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강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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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초상은 조선 전기의 승려이자 문인이었던 김시습을 그린 영정이다. 세로 72㎝, 가로 48.5㎝로 충청남도 부여군 만수리 무량사에 소장되어 있다. 무색 도포를 입고 평량자 형태의 흑립을 쓴 채 반우향의 자세로 공수한 매우 독특한 도상의 반신상이다. 얼굴 전체는 약간 붉은 기가 도는 살색으로 가볍게 담채하였다. 직선적인 옷주름은 초상 전체의 고아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도상과 화법상의 특징으로 볼 때 숙종대를 전후하여 제작된 이모본으로 추정된다. 김시습 초상은 가채가 전혀 없는 조선 전기 평상복 초상화 중 걸작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김시습 초상 (金時習 肖像)
김시습 초상은 조선 전기의 승려이자 문인이었던 김시습을 그린 영정이다. 세로 72㎝, 가로 48.5㎝로 충청남도 부여군 만수리 무량사에 소장되어 있다. 무색 도포를 입고 평량자 형태의 흑립을 쓴 채 반우향의 자세로 공수한 매우 독특한 도상의 반신상이다. 얼굴 전체는 약간 붉은 기가 도는 살색으로 가볍게 담채하였다. 직선적인 옷주름은 초상 전체의 고아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도상과 화법상의 특징으로 볼 때 숙종대를 전후하여 제작된 이모본으로 추정된다. 김시습 초상은 가채가 전혀 없는 조선 전기 평상복 초상화 중 걸작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조선 후기의 무신 김완의 초상.
김완 초상 (金完 肖像)
조선 후기의 무신 김완의 초상.
조선 후기의 학자 변종락(邊宗洛, 1792~1863)의 초상화.
기옹 영정 (碁翁 影幀)
조선 후기의 학자 변종락(邊宗洛, 1792~1863)의 초상화.
명고 영정은 조선 후기의 문신 정간의 모습을 그린 족자이다. 경상북도 영천시 녹전동 북계영당에서 관리하고 있다. 비단 바탕에 채색한 작품으로 정간(호는 명고)이 앞을 바라본 모습이며, 의자에 앉은 전신상이다. 얼굴을 불투명한 채색으로 묘사하고, 관복이나 사모, 교의자 손잡이 등에 명암 표현을 넣지 않았다. 바닥의 화문석 돗자리가 초상화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할 정도로 넓은 면적에 걸쳐 매우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정간의 초상화는 18세기 초중반경 개성 부근의 지방 화가가 그렸을 가능성이 있다. 198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명고 영정 (鳴皐 影幀)
명고 영정은 조선 후기의 문신 정간의 모습을 그린 족자이다. 경상북도 영천시 녹전동 북계영당에서 관리하고 있다. 비단 바탕에 채색한 작품으로 정간(호는 명고)이 앞을 바라본 모습이며, 의자에 앉은 전신상이다. 얼굴을 불투명한 채색으로 묘사하고, 관복이나 사모, 교의자 손잡이 등에 명암 표현을 넣지 않았다. 바닥의 화문석 돗자리가 초상화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할 정도로 넓은 면적에 걸쳐 매우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정간의 초상화는 18세기 초중반경 개성 부근의 지방 화가가 그렸을 가능성이 있다. 198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신잡(申磼)을 그린 초상화.
신잡 초상 (申磼 肖像)
조선 중기의 문신 신잡(申磼)을 그린 초상화.
신경유 선생 영정 및 공신녹권은 조선 중기 무신 신경유 선생의 초상화와 공신에게 수여한 문서이다. 1984년 경기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해제되었다. 초상화는 검은 사모를 쓴 채 관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강직하고 단순한 얼굴과 신체, 화려하고 장식적인 채선과 흉배의 채색이 이원적으로 결합되어 독특한 심미적 효과를 준다. 영정은 17세기 전반 공신도상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공신녹권은 그가 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에 녹훈되어 받은 것으로 끈과 고리까지 원형이 잘 남아 있어 조선 중기의 두루마리 표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신경유 선생 영정 및 공신녹권 (申景裕 先生 影幀 및 功臣錄券)
신경유 선생 영정 및 공신녹권은 조선 중기 무신 신경유 선생의 초상화와 공신에게 수여한 문서이다. 1984년 경기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해제되었다. 초상화는 검은 사모를 쓴 채 관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강직하고 단순한 얼굴과 신체, 화려하고 장식적인 채선과 흉배의 채색이 이원적으로 결합되어 독특한 심미적 효과를 준다. 영정은 17세기 전반 공신도상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공신녹권은 그가 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에 녹훈되어 받은 것으로 끈과 고리까지 원형이 잘 남아 있어 조선 중기의 두루마리 표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신경행(辛景行)의 영정.
신경행 초상 (申景行 肖像)
조선 중기의 문신 신경행(辛景行)의 영정.
이수일 진무공신교서 및 초상은 조선 중기의 무신 이수일(1554~1632)의 초상화 및 진무공신교서이다. 1995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초상화는 비단에 채색으로 가로 184㎝, 세로 99㎝이다. 깃을 둥글게 만든 공복인 단령과 사모관대를 갖춰 입은 뒤 바닥에 채전을 깔고 교의자에 앉은 전신상이다. 17세기 초 공신도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하고 있다. 진무공신교서는 두루마리로 일반적인 공신교서와 같은 형식이다. 교서의 마지막에 ‘천계오년 사월일’이라 기록되어 있어 1625년 4월에 반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수일 진무공신교서 및 초상 (李守一 振武功臣敎書 및 肖像)
이수일 진무공신교서 및 초상은 조선 중기의 무신 이수일(1554~1632)의 초상화 및 진무공신교서이다. 1995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초상화는 비단에 채색으로 가로 184㎝, 세로 99㎝이다. 깃을 둥글게 만든 공복인 단령과 사모관대를 갖춰 입은 뒤 바닥에 채전을 깔고 교의자에 앉은 전신상이다. 17세기 초 공신도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하고 있다. 진무공신교서는 두루마리로 일반적인 공신교서와 같은 형식이다. 교서의 마지막에 ‘천계오년 사월일’이라 기록되어 있어 1625년 4월에 반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채 초상은 조선 후기의 문신 이채(1745-1820)를 그린 초상화이다. 2006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심의를 입고 동파관을 쓴 뒤 두 손을 모으고 정면을 바라보는 반신상이다. 이 초상은 수려한 용모를 뛰어난 화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당대 명필들의 미려한 글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왼쪽에 유한준의 찬문(서화를 기리는 글)이 있다. 조선 후기 초상화는 정조대 중엽 전후에 가장 정교한 기법을 구사하였다. 이 초상화는 1802년에 그려진 것으로 조선 후기 초상화 중 가장 아름다운 걸작이다.
이채 초상 (李采 肖像)
이채 초상은 조선 후기의 문신 이채(1745-1820)를 그린 초상화이다. 2006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심의를 입고 동파관을 쓴 뒤 두 손을 모으고 정면을 바라보는 반신상이다. 이 초상은 수려한 용모를 뛰어난 화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당대 명필들의 미려한 글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왼쪽에 유한준의 찬문(서화를 기리는 글)이 있다. 조선 후기 초상화는 정조대 중엽 전후에 가장 정교한 기법을 구사하였다. 이 초상화는 1802년에 그려진 것으로 조선 후기 초상화 중 가장 아름다운 걸작이다.
조선후기 문신·서화가 김정희가 제자 14명의 서화 작품을 품평하여 1849년에 저술한 평론서.
예림갑을록 (藝林甲乙綠)
조선후기 문신·서화가 김정희가 제자 14명의 서화 작품을 품평하여 1849년에 저술한 평론서.
조선 중기의 무신 이윤룡(李雲龍, 1562∼1610)의 초상화.
이운룡 장군 영정 (李雲龍 將軍 影幀)
조선 중기의 무신 이윤룡(李雲龍, 1562∼1610)의 초상화.
정수충 초상 및 중모기는 조선 전기의 문신 정수충의 초상화와 이 초상을 다시 그린 내역을 적은 기록이다. 1987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정수충(1401∼1460) 초상화는 도상이 좌익공신상과 상통하지만, 화법이 다소 조악하다. 이는 다시 그리는 과정에서 왜곡되고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정중모기』는 정수충의 영정을 이모하고 봉안한 내력과 소요 물품 및 경비를 기록한 필사본이다. 초상화의 원본은 금릉의 종가에서 봉안해 오던 영정이며, 1769년에 옮겨 그린 것이라 한다. 1865년 이덕명이 장수충의 영정을 다시 그렸다.
정수충 초상 및 중모기 (鄭守忠 肖像 및 重模記)
정수충 초상 및 중모기는 조선 전기의 문신 정수충의 초상화와 이 초상을 다시 그린 내역을 적은 기록이다. 1987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정수충(1401∼1460) 초상화는 도상이 좌익공신상과 상통하지만, 화법이 다소 조악하다. 이는 다시 그리는 과정에서 왜곡되고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정중모기』는 정수충의 영정을 이모하고 봉안한 내력과 소요 물품 및 경비를 기록한 필사본이다. 초상화의 원본은 금릉의 종가에서 봉안해 오던 영정이며, 1769년에 옮겨 그린 것이라 한다. 1865년 이덕명이 장수충의 영정을 다시 그렸다.
조선중기의 문신인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의 초상화.
이원익 선생 영정 (李元翼 先生 影幀)
조선중기의 문신인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의 초상화.
조선 후기의 문신 정우량(鄭羽良, 1692~1754)의 초상화.
정우량 영정 (鄭羽良 影幀)
조선 후기의 문신 정우량(鄭羽良, 1692~1754)의 초상화.
조선시대의 무관 전운상(田雲祥, 1694∼1760)의 초상화.
전운상 영정 (田雲祥 影幀)
조선시대의 무관 전운상(田雲祥, 1694∼1760)의 초상화.
조선 중기의 문신 장만(張晩, 1566~1629)의 초상화 2점과 녹권 1권.
장만선생 영정 및 공신녹권 (張晩先生 影幀 및 功臣錄券)
조선 중기의 문신 장만(張晩, 1566~1629)의 초상화 2점과 녹권 1권.
이만유(李萬囿, 1684∼1750)의 초상화.
이만유 영정 (李萬囿 影幀)
이만유(李萬囿, 1684∼1750)의 초상화.
채제공 선생 영정은 조선 후기 문신 채제공을 그린 초상화이다. 충청남도 청양군 상의사에 봉안되어 있으며,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크기는 145×78.5㎝이다. 현재 이 영정을 포함한 초상 3점, 초본 3점, 향낭 1점, 함 2점이 일괄로 200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채제공(1720~1799)의 영정은 현재 4본이 알려져 있다. 이 영정은 관원이 조정에 나아가 하례할 때 입던 예복인 조복을 착용하고 금관을 쓴 뒤 상아홀을 든 채 반우향으로 앉은 모습이다. 이 초상화는 정조대에 절정에 달했던 사실주의적 시각 표현의 한 극점을 보여 준다.
채제공 선생 영정 (蔡濟恭 先生 影幀)
채제공 선생 영정은 조선 후기 문신 채제공을 그린 초상화이다. 충청남도 청양군 상의사에 봉안되어 있으며,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크기는 145×78.5㎝이다. 현재 이 영정을 포함한 초상 3점, 초본 3점, 향낭 1점, 함 2점이 일괄로 200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채제공(1720~1799)의 영정은 현재 4본이 알려져 있다. 이 영정은 관원이 조정에 나아가 하례할 때 입던 예복인 조복을 착용하고 금관을 쓴 뒤 상아홀을 든 채 반우향으로 앉은 모습이다. 이 초상화는 정조대에 절정에 달했던 사실주의적 시각 표현의 한 극점을 보여 준다.
차비대령화원은 조선 후기 왕실과 관련된 서사 및 도화 활동을 담당하기 위하여 도화서에서 임시로 차출되는 화원이다. 1783년(정조 7)에 규장각 잡직으로 제도화되었다. 차비대령화원은 도화서 화원을 상대로 한 공개 시험으로 선발했다. 시험은 인물, 산수, 누각, 초충 등 총 8과목이다. 1881년까지 약 100년간의 운영 상황 기록이 규장각 일지 『내각일력』에 남아 있다. 신한평·김홍도·김득신 등 대표적인 화원 화가들이 차비대령화원을 역임했다. 차비대령화원은 조선 후기 화단의 변화를 제도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차비대령화원 (差備待令畵員)
차비대령화원은 조선 후기 왕실과 관련된 서사 및 도화 활동을 담당하기 위하여 도화서에서 임시로 차출되는 화원이다. 1783년(정조 7)에 규장각 잡직으로 제도화되었다. 차비대령화원은 도화서 화원을 상대로 한 공개 시험으로 선발했다. 시험은 인물, 산수, 누각, 초충 등 총 8과목이다. 1881년까지 약 100년간의 운영 상황 기록이 규장각 일지 『내각일력』에 남아 있다. 신한평·김홍도·김득신 등 대표적인 화원 화가들이 차비대령화원을 역임했다. 차비대령화원은 조선 후기 화단의 변화를 제도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조선 중기의 문신 유백증(兪伯曾, 1587∼1646)의 초상화이다. 1995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623년에 정사공신(靖死功臣)에 녹훈된 뒤 그려진 공신도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도상은 단령(團領)과 사모관대(紗帽冠帶)를 정장한 뒤 바닥에 채전(彩氈)을 깔고 교의자(交椅子)에 반우향으로 앉아서 공수(拱手)한 조선 중기 공신도상의 전형적인 모습과 같다. 흉배는 백한(白鷳) 두 마리를 그린 운한(雲鷳) 흉배이다. 관대는 삽금대(鈒金帶)인데, 금분과 은분을 사용하여 장식적 효과를 강조했다.
유백증 초상 (兪伯曾 肖像)
조선 중기의 문신 유백증(兪伯曾, 1587∼1646)의 초상화이다. 1995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623년에 정사공신(靖死功臣)에 녹훈된 뒤 그려진 공신도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도상은 단령(團領)과 사모관대(紗帽冠帶)를 정장한 뒤 바닥에 채전(彩氈)을 깔고 교의자(交椅子)에 반우향으로 앉아서 공수(拱手)한 조선 중기 공신도상의 전형적인 모습과 같다. 흉배는 백한(白鷳) 두 마리를 그린 운한(雲鷳) 흉배이다. 관대는 삽금대(鈒金帶)인데, 금분과 은분을 사용하여 장식적 효과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