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권행가"
검색결과 총 12건
1919년 서울시내 고보에 다니는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미술단체.
고려화회 (高麗畵會)
1919년 서울시내 고보에 다니는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미술단체.
1923년 4월 개성에서 조직된 미술단체.
홍엽회 (紅葉會)
1923년 4월 개성에서 조직된 미술단체.
인상주의 일제강점기 일본을 통해 유입되어, 전통미술의 근대화에 영향을 준 서양미술사조이다. 인상파 또는 임프레셔니즘이라고도 한다. 1874년 파리에서 열린 무명예술가협회전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미술운동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는 1910년대 일본을 통해 아카데미즘과 절충된 인상주의를 1세대 서양화가 고희동, 김관호, 나혜석이 처음 받아들였다. 1930년대 후반부터 오지호와 김주경은 인상주의를 과거의 사조로서가 아니라 현대미술의 진정한 미로서 독자적으로 해석했다. 이들은 인상주의를 한국의 자연과 빛을 재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형식언어로 파악했다.
인상주의 (印象主義)
인상주의 일제강점기 일본을 통해 유입되어, 전통미술의 근대화에 영향을 준 서양미술사조이다. 인상파 또는 임프레셔니즘이라고도 한다. 1874년 파리에서 열린 무명예술가협회전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미술운동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는 1910년대 일본을 통해 아카데미즘과 절충된 인상주의를 1세대 서양화가 고희동, 김관호, 나혜석이 처음 받아들였다. 1930년대 후반부터 오지호와 김주경은 인상주의를 과거의 사조로서가 아니라 현대미술의 진정한 미로서 독자적으로 해석했다. 이들은 인상주의를 한국의 자연과 빛을 재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형식언어로 파악했다.
순종 어진은 1923년에 김은호가 제작한 순종의 초상화 초본이다. 순종은 조선 제27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이다. 김은호는 근대기 채색화단의 대표적 화가이다. 어진 제작방식은 먼저 버드나무 숯으로 윤곽을 그린 후 기름종이에 먹선으로 초본을 만든다. 이것이 유지초본인데 이 단계에서 어진이 적합하다고 판명이 되면 계속 그려가게 된다. 이 작품은 순종어진 유지초본이다. 현재 남아 있는 유지초본은 국립현대미술관본과 고려대학교박물관본 두 점이다. 이 작품은 사진을 보고 윤곽과 음영을 파악하여 그리는 사진영상식 수법을 사용했다.
순종 어진 (純宗 御眞)
순종 어진은 1923년에 김은호가 제작한 순종의 초상화 초본이다. 순종은 조선 제27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이다. 김은호는 근대기 채색화단의 대표적 화가이다. 어진 제작방식은 먼저 버드나무 숯으로 윤곽을 그린 후 기름종이에 먹선으로 초본을 만든다. 이것이 유지초본인데 이 단계에서 어진이 적합하다고 판명이 되면 계속 그려가게 된다. 이 작품은 순종어진 유지초본이다. 현재 남아 있는 유지초본은 국립현대미술관본과 고려대학교박물관본 두 점이다. 이 작품은 사진을 보고 윤곽과 음영을 파악하여 그리는 사진영상식 수법을 사용했다.
「노점」은 박내현이 1956년에 그린 한국화이다. 이 작품은 1956년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판자집 같은 허름한 건물들을 배경으로 서민들의 시장 풍경을 묘사하였다. 색면의 윤곽선은 하얗게 남겨두는 네거티브 방식의 선 처리를 함으로써 선보다는 색면의 은은한 대비를 통해 화면에 긴장과 조화를 이끌어냈다. 여성 군상의 시장 풍경을 다룬 이 작품을 「노점A」, 남성 군상의 시장 풍경을 다룬 작품을 「노점B」로 구분한다. 「노점」은 입체파적 양식을 통해 화면의 추상성을 본격적으로 실험하기 시작한 시기의 대표작이다.
노점 (露店)
「노점」은 박내현이 1956년에 그린 한국화이다. 이 작품은 1956년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판자집 같은 허름한 건물들을 배경으로 서민들의 시장 풍경을 묘사하였다. 색면의 윤곽선은 하얗게 남겨두는 네거티브 방식의 선 처리를 함으로써 선보다는 색면의 은은한 대비를 통해 화면에 긴장과 조화를 이끌어냈다. 여성 군상의 시장 풍경을 다룬 이 작품을 「노점A」, 남성 군상의 시장 풍경을 다룬 작품을 「노점B」로 구분한다. 「노점」은 입체파적 양식을 통해 화면의 추상성을 본격적으로 실험하기 시작한 시기의 대표작이다.
박래현(朴崍賢)이 1956년에 그린 한국화.
이른 아침
박래현(朴崍賢)이 1956년에 그린 한국화.
「전봉준」은 박생광이 1985년에 그린 역사화이다. 종이에 수묵 채색된 작품으로 박생광의 대표적 역사화이다. 이 그림은 전봉준의 전주성전투를 소재로 동학농민운동의 혁명 정신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 ‘호남제일성’이라는 글씨가 있어 격전의 공간이 전주성임을 말해 준다. 구성은 화면 한가운데에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전봉준이 정면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다. 전봉준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듯 휘감아 돌면서 화면 밖으로 확산되는 구조이다. 이 그림은 화면의 복합적 구성, 대담한 원색 구사, 강인한 생명력 표현 등이 뛰어나다.
전봉준 (全琫準)
「전봉준」은 박생광이 1985년에 그린 역사화이다. 종이에 수묵 채색된 작품으로 박생광의 대표적 역사화이다. 이 그림은 전봉준의 전주성전투를 소재로 동학농민운동의 혁명 정신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 ‘호남제일성’이라는 글씨가 있어 격전의 공간이 전주성임을 말해 준다. 구성은 화면 한가운데에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전봉준이 정면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다. 전봉준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듯 휘감아 돌면서 화면 밖으로 확산되는 구조이다. 이 그림은 화면의 복합적 구성, 대담한 원색 구사, 강인한 생명력 표현 등이 뛰어나다.
고종초상은 1898~1899년에 휴벗 보스가 유화로 그린 대한제국기 고종황제의 초상화이다. 보스는 네덜란드인으로 1898년 조선에 들어와 고종의 초상화를 그렸다. 두 본을 그린 후 하나는 조선 왕실에 남겨두고 다른 하나는 파리박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가지고 갔는데 현존하는 것은 박람회 출품본이다. 초상화는 장막이 드리워진 배경으로 고종이 황룡포를 입고 궁궐 마루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을 그린 등신대의 전신 입상이다. 양식 면에서는 사실적 재현에 중점을 두었다. 이 그림은 현존하는 작품 중 서양인이 그린 최초의 조선왕의 초상이자 최초의 서양화이다.
고종 초상 (高宗 肖像)
고종초상은 1898~1899년에 휴벗 보스가 유화로 그린 대한제국기 고종황제의 초상화이다. 보스는 네덜란드인으로 1898년 조선에 들어와 고종의 초상화를 그렸다. 두 본을 그린 후 하나는 조선 왕실에 남겨두고 다른 하나는 파리박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가지고 갔는데 현존하는 것은 박람회 출품본이다. 초상화는 장막이 드리워진 배경으로 고종이 황룡포를 입고 궁궐 마루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을 그린 등신대의 전신 입상이다. 양식 면에서는 사실적 재현에 중점을 두었다. 이 그림은 현존하는 작품 중 서양인이 그린 최초의 조선왕의 초상이자 최초의 서양화이다.
김인승(金仁承)이 1937년에 그린 그림.
화실 (畵室)
김인승(金仁承)이 1937년에 그린 그림.
「봄의 가락」은 김인승이 1942년에 그린 그림이다. 캔버스에 유채로 세로 147.2㎝, 가로 207㎝이다. 제2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추천작가 자격으로 출품한 대작으로, 두 폭의 대형 캔버스에 인물군상을 그렸다. 두 폭 중 오른쪽은 첼리스트가 악보를 보면서 연주하는 광경이고 왼쪽은 7명의 한복차림 여인들이 감상하고 있는 광경이다. 해방 후 친일 행적으로 활동에 제약을 받았으나, 194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 개설 이후 추천작가 및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국전 아카데미즘 화풍 정착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봄의 가락
「봄의 가락」은 김인승이 1942년에 그린 그림이다. 캔버스에 유채로 세로 147.2㎝, 가로 207㎝이다. 제2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추천작가 자격으로 출품한 대작으로, 두 폭의 대형 캔버스에 인물군상을 그렸다. 두 폭 중 오른쪽은 첼리스트가 악보를 보면서 연주하는 광경이고 왼쪽은 7명의 한복차림 여인들이 감상하고 있는 광경이다. 해방 후 친일 행적으로 활동에 제약을 받았으나, 194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 개설 이후 추천작가 및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국전 아카데미즘 화풍 정착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김환기가 1970년에 그린 유화이다. 김환기의 1970년대 점화의 대표작이다. 캔버스에 유채로 그렸으며, 세로 236㎝, 가로 172㎝이다. 1970년 한국일보사에서 주최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은 시인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이 작품은 점의 크기와 색채의 농담과 번짐의 차이로 인해 마치 별빛이 부유하는 밤의 풍경 같은 우주적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고 평가된다. 김환기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1971년부터 1972년까지 대작의 점화를 다수 제작하였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김환기가 1970년에 그린 유화이다. 김환기의 1970년대 점화의 대표작이다. 캔버스에 유채로 그렸으며, 세로 236㎝, 가로 172㎝이다. 1970년 한국일보사에서 주최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은 시인 김광섭의 시 「저녁에」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이 작품은 점의 크기와 색채의 농담과 번짐의 차이로 인해 마치 별빛이 부유하는 밤의 풍경 같은 우주적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고 평가된다. 김환기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1971년부터 1972년까지 대작의 점화를 다수 제작하였다.
「걸인과 꽃」은 최지원이 1939년에 제작한 목판화이다. 종이에 목판화로, 크기는 세로 62.5㎝, 가로 47.5㎝이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조선인으로는 목판화로 처음 입선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꽃을 든 걸인이 항아리를 이고 지나가는 소녀를 바라보는 장면을 음각과 양각의 교차로 공간을 분할하고 굵은 선의 강약을 살려 대담하게 표현하였다. 「걸인과 꽃」은 공적 공간에 전시되는 감상의 대상이자 개인의 내적 표현언어로서의 판화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최지원의 판화작업은 이후 주호회 작가들을 통해 한국 현대판화로 이어졌다.
걸인과 꽃 (乞人과 꽃)
「걸인과 꽃」은 최지원이 1939년에 제작한 목판화이다. 종이에 목판화로, 크기는 세로 62.5㎝, 가로 47.5㎝이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조선인으로는 목판화로 처음 입선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꽃을 든 걸인이 항아리를 이고 지나가는 소녀를 바라보는 장면을 음각과 양각의 교차로 공간을 분할하고 굵은 선의 강약을 살려 대담하게 표현하였다. 「걸인과 꽃」은 공적 공간에 전시되는 감상의 대상이자 개인의 내적 표현언어로서의 판화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최지원의 판화작업은 이후 주호회 작가들을 통해 한국 현대판화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