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현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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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륭원지」는 1789년 정조가 장헌세자의 무덤을 현륭원으로 이장하고 지은 지문이다. 정조가 장헌세자의 현릉원을 수원부 화산으로 이장하고 지석의 지문을 친히 지었다. 지석은 묘 옆이나 앞에 묻는 것인데 지석에 새긴 글이 지문이다. 지문에는 죽은 사람의 생몰년, 행장, 묘소의 위치 등이 적혀있다. 「현륭원지」에는 원의 위치·작성 경위·가계·행록·추숭·자손 등을 기록하였다. 현륭원 지문은 정조의 『홍재전서』 16권에 수록되어 있다. 글의 작성에 이용된 전거들은 「행록」, 「기주」, 『궁중기문』, 『정원일기』, 『궁원의』 등이다.
현륭원지 (顯隆園誌)
「현륭원지」는 1789년 정조가 장헌세자의 무덤을 현륭원으로 이장하고 지은 지문이다. 정조가 장헌세자의 현릉원을 수원부 화산으로 이장하고 지석의 지문을 친히 지었다. 지석은 묘 옆이나 앞에 묻는 것인데 지석에 새긴 글이 지문이다. 지문에는 죽은 사람의 생몰년, 행장, 묘소의 위치 등이 적혀있다. 「현륭원지」에는 원의 위치·작성 경위·가계·행록·추숭·자손 등을 기록하였다. 현륭원 지문은 정조의 『홍재전서』 16권에 수록되어 있다. 글의 작성에 이용된 전거들은 「행록」, 「기주」, 『궁중기문』, 『정원일기』, 『궁원의』 등이다.
만년제는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저수지이다. 18세기 말엽 정조 대에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 정비 과정에서 대대적인 개축 공사가 이루어지면서 ‘방축수’라는 명칭이 ‘만년제’로 바뀌었고, 수문 괴성 등이 설치되어 주변 전토에 몽리 혜택을 내려준 저수지이다. 현륭원 물길 입구에 위치하여 현륭원 아래 백성의 논밭에 물을 대기 위한 수리 시설이다. 정조 대 후반 수리 정책의 전개 과정, 현륭원 조성과 정비 사업 등을 검토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만년제 (萬年堤)
만년제는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저수지이다. 18세기 말엽 정조 대에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 정비 과정에서 대대적인 개축 공사가 이루어지면서 ‘방축수’라는 명칭이 ‘만년제’로 바뀌었고, 수문 괴성 등이 설치되어 주변 전토에 몽리 혜택을 내려준 저수지이다. 현륭원 물길 입구에 위치하여 현륭원 아래 백성의 논밭에 물을 대기 위한 수리 시설이다. 정조 대 후반 수리 정책의 전개 과정, 현륭원 조성과 정비 사업 등을 검토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 있는 조선후기 제22대 정조가 현륭원 전배를 위해 가설한 다리. 홍교·석교.
만안교 (萬安橋)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 있는 조선후기 제22대 정조가 현륭원 전배를 위해 가설한 다리. 홍교·석교.
사일은 조선 후기 정조대에 용주사 주지와 도승통을 지냈고 남북한산성 팔도도총섭을 겸임한 승려이다. 법호는 보경이다.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현륭원을 조성하면서 재궁으로 용주사를 창건하고 도화주이자 주지인 사일을 팔로의 도승통으로 임명했다.
사일 (獅馹)
사일은 조선 후기 정조대에 용주사 주지와 도승통을 지냈고 남북한산성 팔도도총섭을 겸임한 승려이다. 법호는 보경이다.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현륭원을 조성하면서 재궁으로 용주사를 창건하고 도화주이자 주지인 사일을 팔로의 도승통으로 임명했다.
『원행을묘정리의궤』는 1797년 정리소에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행사를 날짜별로 정리해 간행한 의궤이다. 1795년 윤2월 9일 정조가 회갑을 맞은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현륭원과 화성 행궁에 행차하여 올린 진연 및 환궁 후의 행사 등을 정리소에서 날짜별로 기록한 책이다. 총 10권 8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최초의 활자본 의궤로 금속활자로 간행되었다. 의궤에는 행사 내용과 함께 행궁 배치도와 행사의 주요 장면 그림, 기물 도식, 반차도 등의 도식이 실려 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 (園幸乙卯整理儀軌)
『원행을묘정리의궤』는 1797년 정리소에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행사를 날짜별로 정리해 간행한 의궤이다. 1795년 윤2월 9일 정조가 회갑을 맞은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현륭원과 화성 행궁에 행차하여 올린 진연 및 환궁 후의 행사 등을 정리소에서 날짜별로 기록한 책이다. 총 10권 8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최초의 활자본 의궤로 금속활자로 간행되었다. 의궤에는 행사 내용과 함께 행궁 배치도와 행사의 주요 장면 그림, 기물 도식, 반차도 등의 도식이 실려 있다.
용주사는 경기도 화성시 화산에 있던 갈양사터에 창건된 조선 후기 현륭원의 능침사이다. 창건과 동시에 이 절은 전국 5규정소의 하나가 되어 승풍을 규정하였다. 용주사 주지는 팔도도총섭을 겸임하였다. 1955년 사찰 정화 뒤에 조계종 제2교구 본사가 되었다.
화산 용주사 (花山 龍珠寺)
용주사는 경기도 화성시 화산에 있던 갈양사터에 창건된 조선 후기 현륭원의 능침사이다. 창건과 동시에 이 절은 전국 5규정소의 하나가 되어 승풍을 규정하였다. 용주사 주지는 팔도도총섭을 겸임하였다. 1955년 사찰 정화 뒤에 조계종 제2교구 본사가 되었다.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송산리에 있는 회양나무.
용주사 회양나무 (龍珠寺 회楊나무)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송산리에 있는 회양나무.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조선후기 제21대 영조의 아들인 장조와 왕비 헌경왕후의 능.
화성 융릉 (華城 隆陵)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조선후기 제21대 영조의 아들인 장조와 왕비 헌경왕후의 능.
정리사는 조선시대에 국왕의 행차와 관련된 제반 업무를 총괄하던 관리이다. 조선 초에는 임시직이었으나 정조 대에는 국왕의 화성(華城) 행차 시에 행궁 및 일정을 담당하기 위해 별도로 정리소(整理所)를 만들고 그 책임자로 임명하면서 상설 관서가 되었다. 이는 정조 사후 장용영의 혁파와 함께 폐지되었다. 한편 동일한 명칭의 관직이 대한제국기인 1903년에 평양 풍경궁의 관리를 위하여 만들어졌으며, 관리로 칙임관을 임명하였다.
정리사 (整理使)
정리사는 조선시대에 국왕의 행차와 관련된 제반 업무를 총괄하던 관리이다. 조선 초에는 임시직이었으나 정조 대에는 국왕의 화성(華城) 행차 시에 행궁 및 일정을 담당하기 위해 별도로 정리소(整理所)를 만들고 그 책임자로 임명하면서 상설 관서가 되었다. 이는 정조 사후 장용영의 혁파와 함께 폐지되었다. 한편 동일한 명칭의 관직이 대한제국기인 1903년에 평양 풍경궁의 관리를 위하여 만들어졌으며, 관리로 칙임관을 임명하였다.
배를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놓고 그 위에 판재를 건너질러 만든 부교(浮橋). 선교.
배다리 (船橋)
배를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놓고 그 위에 판재를 건너질러 만든 부교(浮橋). 선교.
임오화변은 1762년(영조 38) 영조가 대리청정 중인 사도세자를 폐위하고 뒤주에 가두어 죽인 사건이다. 임오화변의 배경은 영조와 사도세자의 성격적 갈등, 신임의리를 둘러싼 노·소론 당론의 대결 구도, 세자를 둘러싸고 궁중 세력과 연계된 당파 간 갈등 등이 있다. 세자의 비행을 고발한 일을 계기로 영빈이씨가 영조에게 세자의 심각한 병증과 예측 불가능한 변란 위험을 실토하자 영조는 결국 임오화변을 벌였다. 후에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훗날 정조가 되는 세손에게 왕위를 계승하였다. 임오화변은 영조대 후반부터 순조대까지의 주요 정치적 쟁점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된다.
임오화변 (壬午禍變)
임오화변은 1762년(영조 38) 영조가 대리청정 중인 사도세자를 폐위하고 뒤주에 가두어 죽인 사건이다. 임오화변의 배경은 영조와 사도세자의 성격적 갈등, 신임의리를 둘러싼 노·소론 당론의 대결 구도, 세자를 둘러싸고 궁중 세력과 연계된 당파 간 갈등 등이 있다. 세자의 비행을 고발한 일을 계기로 영빈이씨가 영조에게 세자의 심각한 병증과 예측 불가능한 변란 위험을 실토하자 영조는 결국 임오화변을 벌였다. 후에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훗날 정조가 되는 세손에게 왕위를 계승하였다. 임오화변은 영조대 후반부터 순조대까지의 주요 정치적 쟁점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된다.
화성행행도 팔첩병은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소에 참배하기 위해 화성에 행차했을 때 행사를 그린 궁중행사도이다. 정조는 1795년에 생부 사도세자의 묘소에서 제사를 지냈다. 이 그림은 당시 8일간 행사의 주요 장면을 8첩에 그린 것이다. 팔첩병은 오른쪽부터 화성성묘전배도·낙남헌방방도·봉수당진찬도·낙남헌양로연도 순이다. 또 이어서 서장대야조도·득중정어사도·환어행렬도·한강주교환어도로 배열되어 있다. 이 그림은 당대 최고의 화가 김득신, 장한종 등 7명의 화원이 그렸다. 다양한 구도, 섬세한 표현, 우수한 필치가 구사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화성행행도 팔첩병 (華城行幸圖 八疊屛)
화성행행도 팔첩병은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소에 참배하기 위해 화성에 행차했을 때 행사를 그린 궁중행사도이다. 정조는 1795년에 생부 사도세자의 묘소에서 제사를 지냈다. 이 그림은 당시 8일간 행사의 주요 장면을 8첩에 그린 것이다. 팔첩병은 오른쪽부터 화성성묘전배도·낙남헌방방도·봉수당진찬도·낙남헌양로연도 순이다. 또 이어서 서장대야조도·득중정어사도·환어행렬도·한강주교환어도로 배열되어 있다. 이 그림은 당대 최고의 화가 김득신, 장한종 등 7명의 화원이 그렸다. 다양한 구도, 섬세한 표현, 우수한 필치가 구사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조선후기 제22대 정조가 능행할 목적으로 건립한 궁궐.
수원 화성행궁 (水原 華城行宮)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조선후기 제22대 정조가 능행할 목적으로 건립한 궁궐.
화성행행도는 조선 후기에 정조가 화성에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과 여러 행사를 치른 장면을 담은 기록화이다. 수원능행도라고도 한다. 8폭 병풍으로 구성되었는데 첫째 「화성성묘전배도」는 성묘 참배 장면이다. 「낙남헌방방도」·「봉수당진찬도」·「낙남헌양로연도」는 건물 안에서 거행된 행사 장면이다. 「서장대성조도」는 서장대를 중심으로 화성 전역에서 벌어지는 행사 장면이다. 「시흥환어행렬도」·「주교도」는 환궁하는 행렬 장면이다. 화성행행도는 행사 장면을 배치한 구성력, 다양한 표현 형식 등이 매력이다. 이 기록화는 김홍도 화풍으로 제작되었다.
화성행행도 (華城行幸圖)
화성행행도는 조선 후기에 정조가 화성에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과 여러 행사를 치른 장면을 담은 기록화이다. 수원능행도라고도 한다. 8폭 병풍으로 구성되었는데 첫째 「화성성묘전배도」는 성묘 참배 장면이다. 「낙남헌방방도」·「봉수당진찬도」·「낙남헌양로연도」는 건물 안에서 거행된 행사 장면이다. 「서장대성조도」는 서장대를 중심으로 화성 전역에서 벌어지는 행사 장면이다. 「시흥환어행렬도」·「주교도」는 환궁하는 행렬 장면이다. 화성행행도는 행사 장면을 배치한 구성력, 다양한 표현 형식 등이 매력이다. 이 기록화는 김홍도 화풍으로 제작되었다.
경기도 화성 용주사에 소장된 조선 후기의 『불설부모은중경(佛說父母恩重經)』의 경문과 변상도(變相圖) 경판.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 (佛說大報父母恩重經版)
경기도 화성 용주사에 소장된 조선 후기의 『불설부모은중경(佛說父母恩重經)』의 경문과 변상도(變相圖) 경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