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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년에, 정인지, 신숙주 등이 훈민정음 예의, 해례, 정인지 서문 등을 담아 간행한 훈민정음 해설서. 그러므로 이 책은 문화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책으로, 1997년 1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되었다. - 『국어학사』(강신항, 보성문화사, 1979) - 『신고국어학사』(유창균, 형설출판사, 1969) - 『국어표기법의 역사적 연구』(이기문, 한국연구원, 1963) - 『새로 지은 국어학사』(김윤경, 을유문화사, 1963) - 『한글갈』(최현배, 정음사, 1961) - 『국어학사』(김형규, 백영사, 1955) - 『훈민정음통사』(방종현, 일성당서점, 1946) - 『조선문자급어학사』(김윤경, 조선어학회, 1938)...
훈민정음 (訓民正音)
1446년에, 정인지, 신숙주 등이 훈민정음 예의, 해례, 정인지 서문 등을 담아 간행한 훈민정음 해설서. 그러므로 이 책은 문화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책으로, 1997년 1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에서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되었다. - 『국어학사』(강신항, 보성문화사, 1979) - 『신고국어학사』(유창균, 형설출판사, 1969) - 『국어표기법의 역사적 연구』(이기문, 한국연구원, 1963) - 『새로 지은 국어학사』(김윤경, 을유문화사, 1963) - 『한글갈』(최현배, 정음사, 1961) - 『국어학사』(김형규, 백영사, 1955) - 『훈민정음통사』(방종현, 일성당서점, 1946) - 『조선문자급어학사』(김윤경, 조선어학회, 1938)...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조선전기에 창건되어 정궁으로 이용된 궁궐. 정궁. # 개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도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궐(北闕)이라고도 불리었다. 조선왕조의 건립에 따라 창건되어 초기에 정궁으로 사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말기 고종 때 중건되어 잠시 궁궐로 이용되었다. # 연원 및 변천 이성계가 왕이 되어 곧 도읍을 옮기기로 하고,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열어 궁의 창건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에 완성하였다. 이 당시 궁의 규모는 390여 칸으로 크지 않았다.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 5칸에 상하층 월대(月臺)와 행랑 · 근정문 · 천랑(穿廊) · 각루(角樓) · 강녕전(康寧殿) 7칸, 연생전(延生殿) 3칸, 경성전...
경복궁 (景福宮)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조선전기에 창건되어 정궁으로 이용된 궁궐. 정궁. # 개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도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궐(北闕)이라고도 불리었다. 조선왕조의 건립에 따라 창건되어 초기에 정궁으로 사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말기 고종 때 중건되어 잠시 궁궐로 이용되었다. # 연원 및 변천 이성계가 왕이 되어 곧 도읍을 옮기기로 하고,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열어 궁의 창건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에 완성하였다. 이 당시 궁의 규모는 390여 칸으로 크지 않았다.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 5칸에 상하층 월대(月臺)와 행랑 · 근정문 · 천랑(穿廊) · 각루(角樓) · 강녕전(康寧殿) 7칸, 연생전(延生殿) 3칸, 경성전...
조선시대 종묘에 제사드릴 때 연주하는 기악과 노래와 무용의 총칭. ‘종묘악’이라고도 하며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종묘라 하면 정전(正殿)을 지칭하는 것이나 사실은 그 서편에 조묘(祧廟)인 영녕전(永寧殿)이 있어 두 사당으로 이루어졌다. 종묘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도 있었으나 음악을 제향에 사용하기는 고려 초기 숙종 무렵이다. 이 때의 음악이 어떠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 뒤 송나라에서 대성아악(大晟雅樂)이 들어와 1116년(예종 11) 10월부터 아악이 사용되었으나 체계가 갖추어진 것이 못 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시대의 것을 답습하다가 1395년(태조 4) 11월 고려의 옛 제도를 바꾼다는 원칙 아래 종묘악장(宗廟樂章)을 고쳤으나 그 음악에 관하여는 자세히 알 수 없다. 1405년...
종묘제례악 (宗廟祭禮樂)
조선시대 종묘에 제사드릴 때 연주하는 기악과 노래와 무용의 총칭. ‘종묘악’이라고도 하며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종묘라 하면 정전(正殿)을 지칭하는 것이나 사실은 그 서편에 조묘(祧廟)인 영녕전(永寧殿)이 있어 두 사당으로 이루어졌다. 종묘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도 있었으나 음악을 제향에 사용하기는 고려 초기 숙종 무렵이다. 이 때의 음악이 어떠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 뒤 송나라에서 대성아악(大晟雅樂)이 들어와 1116년(예종 11) 10월부터 아악이 사용되었으나 체계가 갖추어진 것이 못 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시대의 것을 답습하다가 1395년(태조 4) 11월 고려의 옛 제도를 바꾼다는 원칙 아래 종묘악장(宗廟樂章)을 고쳤으나 그 음악에 관하여는 자세히 알 수 없다. 1405년...
추석날 밤이나 정월 대보름날 밤에 전라남도 서남 해안지방에서 행하는 노래와 무용과 놀이가 혼합된 성인여자놀이. # 내용 1966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주로 해남 · 완도 · 무안 · 진도 등 전라남도 해안일대에서 성행되어왔다. 노래와 무용과 놀이가 혼합된 부녀자들의 놀이로 주로 추석날밤에 행하여지며 정월대보름날밤에 하기도 한다. 명칭은 ‘강강수월래’ 또는 한자로 ‘强羌水越來(강강수월래)’로 표기하는 일도 있으나 ‘강강술래’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진양조로 느리게 노래를 부를 때는 ‘강강수월래’로 길게 발음된다. 기원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전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이순신(李舜臣)과 관련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해남 우수영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적군에 비하여...
강강술래
추석날 밤이나 정월 대보름날 밤에 전라남도 서남 해안지방에서 행하는 노래와 무용과 놀이가 혼합된 성인여자놀이. # 내용 1966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주로 해남 · 완도 · 무안 · 진도 등 전라남도 해안일대에서 성행되어왔다. 노래와 무용과 놀이가 혼합된 부녀자들의 놀이로 주로 추석날밤에 행하여지며 정월대보름날밤에 하기도 한다. 명칭은 ‘강강수월래’ 또는 한자로 ‘强羌水越來(강강수월래)’로 표기하는 일도 있으나 ‘강강술래’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진양조로 느리게 노래를 부를 때는 ‘강강수월래’로 길게 발음된다. 기원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전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이순신(李舜臣)과 관련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해남 우수영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적군에 비하여...
대한민국 정부 소유의 국유지로서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섬. 독도는 대한민국 정부 소유의 국유지로서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섬이다. 울릉도의 동남향에 위치한 섬으로 동도와 서도 외에 89개의 부속도서로 구성되어 있다. 3세기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된다. 신라 지증왕 때 우산국이 신라에 병합되면서 부속섬 독도도 편입되었고 이후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행정구역상 우리의 영토로 존재해왔다. 일제강점기가 종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독도 소유권 문제를 제기하는 도발을 계속해오고 있다. 현재 독도경비대와 등대원이 독도에 상주하고 있으며, 일부 주민이 서도에 거주하면서 어로활동을 해오고 있다.국가지정유산) 천연기념물 ‘독도해조류번식지’로 지정 - 1999년: 국가지정문화재관리단체 지정 및...
독도 (獨島)
대한민국 정부 소유의 국유지로서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섬. 독도는 대한민국 정부 소유의 국유지로서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섬이다. 울릉도의 동남향에 위치한 섬으로 동도와 서도 외에 89개의 부속도서로 구성되어 있다. 3세기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된다. 신라 지증왕 때 우산국이 신라에 병합되면서 부속섬 독도도 편입되었고 이후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행정구역상 우리의 영토로 존재해왔다. 일제강점기가 종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독도 소유권 문제를 제기하는 도발을 계속해오고 있다. 현재 독도경비대와 등대원이 독도에 상주하고 있으며, 일부 주민이 서도에 거주하면서 어로활동을 해오고 있다.국가지정유산) 천연기념물 ‘독도해조류번식지’로 지정 - 1999년: 국가지정문화재관리단체 지정 및...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조선전기에 축조된 서울도성의 성곽문.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로 지정되었고, 국가유산청 덕수궁관리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40분 쯤에 방화로 인해 발생한 화재로 2층 누각의 90%, 1층 누각의 10% 정도가 소실되었다. 이후 2010년 2월에 숭례문복구공사를 시작한 이래 2013년에 완공되어 시민에게 공개되었다. # 내용 서울 숭례문은 1396년(태조 5) 축조된 서울도성의 정문으로, 1398년(태조 7) 2월에 준공되었다. 그 뒤 1448년(세종 29) 개수공사가 완료되었으며, 1961년부터 1962년 사이에 실시된 해체수리 때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에서 1479년(성종 10)에도 대대적인 중수공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건물이며, 화강암으로 구축한 홍예형...
서울 숭례문 (서울 崇禮門)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조선전기에 축조된 서울도성의 성곽문.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로 지정되었고, 국가유산청 덕수궁관리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40분 쯤에 방화로 인해 발생한 화재로 2층 누각의 90%, 1층 누각의 10% 정도가 소실되었다. 이후 2010년 2월에 숭례문복구공사를 시작한 이래 2013년에 완공되어 시민에게 공개되었다. # 내용 서울 숭례문은 1396년(태조 5) 축조된 서울도성의 정문으로, 1398년(태조 7) 2월에 준공되었다. 그 뒤 1448년(세종 29) 개수공사가 완료되었으며, 1961년부터 1962년 사이에 실시된 해체수리 때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에서 1479년(성종 10)에도 대대적인 중수공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건물이며, 화강암으로 구축한 홍예형...
조선 전기의 문신, 김종서·정인지·이선제 등이 왕명으로 고려시대 전반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여 편찬한 역사서. 『고려사』는 조선전기 문신 김종서·정인지·이선제 등이 왕명으로 고려시대 전반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여 편찬한 역사서이다. 세종의 명에 의해 시작되어 문종 원년에 편찬된 기전체의 관찬사서이다. 태조에서 공양왕까지 32명의 왕의 연대기인 세가 46권, 천문지에서 형법지까지 10조목의 지 39권, 연표 2권, 1,008명의 열전 50권, 목록 2권을 합해 총 139권 75책으로 구성되었다. 조선 건국의 합리화라는 정치적 목적과, 고려 무신정권기에서 우왕·창왕까지의 폐정을 권계하고 교훈을 찾으려는 목적에서 편찬되었지만 사료 선택의 엄정성과 객관적 서술 태도를 유지하였다.유형문화유산) 제104호로 지정되어 있다. # 편찬/발간 경위...
고려사 (高麗史)
조선 전기의 문신, 김종서·정인지·이선제 등이 왕명으로 고려시대 전반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여 편찬한 역사서. 『고려사』는 조선전기 문신 김종서·정인지·이선제 등이 왕명으로 고려시대 전반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여 편찬한 역사서이다. 세종의 명에 의해 시작되어 문종 원년에 편찬된 기전체의 관찬사서이다. 태조에서 공양왕까지 32명의 왕의 연대기인 세가 46권, 천문지에서 형법지까지 10조목의 지 39권, 연표 2권, 1,008명의 열전 50권, 목록 2권을 합해 총 139권 75책으로 구성되었다. 조선 건국의 합리화라는 정치적 목적과, 고려 무신정권기에서 우왕·창왕까지의 폐정을 권계하고 교훈을 찾으려는 목적에서 편찬되었지만 사료 선택의 엄정성과 객관적 서술 태도를 유지하였다.유형문화유산) 제104호로 지정되어 있다. # 편찬/발간 경위...
충청남도 공주시 송산리 고분군 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제25대 무령왕과 왕비의 능. # 개설 무령왕릉은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산5-1번지에 위치하며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된 송산리고분군에 포함되어 있다. 송산리고분군은 백제의 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 주종을 이루는데, 이 고분군에는 당시 중국 양(梁)나라 지배계층 무덤의 형식을 그대로 모방하여 축조한 벽돌무덤[塼築墳]으로서 무령왕릉과 함께 제6호 벽돌무덤이 있다. 무령왕릉은 발굴조사 결과, 무덤 안에서 무덤의 주인공을 알려주는 묘지석(墓誌石)이 발견됨으로써 백제 제25대 무령왕(재위 501∼523)의 무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 내용 무령왕릉은 송산리 제6호 벽돌무덤 북쪽의 나지막한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송산리고분군이...
무령왕릉 (武寧王陵)
충청남도 공주시 송산리 고분군 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제25대 무령왕과 왕비의 능. # 개설 무령왕릉은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산5-1번지에 위치하며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된 송산리고분군에 포함되어 있다. 송산리고분군은 백제의 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 주종을 이루는데, 이 고분군에는 당시 중국 양(梁)나라 지배계층 무덤의 형식을 그대로 모방하여 축조한 벽돌무덤[塼築墳]으로서 무령왕릉과 함께 제6호 벽돌무덤이 있다. 무령왕릉은 발굴조사 결과, 무덤 안에서 무덤의 주인공을 알려주는 묘지석(墓誌石)이 발견됨으로써 백제 제25대 무령왕(재위 501∼523)의 무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 내용 무령왕릉은 송산리 제6호 벽돌무덤 북쪽의 나지막한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송산리고분군이...
선전관청(宣傳官廳)과 영문(營門)에 소속된 취타수(吹打手)에 의해 연주되던 행진곡풍 군례악(軍禮樂)의 일종.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아명(雅名)으로는 <무령지곡 武寧之曲>, 속명으로는 <대취타>, 세칭 <구군악 舊軍樂>이라고도 부른다. 선전관청과 도성(都城)의 5영문(五營門)에는 대취타를 상설했으며, 각 지방의 감영 · 병영 · 수영에도 두었고, 각 고을에는 <소취타>를 두었다고 한다. <대취타>는 임금의 노부(鹵簿:임금이 거둥할 때의 의장, 또는 의장을 갖춘 행렬) · 행행(幸行) · 능행(陵幸:임금이 친히 능에 행차하는 것), 왕실(王室)의 동가(動駕:임금이 탄 수레가 대궐 밖으로 나가는 것) 등에 사용되었음은 물론, 군대의 행진 및 개선, 주장(主將)의 좌기(坐起:출근하여...
대취타 (大吹打)
선전관청(宣傳官廳)과 영문(營門)에 소속된 취타수(吹打手)에 의해 연주되던 행진곡풍 군례악(軍禮樂)의 일종.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아명(雅名)으로는 <무령지곡 武寧之曲>, 속명으로는 <대취타>, 세칭 <구군악 舊軍樂>이라고도 부른다. 선전관청과 도성(都城)의 5영문(五營門)에는 대취타를 상설했으며, 각 지방의 감영 · 병영 · 수영에도 두었고, 각 고을에는 <소취타>를 두었다고 한다. <대취타>는 임금의 노부(鹵簿:임금이 거둥할 때의 의장, 또는 의장을 갖춘 행렬) · 행행(幸行) · 능행(陵幸:임금이 친히 능에 행차하는 것), 왕실(王室)의 동가(動駕:임금이 탄 수레가 대궐 밖으로 나가는 것) 등에 사용되었음은 물론, 군대의 행진 및 개선, 주장(主將)의 좌기(坐起:출근하여...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에 있는 고려시대 목조 건물로 아미타불이 봉안된 사찰건물. 불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에 있는 고려시대 목조 건물로 아미타불이 봉안된 사찰건물이다. 676년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창건한 화엄사찰이다.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에 이르는 배치 구조를 가졌다. 무량수전은 배흘림기둥, 공포의 구성 형식, 가구재의 구성 등에서 주심포 건물의 기본 수법을 잘 보여주며 형태미와 비례미가 뛰어나다.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세계에 있고 극락세계는 바닥이 유리로 만들어졌다는 불경 내용에 따라 불단을 건물 서쪽에 치우치게 배치하여 불상이 동쪽을 향하게 했고 바닥에 유약을 바른 전돌을 깔았다.# 개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시대 목조 건물로서...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榮州 浮石寺 無量壽殿)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에 있는 고려시대 목조 건물로 아미타불이 봉안된 사찰건물. 불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에 있는 고려시대 목조 건물로 아미타불이 봉안된 사찰건물이다. 676년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창건한 화엄사찰이다.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에 이르는 배치 구조를 가졌다. 무량수전은 배흘림기둥, 공포의 구성 형식, 가구재의 구성 등에서 주심포 건물의 기본 수법을 잘 보여주며 형태미와 비례미가 뛰어나다.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세계에 있고 극락세계는 바닥이 유리로 만들어졌다는 불경 내용에 따라 불단을 건물 서쪽에 치우치게 배치하여 불상이 동쪽을 향하게 했고 바닥에 유약을 바른 전돌을 깔았다.# 개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시대 목조 건물로서...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천문관측소. 천문관측시설. 경주 첨성대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천문관측소이다. 『삼국유사』에 신라 선덕여왕 때 축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맨 밑의 기단부와 그 위의 술병형 원통부, 다시 그 위의 ‘우물정(井)’자석 정상부로 구성되고 총 높이는 9.51m이다. 기단부의 남쪽 변이 정남 방향에서 동쪽으로 19° 돌아서 있다. 원통부는 총 27단을 쌓아올렸는데 제13단에서 15단에 걸쳐 정방형의 창구가 나 있다. 제19·20단과 제25·26단에는 장대석을 걸쳐 우물정자를 만들었고 제27단 위의 정상부에도 두 단의 정자석이 있다. 천문현상을 관찰하여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곳이다.# 개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약 9.5m. 첨성대가 위치한 곳은 옛날에는 경주부(慶州府) 남쪽...
경주 첨성대 (慶州 瞻星臺)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천문관측소. 천문관측시설. 경주 첨성대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천문관측소이다. 『삼국유사』에 신라 선덕여왕 때 축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맨 밑의 기단부와 그 위의 술병형 원통부, 다시 그 위의 ‘우물정(井)’자석 정상부로 구성되고 총 높이는 9.51m이다. 기단부의 남쪽 변이 정남 방향에서 동쪽으로 19° 돌아서 있다. 원통부는 총 27단을 쌓아올렸는데 제13단에서 15단에 걸쳐 정방형의 창구가 나 있다. 제19·20단과 제25·26단에는 장대석을 걸쳐 우물정자를 만들었고 제27단 위의 정상부에도 두 단의 정자석이 있다. 천문현상을 관찰하여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곳이다.# 개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약 9.5m. 첨성대가 위치한 곳은 옛날에는 경주부(慶州府) 남쪽...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에 있는 경승지. # 개설 1976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04년 명승 '부안 채석강 · 적벽강 일원'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변산반도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변산반도 서쪽 끝의 격포항(格浦港) 오른쪽 닭이봉(鷄峰)일대의 1.5㎞의 층암절벽과 바다를 총칭하는 지명으로 변산팔경 중의 하나인 채석범주(彩石帆舟)가 바로 이곳을 말한다. # 명칭 유래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술을 마시며 놀았다는 중국의채석강과 흡사하다고 하여 ‘채석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 자연환경], [형성 및 변천], [현황 경치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바위의 기묘한 형상 때문에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격포항 오른쪽의 닭이 봉 밑 바다에서 추켜올려진 단애는...
채석강 (彩石江)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에 있는 경승지. # 개설 1976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04년 명승 '부안 채석강 · 적벽강 일원'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변산반도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변산반도 서쪽 끝의 격포항(格浦港) 오른쪽 닭이봉(鷄峰)일대의 1.5㎞의 층암절벽과 바다를 총칭하는 지명으로 변산팔경 중의 하나인 채석범주(彩石帆舟)가 바로 이곳을 말한다. # 명칭 유래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술을 마시며 놀았다는 중국의채석강과 흡사하다고 하여 ‘채석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 자연환경], [형성 및 변천], [현황 경치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바위의 기묘한 형상 때문에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격포항 오른쪽의 닭이 봉 밑 바다에서 추켜올려진 단애는...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축조되어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지키던 성곽. 산성. 남한산성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게 인정되어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신규 등재되었다. # 역사적 변천 1985년에 지표조사가 실시된 이래, 1998년부터 8차례에 걸쳐 행궁터, 인화관터, 일부 성벽에 대한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대략적인 축성 시기와 함께 변천 과정도 파악되었다. 남한산성이 백제 온조왕 때 도성이었다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발굴조사 결과 백제 주거지 2곳과 저장 구덩이 8곳 등이 확인되었을 뿐 성곽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오히려『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673년(문무왕 13)에 한산주(漢山州)에 주장성(혹은 日長城)을 쌓았는데...
남한산성 (南漢山城)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축조되어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지키던 성곽. 산성. 남한산성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게 인정되어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신규 등재되었다. # 역사적 변천 1985년에 지표조사가 실시된 이래, 1998년부터 8차례에 걸쳐 행궁터, 인화관터, 일부 성벽에 대한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대략적인 축성 시기와 함께 변천 과정도 파악되었다. 남한산성이 백제 온조왕 때 도성이었다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발굴조사 결과 백제 주거지 2곳과 저장 구덩이 8곳 등이 확인되었을 뿐 성곽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오히려『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673년(문무왕 13)에 한산주(漢山州)에 주장성(혹은 日長城)을 쌓았는데...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던 천문관측기. # 내용 일명 혼의(渾儀) · 혼의기(渾儀器) · 선기옥형(璇璣玉衡)이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의 우주관인 혼천설(渾天說)에 기초를 두어 서기전 2세기경에 처음 만들어졌다. 우리 나라에서는 확실한 자료는 없으나, 삼국시대 후기에서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만들어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록에 나타난 바로는 1432년(세종 14) 예문관제학 정인지(鄭麟趾), 대제학 정초(鄭招) 등이 왕명을 받아 고전을 조사하고, 중추원사 이천(李蕆), 호군 장영실(蔣英實) 등이 1433년 6월에 최초로 제작하였다. 처음에는 재료로 목재를 사용하였으나 뒤에 구리로 제작하였다. 1657년(효종 8)에는 최유지(崔攸之), 1669년(현종 10)에는 이민철(李敏哲)과 송이영(宋以穎)이 각각 제작하였다. 효종...
혼천의 (渾天儀)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던 천문관측기. # 내용 일명 혼의(渾儀) · 혼의기(渾儀器) · 선기옥형(璇璣玉衡)이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의 우주관인 혼천설(渾天說)에 기초를 두어 서기전 2세기경에 처음 만들어졌다. 우리 나라에서는 확실한 자료는 없으나, 삼국시대 후기에서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만들어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록에 나타난 바로는 1432년(세종 14) 예문관제학 정인지(鄭麟趾), 대제학 정초(鄭招) 등이 왕명을 받아 고전을 조사하고, 중추원사 이천(李蕆), 호군 장영실(蔣英實) 등이 1433년 6월에 최초로 제작하였다. 처음에는 재료로 목재를 사용하였으나 뒤에 구리로 제작하였다. 1657년(효종 8)에는 최유지(崔攸之), 1669년(현종 10)에는 이민철(李敏哲)과 송이영(宋以穎)이 각각 제작하였다. 효종...
1896년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 『독립신문』은 18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이다. 국문판과 영문판으로 구성되었다. 계몽적 신문의 필요성을 인식한 서재필과 유길준, 개화파 내각의 합작으로 탄생했다. 거액의 정부 예산이 지원되어 1896년 4월 7일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근대민족주의·민주주의·자주화 근대화 사상을 강조하며 국민을 교육·계몽하는 일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나 독립협회가 수구파정부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결국 정부의 매각 강요에 굴복해 1899년 12월 4일자 신문을 끝으로 종간했다. 정부는 신문사 매수 후 속간을 약속했다가 영구 폐간시켰다.# 내용 국문판과 영문판으로 구성되었으며, 격일간지로 출발해 일간지로 발전하였다. 1884년(고종 21)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을 거쳐...
독립신문 (獨立新聞)
1896년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 『독립신문』은 18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이다. 국문판과 영문판으로 구성되었다. 계몽적 신문의 필요성을 인식한 서재필과 유길준, 개화파 내각의 합작으로 탄생했다. 거액의 정부 예산이 지원되어 1896년 4월 7일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근대민족주의·민주주의·자주화 근대화 사상을 강조하며 국민을 교육·계몽하는 일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나 독립협회가 수구파정부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결국 정부의 매각 강요에 굴복해 1899년 12월 4일자 신문을 끝으로 종간했다. 정부는 신문사 매수 후 속간을 약속했다가 영구 폐간시켰다.# 내용 국문판과 영문판으로 구성되었으며, 격일간지로 출발해 일간지로 발전하였다. 1884년(고종 21)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을 거쳐...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고래사냥 관련 바위그림. 암각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고래사냥 관련 바위그림이다. 1971년에 발견되었고 1995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사냥과 어로와 관련된 300여 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그중 고래를 사냥하는 사실적인 그림은 7,000년 전 신석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지구상에 현존하는 고래사냥 그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사냥하는 사람과 동물, 어로 및 사냥 도구 등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선사시대 암각화 유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약 7,000년~3,500년 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개설 1971년 문명대, 김정배, 이융조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199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蔚州 大谷里 盤龜臺 巖刻畵)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고래사냥 관련 바위그림. 암각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고래사냥 관련 바위그림이다. 1971년에 발견되었고 1995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사냥과 어로와 관련된 300여 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그중 고래를 사냥하는 사실적인 그림은 7,000년 전 신석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지구상에 현존하는 고래사냥 그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사냥하는 사람과 동물, 어로 및 사냥 도구 등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선사시대 암각화 유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약 7,000년~3,500년 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개설 1971년 문명대, 김정배, 이융조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199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조선 말기의 화가 김정희(金正喜)가 그린 문인화. # 내용 197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세로 23㎝, 가로 69.2㎝. 종이 바탕에 수묵. 지위와 권력을 박탈당하고 제주도 유배지에서 귀양살이하고 있었던 김정희가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두 번씩이나 북경(北京)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다 준 제자인 역관(譯官) 이상적(李尙迪)에게 1844년(헌종 10)에 답례로 그려준 것이다. 김정희는 이 그림에서 이상적(李尙迪)의 인품을 날씨가 추워진 뒤에 제일 늦게 낙엽 지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여 표현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발문(跋文)이 작가 자신의 글씨로 적혀 그림 끝에 붙어 있고, 그 뒤를 이어 이듬해 이 그림을 가지고 북경에 가서 장악진(章岳鎭), 조진조(趙振祚) 등 그곳의 명사 16명에게 보이고...
김정희 필 세한도 (金正喜 筆 歲寒圖)
조선 말기의 화가 김정희(金正喜)가 그린 문인화. # 내용 197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세로 23㎝, 가로 69.2㎝. 종이 바탕에 수묵. 지위와 권력을 박탈당하고 제주도 유배지에서 귀양살이하고 있었던 김정희가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두 번씩이나 북경(北京)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다 준 제자인 역관(譯官) 이상적(李尙迪)에게 1844년(헌종 10)에 답례로 그려준 것이다. 김정희는 이 그림에서 이상적(李尙迪)의 인품을 날씨가 추워진 뒤에 제일 늦게 낙엽 지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여 표현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발문(跋文)이 작가 자신의 글씨로 적혀 그림 끝에 붙어 있고, 그 뒤를 이어 이듬해 이 그림을 가지고 북경에 가서 장악진(章岳鎭), 조진조(趙振祚) 등 그곳의 명사 16명에게 보이고...
신라시대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을 새긴 비석. # 내용 200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석의 첫머리에 ‘임신(壬申)’이라는 간지(干支)가 새겨져 있고, 또한 내용 중에 충성을 서약하는 글귀가 자주 보이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1934년경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금장리 석장사(石丈寺)터 부근에서 발견되어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비석은 길이 약 30㎝, 너비는 윗부분이 12.5㎝이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여기에 다섯 줄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74자가 새겨져 있다. “壬申年六月十六日 二人幷誓記 天前誓 今自三年以後 忠道執持 過失无誓 若此事失 天大罪得誓 若國不安大亂世 可容行誓之 又別先辛未年 七月卄二日 大誓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임신년 6월 16일에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해 기록한다. 하늘 앞에...
임신서기석 (壬申誓記石)
신라시대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을 새긴 비석. # 내용 200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석의 첫머리에 ‘임신(壬申)’이라는 간지(干支)가 새겨져 있고, 또한 내용 중에 충성을 서약하는 글귀가 자주 보이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1934년경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금장리 석장사(石丈寺)터 부근에서 발견되어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비석은 길이 약 30㎝, 너비는 윗부분이 12.5㎝이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여기에 다섯 줄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74자가 새겨져 있다. “壬申年六月十六日 二人幷誓記 天前誓 今自三年以後 忠道執持 過失无誓 若此事失 天大罪得誓 若國不安大亂世 可容行誓之 又別先辛未年 七月卄二日 大誓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임신년 6월 16일에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해 기록한다. 하늘 앞에...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조선시대 고종의 거처로 이용된 궁궐. 덕수궁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조선시대 고종의 거처로 이용된 궁궐이다. 원래 월산대군의 사가였는데 임진왜란 후 선조가 임시거처로 사용하면서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가 광해군 때에 경운궁으로 개칭되었다. 1897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후부터 중화전을 비롯한 전각들이 세워졌다. 건물은 정전과 침전이 있는 부분, 선원전이 있는 부분, 그리고 서양식 건물인 중명전이 있는 부분으로 나뉜다. 고종의 재위 말년 약 10년간 정치적 혼란의 주무대가 된 장소였고,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하고 이곳에 머무르게 되면서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개설 덕수궁은 처음 월산대군의 집터였던 것을 임진왜란 이후 선조의 임시거처로 사용되어 정릉동 행궁으로...
덕수궁 (德壽宮)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조선시대 고종의 거처로 이용된 궁궐. 덕수궁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조선시대 고종의 거처로 이용된 궁궐이다. 원래 월산대군의 사가였는데 임진왜란 후 선조가 임시거처로 사용하면서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가 광해군 때에 경운궁으로 개칭되었다. 1897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후부터 중화전을 비롯한 전각들이 세워졌다. 건물은 정전과 침전이 있는 부분, 선원전이 있는 부분, 그리고 서양식 건물인 중명전이 있는 부분으로 나뉜다. 고종의 재위 말년 약 10년간 정치적 혼란의 주무대가 된 장소였고,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하고 이곳에 머무르게 되면서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개설 덕수궁은 처음 월산대군의 집터였던 것을 임진왜란 이후 선조의 임시거처로 사용되어 정릉동 행궁으로...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비. 석비·중원비. # 개설 1981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203㎝, 너비 55㎝이다. 중원 고구려비라고도 하였다. 입석마을에 글자가 새겨진 돌이 있다는 정보에 따라 1979년 4월 8일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에 의하여 발견, 조사되었다. 발견 당시 전면(全面)에 바위이끼가 많이 끼어 있어 육안으로는 물론 탁본을 하여도 판독이 어려울 정도였다. 석비의 형태는 석주형(石柱形)으로서 자연석을 이용해 각자면(刻字面)을 갈고 비문을 새겼다. 앞면과 한쪽 옆면에서만 글자를 확인했으나 뒷면과 또 한쪽의 옆면에서도 글자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석질은 견고한 화강암으로 글자의 흔적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렇게 볼 때 4면에 모두 글자를 새긴 4면비(四面碑)로서 글자는 앞면이 10행으로...
충주 고구려비 (忠州 高句麗碑)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비. 석비·중원비. # 개설 1981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203㎝, 너비 55㎝이다. 중원 고구려비라고도 하였다. 입석마을에 글자가 새겨진 돌이 있다는 정보에 따라 1979년 4월 8일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에 의하여 발견, 조사되었다. 발견 당시 전면(全面)에 바위이끼가 많이 끼어 있어 육안으로는 물론 탁본을 하여도 판독이 어려울 정도였다. 석비의 형태는 석주형(石柱形)으로서 자연석을 이용해 각자면(刻字面)을 갈고 비문을 새겼다. 앞면과 한쪽 옆면에서만 글자를 확인했으나 뒷면과 또 한쪽의 옆면에서도 글자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석질은 견고한 화강암으로 글자의 흔적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렇게 볼 때 4면에 모두 글자를 새긴 4면비(四面碑)로서 글자는 앞면이 10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