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강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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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과 사부학당(四部學堂, 四學이라고도 함)을 합쳐 부른 칭호.
관학 (館學)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과 사부학당(四部學堂, 四學이라고도 함)을 합쳐 부른 칭호.
조선 전기에, 이문습독관을 역임하다가 안처겸의 옥사애 연루되어 유배된 학자.
김광원 (金光遠)
조선 전기에, 이문습독관을 역임하다가 안처겸의 옥사애 연루되어 유배된 학자.
조선 전기에, 이조좌랑, 정언, 헌납 등을 역임한 문신.
김괴 (金塊)
조선 전기에, 이조좌랑, 정언, 헌납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시대 강변칠우에 속한 문인.
김평손 (金平孫)
조선시대 강변칠우에 속한 문인.
해방 이후 『판례, 학설주석민법』, 『민법총칙』, 『불법행위론』 등을 저술한 학자. 법학자.
김현태 (金顯泰)
해방 이후 『판례, 학설주석민법』, 『민법총칙』, 『불법행위론』 등을 저술한 학자. 법학자.
중앙농업기술원 잠사과장, 대한잠사회 고문직 등을 역임하였으며, 『잠사개론』 등을 저술하여 농업 기술 발전에 힘쓴 잠사학자.
박병희 (朴炳禧)
중앙농업기술원 잠사과장, 대한잠사회 고문직 등을 역임하였으며, 『잠사개론』 등을 저술하여 농업 기술 발전에 힘쓴 잠사학자.
조선시대 호조에 소속된 한 부서.
별고색 (別庫色)
조선시대 호조에 소속된 한 부서.
조선시대 호조 소속의 경비사(經費司)에 두었던 한 부서.
별영색 (別營色)
조선시대 호조 소속의 경비사(經費司)에 두었던 한 부서.
해방 이후 한국산업은행총재, 우석대학 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한 경제인. 실업가.
서병수 (徐丙秀)
해방 이후 한국산업은행총재, 우석대학 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한 경제인. 실업가.
해방 이후 『행정법총론』·『판례중심의 예해행정법』·『헌법』 등을 저술한 학자. 법학자.
윤세창 (尹世昌)
해방 이후 『행정법총론』·『판례중심의 예해행정법』·『헌법』 등을 저술한 학자. 법학자.
조선시대 호조에 소속된 한 부서.
은색 (銀色)
조선시대 호조에 소속된 한 부서.
조선시대 호조에 소속된 한 부서.
응판색 (應辦色)
조선시대 호조에 소속된 한 부서.
조선 전기에, 집현전교리, 병조정랑, 승문원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이현로 (李賢老)
조선 전기에, 집현전교리, 병조정랑, 승문원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시대 호조에 소속된 한 부서.
전례방 (前例房)
조선시대 호조에 소속된 한 부서.
조태동은 조선 후기에, 함경도관찰사, 대사헌,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649년에 태어나 1712년에 사망했다. 윤증의 문인이다. 1695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이후 세자시강원 사서가 되었다. 1697년 문과중시에 병과로 다시 급제한 이후 홍문관 교리, 사간원 정언, 홍문관 응교를 지냈다. 동지사의 부사로 중국 연경에 다녀왔으며 외직으로 충청도·경상도·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했다. 대사성, 대사간, 대사헌을 두루 거쳐 1711년에는 형조참판에 이르렀다. 당시 환국이 거듭됨에 따라 자당파를 비호하고 반대파의 비판에 앞장서기도 했다.
조태동 (趙泰東)
조태동은 조선 후기에, 함경도관찰사, 대사헌,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649년에 태어나 1712년에 사망했다. 윤증의 문인이다. 1695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이후 세자시강원 사서가 되었다. 1697년 문과중시에 병과로 다시 급제한 이후 홍문관 교리, 사간원 정언, 홍문관 응교를 지냈다. 동지사의 부사로 중국 연경에 다녀왔으며 외직으로 충청도·경상도·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했다. 대사성, 대사간, 대사헌을 두루 거쳐 1711년에는 형조참판에 이르렀다. 당시 환국이 거듭됨에 따라 자당파를 비호하고 반대파의 비판에 앞장서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 사간원헌납 · 사헌부장령 · 사헌부집의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725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거쳐, 1729년에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이 되었다. 1735년에 사헌부장령이 되었고, 1737년에는 사간원헌납(司憲府獻納)·사헌부장령을 여러 차례 역임하면서 대관(臺官)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그 뒤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가 되었고, 이어 사간이 되어 자파인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민태수(閔宅洙)를 비호하다가 파직되었다. 노론으로서 영조 초기의 탕평책(蕩平策)에 준론(峻論)을 표방한 인물이다.
조태언 (趙泰彦)
조선 후기에 사간원헌납 · 사헌부장령 · 사헌부집의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725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거쳐, 1729년에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이 되었다. 1735년에 사헌부장령이 되었고, 1737년에는 사간원헌납(司憲府獻納)·사헌부장령을 여러 차례 역임하면서 대관(臺官)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그 뒤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가 되었고, 이어 사간이 되어 자파인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민태수(閔宅洙)를 비호하다가 파직되었다. 노론으로서 영조 초기의 탕평책(蕩平策)에 준론(峻論)을 표방한 인물이다.
조선 후기에, 홍문관수찬, 사간원헌납, 홍문관응교 등을 역임한 문신.
조태일 (趙泰一)
조선 후기에, 홍문관수찬, 사간원헌납, 홍문관응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세자시강원문학 · 승지 ·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726년(영조 2) 전 현감으로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1731년 홍문관수찬이 되었고, 이 해에 관북어사로 파견되어 이듬해까지 활약하였다. 1733년 부응교(副應敎)로 다시 등용되고, 부수찬·사간을 여러 차례 역임한 뒤에 1735년 다시 부응교가 되고, 이듬해는 세자시강원문학이 되었다. 이 해에 승지를 거쳐 대사간에 오르고, 1737년에는 다시 승지에 복귀되었으며, 1739년에 대사간이 되었다.
조한위 (趙漢緯)
조선 후기에 세자시강원문학 · 승지 ·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726년(영조 2) 전 현감으로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1731년 홍문관수찬이 되었고, 이 해에 관북어사로 파견되어 이듬해까지 활약하였다. 1733년 부응교(副應敎)로 다시 등용되고, 부수찬·사간을 여러 차례 역임한 뒤에 1735년 다시 부응교가 되고, 이듬해는 세자시강원문학이 되었다. 이 해에 승지를 거쳐 대사간에 오르고, 1737년에는 다시 승지에 복귀되었으며, 1739년에 대사간이 되었다.
조선 후기에, 교리, 수찬,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조홍진 (趙弘鎭)
조선 후기에, 교리, 수찬,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훈련원정으로 전투에 참전한 무신.
최대성 (崔大晟)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훈련원정으로 전투에 참전한 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