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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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는 중국 고대에 동아시아 군주의 최고 칭호인 ‘황제(皇帝)’의 정실 부인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황제'보다 '후(后)'가 먼저 출현한 뒤 '황'과 '후'가 결합하여 성립하였다. 조선에서는 '왕(王)'과 '후'가 결합한 '왕후(王后)'라고 표현하여 왕비 사후에 추증하는 시호로 오랫동안 사용되었으며,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청나라와의 사대 관계를 단절하기 위해 의례가 격상되면서 생존 시의 왕비 또한 '왕후'로 부르게 되었다. 이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고종이 황제에 즉위하면서 사망한 왕후 민씨는 '명성황후(明成皇后)'로 추존되었다.
황후 (皇后)
황후는 중국 고대에 동아시아 군주의 최고 칭호인 ‘황제(皇帝)’의 정실 부인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황제'보다 '후(后)'가 먼저 출현한 뒤 '황'과 '후'가 결합하여 성립하였다. 조선에서는 '왕(王)'과 '후'가 결합한 '왕후(王后)'라고 표현하여 왕비 사후에 추증하는 시호로 오랫동안 사용되었으며,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청나라와의 사대 관계를 단절하기 위해 의례가 격상되면서 생존 시의 왕비 또한 '왕후'로 부르게 되었다. 이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고종이 황제에 즉위하면서 사망한 왕후 민씨는 '명성황후(明成皇后)'로 추존되었다.
기황후는 고려 후기 몽골제국 제14대 카안 순제 토곤테무르의 황후이다. 고려 여성으로, 궁녀로 시작해서 제2황후를 거쳐 정후에 올랐으며, 그 아들이 황태자에 책봉되면서 세력을 강화하였다. 기철 등 그녀의 일족이 고려에서 득세하여 공민왕과 갈등하다가 주살되자, 원한을 품고 공민왕 폐위를 기도하기도 하였다.
기황후 (奇皇后)
기황후는 고려 후기 몽골제국 제14대 카안 순제 토곤테무르의 황후이다. 고려 여성으로, 궁녀로 시작해서 제2황후를 거쳐 정후에 올랐으며, 그 아들이 황태자에 책봉되면서 세력을 강화하였다. 기철 등 그녀의 일족이 고려에서 득세하여 공민왕과 갈등하다가 주살되자, 원한을 품고 공민왕 폐위를 기도하기도 하였다.
전 황후 황원삼은 순종황제비인 윤황후가 착용하였던 오조룡보가 부착된 황후용 황원삼 1점이다. 황원삼(黃圓衫)은 황후용 예복이다. 황원삼에는 ‘긔미신조 황직금 원삼’이라 명명되어 있다. 영친왕의 가례가 예정되어 있던 기미년 1919년에 혼례를 위하여 준비했었을 가능성이 높다. 전형적인 20세기 초반 원삼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순정효황후로 책봉된 윤황후의 기증품임을 감안할 때 이 유물은 유일하게 남아 있는 황후용 황원삼이다.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세종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전 황후 황원삼 (傳 皇后 黃圓衫)
전 황후 황원삼은 순종황제비인 윤황후가 착용하였던 오조룡보가 부착된 황후용 황원삼 1점이다. 황원삼(黃圓衫)은 황후용 예복이다. 황원삼에는 ‘긔미신조 황직금 원삼’이라 명명되어 있다. 영친왕의 가례가 예정되어 있던 기미년 1919년에 혼례를 위하여 준비했었을 가능성이 높다. 전형적인 20세기 초반 원삼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순정효황후로 책봉된 윤황후의 기증품임을 감안할 때 이 유물은 유일하게 남아 있는 황후용 황원삼이다.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세종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동궁비 원삼은 순종이 황태자로 있을 때 거행된 가례에서 동궁비 윤비가 착용하였던 오조룡보가 부착된 홍색 원삼 1점이다. 다홍색 운봉문(雲鳳紋) 비단에 동일한 문양이 직금된 매우 화려한 원삼이다. 오조룡원보 2쌍 4점이 부착되어 있다. 조선의 마지막 국혼이었던 병오년 가례 시 황태자비 신분인 윤비가 착용하였다. 20세기 초반의 전형적인 왕실 원삼 형태를 보인다. 윤황후가 세종대학교 설립자에게 기증하였다. 1979년에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착용자와 착용시기가 밝혀진 왕실 가례복으로서 가치가 높다.
동궁비 원삼 (東宮妃 圓衫)
동궁비 원삼은 순종이 황태자로 있을 때 거행된 가례에서 동궁비 윤비가 착용하였던 오조룡보가 부착된 홍색 원삼 1점이다. 다홍색 운봉문(雲鳳紋) 비단에 동일한 문양이 직금된 매우 화려한 원삼이다. 오조룡원보 2쌍 4점이 부착되어 있다. 조선의 마지막 국혼이었던 병오년 가례 시 황태자비 신분인 윤비가 착용하였다. 20세기 초반의 전형적인 왕실 원삼 형태를 보인다. 윤황후가 세종대학교 설립자에게 기증하였다. 1979년에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착용자와 착용시기가 밝혀진 왕실 가례복으로서 가치가 높다.
일본 효고현[兵庫縣] 히메지시[姬路市] 미네아이산[峰相山]에 있었던 삼국시대 신라인이 창건한 사찰.
일본 계족사 (日本 鷄足寺)
일본 효고현[兵庫縣] 히메지시[姬路市] 미네아이산[峰相山]에 있었던 삼국시대 신라인이 창건한 사찰.
유릉(裕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27대 순종과 순명효황후 · 순정효황후의 합장릉이다. 오른쪽에 고종과 명성황후의 홍릉이 있어 합하여 홍유릉이라 부르고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홍릉과 유릉은 황제릉으로 건립하였다.
유릉 (裕陵)
유릉(裕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27대 순종과 순명효황후 · 순정효황후의 합장릉이다. 오른쪽에 고종과 명성황후의 홍릉이 있어 합하여 홍유릉이라 부르고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홍릉과 유릉은 황제릉으로 건립하였다.
조선 후기의 학자, 황후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9년에 간행한 시문집.
이봉문집 (夷峯文集)
조선 후기의 학자, 황후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9년에 간행한 시문집.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었던 대한제국기 조선 제27대 순종의 비인 순정효황후 관련 주택. 잠저(潛邸).
옥인동 서용택가 (玉仁洞 徐龍澤家)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었던 대한제국기 조선 제27대 순종의 비인 순정효황후 관련 주택. 잠저(潛邸).
「이장백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 소설이다. 「홍순언 고사」를 수용한 작품으로, 송도에 사는 역관 이장백이 중국 북경에 들어가 아버지의 장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몸을 파는 계 낭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이후 황후가 된 그녀의 도움으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장백전 (李長白傳)
「이장백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 소설이다. 「홍순언 고사」를 수용한 작품으로, 송도에 사는 역관 이장백이 중국 북경에 들어가 아버지의 장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몸을 파는 계 낭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이후 황후가 된 그녀의 도움으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 후기에, 미상의 저자가 수필·가사·소설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문집.
조천록 (朝天錄)
조선 후기에, 미상의 저자가 수필·가사·소설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문집.
「한조삼성기봉(漢朝三姓奇逢)」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 소설이다. 한나라 시절 실제 인물인 광무제, 곽 황후, 음후 등이 당나라 시대에 다시 태어나 한나라 시절의 일에 대한 인과대로 인생을 살아 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한조삼성기봉 (漢朝三姓奇逢)
「한조삼성기봉(漢朝三姓奇逢)」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 소설이다. 한나라 시절 실제 인물인 광무제, 곽 황후, 음후 등이 당나라 시대에 다시 태어나 한나라 시절의 일에 대한 인과대로 인생을 살아 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사단법인 가야문화축제제전위원회 주관으로 음력 3월 15일 경남 김해시 일대에서 김수로왕이 건국한 가야국의 문화를 기념하기 위해 개최하는 지역축제.
가야문화축제 (伽倻文化祝祭)
사단법인 가야문화축제제전위원회 주관으로 음력 3월 15일 경남 김해시 일대에서 김수로왕이 건국한 가야국의 문화를 기념하기 위해 개최하는 지역축제.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홍릉과 유릉을 통칭한 능호를 지칭하는 용어.
남양주 홍릉과 유릉 (南楊州 洪陵과 裕陵)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홍릉과 유릉을 통칭한 능호를 지칭하는 용어.
세종대학교 박물관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군자동에 있는 세종대학교 부속 박물관이다. 1959년 서울 충무로 교사에 ‘수도화랑’으로 개관하여, 1965년 현 대학교로 이전하였다. 박물관 2층은 대학의 교사실과 전통가옥을 재현한 민속실로 구성되어 있다. 3층 전시실에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궁중의상인 곤룡포와 황후적의를 비롯한 관복·군복 등 의상이 전시되어 있다. 4층 전시실에는 반상류와 목공예품 등 소형 유물이, 5층에는 대평 목공예품이 전시되어 있다. 주로 서울․경기 지역의 유적을 발굴하고 각종 유물 연구 및 관리를 함으로써 학생과 시민들에게 문화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세종대학교 박물관 (世宗大學校 博物館)
세종대학교 박물관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군자동에 있는 세종대학교 부속 박물관이다. 1959년 서울 충무로 교사에 ‘수도화랑’으로 개관하여, 1965년 현 대학교로 이전하였다. 박물관 2층은 대학의 교사실과 전통가옥을 재현한 민속실로 구성되어 있다. 3층 전시실에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궁중의상인 곤룡포와 황후적의를 비롯한 관복·군복 등 의상이 전시되어 있다. 4층 전시실에는 반상류와 목공예품 등 소형 유물이, 5층에는 대평 목공예품이 전시되어 있다. 주로 서울․경기 지역의 유적을 발굴하고 각종 유물 연구 및 관리를 함으로써 학생과 시민들에게 문화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왕비는 왕의 정식 부인이다. 비(妃)는 왕비라는 뜻 외에 ‘짝하다’, ‘배필’ 등의 의미가 있다. 즉 왕과 짝한 사람 혹은 왕의 배필이라는 뜻으로 결국 왕의 부인을 뜻한다. 조선에서 왕비는 왕후(王后), 중궁(中宮), 중전(中殿), 곤전(坤殿), 내전(內殿) 등으로도 불렸는데, 왕후는 주로 시호에서 사용되었다. 본래 후(后)는 ‘뒤’라는 뜻으로 왕후, 천자후(天子后) 등은 왕 또는 천자의 뒤에 있는 사람 즉 부인을 의미하였다.
왕비 (王妃)
왕비는 왕의 정식 부인이다. 비(妃)는 왕비라는 뜻 외에 ‘짝하다’, ‘배필’ 등의 의미가 있다. 즉 왕과 짝한 사람 혹은 왕의 배필이라는 뜻으로 결국 왕의 부인을 뜻한다. 조선에서 왕비는 왕후(王后), 중궁(中宮), 중전(中殿), 곤전(坤殿), 내전(內殿) 등으로도 불렸는데, 왕후는 주로 시호에서 사용되었다. 본래 후(后)는 ‘뒤’라는 뜻으로 왕후, 천자후(天子后) 등은 왕 또는 천자의 뒤에 있는 사람 즉 부인을 의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