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부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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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4년에 제작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 앙부일구는 1434년에 제작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이다. 세종대왕이 이순지에게 제작을 명하여 백성들이 다니는 대로변에 설치한 대중시계이다. 해 그림자를 만드는 영침, 해 그림자를 받아 시각과 절기를 읽는 반구형의 수영면이 주요 구성품이다. 수영면이 반구형으로 오목한데, 그 모양이 ‘하늘을 우러르는[仰] 가마솥[釜] 같다’고 해서 ‘앙부’라고 불렀다. 천구상의 태양 운행을 완벽하게 재현한 기구로, 해 그림자가 드리워진 절기선과 시각선의 눈금을 읽으면 별도 계산 없이 시각과 절기를 지평환에서 곧바로 파악할 수 있는 간편한 기구이다.이에 비해 앙부일구는 수영면(시반면)이 반구형으로 오목하다. ‘앙부’라는 명칭은 그 모양이 ‘하늘을 우러르는[仰] 가마솥[釜] 같다’고...
앙부일구 (仰釜日晷)
1434년에 제작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 앙부일구는 1434년에 제작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이다. 세종대왕이 이순지에게 제작을 명하여 백성들이 다니는 대로변에 설치한 대중시계이다. 해 그림자를 만드는 영침, 해 그림자를 받아 시각과 절기를 읽는 반구형의 수영면이 주요 구성품이다. 수영면이 반구형으로 오목한데, 그 모양이 ‘하늘을 우러르는[仰] 가마솥[釜] 같다’고 해서 ‘앙부’라고 불렀다. 천구상의 태양 운행을 완벽하게 재현한 기구로, 해 그림자가 드리워진 절기선과 시각선의 눈금을 읽으면 별도 계산 없이 시각과 절기를 지평환에서 곧바로 파악할 수 있는 간편한 기구이다.이에 비해 앙부일구는 수영면(시반면)이 반구형으로 오목하다. ‘앙부’라는 명칭은 그 모양이 ‘하늘을 우러르는[仰] 가마솥[釜] 같다’고...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에 제작된 해시계. 앙부일구는 1434년(세종 16)에 처음으로 제작되었으나, 현재 세종 때 제작된 앙부일구는 남아있지 않다. 현존하는 앙부일구는 대부분 17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1985년 보물로 지정된 앙부일구 두 개 역시 18세기 전후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1. 큰 앙부일구 지름은 35.2㎝이고, 높이는 14㎝이다. 한양의 북극고도가 ‘37도 20분’이라고 적혀 있으며, 1일 96각법의 시제에 입각하여 눈금이 그려져 있어, 1654년(효종 5)에서 1713년(숙종 39) 사이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1654년 시헌력(時憲曆)으로 개력한 이후 시제가 1일 96각법으로 변화했고, 1713년 청의 목극등(穆克登)이 조선에 사신으로 올 때 대동한...
앙부일구 (仰釜日晷)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에 제작된 해시계. 앙부일구는 1434년(세종 16)에 처음으로 제작되었으나, 현재 세종 때 제작된 앙부일구는 남아있지 않다. 현존하는 앙부일구는 대부분 17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1985년 보물로 지정된 앙부일구 두 개 역시 18세기 전후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1. 큰 앙부일구 지름은 35.2㎝이고, 높이는 14㎝이다. 한양의 북극고도가 ‘37도 20분’이라고 적혀 있으며, 1일 96각법의 시제에 입각하여 눈금이 그려져 있어, 1654년(효종 5)에서 1713년(숙종 39) 사이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1654년 시헌력(時憲曆)으로 개력한 이후 시제가 1일 96각법으로 변화했고, 1713년 청의 목극등(穆克登)이 조선에 사신으로 올 때 대동한...
1871년(고종 8) 강건(姜湕)이 옥돌로 만든 휴대용 해시계. # 내용 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가로 3.3㎝, 세로 5.6㎝, 높이 1.6㎝이며, 오목한 시반면은 지름 2.8㎝, 지남침은 지름 2.0㎝이다. 이 앙부일구는 ‘北極高 37度 39分 15秒(북극고 37도39분15초)’라고 명시하여 서울의 위도를 표준으로 하였음을 밝혔다. 그리고 지남침(指南針, 나침반)을 넣고 자오(子午:북쪽과 남쪽)를 맞추어서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게 하였다. 위쪽에는 나침반을 두어 방향을 잡게 만들었고, 아랫 부분에는 큰 앙부일구와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넣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한국의 과학문화재 조사보고」(전상운 외, 『한국과학사학회지』 6, 1984) - 문화재청(www.cha.go.kr)
휴대용 앙부일구 (携帶用 仰釜日晷)
1871년(고종 8) 강건(姜湕)이 옥돌로 만든 휴대용 해시계. # 내용 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가로 3.3㎝, 세로 5.6㎝, 높이 1.6㎝이며, 오목한 시반면은 지름 2.8㎝, 지남침은 지름 2.0㎝이다. 이 앙부일구는 ‘北極高 37度 39分 15秒(북극고 37도39분15초)’라고 명시하여 서울의 위도를 표준으로 하였음을 밝혔다. 그리고 지남침(指南針, 나침반)을 넣고 자오(子午:북쪽과 남쪽)를 맞추어서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게 하였다. 위쪽에는 나침반을 두어 방향을 잡게 만들었고, 아랫 부분에는 큰 앙부일구와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넣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한국의 과학문화재 조사보고」(전상운 외, 『한국과학사학회지』 6, 1984) - 문화재청(www.cha.go.kr)
조선전기 충청도병마도절제사, 평안도 도절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 과학자. 이천은 조선전기 충청도 병마도절제사, 평안도 도절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자 과학자이다. 1376년(우왕 2년)에 태어나 1451년(문종 1)에 사망했다. 1393년(태조 2) 17세의 나이로 별장이 되었고, 1402년(태종 2) 무과에 급제했다. 세종 때는 왜구 척결에 공을 세워 충청도 병마도절제사로 임명되어 병선 제작에 힘썼다. 무예를 닦으면서도 기계장치의 원리를 연구하고 금속공예와 주조법, 제철기술에도 밝아 활자 제작과 화포 개량에 공헌했다. 서운관에서는 장영실 등과 함께 대소 간의, 앙부일구 등의 해시계와 혼천의를 제작했다.소간의[^2] · [앙부일구(仰釜日晷) · 현주일구(懸珠日晷) · 천평일구(天平日晷) · 정남일구(定南日晷) · 규표(圭表) 등의 해시계를 만들었고...
이천 (李蕆)
조선전기 충청도병마도절제사, 평안도 도절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 과학자. 이천은 조선전기 충청도 병마도절제사, 평안도 도절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자 과학자이다. 1376년(우왕 2년)에 태어나 1451년(문종 1)에 사망했다. 1393년(태조 2) 17세의 나이로 별장이 되었고, 1402년(태종 2) 무과에 급제했다. 세종 때는 왜구 척결에 공을 세워 충청도 병마도절제사로 임명되어 병선 제작에 힘썼다. 무예를 닦으면서도 기계장치의 원리를 연구하고 금속공예와 주조법, 제철기술에도 밝아 활자 제작과 화포 개량에 공헌했다. 서운관에서는 장영실 등과 함께 대소 간의, 앙부일구 등의 해시계와 혼천의를 제작했다.소간의[^2] · [앙부일구(仰釜日晷) · 현주일구(懸珠日晷) · 천평일구(天平日晷) · 정남일구(定南日晷) · 규표(圭表) 등의 해시계를 만들었고...
해의 움직임에 따라 시간을 측정하던 시계. 그런데 앙부(仰釜)·현주(懸珠)·천평(天平)·정남(定南) 등의 이름을 가진 일구(日晷)가 그것이다. 세종 때에는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와 그것을 자그맣게 만든 소정시의(小定時儀)도 만들었다. 그런데 모두 낮에는 해시계로 그리고 밤에는 별시계로 작동한 것이었다. 이 가운데 특히 대표적인 것으로는 앙부일구를 들 수 있다. 반구 모양의 해시계로, 앙부일구에는 북극을 향하여 솟아 있는 영침(影針)이 윗면의 한가운데에 이른다. 바로 이 영침의 끝이 만드는 그림자가 시간을 알려주고, 또 그날의 양력 날짜까지 거의 정확하게 맞추게 되어 있다. 반구형의 안쪽에는 13줄의 눈금이 그려져 있는데, 동지에는 그림자 끝이 제일 바깥줄을 따라가고, 하지에는 제일 안줄을 따르게...
해시계 (해時計)
해의 움직임에 따라 시간을 측정하던 시계. 그런데 앙부(仰釜)·현주(懸珠)·천평(天平)·정남(定南) 등의 이름을 가진 일구(日晷)가 그것이다. 세종 때에는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와 그것을 자그맣게 만든 소정시의(小定時儀)도 만들었다. 그런데 모두 낮에는 해시계로 그리고 밤에는 별시계로 작동한 것이었다. 이 가운데 특히 대표적인 것으로는 앙부일구를 들 수 있다. 반구 모양의 해시계로, 앙부일구에는 북극을 향하여 솟아 있는 영침(影針)이 윗면의 한가운데에 이른다. 바로 이 영침의 끝이 만드는 그림자가 시간을 알려주고, 또 그날의 양력 날짜까지 거의 정확하게 맞추게 되어 있다. 반구형의 안쪽에는 13줄의 눈금이 그려져 있는데, 동지에는 그림자 끝이 제일 바깥줄을 따라가고, 하지에는 제일 안줄을 따르게...
해방 이후 『한국의 책력』, 『역법의 원리분석』 등을 저술한 천문학자. 이것은 그 뒤 전국적으로 보급된 대형 석제 앙부일구의 표준형이 되었다. 그는 한국 천문학사 연구에 몰두하여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에서 발행하는 『동방학지(東方學志)』에 「근세한국의 역」·「해시계의 역사와 그 원리」·「무령왕릉의 지석과 원가력법」·「대리석제지평일구와 소현세자」 등을 발표하였다. 『한국과학사학회지』에는 「한국의 일식기록의 과학적 처리」(1980) 등을 발표하였다. 한편, 저서로서는 『한국의 책력』(1980)·『역법의 원리분석』(1985) 등이 있다. 그밖에 유경로와 같이 한 『증보문헌비고』 상위고(象偉考)의 역주 교열본이 있다. 한국 천문학사 개척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인하대학교 정년퇴직 후에는...
이은성 (李殷晟)
해방 이후 『한국의 책력』, 『역법의 원리분석』 등을 저술한 천문학자. 이것은 그 뒤 전국적으로 보급된 대형 석제 앙부일구의 표준형이 되었다. 그는 한국 천문학사 연구에 몰두하여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에서 발행하는 『동방학지(東方學志)』에 「근세한국의 역」·「해시계의 역사와 그 원리」·「무령왕릉의 지석과 원가력법」·「대리석제지평일구와 소현세자」 등을 발표하였다. 『한국과학사학회지』에는 「한국의 일식기록의 과학적 처리」(1980) 등을 발표하였다. 한편, 저서로서는 『한국의 책력』(1980)·『역법의 원리분석』(1985) 등이 있다. 그밖에 유경로와 같이 한 『증보문헌비고』 상위고(象偉考)의 역주 교열본이 있다. 한국 천문학사 개척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인하대학교 정년퇴직 후에는...
천구상에서의 태양의 고도와 방위, 절후에 따른 밤낮의 길이, 일출입시각(日出入時刻) 등을 측정하던 해시계. 구조는 전체적으로 보아 평면일구(平面日晷)와 같이 평면에 절후선(節候線)과 시각선(時刻線)을 표시했으나, 평면일구와 같은 것은 아니고 앙부일구(仰釜日晷)를 바로 앉혀놓고 영침(影針)을 뽑아내고 수평면상에 투영한 모습과 같다. 시각선의 복사점(輻射點) 또는 방사점은 앙부일구에서의 천구북극(天球北極)을 시반면(時盤面)에 투영시킨 것과 같다. 이 복사점을 북쪽에 두고 자오선을 남북방향에 일치하게 놓는다. 그리고 미초(未初)·미정(未正)·신초(申初)·신정(申正) 등의 시각선(시선·각선)이 차례로 서쪽으로 잇따랐고, 동지절후선은 가장 남쪽에, 하지절후선은 가장 북쪽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이것은 지평보다 위쪽의...
간평일구 (簡平日晷)
천구상에서의 태양의 고도와 방위, 절후에 따른 밤낮의 길이, 일출입시각(日出入時刻) 등을 측정하던 해시계. 구조는 전체적으로 보아 평면일구(平面日晷)와 같이 평면에 절후선(節候線)과 시각선(時刻線)을 표시했으나, 평면일구와 같은 것은 아니고 앙부일구(仰釜日晷)를 바로 앉혀놓고 영침(影針)을 뽑아내고 수평면상에 투영한 모습과 같다. 시각선의 복사점(輻射點) 또는 방사점은 앙부일구에서의 천구북극(天球北極)을 시반면(時盤面)에 투영시킨 것과 같다. 이 복사점을 북쪽에 두고 자오선을 남북방향에 일치하게 놓는다. 그리고 미초(未初)·미정(未正)·신초(申初)·신정(申正) 등의 시각선(시선·각선)이 차례로 서쪽으로 잇따랐고, 동지절후선은 가장 남쪽에, 하지절후선은 가장 북쪽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이것은 지평보다 위쪽의...
『주역』 64괘 중 43번째에 있는 유교기호. 괘명. # 내용 쾌(夬)는 앙(決)과 같은 뜻인데, 앙(決)은 둑을 터서 물이 잘 흐르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장애물을 제거한다는 뜻이 파생되었다. 쾌괘는 초효부터 5효까지 5개의 양효와 상육인 하나의 음효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양기가 점점 자라나서 마지막으로 남은 음기 하나를 제거하려고 하는 상황으로 다섯명의 군자가 간악한 소인을 제거하는 모습을 상징한 것이다. 그러나 상효는 천자인 5효와 음양상비(陰陽相比)의 관계로서 총애를 받고 있다. 그리고 하나의 음효가 5개의 양효를 타고 능멸하고 있는 형상이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쇠퇴해 가는 음기라고 해서 경솔하게 대해서는 안된다. 괘사에서 “쾌는 소인의 간악함을 조정에서 드러내 밝히고 신실(信實)함으로 동지들에게...
쾌괘 (夬卦)
『주역』 64괘 중 43번째에 있는 유교기호. 괘명. # 내용 쾌(夬)는 앙(決)과 같은 뜻인데, 앙(決)은 둑을 터서 물이 잘 흐르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장애물을 제거한다는 뜻이 파생되었다. 쾌괘는 초효부터 5효까지 5개의 양효와 상육인 하나의 음효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양기가 점점 자라나서 마지막으로 남은 음기 하나를 제거하려고 하는 상황으로 다섯명의 군자가 간악한 소인을 제거하는 모습을 상징한 것이다. 그러나 상효는 천자인 5효와 음양상비(陰陽相比)의 관계로서 총애를 받고 있다. 그리고 하나의 음효가 5개의 양효를 타고 능멸하고 있는 형상이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쇠퇴해 가는 음기라고 해서 경솔하게 대해서는 안된다. 괘사에서 “쾌는 소인의 간악함을 조정에서 드러내 밝히고 신실(信實)함으로 동지들에게...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해시계. 세종 때 만들어진 해시계로는 천평일구 외에도 앙부일구(仰釜日晷) · 현주일구(懸珠日晷) · 정남일구(定南日晷) 등이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모두 소실되어 앙부일구 외에는 그 모양을 정확히 알 수 없다. 기록에 따르면, 천평일구는 현주일구와 구조가 거의 비슷하다고 하는데, 다만 현주일구가 시반(時盤) 북쪽 편에 기둥이 세워진 데 반해 한가운데 세워져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또한 현주일구가 북쪽 기둥 머리에 추를 달아서 아래쪽 십자 표시에 닿게 하여 수평을 유지한 데 반해, 천평일구는 기둥 머리에 노끈을 꿰어 그것이 남쪽을 가리키게 하였다. 그리고 현주일구가 남쪽 한곳에만 못〔池〕을 판 데 비해 천평일구는 남쪽과 북쪽 두 군데에 못을 파고 그 한가운데다...
천평일구 (天平日晷)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해시계. 세종 때 만들어진 해시계로는 천평일구 외에도 앙부일구(仰釜日晷) · 현주일구(懸珠日晷) · 정남일구(定南日晷) 등이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모두 소실되어 앙부일구 외에는 그 모양을 정확히 알 수 없다. 기록에 따르면, 천평일구는 현주일구와 구조가 거의 비슷하다고 하는데, 다만 현주일구가 시반(時盤) 북쪽 편에 기둥이 세워진 데 반해 한가운데 세워져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또한 현주일구가 북쪽 기둥 머리에 추를 달아서 아래쪽 십자 표시에 닿게 하여 수평을 유지한 데 반해, 천평일구는 기둥 머리에 노끈을 꿰어 그것이 남쪽을 가리키게 하였다. 그리고 현주일구가 남쪽 한곳에만 못〔池〕을 판 데 비해 천평일구는 남쪽과 북쪽 두 군데에 못을 파고 그 한가운데다...
음력 사월 초파일 한양에서 아이들이나 여성들이 물동이 담긴 그릇이나 바가지를 두드려 소리를 내며 노래를 부르던 민속놀이. 옛날에 앙(盎)을 부(缶)라고 이르게 되니, 부의 악기된 품은 속이 비어서 잘 용납하고, 밖이 둥글어 잘 응하니 중성(中聲)이 나오는 곳이다.”라고 전한다. 이러한 부(缶)는 토음(土音)에 속하며, 앙(盎)이라고도 했기에, 둥근 모양의 흙그릇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전통적인 팔음의 토부악기로는 훈(塤)·부(缶)가 있다. 유득공(柳得恭, 1748~7807)의 『경도잡지(京都雜誌)』에서는 수고(水鼓)라고 불렀던 것으로 보아 악기의 일종으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 정조(正祖, 1752~1800)의 『홍재전서(弘齋全書)』에 의하면, 한양에서 등을 달고 수부를 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 것으로 보아 4월 초파일 연등회와...
한양 물장구놀이 (漢陽 물장구놀이)
음력 사월 초파일 한양에서 아이들이나 여성들이 물동이 담긴 그릇이나 바가지를 두드려 소리를 내며 노래를 부르던 민속놀이. 옛날에 앙(盎)을 부(缶)라고 이르게 되니, 부의 악기된 품은 속이 비어서 잘 용납하고, 밖이 둥글어 잘 응하니 중성(中聲)이 나오는 곳이다.”라고 전한다. 이러한 부(缶)는 토음(土音)에 속하며, 앙(盎)이라고도 했기에, 둥근 모양의 흙그릇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전통적인 팔음의 토부악기로는 훈(塤)·부(缶)가 있다. 유득공(柳得恭, 1748~7807)의 『경도잡지(京都雜誌)』에서는 수고(水鼓)라고 불렀던 것으로 보아 악기의 일종으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 정조(正祖, 1752~1800)의 『홍재전서(弘齋全書)』에 의하면, 한양에서 등을 달고 수부를 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 것으로 보아 4월 초파일 연등회와...
세종 때 만들어진 해시계. 세종 때 만들어진 해시계로는 현주일구 외에도 앙부일구(仰釜日晷) · 천평일구(天平日晷) · 정남일구(定南日晷) 등이 있었다. 그러나 세종 때 만들어진 것은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앙부일구만이 지금까지 남아 있으나, 현주일구와 천평일구는 전혀 전해지는 바가 없어 그 모양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더욱이 현주일구는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세종 때 유일하게 만들어진 창작품인데, 다행히 그 모양이 기록으로는 남아 있어서 대략이나마 그 구조를 짐작할 수 있다. 현주일구는 사각형의 휴대용 해시계로 크기가 6촌 3푼밖에 되지 않는다. 평평한 바닥 북쪽에 기둥을 세우고 남쪽에는 못〔池〕을 팠으며, 북쪽에는 십자(十字) 표지를...
현주일구 (懸珠日晷)
세종 때 만들어진 해시계. 세종 때 만들어진 해시계로는 현주일구 외에도 앙부일구(仰釜日晷) · 천평일구(天平日晷) · 정남일구(定南日晷) 등이 있었다. 그러나 세종 때 만들어진 것은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앙부일구만이 지금까지 남아 있으나, 현주일구와 천평일구는 전혀 전해지는 바가 없어 그 모양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더욱이 현주일구는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세종 때 유일하게 만들어진 창작품인데, 다행히 그 모양이 기록으로는 남아 있어서 대략이나마 그 구조를 짐작할 수 있다. 현주일구는 사각형의 휴대용 해시계로 크기가 6촌 3푼밖에 되지 않는다. 평평한 바닥 북쪽에 기둥을 세우고 남쪽에는 못〔池〕을 팠으며, 북쪽에는 십자(十字) 표지를...
조선 전기에 있었던 해시계. # 내용 세종 때에는 앙부일구를 비롯한 여러 가지 해시계가 제작되었는데 그 중에 비교적 복잡한 구조를 가진 것의 하나로 유물은 전하지 않지만 조선왕조실록 등에 기록상의 설명은 상세히 남아 있다. 이를 근거로 하여 영국의 니덤(Needham, J.) 등은 그 모형도를 그려보았고, 이것이 1988년한국표준연구소에서 놋쇠로 만들어놓은 모형이다. 설명에 의하면 이 해시계는 다른 해시계와 달리 지남침을 쓰지 않고도 남북의 방향을 정확하게 잡을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에 남쪽을 가리켜주는 해시계라는 뜻으로 ‘정남일구’라는 이름이 붙었다. 받침대의 길이는 1척 2촌 5분이며, 받침대에는 수평을 잡기 위한 물그릇이 장치되어 있다. 남북으로는 기둥이 세워져 그 사이에 눈금을...
정남일구 (定南日晷)
조선 전기에 있었던 해시계. # 내용 세종 때에는 앙부일구를 비롯한 여러 가지 해시계가 제작되었는데 그 중에 비교적 복잡한 구조를 가진 것의 하나로 유물은 전하지 않지만 조선왕조실록 등에 기록상의 설명은 상세히 남아 있다. 이를 근거로 하여 영국의 니덤(Needham, J.) 등은 그 모형도를 그려보았고, 이것이 1988년한국표준연구소에서 놋쇠로 만들어놓은 모형이다. 설명에 의하면 이 해시계는 다른 해시계와 달리 지남침을 쓰지 않고도 남북의 방향을 정확하게 잡을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에 남쪽을 가리켜주는 해시계라는 뜻으로 ‘정남일구’라는 이름이 붙었다. 받침대의 길이는 1척 2촌 5분이며, 받침대에는 수평을 잡기 위한 물그릇이 장치되어 있다. 남북으로는 기둥이 세워져 그 사이에 눈금을...
집이나 담의 벽에 흙이나 회(灰)를 바르는 데 쓰이는 연장. 조선 후기에 편찬된 『재물보(才物譜)』에서는 미장이의 작업을 ‘익(𡎳: 흙을 이기다)’·‘앙도(仰塗 : 앙벽치다)’·‘도만(塗槾 : 흙질하다)’·말만(抹鏝 : 흙을 섞다)으로 구분하고, 여기에 이용되는 도구로는 만(鏝 : 흙손)·이탁(泥托 : 흙받기)·분(畚 : 흙삼태기)을 들었다. 『훈몽자회』에는 ‘흙손 오(杇)’로 적혀 있다. 바닥이 나무로 된 나무흙손과 쇠로 된 쇠흙손이 있다. 바닥은 용도에 따라 모양·크기 등이 조금씩 다르며, 손잡이의 형상도 조금씩 다르다. 일반적인 것은 바닥 앞부분이 삼각형·반원형 또는 앞끝이 뾰죽한 잎사귀 모양을 하고 있으며, 손잡이는 바닥 윗부분에 짧고 둥근 나무로 만든다. 조금 특수한 것으로는 벽의 모서리 등을 마무리하는 데 사용하는 흙손이...
흙손
집이나 담의 벽에 흙이나 회(灰)를 바르는 데 쓰이는 연장. 조선 후기에 편찬된 『재물보(才物譜)』에서는 미장이의 작업을 ‘익(𡎳: 흙을 이기다)’·‘앙도(仰塗 : 앙벽치다)’·‘도만(塗槾 : 흙질하다)’·말만(抹鏝 : 흙을 섞다)으로 구분하고, 여기에 이용되는 도구로는 만(鏝 : 흙손)·이탁(泥托 : 흙받기)·분(畚 : 흙삼태기)을 들었다. 『훈몽자회』에는 ‘흙손 오(杇)’로 적혀 있다. 바닥이 나무로 된 나무흙손과 쇠로 된 쇠흙손이 있다. 바닥은 용도에 따라 모양·크기 등이 조금씩 다르며, 손잡이의 형상도 조금씩 다르다. 일반적인 것은 바닥 앞부분이 삼각형·반원형 또는 앞끝이 뾰죽한 잎사귀 모양을 하고 있으며, 손잡이는 바닥 윗부분에 짧고 둥근 나무로 만든다. 조금 특수한 것으로는 벽의 모서리 등을 마무리하는 데 사용하는 흙손이...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의 용문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산신탱. # 내용 산신탱은 산왕(山王)으로 신앙되던 호랑이를 의인화하여 그린 불화로 산신은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용문사 산신탱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폭으로, 청록의 산수를 배경으로 붉은 옷을 입고 투명한 망건을 쓴 산신이 긴 수염을 휘날리며 호랑이에게 편안하게 기대어 앉아 있다. 오른손에는 나무 지팡이를 들고 왼손에는 영지를 들고 있다. 호랑이는 무섭고 위압적인 모습이 아니라 큰 눈과 앙다문 입 사이로 삐죽 나온 이빨, 둥근 눈썹 등 귀여운 고양이처럼 그려져 민화풍의 까치호랑이 그림을 연상시킨다.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진 측면이 있으나 묘사는 섬세하다. 호랑이의 뒤쪽에는 시동이 석류 등의 공양물이 담긴 쟁반을 들고 서 있다. 화면...
남해 용문사 산신탱 (南海 龍門寺 山神幀▽)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의 용문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산신탱. # 내용 산신탱은 산왕(山王)으로 신앙되던 호랑이를 의인화하여 그린 불화로 산신은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용문사 산신탱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폭으로, 청록의 산수를 배경으로 붉은 옷을 입고 투명한 망건을 쓴 산신이 긴 수염을 휘날리며 호랑이에게 편안하게 기대어 앉아 있다. 오른손에는 나무 지팡이를 들고 왼손에는 영지를 들고 있다. 호랑이는 무섭고 위압적인 모습이 아니라 큰 눈과 앙다문 입 사이로 삐죽 나온 이빨, 둥근 눈썹 등 귀여운 고양이처럼 그려져 민화풍의 까치호랑이 그림을 연상시킨다.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진 측면이 있으나 묘사는 섬세하다. 호랑이의 뒤쪽에는 시동이 석류 등의 공양물이 담긴 쟁반을 들고 서 있다. 화면...
조선 후기에 제작된 해시계. 간평일구의 눈금은 마치 앙부일구의 오목한 내면에 그려놓은 눈금을 평면 위에 투영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혼개일구의 눈금은 중심을 옮겨가며 지름이 서로 다른 13개의 원을 그리고, 그 위에 직각으로 교차하는 시각선(時刻線)을 그려놓았다. 전체적으로 제작솜씨가 매우 정교하다. 명문에는 “한양북극출지 37도39분15초 시헌황적대거 23도29분 건륭50년을사중추립(漢陽北極出地 三十七度三十九分一十五秒 時憲黃赤大距 二十三度二十九分 乾隆五十年乙巳仲秋立)”이라 기록되어 있어 1785년(정조 9) 관상감(觀象監)에서 제작하였으며, 한양(서울)을 기준으로 하였음을 알 수 있다. # 현황 본래 창경궁의 명정전(明政殿) 뒤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서울특별시 홍릉의 세종대왕기념관으로...
간평일구·혼개일구 (簡平日晷·渾蓋日晷)
조선 후기에 제작된 해시계. 간평일구의 눈금은 마치 앙부일구의 오목한 내면에 그려놓은 눈금을 평면 위에 투영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혼개일구의 눈금은 중심을 옮겨가며 지름이 서로 다른 13개의 원을 그리고, 그 위에 직각으로 교차하는 시각선(時刻線)을 그려놓았다. 전체적으로 제작솜씨가 매우 정교하다. 명문에는 “한양북극출지 37도39분15초 시헌황적대거 23도29분 건륭50년을사중추립(漢陽北極出地 三十七度三十九分一十五秒 時憲黃赤大距 二十三度二十九分 乾隆五十年乙巳仲秋立)”이라 기록되어 있어 1785년(정조 9) 관상감(觀象監)에서 제작하였으며, 한양(서울)을 기준으로 하였음을 알 수 있다. # 현황 본래 창경궁의 명정전(明政殿) 뒤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서울특별시 홍릉의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에 있는 조선후기에 창건된 사찰건물. 당우. 기둥 위로는 창방(昌枋)만을 돌리고 평방(平枋) 없이 기둥머리를 안치하였는데 밖으로 나온 살미첨차의 앙 · 수서가 예리하면서도 특이한 조형을 보이고 있다. 또, 창방과 도리 사이에 화반 대신 사다리꼴 모양의 마루대공을 끼고, 그 위에 두개의 작은 소로를 삽입한 기법도 특이하다. 편액은 ‘楓巖影閣(풍암영각)’이라 하였는데, 그 까닭은 조선 후기에 와서 송광사의 대덕(大德)들이 풍암의 법손(法孫)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한다. 풍암은 1688년(숙종 14)에 송광면에서 출생, 1767년(영조 43)에 입적한 송광사 스님이며, 이 건물내에는 주로 풍암 문하 대덕들의 영정이 봉안되었다. - 『송광사지』(불일출판사, 1984) - 「풍암대사행장」...
송광사 진영당 (松廣寺 眞影堂)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에 있는 조선후기에 창건된 사찰건물. 당우. 기둥 위로는 창방(昌枋)만을 돌리고 평방(平枋) 없이 기둥머리를 안치하였는데 밖으로 나온 살미첨차의 앙 · 수서가 예리하면서도 특이한 조형을 보이고 있다. 또, 창방과 도리 사이에 화반 대신 사다리꼴 모양의 마루대공을 끼고, 그 위에 두개의 작은 소로를 삽입한 기법도 특이하다. 편액은 ‘楓巖影閣(풍암영각)’이라 하였는데, 그 까닭은 조선 후기에 와서 송광사의 대덕(大德)들이 풍암의 법손(法孫)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한다. 풍암은 1688년(숙종 14)에 송광면에서 출생, 1767년(영조 43)에 입적한 송광사 스님이며, 이 건물내에는 주로 풍암 문하 대덕들의 영정이 봉안되었다. - 『송광사지』(불일출판사, 1984) - 「풍암대사행장」...
문화유적 발굴 및 보존, 유적유물 복원 사업을 전담하는 문화보존지도부 산하 단체. 최근에는 평양 대성산에 조성중인 ‘평양민속공원’ 내의 고구려 시대의 불상을 비롯하여 안중근 열사의 글씨, 추사김정희의 글씨체 등을 실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또한 청동기 시대의 유물인 비파형 단검을 비롯하여 최초의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포함한 측우기, 북관대첩비 유물 모형 등의 제작도 고려미술창작사에서 담당하였다. 개성 영통사 복원 과정에서 영통의 관음보살과 석가모니 등 대형불상과 의천 화상 비로자나불 탱화, 산신 탱화, 그리고 화엄경과 묘법연화경 등의 불경과 금니화(금분을 개어서 그린 그림) 전시회를 열기도 하였다. - 『북한 미술 50년』(이구열, 돌베개, 2001) - 『북한의 미술』(이일ㆍ서성록, 고려원, 1990)
고려미술창작사 (高麗美術創作社)
문화유적 발굴 및 보존, 유적유물 복원 사업을 전담하는 문화보존지도부 산하 단체. 최근에는 평양 대성산에 조성중인 ‘평양민속공원’ 내의 고구려 시대의 불상을 비롯하여 안중근 열사의 글씨, 추사김정희의 글씨체 등을 실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또한 청동기 시대의 유물인 비파형 단검을 비롯하여 최초의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포함한 측우기, 북관대첩비 유물 모형 등의 제작도 고려미술창작사에서 담당하였다. 개성 영통사 복원 과정에서 영통의 관음보살과 석가모니 등 대형불상과 의천 화상 비로자나불 탱화, 산신 탱화, 그리고 화엄경과 묘법연화경 등의 불경과 금니화(금분을 개어서 그린 그림) 전시회를 열기도 하였다. - 『북한 미술 50년』(이구열, 돌베개, 2001) - 『북한의 미술』(이일ㆍ서성록, 고려원, 1990)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사각형 지대석 위에 앙·복련의 상·하 대좌를 배치한 대좌 위에 비상의 입불상을 안치하였다. 입불상은 장방형 판석(板石)에 고부조(高浮彫)로 돋을새김되었다. 머리카락을 표현하지 않은 소발(素髮)의 정수리에 얕은 육계가 솟아있고, 팽창된 달걀형 얼굴은 이목구비가 단아하다. 체구는 다소 장대하지만 둥글고 탄탄한 어깨, 팽팽한 가슴, 당당하게 버티고 선 하체는 신체의 양감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등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이 잘 묘사되었다. 두 손은 가슴에 들어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中指)를 맞대어 시무외인(施無畏印)의 변형을 짓고 있으며, 왼손은 들어 옷자락을 잡고 있는데 손가락들이 유연하게 표현되었다. 양어깨를 감싼 통견(通肩) 형식의 대의는 얕게...
순천 금둔사지 석조 불비상 (順天 金芚寺址 石造 佛碑像)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사각형 지대석 위에 앙·복련의 상·하 대좌를 배치한 대좌 위에 비상의 입불상을 안치하였다. 입불상은 장방형 판석(板石)에 고부조(高浮彫)로 돋을새김되었다. 머리카락을 표현하지 않은 소발(素髮)의 정수리에 얕은 육계가 솟아있고, 팽창된 달걀형 얼굴은 이목구비가 단아하다. 체구는 다소 장대하지만 둥글고 탄탄한 어깨, 팽팽한 가슴, 당당하게 버티고 선 하체는 신체의 양감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등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이 잘 묘사되었다. 두 손은 가슴에 들어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中指)를 맞대어 시무외인(施無畏印)의 변형을 짓고 있으며, 왼손은 들어 옷자락을 잡고 있는데 손가락들이 유연하게 표현되었다. 양어깨를 감싼 통견(通肩) 형식의 대의는 얕게...
조선전기 무신 이천이 파저강(婆猪江) 야인을 정벌하고 4군을 개척한 전말을 기록한 군서. 특히 간의(簡儀)·혼의(渾儀)·앙부일구(仰釜日晷) 등 천문기구의 제작을 지휘하여 조선 초기 과학기술 발달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내용은 1432년(세종 14)에서 1437년(세종 19)까지의 여진과의 관계 사실이 연대순으로 정리되어 있으며, 군사적인 정벌이나 토벌뿐만 아니라 사민(徙民)·수세(收稅)·진휼(賑恤) 등에 관한 현지 실상의 치계(馳啓), 이에 대한 조정의 대책 등이 있다. # 의의와 평가 조선 초기 여진정책 및 북방정책을 이해하고 나아가 당시의 국방 및 국제관계사를 이해하는데에 참고 자료가 된다. - 『서정록』(임홍빈 역편,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9) - 「조선초기의 여진 관계와 여진인식의 고착화 -태조...
서정록 (西征錄)
조선전기 무신 이천이 파저강(婆猪江) 야인을 정벌하고 4군을 개척한 전말을 기록한 군서. 특히 간의(簡儀)·혼의(渾儀)·앙부일구(仰釜日晷) 등 천문기구의 제작을 지휘하여 조선 초기 과학기술 발달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였다. 내용은 1432년(세종 14)에서 1437년(세종 19)까지의 여진과의 관계 사실이 연대순으로 정리되어 있으며, 군사적인 정벌이나 토벌뿐만 아니라 사민(徙民)·수세(收稅)·진휼(賑恤) 등에 관한 현지 실상의 치계(馳啓), 이에 대한 조정의 대책 등이 있다. # 의의와 평가 조선 초기 여진정책 및 북방정책을 이해하고 나아가 당시의 국방 및 국제관계사를 이해하는데에 참고 자료가 된다. - 『서정록』(임홍빈 역편,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9) - 「조선초기의 여진 관계와 여진인식의 고착화 -태조...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이천리 망월사에 봉안되어 있는 고려시대 불상. 무릎 밑으로 대좌가 이어지는데, 앙 · 복련의 조식이 보이나 중앙에서는 마모되어 연화문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머리의 주변을 자세히 보면 광배 표면에 화염문이 희미하게 묘사되어 있다. # 특징 이 불상은 상호에서 나타나는 이목구비의 불균형, 양 어깨의 경직성, 팔과 무릎에서 표출되고 있는 사실성의 결여 등에서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 의의와 평가 이 석불좌상은 주형거신광을 갖추었으며 두꺼운 돌에 양각을 한 불상으로서는 흔치 않은 예에 속하는 작품으로, 고려 말 이 지역 일대의 약사여래신앙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 · 학술적 가치가 있다. - 『미술은 아름다운 생명체다』(정병모, 다ᄒᆞᆯ미디어, 2001)...
영암 망월사 석불 좌상 (靈巖 望月寺 石佛 坐像)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이천리 망월사에 봉안되어 있는 고려시대 불상. 무릎 밑으로 대좌가 이어지는데, 앙 · 복련의 조식이 보이나 중앙에서는 마모되어 연화문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머리의 주변을 자세히 보면 광배 표면에 화염문이 희미하게 묘사되어 있다. # 특징 이 불상은 상호에서 나타나는 이목구비의 불균형, 양 어깨의 경직성, 팔과 무릎에서 표출되고 있는 사실성의 결여 등에서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 의의와 평가 이 석불좌상은 주형거신광을 갖추었으며 두꺼운 돌에 양각을 한 불상으로서는 흔치 않은 예에 속하는 작품으로, 고려 말 이 지역 일대의 약사여래신앙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 · 학술적 가치가 있다. - 『미술은 아름다운 생명체다』(정병모, 다ᄒᆞᆯ미디어,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