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황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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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있었던, 신라 제24대 왕 진흥왕 때 창건한 절이다. 553년에 새로운 대궐을 본궁 남쪽에 짓다가, 거기에서 황룡이 나타났으므로 이를 불사로 고쳐 황룡사라 하였다. 건립 17년 만인 569년에 완성하였다. 월성의 동쪽 용궁의 남쪽에 있었던 이 절은 7처 가람지 중 하나였다. 절터는 1963년에 ‘경주 황룡사지’라는 이름으로 사적에 지정되었으며, 관련 문화유산으로 2015년에 보물로 지정된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찰주본기가 있다.
황룡사 (皇龍寺)
황룡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있었던, 신라 제24대 왕 진흥왕 때 창건한 절이다. 553년에 새로운 대궐을 본궁 남쪽에 짓다가, 거기에서 황룡이 나타났으므로 이를 불사로 고쳐 황룡사라 하였다. 건립 17년 만인 569년에 완성하였다. 월성의 동쪽 용궁의 남쪽에 있었던 이 절은 7처 가람지 중 하나였다. 절터는 1963년에 ‘경주 황룡사지’라는 이름으로 사적에 지정되었으며, 관련 문화유산으로 2015년에 보물로 지정된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찰주본기가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제일의 중심 가람이었던 황룡사의 사찰터.
경주 황룡사지 (慶州 皇龍寺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제일의 중심 가람이었던 황룡사의 사찰터.
김용춘은 신라 중고기의 왕족으로서, 진지왕의 아들이자 태종무열왕의 아버지이다. 용수라고도 불렸으며, 사후 문흥대왕으로 추봉되었다. 내성 사신을 역임하고 고구려 낭비성 공격에서 활약하였으며, 황룡사구층목탑의 건립을 주관하였다.
김용춘 (金龍春)
김용춘은 신라 중고기의 왕족으로서, 진지왕의 아들이자 태종무열왕의 아버지이다. 용수라고도 불렸으며, 사후 문흥대왕으로 추봉되었다. 내성 사신을 역임하고 고구려 낭비성 공격에서 활약하였으며, 황룡사구층목탑의 건립을 주관하였다.
중국인이 동이족에게 붙인 9가지의 종족명칭.
구이 (九夷)
중국인이 동이족에게 붙인 9가지의 종족명칭.
삼모부인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35대 경덕왕의 왕비로, 첫 번째 부인이다. 아버지는 이찬 김순정이다. 경덕왕은 삼모부인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왕비를 폐하고, 사량부인으로 봉한 후에 만월부인을 후비로 맞았다. 삼모부인의 출궁 후 행적은 경덕왕 13년(754) 황룡사종 주조의 시주자로서 발견된다.
삼모부인 (三毛夫人)
삼모부인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35대 경덕왕의 왕비로, 첫 번째 부인이다. 아버지는 이찬 김순정이다. 경덕왕은 삼모부인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왕비를 폐하고, 사량부인으로 봉한 후에 만월부인을 후비로 맞았다. 삼모부인의 출궁 후 행적은 경덕왕 13년(754) 황룡사종 주조의 시주자로서 발견된다.
삼국시대 신라의 『동도성립기』을 저술한 승려.
안홍 (安弘)
삼국시대 신라의 『동도성립기』을 저술한 승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곡성대안사적인선사탑비문」, 「황룡사9층목탑찰주본기」 등을 쓴 서예가.
요극일 (姚克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곡성대안사적인선사탑비문」, 「황룡사9층목탑찰주본기」 등을 쓴 서예가.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말흘산(末訖山)에 있었던 삼국시대 신라의 호국 사찰.
말흘산 용두사 (末訖山 龍頭寺)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말흘산(末訖山)에 있었던 삼국시대 신라의 호국 사찰.
성전(成典)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영창궁과 왕실 사원의 건립, 운영, 제사의례 등을 지원하던 관부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영창궁을 비롯하여 사천왕사, 봉성사, 감은사, 봉덕사, 봉은사, 영묘사, 영흥사 등 왕실이 건립한 사원에 설치되었고, 금석문 자료로 볼 때 중대에는 황복사, 하대에는 황룡사에도 설치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한편 하대에는 일반 사찰에서 종과 탑의 조성을 위하여 임시로 만든 조직도 성전이라 칭하였다.
성전 (成典)
성전(成典)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영창궁과 왕실 사원의 건립, 운영, 제사의례 등을 지원하던 관부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영창궁을 비롯하여 사천왕사, 봉성사, 감은사, 봉덕사, 봉은사, 영묘사, 영흥사 등 왕실이 건립한 사원에 설치되었고, 금석문 자료로 볼 때 중대에는 황복사, 하대에는 황룡사에도 설치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한편 하대에는 일반 사찰에서 종과 탑의 조성을 위하여 임시로 만든 조직도 성전이라 칭하였다.
삼국시대 신라의 황룡사구층목탑 건립에 참여한 백제의 건축가.
아비지 (阿非知)
삼국시대 신라의 황룡사구층목탑 건립에 참여한 백제의 건축가.
속감전은 872년(경문왕 12)에 황룡사9층목탑을 중수할 때 공역(工役)과 관련된 왕실과의 연락사무나 재정적 지원을 담당하였던 속관(俗官)들로 구성된 통일신라의 임시기구이다. 속감전을 구성하였던 관료들 가운데 집사시랑은 집사부의 차관으로써, 중수와 관련된 왕명의 출납과 왕실과의 각종 연락사무를 담당하였다. 내성경은 왕실 재정을 담당하였던 내성의 차관으로, 목탑의 중수에 필요한 각종 재원의 마련과 지원 사무를 담당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속감전 (俗監典)
속감전은 872년(경문왕 12)에 황룡사9층목탑을 중수할 때 공역(工役)과 관련된 왕실과의 연락사무나 재정적 지원을 담당하였던 속관(俗官)들로 구성된 통일신라의 임시기구이다. 속감전을 구성하였던 관료들 가운데 집사시랑은 집사부의 차관으로써, 중수와 관련된 왕명의 출납과 왕실과의 각종 연락사무를 담당하였다. 내성경은 왕실 재정을 담당하였던 내성의 차관으로, 목탑의 중수에 필요한 각종 재원의 마련과 지원 사무를 담당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선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32~647년이며, 진평왕의 장녀로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당과 연합하여 국가를 보존하려 했고, 백제의 침략으로 낙동강 방면의 거점인 대야성이 함락되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에 유학 중이던 자장을 귀국시켜 불교사상을 왕권강화책으로 적극 활용했고, 호국 중심 사찰인 황룡사에 왕권의 상징물로 구층목탑을 건립했다. 비담 등 진골 귀족들의 반란 와중에 재위 16년 만에 죽었다.
선덕여왕 (善德女王)
선덕여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32~647년이며, 진평왕의 장녀로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당과 연합하여 국가를 보존하려 했고, 백제의 침략으로 낙동강 방면의 거점인 대야성이 함락되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에 유학 중이던 자장을 귀국시켜 불교사상을 왕권강화책으로 적극 활용했고, 호국 중심 사찰인 황룡사에 왕권의 상징물로 구층목탑을 건립했다. 비담 등 진골 귀족들의 반란 와중에 재위 16년 만에 죽었다.
불교에서 신라와 고려시대에 호국을 위해 국가적 행사로 개최한 종교의례. 불교의식·호국법회의식.
인왕도량 (仁王道場)
불교에서 신라와 고려시대에 호국을 위해 국가적 행사로 개최한 종교의례. 불교의식·호국법회의식.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0대 애자왕의 국사로 책봉된 승려.
정수 (正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0대 애자왕의 국사로 책봉된 승려.
신라시대의 관직.
하전 (下典)
신라시대의 관직.
자장은 삼국 시대 신라의 대국통, 황룡사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당에 유학하여 명성을 떨쳤고 당 태종의 두터운 예우를 받았다. 643년(선덕여왕 12) 선덕여왕이 자장을 보내 줄 것을 요청하여 귀국한 후 분황사에 머무르며 대국통이 되었다. 645년(선덕여왕 14)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웠다.
자장 (慈藏)
자장은 삼국 시대 신라의 대국통, 황룡사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당에 유학하여 명성을 떨쳤고 당 태종의 두터운 예우를 받았다. 643년(선덕여왕 12) 선덕여왕이 자장을 보내 줄 것을 요청하여 귀국한 후 분황사에 머무르며 대국통이 되었다. 645년(선덕여왕 14)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웠다.
진성여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87~897년이다. 즉위 초에는 조세를 면제하고 황룡사에 백좌강경을 설치하는 등 민심수습에 노력했다. 그러나 숙부이자 남편이던 상대등 위홍이 죽자 정치기강이 갑자기 문란해졌고 사방에서 도적이 봉기했다. 원종과 애노의 난도 평정하지 못했고 북원의 양길은 궁예를 시켜 명주를 함락시켰으며, 완산주에서는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했다. 894년 당에서 돌아온 최치원이 시무10조를 올렸지만 시행되지 못했다. 897년 헌강왕의 아들 요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그 해에 죽었다.
진성여왕 (眞聖女王)
진성여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87~897년이다. 즉위 초에는 조세를 면제하고 황룡사에 백좌강경을 설치하는 등 민심수습에 노력했다. 그러나 숙부이자 남편이던 상대등 위홍이 죽자 정치기강이 갑자기 문란해졌고 사방에서 도적이 봉기했다. 원종과 애노의 난도 평정하지 못했고 북원의 양길은 궁예를 시켜 명주를 함락시켰으며, 완산주에서는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했다. 894년 당에서 돌아온 최치원이 시무10조를 올렸지만 시행되지 못했다. 897년 헌강왕의 아들 요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그 해에 죽었다.
헌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9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75~886년이며 아버지 경문왕을 이어 즉위했다. 부왕 때부터 시작된 국학 진흥활동에 박차를 가해 국학에 적극적이던 6두품 신분층의 정치적 성장이 이루어졌고 이들이 국왕의 지지세력으로 활약했다. 불력에 의한 국가의 재건과 왕실의 안녕도 도모하여 황룡사에 백고좌강경을 설치하고 친히 가서 듣는 등 불교진흥에도 힘썼다. 백성들의 지붕은 기와로 이어졌고, 밥할 때 숯을 때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신라 최전성기의 왕으로, 당나라와 일본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헌강왕 (憲康王)
헌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9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75~886년이며 아버지 경문왕을 이어 즉위했다. 부왕 때부터 시작된 국학 진흥활동에 박차를 가해 국학에 적극적이던 6두품 신분층의 정치적 성장이 이루어졌고 이들이 국왕의 지지세력으로 활약했다. 불력에 의한 국가의 재건과 왕실의 안녕도 도모하여 황룡사에 백고좌강경을 설치하고 친히 가서 듣는 등 불교진흥에도 힘썼다. 백성들의 지붕은 기와로 이어졌고, 밥할 때 숯을 때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신라 최전성기의 왕으로, 당나라와 일본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남북국시대 때, 이찬 관등으로 중시를 역임한 통일신라의 관리.
효정 (孝貞)
남북국시대 때, 이찬 관등으로 중시를 역임한 통일신라의 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