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영범"
검색결과 총 8건
이혜수는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경성애국부인회와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창립에 동참하여 활동하였고, 1920년 독립운동 비밀결사 암살단의 활동을 도왔다. 1923년 의열투사 김상옥의 은신을 돕고 거사 준비금을 전해 주는 등 여러 활동을 측면에서 지원하였다.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해 병든 몸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혜수 (李惠受)
이혜수는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경성애국부인회와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창립에 동참하여 활동하였고, 1920년 독립운동 비밀결사 암살단의 활동을 도왔다. 1923년 의열투사 김상옥의 은신을 돕고 거사 준비금을 전해 주는 등 여러 활동을 측면에서 지원하였다.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해 병든 몸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강윤국은 일제강점기, 서울 부민관 투탄의거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일본에서 항일노동운동을 벌이고 귀국하여 비밀결사 대한애국청년당을 조직하였다. 1945년 7월 일제의 앞잡이 박춘금의 주도로 개최되는 선전극인 아세아민족분격대회 개최 장소인 경성부민관에 침투하여 미리 폭탄을 장치해놓고 대회 현장에서 터뜨리는 의거를 감행하였다. 대회는 혼란에 빠지고 의도대로 진행되지 못하였고,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의열투쟁의 대미를 이루었다.
강윤국 (康潤國)
강윤국은 일제강점기, 서울 부민관 투탄의거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일본에서 항일노동운동을 벌이고 귀국하여 비밀결사 대한애국청년당을 조직하였다. 1945년 7월 일제의 앞잡이 박춘금의 주도로 개최되는 선전극인 아세아민족분격대회 개최 장소인 경성부민관에 침투하여 미리 폭탄을 장치해놓고 대회 현장에서 터뜨리는 의거를 감행하였다. 대회는 혼란에 빠지고 의도대로 진행되지 못하였고,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의열투쟁의 대미를 이루었다.
김기득은 일제강점기, 국내와 중국, 일본에서 의열단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3 · 1운동 때 서울의 만세시위에 참여한 후, 1920년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국내 일제 기관 총공격 거사의 행동요원으로 대기하던 중 체포되어 장기 옥고를 겪었다. 출옥 후 신간회 활동을 거쳐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었다. 다시 2년의 옥고를 겪고 출옥한 뒤, 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김기득 (金奇得)
김기득은 일제강점기, 국내와 중국, 일본에서 의열단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3 · 1운동 때 서울의 만세시위에 참여한 후, 1920년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국내 일제 기관 총공격 거사의 행동요원으로 대기하던 중 체포되어 장기 옥고를 겪었다. 출옥 후 신간회 활동을 거쳐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었다. 다시 2년의 옥고를 겪고 출옥한 뒤, 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김병환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생애 내내 고향인 밀양에 살면서 일찍이 애국계몽운동에 이어 3 · 1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로 의열단의 국내 거사계획을 지원하였으며, 신간회 지회 활동을 주도하고 지역사회의 청년운동도 이끌어 지도하였다. 그러한 이력으로 세 번이나 옥고를 겪은 강골의 항일독립투사이면서 광복 후에는 민족자주노선의 독립국가 건설운동에도 매진하였다.
김병환 (金鉼煥)
김병환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생애 내내 고향인 밀양에 살면서 일찍이 애국계몽운동에 이어 3 · 1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로 의열단의 국내 거사계획을 지원하였으며, 신간회 지회 활동을 주도하고 지역사회의 청년운동도 이끌어 지도하였다. 그러한 이력으로 세 번이나 옥고를 겪은 강골의 항일독립투사이면서 광복 후에는 민족자주노선의 독립국가 건설운동에도 매진하였다.
김정환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 국권 피탈 후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일가형 김제환과 일제의 모든 식민통치 정책에 견결히 맞서 저항하였다. 일제로부터 수차례 구금당하기도 하였고, 강제로 집행되는 관헌의 재산압류를 10여 차례나 당하였다. 1919년 3월에는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김제환도 옥고를 치른 뒤 죽고, 1927년 처자가 잡혀가 구금되기까지 하자 김정환은 자결하였다.
김정환 (金政煥)
김정환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 국권 피탈 후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일가형 김제환과 일제의 모든 식민통치 정책에 견결히 맞서 저항하였다. 일제로부터 수차례 구금당하기도 하였고, 강제로 집행되는 관헌의 재산압류를 10여 차례나 당하였다. 1919년 3월에는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김제환도 옥고를 치른 뒤 죽고, 1927년 처자가 잡혀가 구금되기까지 하자 김정환은 자결하였다.
박인각은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선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3월 대한독립단 단원들이 평안북도 선천군 대산면의 친일 면장 및 면서기를 총살 처단하였을 때의 공범으로 수배되었는데, 1920년대 어느 때인가 붙잡혀 1931년 8월 이전에 옥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인각 (朴仁角)
박인각은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선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3월 대한독립단 단원들이 평안북도 선천군 대산면의 친일 면장 및 면서기를 총살 처단하였을 때의 공범으로 수배되었는데, 1920년대 어느 때인가 붙잡혀 1931년 8월 이전에 옥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승언은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희천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23년 9월 독립군 조직 천마산대가 희천군 북면 명문동의 순사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습격할 때 도왔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하였고, 1923년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겪다 1927년 11월 15일 형집행 정지로 가출옥하였다.
유승언 (劉承彦)
유승언은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희천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23년 9월 독립군 조직 천마산대가 희천군 북면 명문동의 순사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습격할 때 도왔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하였고, 1923년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겪다 1927년 11월 15일 형집행 정지로 가출옥하였다.
이근배는 일제강점기, 군자금 모집을 위해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할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비밀결사 농민단을 조직하여 1920년 9월 18일 평안남도 강동경찰서 투탄 거사를 주도하였다. 그 후 서간도의 대한광복군총영 요원이 되어 군자금 모집 활동을 계속하다가 체포되어, 1922년 8월 10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다 1931년 가출옥하였다.
이근배 (李根培)
이근배는 일제강점기, 군자금 모집을 위해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할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비밀결사 농민단을 조직하여 1920년 9월 18일 평안남도 강동경찰서 투탄 거사를 주도하였다. 그 후 서간도의 대한광복군총영 요원이 되어 군자금 모집 활동을 계속하다가 체포되어, 1922년 8월 10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다 1931년 가출옥하였다.