 후에 왕태후로 추존된 왕족.
계아태후 (桂娥太后)
신라의 제56대 왕, 경순왕의 어머니로, 경순왕 즉위 후에 왕태후로 추존된 왕족.
『계원필경』은 신라 말기의 학자·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의 시문집(詩文集)이다. 최치원은 당 고변(高騈)의 휘하에 4년여 동안 종군할 때 1만여 수의 시문을 지었는데, 신라로 귀국한 뒤 그가 직접 종군 당시 시문을 선별하여 20권으로 편찬하여 50수의 시와 320편의 문을 수록하였다. 최치원의 당나라 종사관 시절 대표 저작이며,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문집이다.
계원필경 (桂苑筆耕)
『계원필경』은 신라 말기의 학자·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의 시문집(詩文集)이다. 최치원은 당 고변(高騈)의 휘하에 4년여 동안 종군할 때 1만여 수의 시문을 지었는데, 신라로 귀국한 뒤 그가 직접 종군 당시 시문을 선별하여 20권으로 편찬하여 50수의 시와 320편의 문을 수록하였다. 최치원의 당나라 종사관 시절 대표 저작이며,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문집이다.
신라 말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발원문(發願文).
봉위헌강대왕결화엄경사원문 (奉爲獻康大王結華嚴經社願文)
신라 말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발원문(發願文).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9대 헌강왕 때 반역하다가 복주(伏誅)된 관리. 반역자.
신홍 (信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9대 헌강왕 때 반역하다가 복주(伏誅)된 관리. 반역자.
없음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8대 경문왕 연간에 중수한 누정. 누각·조경건축물.
월상루 (月上樓)
없음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8대 경문왕 연간에 중수한 누정. 누각·조경건축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집사성시중, 상대등 등을 역임한 관리이다. 862년(경문왕 2) 정월에 아찬(阿飡)의 관등으로 집사성(執事省) 시중이 되었고, 874년(경문왕 14)에는 상대등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이찬으로 승진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재직한 지 1년이 지난 875년에 헌강왕이 즉위하자 상대등에서 물러났다.
위진 (魏珍)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집사성시중, 상대등 등을 역임한 관리이다. 862년(경문왕 2) 정월에 아찬(阿飡)의 관등으로 집사성(執事省) 시중이 되었고, 874년(경문왕 14)에는 상대등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이찬으로 승진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재직한 지 1년이 지난 875년에 헌강왕이 즉위하자 상대등에서 물러났다.
통일신라의 제52대 효공왕의 어머니로, 문자왕후라고도 불리는 왕족.
의명왕태후 (義明王太后)
통일신라의 제52대 효공왕의 어머니로, 문자왕후라고도 불리는 왕족.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3대 신덕왕의 왕비.
의성왕후 (義成王后)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3대 신덕왕의 왕비.
통일신라의 제50대(재위: 886년~887년) 왕.
정강왕 (定康王)
통일신라의 제50대(재위: 886년~887년) 왕.
처용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리로 『삼국유사』 처용설화의 주인공이다. 설화상으로는 동해 용왕의 아들로 헌강왕을 따라 서울로 와서 정사를 도왔다. 역신이 처용의 아름다운 아내를 탐해 동침했으나 노여워하지 않고 춤추며 노래를 부르자 감동하여 향후 당신의 모양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처용의 모습을 그린 부적을 문 앞에 붙여 귀신을 물리치는 풍습은 여기서 유래한다. 「처용가」와 처용무는 후대에까지 전해졌다. 헌강왕 대의 사치와 가무 성행, 호국신의 잦은 출현 등 역사적 배경이 녹아 있는 설화이다.
처용 (處容)
처용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관리로 『삼국유사』 처용설화의 주인공이다. 설화상으로는 동해 용왕의 아들로 헌강왕을 따라 서울로 와서 정사를 도왔다. 역신이 처용의 아름다운 아내를 탐해 동침했으나 노여워하지 않고 춤추며 노래를 부르자 감동하여 향후 당신의 모양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처용의 모습을 그린 부적을 문 앞에 붙여 귀신을 물리치는 풍습은 여기서 유래한다. 「처용가」와 처용무는 후대에까지 전해졌다. 헌강왕 대의 사치와 가무 성행, 호국신의 잦은 출현 등 역사적 배경이 녹아 있는 설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