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환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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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주리의 난은 557년(양원왕 13)에 고구려의 귀족 간주리가 환도성에서 일으킨 반란이다. 이 반란은 평양 정권에 대해 국내성 세력이 반발하여 일어났다. 이 시기는 광개토대왕 이래의 안정된 정치체제가 무너지고 귀족세력 간의 정쟁이 격화된 시기였다. 427년(장수왕 15) 평양 천도와 양원왕의 즉위 과정도 왕실과 귀족 세력이 충돌한 결과였다. 간주리의 난은 환도성을 기반으로 557년 10월 일어났으나 간주리가 죽고 평정되었다. 간주리는 양원왕 즉위를 반대한 세력이거나, 그에 동조하는 세력으로 보기도 한다.
간주리의 난 (干朱理의 亂)
간주리의 난은 557년(양원왕 13)에 고구려의 귀족 간주리가 환도성에서 일으킨 반란이다. 이 반란은 평양 정권에 대해 국내성 세력이 반발하여 일어났다. 이 시기는 광개토대왕 이래의 안정된 정치체제가 무너지고 귀족세력 간의 정쟁이 격화된 시기였다. 427년(장수왕 15) 평양 천도와 양원왕의 즉위 과정도 왕실과 귀족 세력이 충돌한 결과였다. 간주리의 난은 환도성을 기반으로 557년 10월 일어났으나 간주리가 죽고 평정되었다. 간주리는 양원왕 즉위를 반대한 세력이거나, 그에 동조하는 세력으로 보기도 한다.
동천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227년~247년이며 산상왕의 아들이다. 재위 전반기에는 요동 지방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던 공손씨와 계속 대립하다가 238년에 위나라 군대를 도와 공손씨 세력을 멸망시켰다. 하지만 위나라와 국경을 접하게 되면서 본래의 낙랑군 관할지역을 다시 확보하려던 위의 동방정책과 부딪히게 되었다. 위나라 유주자사 관구검의 침입을 받아 일시 환도성이 함락되는 위기를 겪었지만 밀우·유유 등의 활약으로 그들을 몰아내었다. 동천왕이 승하하자 왕의 은덕을 사모한 많은 백성들이 따라 죽었다고 한다.
동천왕 (東川王)
동천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227년~247년이며 산상왕의 아들이다. 재위 전반기에는 요동 지방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던 공손씨와 계속 대립하다가 238년에 위나라 군대를 도와 공손씨 세력을 멸망시켰다. 하지만 위나라와 국경을 접하게 되면서 본래의 낙랑군 관할지역을 다시 확보하려던 위의 동방정책과 부딪히게 되었다. 위나라 유주자사 관구검의 침입을 받아 일시 환도성이 함락되는 위기를 겪었지만 밀우·유유 등의 활약으로 그들을 몰아내었다. 동천왕이 승하하자 왕의 은덕을 사모한 많은 백성들이 따라 죽었다고 한다.
산상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0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97~227년이며, 고국천왕이 후사 없이 죽자 왕비 우씨와 귀족 세력의 추대로 즉위했다. 형이 죽으면 형수를 취해 산다는 취수혼의 실제 예로서 유명하다. 형 발기가 소노부 세력과 연합해 모반하고, 요동지역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공손씨 군대까지 불러들여 수도를 공격하자 동생 계수를 시켜 물리쳤다. 198년 환도성을 쌓고 209년 이곳으로 천도했다. 217년에는 중국 평주 출신의 하요 등 1000여 호의 투항을 받아들여 책성에 안치했다. 227년 사망하자 산상릉에 장사지냈다.
산상왕 (山上王)
산상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0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97~227년이며, 고국천왕이 후사 없이 죽자 왕비 우씨와 귀족 세력의 추대로 즉위했다. 형이 죽으면 형수를 취해 산다는 취수혼의 실제 예로서 유명하다. 형 발기가 소노부 세력과 연합해 모반하고, 요동지역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공손씨 군대까지 불러들여 수도를 공격하자 동생 계수를 시켜 물리쳤다. 198년 환도성을 쌓고 209년 이곳으로 천도했다. 217년에는 중국 평주 출신의 하요 등 1000여 호의 투항을 받아들여 책성에 안치했다. 227년 사망하자 산상릉에 장사지냈다.
양원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4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45~559년이다. 안원왕의 맏아들로 태자에 책봉되었으나 자기 소생을 왕으로 세우려고 싸우던 두 왕비와 그들을 후원한 귀족세력간의 충돌 속에서 즉위했다. 그 결과 왕의 전제적 권한은 크게 도전받았고 재위 기간 동안 귀족세력간의 분쟁이 계속되었다. 중국의 북제와 외교관계를 유지했으나 돌궐과의 대치로 국력을 소모했고 그 와중에 신라와 백제 연합군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겼다. 대외적 위기상황이 계속되자 귀족들이 분쟁을 중단하고 귀족연립정권을 형성해 국정의 안정을 도모하기도 했다.
양원왕 (陽原王)
양원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4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45~559년이다. 안원왕의 맏아들로 태자에 책봉되었으나 자기 소생을 왕으로 세우려고 싸우던 두 왕비와 그들을 후원한 귀족세력간의 충돌 속에서 즉위했다. 그 결과 왕의 전제적 권한은 크게 도전받았고 재위 기간 동안 귀족세력간의 분쟁이 계속되었다. 중국의 북제와 외교관계를 유지했으나 돌궐과의 대치로 국력을 소모했고 그 와중에 신라와 백제 연합군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겼다. 대외적 위기상황이 계속되자 귀족들이 분쟁을 중단하고 귀족연립정권을 형성해 국정의 안정을 도모하기도 했다.
삼국시대 위나라 관구검의 침입 당시의 고구려 장수.
유옥구 (劉屋句)
삼국시대 위나라 관구검의 침입 당시의 고구려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